가을을 ‘독서의 계절’이라 부르는 건, 세계적인 문학상의 수상자 발표가 가을과 연말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세계 4대 문학상을 비롯해 세계 각국을 대표하는 문학상, SF·추리소설 등 장르 문학을 대상으로 하는 문학상까지, 독서 생활에 확실한 영감을 불어넣어줄 다양한 문학상을 소개한다.
LEADING LITERARY AWARDS
세계 여러 나라에는 자국 문학을 독려하고 널리 알리기 위해 이어져온 역사적인 문학상들이 존재한다. 일본 대중문학의 길잡이 역할을 하는 나오키상, 작가 이상의 정신을 기리며 기라성 같은 한국 소설가들을 발굴해온 이상문학상, 국경을 넘어 위대한 문학적 성취를 이룬 작가들을 기리는 체코의 프란츠 카프카상 등, 기억해두어야 할 작가들을 꾸준히 소개해온 전 세계의 유력 문학상들.
2023년 리베라투르상 수상자 아다니아 시블리Adania Shibli와 그의 책 〈Eine Nebensache〉.
리베라투르상 Liberaturpreis
독일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산하 아시아·아프리카·남아메리카 문학 진흥 단체인 리트프롬에서 수여하는 상.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 아랍 출신 동시대 여성 작가들의 번역이 독일 도서 시장에서 매우 저조하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1987년 만들어진 상으로, 매해 이 지역의 여성 작가를 선정해 수상한다. 2003년 오정희가 <새>로 수상했고, 김애란, 한강이 후보에 오른 바 있다. 매년 리트프롬에서 분기마다 선정하는 추천 도서 목록에 오른 여성 작가들은 자동적으로 리베라투르상 후보에 오르며, 온라인 투표를 통해 수상자를 결정한다. litprom.de
2023년 게오르크 뷔히너상 수상자 루츠 사일러 Lutz Seiler의 〈schrift für blinde riesen: Gedichte〉.
게오르크 뷔히너상 Georg Buchner Prize
독일 현대극의 선구자로 평가 받는 작가 게오르크 뷔히너의 이름을 따 제정된 상으로 독일의 가장 중요한 문학상으로 손꼽힌다. 1923년 시작해 독일 헤센주의 작가들에게 수여했으나, ‘작품과 책이 탁월성을 지니며, 독일의 동시대 문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작가’에게 수여한다는 목표로 1951년부터 독일어권 작가들을 대상으로 확대했다. 이 상을 수상한 독일 작가 5명(귄터 그라스, 하인리히 뵐, 엘리하스 카네티, 피터 한트케, 엘프리데 옐리니크)이 이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함으로써, 미래 노벨상 수상자의 가늠자 역할을 한다는 점이 흥미롭다. 독일어 문학 아카데미에서 주관하며 상금은 5만 유로. buechnerpreis.de
(왼쪽) 2022년 프란츠 카프카상 수상자 레베카 색스 Rebecca Sacks의 〈City of a Thousand Gates〉. (오른쪽) 프란츠 카프카의 초상.
프란츠 카프카상 Franz Kafka Prize
2001년 재정되었으며, 체코 프라하 시청과 프란츠 카프카 협회가 공동 후원해 매년 한 명의 작가에게 수여한다. 프란츠 카프카가 문학계에 갖는 독특한 위상과 영향력이 암시하듯 국가, 언어, 문화와 상관없이 ‘예술적으로 탁월한 문학 작품’에 수여한다. 특히 ‘휴머니즘과 이 시대를 증언하는 힘, 종교적 관용, 실존성과 관용’ 등 진지한 문학적 주제를 빼어나게 다룬 작가를 선정하는 것이 특징이다. 대표적인 역대 수상자로는 2001년 수상자 필립 로스, 2006년 수상자 무라카미 하루키, 2009년 페터 한트케, 2020년 밀란 쿤데라 등이 있다. 매년 10월 31일 프라하 구시가지 청사에서 진행되며 수상자는 상금으로 1만 달러와 프란츠 카프카의 미니어처 청동상을 받는다. franzkafka-soc.cz
2023년 퓰리처상 소설 부문 수상자인 바버라 킹솔버Barbara Kingsolver의 〈Demon Copperhead〉, 에르난 디아스Hernan Diaz의 〈Trust〉.
