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한국에 첫 상륙하며 키아프와 함께 열린 아트 페어 기간 동안 7만여 명의 관람객을 모으며 성공적인 첫 번째 축포를 터뜨린 프리즈 서울이 오는 9월 두 번째 개막을 앞두고 있다. 올해는 어떤 작품이 서울을 예술의 향연으로 물들일까?
하우저앤워스에서 출품하는 폴 매카시의 ‘Mimi’(2006~2008, pink silicone rubber, steel). ©Paul McCarthy Courtesy the artist and Hauser & Wirth Photo: Stefan Altenburger Photography Zürich
더욱 풍성해진 두 번째 프리즈 서울
프리즈의 첫 아시아 미술 시장 진출, 21개국 1백10여 개 갤러리 특히 가고시안Gagosian과 하우저앤워스Houser & Wirth 등 국내에 아직 진출하지 않은 메가 갤러리의 참여로 큰 화제를 모은 지난해 첫 번째 프리즈 서울. 서울이 아시아의 아트 허브로 자리매김하고 있음을 성공적 개최로 증명해냈다. 오는 9월 6일부터 9일까지 열리는 두 번째 프리즈 서울은 보다 확대된 30개국 1백20여 개 갤러리의 참여와 다양한 프로그램 추가로 벌써부터 분위기가 달아오르고 있다.
프리즈 서울의 디렉터 패트릭 리Patrick Lee는 “올해는 세계 각국의 우수한 갤러리들이 참여하며, 특히 아시아 기반의 갤러리들이 서울에서 최고의 작품을 선보일 예정입니다. 또 다양한 형태의 협업으로 특별 프로젝트를 확장해 보다 풍부한 프로그램을 제공함으로써 세계 각지의 예술가, 수집가, 큐레이터, 예술 애호가들 간 문화 교류의 장을 조성하고자 노력했습니다”라며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갤러리기체가 키아프에 출품하는 황원해의 ‘Whip’(2023, acrylic on canvas)
올해는 어떤 작품이 프리즈 서울을 찾아올까? 우선 하우저 앤 워스에서는 리터 어츠케르먼, 루이즈 부르주아, 존 체임벌린, 조지 콘도, 폴 매카시, 니콜 아이센망, 귄터 푀르크, 필립 거스턴, 제니 홀저, 로니 혼, 러시드 존슨, 글렌 리곤, 니콜라스 파티, 피필로티 리스트, 미카 로텐베르그 등 소속 아티스트들의 동시대 작품과 역사적 작품을 한자리에서 선보인다. 이 중 하이라이트는 단연코 필립 거스턴 ‘Combat I’(1978)이다. 거스턴의 후기 작업의 구상적 스타일을 보여주는 이 그림은 캔버스 가장자리를 뚫고 튀어나올 것 같은 팔과 말굽, 밑창을 묘사했다.
홀로코스트, 베트남전쟁, 1960년대 후반 미국 사회의 폭력과 불안 등 작품이 탄생한 시기의 역사적, 동시대적 사건에 공감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리만 머핀은 오는 11월 한국에서 첫 전시를 여는 로리엘 벨트란Loriel Beltrán과 세실리아 비쿠냐Cecilia Vicuña, 길버트 앤 조지Gilbert and George, 샹탈 조페Chantal Joffe 등과 더불어 이불, 홍순명, 서도호, 성능경 등 한국 작가의 작품도 선보인다. 리슨 갤러리는 회화, 조각, 종이 작업을 아우르며 특히 미야지마 타쓰오의 기념비적 작업 ‘Time Waterfall’, 애니시 커푸어Anish Kapoor의 대형 조각 등이 주목을 끈다.
올해 프리즈 서울의 아티스트 어워드 수상자 우한나 작가와 작품 ‘Milk and Honey5’(2023).
