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계절, 2023 F/W 컬렉션을 본격적으로 맞이할 때다. 트렌드에 유연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는 사진가와 모델, 비디오그래퍼, 디자이너, 헤어와 메이크업 아티스트까지, 비슷한 듯 다른 각자의 무대에서 활동하는 그들에게 영감의 원천을 물었다. 같은 장면에서 다른 답이 나왔다.
MODEL
(왼쪽부터) STERRE HAKET, RICK OWENS, RICK OWENS
MODEL
장해민
가장 눈에 띈 모델은?
STERRE HAKET 목이 드러나는 쇼트 커트에 마이크로 브라 톱을 찰떡같이 소화하며 구찌 2023 F/W 컬렉션의 포문을 연 스테레 하켓. 그처럼 과감한 쇼트 커트에 도전하고 싶은 마음을 꾹 눌러 참느라 꽤나 고생했다. 하나 재밌는 점은 그가 바로 쌍둥이라는 것! 심지어 쌍둥이 자매도 함께 모델 활동 중이다.
화보나 런웨이에서 꼭 입어보고 싶은 룩은?
RICK OWENS 사진작가 리처드 아베돈으로부터 영감을 받았다는 릭 오웬스의 2023 F/W 컬렉션. 그중 거대한 볼륨감을 자랑하는 푸퍼 아이템과 케이프, 맥시한 드레스를 입어보고 싶다. 릭 오웬스의 아이덴티티와 리처드 아베돈의 피사체가 되는 듯한 느낌을 동시에 경험할 수 있지 않을까? 런웨이 위의 모델들처럼 두툼하고 높은 플랫폼 부츠를 신고 검은 콘택트렌즈를 착용한 채 카메라를 응시하는 모습을 상상해본다.
(왼쪽부터) SIMONA KUST, JIL SANDER, JIL SANDER
MODEL
루루
가장 눈에 띈 모델은?
SIMONA KUST 패션모델로서는 조금 작은 키지만, 그 신체적인 한계를 뛰어넘는 매력이 있는 시모나 커스트. 특히 눈빛과 포징만으로도 엄청난 압도감을 선사한다. 그의 작업물에서 느껴지는 에너지를 보고 있노라면, 더 잘하고 싶다는 동력이 생긴다. SNS에 공유하는 라이프 스타일을 찾아보는 즐거움 또한 쏠쏠하다.
화보나 런웨이에서 꼭 입어보고 싶은 룩은?
JIL SANDER 미니멀리즘의 대표 주자 질 샌더. 컬렉션을 볼 때마다 질 샌더만의 조형감과 컬러감이 굉장히 세련되다고 생각한다. 이번 시즌, 양모 펠트와 레더 등 빳빳한 소재를 사용해 만들어낸 실루엣은 마치 하나의 예술품 같아 탐이 났다. 앤디 워홀이 프린트한 것 같은 체리 프린팅 의상도 꼭 입어보고 싶은 룩 중 하나다.
(왼쪽부터) RIANNE VAN ROMPAEY, COLLINA STRADA, COLLINA STRADA
MODEL
이요셉
가장 눈에 띈 모델은?
RIANNE VAN ROMPAEY 주근깨 가득한 얼굴, 진저 컬러 헤어가 시그너처인 리아너 판 롬파이. 모델스닷컴의 TOP 50을 졸업하고 인더스트리 아이콘으로 등극한 톱 모델이다. 그의 런웨이와 화보는 볼 때마다 경외심이 들 정도다. 특히 2023 F/W 미우 미우 컬렉션에서 도트 패턴의 시스루 드레스에 안경을 쓰고 걸어나오는 모습이 아직도 뇌리에 박혀 있다. 앙큼하고 귀여운 미우 미우마저 저리 완벽히 소화하다니.
화보나 런웨이에서 꼭 입어보고 싶은 룩은?
COLLINA STRADA 뉴욕의 패션 브랜드로 로맨틱하면서도 펑키하다. 평소 유니크한 스타일을 즐기는 내가 옷을 입을 때 참고하기도 한다. 비비드한 컬러, 프린팅, 패치 워크, 레이스, 튈을 믹스 매치하는 신공은 질투가 날 정도! 이번 시즌에는 실제 동물을 형상화한 가면, 액세서리, 메이크업을 활용해 ‘Please Don’t Eat My Friends’ 라는 메시지까지 담은 똑똑하고 착한 브랜드다.
VIDEOGRAPHER
(왼쪽부터) VERSACE, MIU MIU
VIDEOGRAPHER
하룩히
인상 깊었던 쇼 음악은?
VERSACE Y2K의 부활과 함께 활발한 행보를 펼쳐나가고 있는 베르사체.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이번 컬렉션은 지지 하디드의 등장과 함께 강렬하고 웅장한 음악으로 시작했다. 바로 프리퀄Prequel의 ‘PART XV’. 프리퀄은 작곡가를 주축으로 한 프랑스의 음악 그룹으로, 고전음악의 우아함과 일렉트로닉의 사운드의 강렬함을 동시에 감상할 수 있는 것이 그들 음악의 특징이다. 이후 음악의 변화와 함께 일몰 아래 당당하게 런웨이를 걷는 모델들의 모습이 하나의 감동으로 다가왔다.
