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겁게 놀 듯 일하고, 쉴 때도 디자인 작업을 한다는 그래픽 디자이너 조중현 씨. 그의 집은 자신의 작업을 닮아 반골反骨 기질이 엿보인다.
조중현 씨가 만든 포스터를 잔뜩 붙인 작업 방. 디자인의 정답은 사용자에게 있고, 모든 것은 가설이니 실험하기 전엔 모른다는 신념으로 일하려 한다고.
의도적으로 가구의 배치를 변경하며 새로운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려 한다.
9월호 1집의 주인공 조중현 씨를 만나러 간 어느 주말, 그의 집엔 1986년 강변가요제에서 금상을 수상한 밴드 ‘도시의 그림자’의 ‘이 어둠의 이 슬픔’이 울려 퍼졌다. 조중현 씨가 내게 37년 전 노래를 추천한 건 그가 단순히 1980년대 블루스 애호가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래픽 디자이너인 그는 대학가요제에 출전한 노래를 포스터 디자인으로 풀어낸 전시 <대강포스터제>의 기획자이기도 하다. 네이버 브랜드 디자인실 디자이너, 탈잉 디자인 팀장, 스매치 코퍼레이션 CDO(최고 디자인 책임자)… 조중현 씨 이름 뒤엔 멋진 커리어가 곧장 따라붙지만, 나는 그의 근사한 이력보다도 가장 먼저 <대강포스터제>에 대한 이야기로 그를 소개하고 싶었다. 순수한 애정에서 개최한 이 전시야말로 조중현 씨의 ‘반골 기질’ 성향을 가장 표현할 수 있는 근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옛 가요제를 처음 접하게 된 건 사실 반발심 때문이었어요. 어느 순간부터 우리나라에서 한국 시티 팝이라는 장르로 음반이 발매되는 거예요. 시티 팝은 버블 경제 때 일본이 고도성장을 이룬 후의 향유 같은 느낌인데, 우리가 과연 그 음악을 만들 수 있는 문화인가에 대한 의구심을 가졌죠. 그래서 디깅을 하기 시작했고, 그러다 찾은 게 대학가요제였어요. 듣고 보니 음악이 너무 세련되고 좋더라고요. 나만 알고 있기엔 아깝다는 생각에 ‘송골매’의 ‘모두 다 사랑하리’라는 노래를 포스터로 만들어서 디자이너 친구들에게 보여줬는데, 반응이 무척 뜨거웠어요. 그때부터 옛날 노래와 요즘 세대의 디자이너가 만나는 작업이 꽤 흥미롭다는 사실을 깨닫고 본격적으로 전시를 기획하게 됐어요.”
제1회 대강포스터제 굿즈.
앞에서 슬쩍 언급하고 넘어갔지만 조중현 씨는 그래픽 디자이너로, 지금은 부동산 프롭테크 스타트업인 스매치에서 CDO를 맡고 있다. 디자이너로서 그의 작업 방식은 조금 남다르다. 그는 결과를 미리 예측하거나 상상하며 하는 작업은 디자인을 단순한 스타일링에 그치게 한다고 여겨, 되도록 레퍼런스를 보지 않으려고 한다. 세상에 없던 디자인을 만들기 위한 그의 노력 또한 반골 기질로 연결된다고 볼 수 있는데, 이런 성향은 그의 작업 방식뿐만 아니라 주거 공간에도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다.
“제가 사는 곳은 지은 지 30년이 지난 오래된 아파트라 공간 구조가 지극히 평범해요. 보통 집 구조에 맞춰 가구 배치를 결정하기 마련이잖아요? 그런데 같은 구조에 같은 가구 배치로 수천 명의 사람이 동일한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기분이 이상해지더라고요. 그래서 ‘남들과 똑같이 하지 말자’라는 큰 방향성 아래 다양한 실험을 해봤습니다. 우선 거실에 거대한 벽걸이 TV를 설치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어요. 형태에 기능을 맞추는 것이 싫기도 했거니와, 미디어에 노출되는 것을 의도적으로 줄여 외부의 영향력을 낮추고 일상의 평온한 상태를 유지하려는 저만의 시도였죠. 또 손님이 놀러 오면 여유롭게 즐길 수 있도록 소파 대신 길이가 3m가량 되는 테이블을 거실 중앙에 배치했어요. 그게 본래 거실의 용도가 아닐까 싶었죠.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게을러졌고, 지금은 눕기 편한 소파를 구입해버렸네요.(웃음)”
서핑이 취미인 조중현 씨는 자신의 롱보드를 거실 벽에 걸어 취향을 드러내는 오브제로 활용했다.
독특한 인테리어의 정의가 기이한 모양의 가구와 오브제를 소장하고 있는지 아닌지로 판가름 날 때가 있다. 하지만 난 조중현 씨의 거실을 마주하고 그와 이야기를 시작한 순간부터 이 집이야말로 진정 ‘독특한’ 집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아무렇지 않은 듯 벽에 걸린 서핑보드, 곳곳에 놓은 직접 만든 타이포그래피 포스터, 저마다의 사연이 그득한 오브제… 그리고 궁극적으로 그는 독창적인 삶의 형태를 추구하는 사람이라는 것! 조중현 씨에게 아름다움에 대한 정의는 ‘보기에 예쁘다’는 개념보다 ‘마음이 쓰인다’는 표현에 가깝다고 한다. 촬영 내내 조중현 씨는 자신의 집이 누추하다며 거듭 손사래를 쳤지만, 난 그의 겸손함에 동의할 수 없었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나는 이 집이 무척이나 마음이 쓰였기 때문에.
1 조중현 씨 집에 넘쳐나는 포스터 중 누끼 촬영에 간택된 둘.
2 캠핑 애호가의 필수품 캠핑용 부탄가스. ‘메가’라고 적힌 타이포그래피 디자인이 마음에 쏙 든단다.
3 폐기물을 사용해 새로운 작품을 만드는 강영민 작가의 작품. 콘 모양 오브제 위에 자주 쓰는 나이키 모자를 얹었다. 아래는 조중현 씨가 대학교 졸업 작품으로 활용한 TV.
4 고등학생 때부터 입시 미술을 공부하며 쓰던 석고상. 머리 위에 조중현 씨가 파티를 할 때 자주 쓰는 이케아 탬버린을 올려놨다.
5 겹겹이 쌓은 컬러풀한 아르텍 스툴이 인테리어 소품 역할을 톡톡히 한다.
6 어머니가 만든 도자기. 형태가 대칭적이지 않고 특이해서 굉장히 마음이 쓰인다. 좋은 의미로!
7 이야기와 역사가 있는 머그를 좋아해 다수 수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