퓰리처상 Pulitzer Prizes
미국에서 1917년 제정된 퓰리처상은 저널리즘 분야에서 가장 권위 있는 상으로 알려져 있지만, 문학상 역시 큰 권위를 가진다. 음악을 포함해 예술 부문에 총 7개 상을 수여하며, 소설, 희극, 시, 비문학, 자서전과 전기 부문 등 문학계 전반에 대한 상이 6개에 이른다. 한 해 동안 쓰인 미국 국적 작가들의 작품을 대상으로 하며, ‘미국에서의 삶’을 주제로 다루는 작품이 선호된다는 특징이 있다. 중복 수상을 허용하며, 윌리엄 포크너와 존 업다이크, 콜슨 화이트헤드는 2회 수상했다. 컬럼비아 대학이 만든 퓰리처상 위원회에 의해 수상자가 결정된다. pulitzer.org
GENRE FICTION AWARDS
‘장르 문학’이란 일반적인 의미로 순수문학과 분리되는 과학소설과 SF 문학, 추리 문학을 통칭하는 말로 쓰인다. 환상적인 주제와 이를 펼쳐 나가는 속도감 있는 전개까지, 흥미와 가독성으로 대중을 사로잡고 있는 장르 문학. 200여 년 넘는 역사 동안 이어지고 있는 장르 문학계에서 변함없는 지표로 존재해온 가장 권위 있는 상들을 추렸다.
2023년 ‘골든 대거’ 상을 수상한 조지 도스 그린George Dawes Green의 〈The Kingdoms of Savannah〉.
대거상 트로피.
CWA 대거상 Dagger Awards
애거사 크리스티, 코난 도일, 브램 스토커 등 뿌리 깊은 ‘추리 소설’의 역사를 지닌 영국을 대표하는 문학상. 1953년 작가인 존 크리시John Creasey가 발족한 ‘영국 추리작가협회’가 주관하고 있으며, 1955년 첫 상을 수여하기 시작해 영미권을 대표하는 추리 문학상으로 명성을 이어오고 있다. 대거상은 그 수여 대상의 폭이 넓다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아직 작품을 출판한 적이 없는 신인 작가에게 수여되는 ‘데뷔 대거Debut Dagger’, 국적을 불문하고 영국에서 처음으로 범죄소설 작품을 출간한 작가에게 수여하는 ‘존 크리시(뉴 블러드) 대거ILP John Creasey(New Blood) Dagger’, 출판 인에게 수여되는 ‘베스트 범죄 & 미스터리 출판인’ 등 총 11개 부문에서 시상한다. 그중 2021년 ‘번역 추리소설’ 부문 에서 윤고은의 <밤의 여행자들>이 아시아권 작가 최초로 수상함으로써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중 최고의 상은 단연 ‘골드 대거Gold Dagger’ 상으로, 국적 불문 영국에서 출간된 최고의 추리소설에 수여된다. 전 세계의 드라마, 영화 제작자, 출판업자들이 늘 예의주시하는 상이다. 2023년의 수상자는 이미 발표되었으며, 올해 말까지 2024년 엔트리를 모집 중이다. thecwa.co.uk
2022년 에도가와 란포상 수상자 아라키 아카네荒木 あかね의 〈이세의 끝의 살인〉.
2023년 수상자 미카미 고시로 三上 幸四의 〈창천의 새 蒼天の鳥〉.
에도가와 란포상 江川賞
미국의 유명 추리소설 작가 애드거 앨런 포의 이름을 따 자신의 필명으로 삼은 일본 추리소설의 아버지 에도가와 란포에 의해 만들어진 문학상. 1955년 시작된 일본 최초의 추리소설 공모 신인상으로 일본 추리작가협회에서 주관하고 있으며, 후지 TV와 출판사 코단샤가 후원한다. 수상자에게 500만 엔의 상금을 수여하며, 수상작은 일본의 3대 출판사인 코단샤에서 책이 출간되며 전폭적인 지원을 받는다. 국내에 잘 알려진 수상 작가로는 1969년 수상한 모리무라 세이이치, 1981년 수상한 히가시노 게이고, 1998년 수상한 이케이도 준 등이 있다. 뛰어난 필력으로 진지한 물음을 던지는 일명 ‘사회파’ 작품들이 많이 수상하는 편이지만, 오락성이 강한 본격 미스터리 장르 역시 간과되지 않는다. 오랜 세월 수준 높은 작품과 작가를 발굴하며, 일본이 추리 문학의 강국으로 자리매김하는 데 크게 공헌하고 있다. 2015년 수상한 고 가쓰히로(오승호) 작가는 재일교포 3세 작가로, 나오키상 수상 후보에도 여러 번 오르며 화제가 되기도 했다. kodansha.co.jp/award
2022년 셜리 잭슨상 수상자 소피 화이트Sophie White의 〈Where I End〉, 가비노 이글레시아스 Gabino Iglesias의 〈The Devil Takes You Home〉.
