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클래식 음악계는 라흐마니노프 열풍이다. 2003년이 바로 그가 태어난 지 딱 150주년이 되는 해이기 때문이다. 한 번 들으면 잊을 수 없는 아름다운 선율과 슬라브풍의 우수가 감도는 음악으로 20세기를 대표하는 음악가 라흐마니노프. 다시금 그를 기리기 위해 출시한 음반과 공연들을 소개한다.
라흐마니노프의 대표곡인 피아노협주곡 외에 아직 그의 교향곡에 입문하지 못했다면, 〈Rachmaninoff–Symphonies 2 & 3–Philadelphia Orchestra, Nézet-Séguin〉 앨범을 추천한다. 도이체 그라모폰이 약 10여 년 만에 선보이는 라흐마니노프 교향곡 전곡 앨범으로, 지난 2021년 출시한 1번 교향곡과 ‘교향적 무곡’를 담은 앨범에 이어, 2번·3번 교향곡과 ‘죽음의 섬’을 담은 완결판이다. 특히 주목할 점이 있다면 이 앨범을 녹음한 주인공들의 면면이다. 지휘자 야니크 네제 세갱Yannick Nézet Séguin은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와 함께 녹음한 〈Florence Price Symphonies No 1 & 3〉 앨범을 통해 그래미 어워드를 수상한 차세대 거장이며, 라흐마니노프에 대한 탐구 그리고 표현주의적인 지휘로 정평이 난 인물이다.
1900년에 창설한 미국의 명악단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는 라흐마니노프 교향곡 전곡 녹음을 떠올릴 때 가장 적절한 악단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러시아혁명 이후 미국으로 망명한 라흐마니노프가 죽을 때까지 미국에 머물며 발표한 거의 대부분의 곡이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에 의해 초연되었으며, 당시 지휘자 유진 오르만디Eugene Ormandy와 라흐마니노프가 함께 남긴 여러 장의 레코딩은 현재까지도 라흐마니노프를 이해하기 위한 ‘원전’이라는 평가를 받기 때문. 나아가 이번 앨범이 새로운 라흐마니노프 교향곡 전곡 음반으로서 각광을 받는 건, 의외로 라흐마니노프의 교향곡 전곡 앨범 중 손꼽히는 명반이 적기 때문이다.
특히 이 앨범은 작곡가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사랑했던 오케스트라에 의한 녹음이자, 작곡가가 직접 남긴 앨범으로부터 약 1세기 이후에 출시된 최첨단 사운드의 녹음이라는 면에서 라흐마니노프 교향곡의 새로운 이정표로 자리매김할 가능성이 높다. 지휘를 맡은 야니크 네제 세갱은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의 강점인 풍부한 현의 선율을 극대화하는 동시에 곡의 디테일을 꼼꼼하게 되살려, 가슴 아플 정도로 아름다운 사운드를 만들어냈다는 평이다.
세계 최고의 오케스트라 중 하나인 베를린 필하모닉은 자신들의 자체 레이블을 통해 〈Rachmaninoff 150〉 앨범을 출시하며 라흐마니노프에 대한 오마주를 바친다. 수록곡은 라흐마니노프가 남긴 세기의 명곡 피아노협주곡 2번과 ‘환상적 소품 Op.3’, ‘코렐리 주제에 의한 변주곡 Op.42’, 키릴 게르스타인이 편곡한 ‘6개의 노래 Op.4 중 3번’이다. 이 앨범은 독특한 계기로 세상에 나왔다. 지난 2022년 베를린 필하모닉의 여름 야외 콘서트 〈발트뷔네Waldbühne〉에서 선보인 키릴 거스타인Kirill Gerstein의 피아노협주곡 2번 공연이 압도적인 반응을 얻었고, 이를 계기로 같은 지휘자, 같은 악단이 다시금 보완한 녹음을 세상에 선보이게 된 것.