프리즈 서울에서 가장 기대되는 섹션은 ‘마스터즈’다. 지난해 피카소와 마티스, 에곤 실레 등 해외 뮤지엄에 가야 볼 수 있던 고전 작품들을 전시하면서 수많은 관람객이 줄을 설 정도로 인기가 많았기 때문. 올해 또한 20여개 갤러리가 수천 년 예술 역사의 주요 작품을 현대적 관점으로 선보일 예정이다. 루초 폰타나Lucio Fontana , 파올로 스케지Paolo Scheggi, 엔리코 카스텔라니Enrico Castellani 등 전후 이탈리아 예술의 아이콘을 포함해 20세기 후반 캔버스와 조각의 진화를 탐구할 수 있을 것이다. 갤러리현대는 마스터즈 섹션에서 서구 미술계에서 인정받은 최초의 한국 여성 미술가인 이성자 작가의 솔로 부스를 선보인다. 한국 추상미술 1세대와 같은 시대를 살다 간 이성자는 1951년에 파리로 떠나 생을 마감할 때까지 프랑스에서 60여 년을 전업 작가로 활동했다. 한 문화권에서 다른 문화권으로 이주하는 생을 산 작가의 역작을 소개할 예정이다.
프리즈 서울은 단순히 박람회장에서 끝나는 아트 페어가 아닌 서울 전역에서 음악, 영화, 전시, 대담, 야회 등 특별 큐레이팅한 프로그램을 마련한 것도 돋보인다. 김성우와 추성아가 큐레이팅한 ‘프리즈 필름’은 전소정, 홍이현숙, 김효재를 포함해 시간 기반 미디어에서 활동하는 열네 명의 한국 예술가를 집중 조명할 예정이다. 또 다른 이니셔티브는 9월 8일 성수동 오호OHHO에서 한국 래퍼 콜드Colde의 라이브 공연으로 올해 처음 선보이는 프리즈 뮤직Frieze Music이다. 또한 프리즈는 서울에서 처음으로 펼쳐지는 ‘아티스트 어워드’ 첫 번째 수상자로 우한나 작가를 선정했다. 신진 예술가의 작품을 프리즈 서울을 통해 처음 선보이는 기회를 제공하고, 불가리의 후원으로 마련했다. 여성성에 대한 세심한 고민과 통념을 깨는 조각 세계를 펼치는 우한나 작가의 매혹적인 패브릭 설치 작품이 코엑스에 설치될 예정이니 놓치지 말 것.
지난해 첫 번째 프리즈&키아프 공동 개최에 7만 명이 넘는 관람객이 페어장을 찾았다.
국제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여는 애니시 커푸어의 ‘In-between II’ (2021, oil, fibreglass and silicone on canvas). ©Anish Kapoor. All rights reserved DACS/SACK, 2023 Photo: Dave Morgan 이미지 제공: 국제갤러리
한국 예술의 지향을 보여주는 키아프
키아프가 지난해 프리즈와 공동 개최해 9월의 서울을 글로벌 미술계가 주목하는 국제적 미술 행사의 주역으로 주목받게 만든 것은 아주 탁월한 선택이었음이 입증됐다. 키아프는 올해 코엑스 A·B홀과 그랜드볼룸을 포함한 1층 전관에서 오픈하며, 프리즈는 3층 C·D홀을 사용한다. 키아프는 올해 특히 정부·지자체 및 유관 기관과 긴밀히 협력해 서울이 아시아 미술 시장의 허브로 입지를 다질 수 있도록 주력했다고.
올해 키아프에 처음 참가하는 갤러리로는 뉴욕의 데니 갤러리Denny Gallery와 더홀The Hole, 파리의 갤러리 마궈Galerie Marguo, 뮌헨의 갤러리 토마스Galerie Thomas, 홍콩의 뤼시 창 파인 아츠Lucie Chang Fine Arts, 발렌시아와 베이징의 트라이엄프 갤러리Triumph Gallery 등이 있다. 갤러리현대, 국제갤러리, 조현화랑, 아라리오갤러리, 학고재 등 한국을 대표하는 갤러리도 여전히 강력한 라인업을 준비 중이다.