셜리 잭슨상 Shirley Jackson Awards
2007년 미국에서 시작된 문학상으로, 빼어난 추리소설가인 셜리 잭슨의 문학적 유산을 기리고, 이 정신을 이어받은 작가들을 기리고자 제정됐다. 셜리 잭슨의 작품 〈The Haunting of Hill House〉는 <힐 하우스>라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로 제작된 바 있으며, 단편소설 〈The Lottery〉 등으로 영미권에서 매우 유명한 작가다. 심리적 서스펜스, 호러, 다크 판타지 장르의 소설 중 영어로 된 작품에 수여하는데, 외국어 작품도 영어로 번역되면 후보에 오를 수 있다. 작가, 편집자, 평론가, 학자 등으로 구성된 심사위원들이 수상자를 선정하며, 매년 가을 보스턴 일대에서 문학 콘퍼런스 모임인 ‘리더콘’과 함께 수상자를 선정하고 발표한다. 역사는 짧은 편이지만, 추리문학 팬과 전문가들의 적극적인 참여, 그리고 수상작가들의 활약으로 인해 명망 있는 문학상으로의 지위를 얻고 있다. 한국 작가로는 편혜영이 <더 홀>로 2017년 장편소설 부문을 수상해 널리 알려졌다. shirleyjacksonawards.org
2022년 에드거상 수상자 다냐 쿠카프카 Danya Kukafka의 〈Notes an Execution〉.
에드거상 EDGAR AWARD
영국의 대거상과 함께 추리소설 분야에서 양대 산맥을 이루는 상으로, 작가 에드거 앨런 포의 이름을 따서 만들어졌다. 1946년 ‘미국추리작가협회’에 의해 시작되었으며, 에드거상 수여 외에도 추리 작가 지망생에게 장학금을 수여하고 심포지엄이나 콘퍼런스를 개최하는 등 추리소설 생태계를 다방면으로 지원하고 있다. 한 해 동안 미국에서 출판 또는 제작된 책과 TV 프로그램을 대상으로 하며, 매년 봄에 수상자를 발표한다. ‘논픽션’ ‘전기소설’ ‘이북’ ‘데뷔작’ ‘텔레비전 시리즈’ 등 수상 부문 역시 방대한데, 그중의 꽃은 ‘장편소설’ 부문이다. 스티븐 킹, 레이먼드 챈들러, 로알드 달, 존 하트, 엘리 그리피스 등이 대표적인 장편소설 부문 수상자다. 특별상 중 하나인 ‘그랜드 마스터Grand Master’는 평생 추리 문학에 공로한 작가들에게 수여하는 상으로, 1회에 애거사 크리스티가 수상했으며, 올해는 마이클 코널리와 조앤 플루크가 공동 수상했다. edgarawards.com
(왼쪽) 2022년 휴고상 최우수 장편 부문 수상자 아르카디 마틴 Arkady Martine의 〈A Desolation Called Peace〉. (오른쪽) 로켓 모양의 휴고상 로고.
휴고상 THE HUGO AWARD
과학소설과 환상 문학 장르를 대상으로 하며, ‘SF계의 노벨상’이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그 권위를 인정받는다. SF 평론가이자 과학소설 잡지인 〈Amazing Stories〉의 발행인이었던 휴고 건즈백을 기념해 1955년 만들어졌다. 매년, 전해에 발간된 소설을 대상으로 심사하고, SF 소설의 본질과 시대의 흐름을 짚어볼 수 있는 작품을 선정한다. ‘그래픽 노블’상, ‘베스트 에디터’상 등 그 분야가 굉장히 세분화되어 있고, 작품의 길이에 따라서도 장편, 중편, 단편, 초단편, 시리즈로 나눠서 시상하는데, 하이라이트는 단연 ‘최우수 장편’ 부문이다. SF 3대 거장 중 한 명으로 불리는 로버트 하인라인, <듄>의 원작자 프랭크 허버트, 조앤 K 롤링, 미래학자이기도 한 아이작 아시모프, 지금 가장 주목받는 SF 작가 테드 창 등이 역대 수상자다. 최근에는 한국계 미국인인 이윤하가 3회 연속으로 최종 후보에 올라 화제가 되기도 했다. 올해는 중국 청두에서 10월 21일 시상식이 열린다. thehugoawards.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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