기억에 남는 무대장치 혹은 패션쇼 장소는?
MIU MIU 파리 팔레 디에나 궁전에서 관객들이 컬렉션 룩을 더욱 자세히 관찰할 수 있도록 지어진 런웨이와 그위를 줄지어 걷는 모델들의 모습에는 대중을 향한 미우 미우의 포부가 담겨 있는 듯했다. 무대 디자인은 아티스트의 신체를 중심으로 퍼포먼스를 펼치는 한국인 아티스트 정금형 작가와 협업해 진행했는데, 무대 위에 스크린 화면을 설치해 끊임없이 작업물을 재생한 점이 흥미로웠다. 사물과 신체의 관계를 탐구하며 ‘옷’이라는 것을 새롭고 낯설게 만드는 비디오는 여러 브랜드와 협업 작업을 하고 있는 나에게 귀감이 됐다. 미우 미우의 의도가 여실히 드러나는 직관적인 쇼였다.
(왼쪽부터) MIU MIU, GUCCI
VIDEOGRAPHER
최제익
인상 깊었던 쇼 음악은?
MIU MIU 이번 시즌을 통틀어 모든 분야에서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어놓은 브랜드가 아닐까. 카디건, 시스루, 언더웨어를 활용해 전체적으로 차분한 무드의 룩과 다르게 미우 미우의 배경음악은 광란 그 자체였다. 빠르게 쪼개지는 비트 위로 간간히 재즈의 선율이 흘렀는데, 그 이질감이 미우 미우의 룩에 오히려 더욱 집중되도록 기능했다.
기억에 남는 무대장치 혹은 패션쇼 장소는?
GUCCI 구찌의 2023 F/W 컬렉션은 엘리베이터에서부터 시작한다. 가슴을 겨우 가릴 정도의 마이크로 메탈 톱을 입은 모델이 엘리베이터에서 걸어 나오며, 겨자색 카펫 위를 성큼성큼 걷는다. 일상에서 흔히 이용하는 엘리베이터를 컬렉션장에서 보니 왜 이리 달라 보이던지. 런웨이를 모두 걸은 모델들은 다시 엘리베이터로 돌아가고, 그 엘리베이터에서는 이번 쇼를 위해 최선을 다한 12명의 크리에이티브 디자인팀이 나와 관중을 맞았다. 브랜드 최초로 크리에이티브 디렉션 없이 진행된 이번 컬렉션은 디렉터의 부재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왼쪽부터) BURBERRY, LOEWE
VIDEOGRAPHER
이든신
인상 깊었던 쇼 음악은?
BURBERRY 버버리에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바로 대니얼 리가 버버리의 신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데뷔한 것. 이 기념비적인 쇼를 위해 버버리는 영국 프로듀서 베리얼Burial과 손을 잡았다. ‘Truant’, ‘Young Death’, ‘Exokind’, ‘Shell of Light’, ‘Homeless’ 총 5개의 트랙으로 이어진 음악은 달라진 컬러 팔레트와 디자인만큼이나 음악에도 공을 들인 태가 여실히 느껴졌다. 5개 트랙의 흐름과 밸런스가 정말 훌륭한 것은 두말할 것 없다. ‘변화의 바람’이라는 티셔츠의 슬로건만큼이나 완전히 달라진 버버리의 모습을 확인해보시라.
기억에 남는 무대장치 혹은 패션쇼 장소는?
LOEWE 로에베의 쇼는 항상 기대를 불러일으킨다. 이번 시즌에는 새하얀 런웨이 위에 이탈리아의 아티스트 라라 파바레토Lara Favaretto가 색종이 가루를 몇 시간동안 압축해 만든 21개의 큐브 조각상을 설치했다. 이 작품은 접착제를 사용하지 않고 쌓아 컬렉션이 진행되는 동안 형태가 살짝 흔들리기도 했는데, 이는 조너선 앤더슨의 비영속성에 관한 아이디어를 반영한 것. 컬렉션이 끝난 후 이 조각상은 모두 수거해 라라 파바레토의 설치 작품에 재사용해 환경까지 생각했다.
EDITOR
(왼쪽부터) LOUIS VUITTON, FERRAGAMO, MOLLY GODDARD
패션 에디터
김송아
이번 시즌 가장 기억에 남는 브랜드는?
LOUIS VUITTON 믿고 보는 쇼가 있다. 내겐 루이 비통이 그렇다. 니콜라스 제스키에르는 프랑스를 상징하는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오르세 미술관에 프랑스의 현대 예술가 필리프 파레노와 협업한 런웨이를 설치했다. 우아하고 고풍스러운 미술관 사이에 자리한 기하하적인 런웨이를 배경으로 쏟아진 뉴 프렌치 룩의 향연. 드레이핑, 플리츠, 조형적 실루엣이 바로 그것이다.