이들의 이번 앨범은 ‘향수로 가득한 시대착오적 감상주의’라는 혹평을 받곤 했던 라흐마니노프 피아노협주곡 2번의 재해석이라는 점에서 특히 주목할 만하다. 부풀려진 웅장함을 버리고 활기차면서도 섬세하게 연주한 피아노협주곡 2번과 더불어, 청신함이 살아 있는 초기 피아노 작품, 후기 작품인 코렐리 주제에 의한 변주곡의 절제된 하모니까지, 라흐마니노프 음악의 찬란한 변천사가 한 장에 담겨 있다. 이번 앨범은 사진작가 토마스 스트루트Thomas Struth의 감각적인 커버와 더불어 작품 해설이 담긴 76페이지의 소책자를 함께 제공해 소장 가치를 더한다.
한 음악가를 기리고, 그가 남긴 평생의 음악을 소장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클래식 음반사들은 적지 않은 공을 들여 ‘박스반’을 출시하곤 한다. 무려 32장의 CD로 구성된 〈Rachmaninoff the Complete Work〉 음반도 그중 하나다. 이 음반은 2014년 데카Decca 레이블에 의해 처음 출시되었으며, 올해 작곡가의 탄생 150주년을 기념해 리미티드 에디션으로 재발매되었다. ‘complete’라는 단어가 무색하지 않게 이 음반은 라흐마니노프가 남긴 모든 곡을 망라한 완결판이라는 점에서 독보적이다. 학생 시절에 남긴 작품부터, 라흐마니노프가 1919년부터 1929년까지 앰피코Ampico의 피아노 롤로 직접 녹음한 레코딩이 담겨 있으며, 그의 작품 중 가장 유명한 4개의 피아노협주곡은 각기 다른 피아니스트의 연주로 수록되었다. 역사상 최초로 라흐마니노프 피아노협주곡 전곡을 녹음한 블라디미르 아시케나지Vladimir Ashkenazy 연주의 피아노협주곡 4곡과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랩소디’, 러시아 피아니스트 알렉산드르 긴딘Alexander Ghindin이 연주한 피아노협주곡 1번과 4번의 오리지널 버전도 함께 만날 수 있다.
2023년 하반기, 라흐마니노프를 만날 수 있는 클래식 공연
니콜라이 루간스키. © Marco Borggreve
KBS교향악단 마스터즈 시리즈 II - 니콜라이 루간스키의 라흐마니노프 전곡
라흐마니노프 탄생 150주년을 맞아 마스터즈 시리즈를 이어가고 있는 KBS교향악단은 라흐마니노프 피아노협주곡 전곡 공연의 연주자로 러시아 피아니스트 니콜라이 루간스키Nikolai Lugansky를 택했다. 니콜라이 루간스키는 현재 모스크바 차이콥스키 국립음악원의 교수로, 겸손한 성품에 폭발적인 연주력을 갖춘 세계적 피아니스트다. 2일간 나눠 진행되는 이번 공연의 첫날(12월 13일)에는 피아노협주곡 1, 2번과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광시곡’을 연주할 예정이며, 둘째날(12월 15일)에는 피아노협주곡 3, 4번을 연이어 연주한다. 지휘는 러시아 출신의 스타니슬라프 코차놉스키Stanislav Kochanovsky가 맡는다.
공연 일시 2023년 12월 13일, 15일
장소 롯데콘서트홀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 라흐마니노프 교향곡 2번
라흐마니노프 하면 대개 피아노협주곡을 떠올리지만, 그의 교향곡 2번 역시 라흐마니노프의 음악 인생에 영광을 안겨준 명곡으로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이다. 피아노협주곡 2번의 성공으로 화려하게 재기한 뒤 몇 년 후 발표한 이 곡으로 라흐마니노프는 두 번째로 글린카상을 수상했으며, 차이콥스키를 잇는 교향곡 작곡가로서 위상을 다질 수 있었다. 라흐마니노프 교향곡을 들을 수 있는 흔치 않는 기회인 이번 공연이 더 특별한 이유는 우크라이나 출신의 지휘자 옥사나 리니우Oksana Lyniv의 손끝에서 태어나는 러시아 음악의 정수를 만날 수 있는 자리이기 때문. 국경과 이념을 넘어 순수한 ‘음악’으로서의 소통을 보여줄 이번 공연의 1부에서는 구소련의 대표 음악가였던 아람 하차투리안의 바이올린협주곡을 올릴 예정이다.
공연 일시 2023년 9월 17일
장소 예술의전당
COOPERATION 유니버설 뮤직(universalmusi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