FERRAGAMO 페라가모는 이번 시즌 두 번째 고향인 할리우드로 회귀했다. 1950년대를 함께한 소피아 로렌, 메릴린 먼로 등 할리우드 패션 스타들의 옷장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맥시밀리언 데이비스의 시선으로 모던하고 미니멀하게 풀어낸 것. 화이트, 레드, 블랙 컬러 팔레트로 펼쳐지며 허리를 잘록하게 강조하는 서클 스커트와 드레이핑 저지 드레스를 보고 있자니 페라가모의 신부흥기가 얼마 남지 않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MOLLY GODDARD 몰리 고다드는 학창 시절을 되돌아보며 회색 코트, 네이비 테일러드 재킷을 빈티지한 스웨터, 시폰 스커트와 함께 스포티하고 경쾌하게 스타일링했다. 메리 제인 슈즈를 신고 나오는 모델들의 룩 하나 하나가 얼마나 다 사랑스럽던지! 올 가을에는 꼭 몰리 고다드의 카디건 을 소장하리라.
(왼쪽부터) VALENTINO, GUCCI, DIESEL
어시스턴트 에디터
차세연
이번 시즌 가장 기억에 남는 브랜드는?
VALENTINO 남성 정장에서나 사용하는 넥타이를 이토록 로맨틱하게 표현할 수 있다니! ‘발렌티노 블랙 타이’ 컬렉션을 보았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이다. 격식을 갖춘 블랙 슈트에 프릴, 리본, 꽃, 페더 등의 디테일을 접목했는데, 이들은 룩에 여성성을 부여하고 젠더를 허물며 주어진 역할을 완벽히 소화해냈다. 단순히 모양에만 치중한 것이 아니라 입체감을 살려 하나하나 덧붙였기에 더욱 기억에 남는 컬렉션.
GUCCI 구찌의 2023 F/W 컬렉션은 과거에서 막 넘어 온 듯한 복고적인 분위기가 강했다. 1990년대 스타일의 로라이즈 스커트부터 거대한 퍼 재킷, 루스한 핏의 데님 팬츠, 컬러 스타킹까지. 하우스가 줄곧 선보여온 화려한 패턴과 창의적인 벌, 꽃 등의 모티프는 배제하고 핏과 소재에 집중한 것이다. 여기에 강렬한 컬러 팔레트까지 적용했으니, 타고난 원색 마니아로서는 보는 내내 눈이 즐거울 수밖에 없었다.
DIESEL 최근 가장 핫한 브랜드 중 하나가 무엇이냐 묻는다면 바로 디젤이 아닐까. 수많은 MZ 팬들을 보유한 뉴진스나 르세라핌처럼 핫한 아이돌이라면 반드시 한 번쯤은 입었으니 말이다. 디젤은 이번 쇼에서 다시 한번 그 저력을 보란 듯이 증명했는데, 다 찢어진 청바지와 니트, 몸에 딱 달라붙는 트레이닝복, 펑키한 프린팅 점퍼 등으로 무대 위를 가득 채웠다.
(왼쪽부터) SAINT LAURENT, SIMONE ROCHA, PROENZA SCHOULER
패션 에디터
홍혜선
이번 시즌 가장 기억에 남는 브랜드는?
SAINT LAURENT 체크 패턴이든, 가죽 재킷이든, 점프슈트든 그 옷이 무엇이건 간에 이번 생 로랑 컬렉션은 우아함으로 귀결된다. 여기에 과장된 어깨와 드라마틱한 형태, 젓가락처럼 가는 실루엣 등이 뒤섞였지만 결국 우아하다는 결론이 난다. 바카렐로만이 구현할 수 있는 특유의 날카로운 면까지 더했다.
SIMONE ROCHA 언뜻 스쳐도 디자이너가 누군지 짐작이 가는 옷이 있다. 시몬 로샤가 그렇다. 하지만 매번 새롭다. 같은 취향과 스타일 안에서 다양성을 찾고 새로운 미래를 보여주는 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2023 F/W 컬렉션은 아일랜드 전통 축제에서 얻은 영감을 그만의 언어로 써내려갔다. 그래서인지 어딘가 토속적인 분위기가 있지만 그마저 시몬 로샤답다.
PROENZA SCHOULER 프로엔자 슐러를 베스트 컬렉션으로 꼽은 이유는 단 하나, 클로에 세비니 때문이다. 그가 스타일 아이콘이 아니던 시절부터 열렬한 지지를 보낸 팬으로서 컬렉션을 본 순간 가슴이 뛰었다. 면면을 섬세하게 다룬 옷들은 전부 옷장에 넣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여성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고민했다고 한 디자이너의 한마디가 가슴에 꽂히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