리슨 갤러리 팝업 전시에 선보이는 나탈리에 유르베리&한스 베리Nathalie Djurberg & Hans Berg의 ‘A Stream Stood Still’(2022). © Nathalie Djurberg & Hans Berg, courtesy Lisson Gallery
리만 머핀 서울에서 개인전을 여는 데이비드 살레David Salle의 ‘Tree of Life, Prayer Works’(2023, oil, acrylic, and pencil on linen) © David Salle/VAGA at Artists Rights Society(ARS), New York. Courtesy the artist and Lehmann Maupin
베를린의 페레스 프로젝트Peres Project, 프랑스 갤러리 콩티뉘아Galleria Continua, 화이트스톤Whitestone 및 오라오라Ora-Ora 등 키아프에 꾸준히 참가하는 해외 갤러리도 주목할 만하다. 국내 갤러리들은 기성 작가를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흥미로운 젊은 작가들의 신작을 독점 공개한다. 특히 이길이구 갤러리, 아트사이드, 갤러리 플래닛, 갤러리 그림손, 리서울 갤러리, 더 페이지 갤러리, 기체 등을 눈여겨볼 것. ‘넘사벽’이라 할 수 있는 고가의 유명 작품보다는 유망한 신진 작가들의 작품을 관찰하고 구입할 수 있을 것이다.
한 명의 전시로만 진행하는 솔로 부스 섹션도 주목해보자. 미국, 한국, 라트비아, 벨기에, 스위스, 홍콩, 대만 등 여덟 개의 실력파 국내외 갤러리가 작가의 개성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독창적 작품들을 선보인다. 더불어 신진 아트 딜러 서른 명이 한국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역동적이고 재기 발랄한 젊은 작가를 소개하는 키아프 플러스Kiaf PLUS 섹션과 국내 뉴미디어 아티스트 10인의 몰입형 전시 〈Gray Box Area〉특별전은 키아프의 지향점을 첨예하게 보여줄 예정이다.
© the artist/DACS. Photo © Ivo Faber. Courtesy White Cube
© DACS. Photo © White Cube(Theo Christelis)
화이트큐브 서울 개관전에서 선보이는 두 작품. 루이즈 지오바넬리Louise Giovanelli의 ‘Soothsay’(2023, oil on paper)와 카타리나 프리치Katharina Fritsch의 ‘Hand'(2020, plaster and acrylic paint).
예술 축제 도시로 변모하는 9월의 서울
프리즈와 키아프가 열리는 9월 둘째 주가 되기도 전인 8월 말부터 서울 시내 곳곳의 갤러리와 뮤지엄에서는 특별 전시가 속속 개막하니 놓치지 않으려면 스케줄러에 빼곡히 정리해놓아야 할 정도다. 먼저, 프리즈 위크가 본격 시작되는 9월 5일부터 개관 시간을 지나서 저녁과 밤늦게까지 지역별 갤러리가 파티를 여는 ‘프리즈 나이트’가 진행된다. 5일에는 리움·페이스·휘슬·리만 머핀·P21 등이 모인 한남나이트, 6일에는 글래드스톤·송은·아뜰리에 에르메스·페로탕·화이트큐브 등이 모여 있는 청담나이트, 7일에는 갤러리현대·국제갤러리·리안·PKM·학고재 등이 모인 삼청나이트 순서다.
해외 유수 갤러리의 서울 지점 개관은 특히 더 화제가 되는데, 지난해 페로탕 서울에 이어 올해는 화이트큐브 갤러리가 서울에 진출한다는 소식이다. 9월 5일 강남의 호림아트센터 1층에 개관하는 화이트큐브는 1993년 런던에서 문을 연 후 데이미언 허스트, 트레이시 에민 등을 소개해 세계적으로 알려진 갤러리다. 홍콩에 이어 아시아에서 두 번째로 여는 서울 지점의 개관전으로 <영혼의 형상(The Embodied Spirit)>이 예정되어 있는데, 이진주 작가를 비롯해 루이즈 지오바넬리, 트레이시 에민, 카타리나 프리치 등 철학과 형이상학 및 인간 행동의 동기를 탐구하는 세계적 작가들의 그룹전으로 구성한다.
페이스갤러리에서 개인전을 펼치는 나라 요시토모의 시가라키 스튜디오 풍경. © Yoshitomo Nara, courtesy Pace Gallery
서울의 주요 뮤지엄에서 열리는 전시도 화려한 라인업이 눈에 띈다. 리움미술관에서는 9월 7일부터 회화 매체의 확장적 가능성을 탐구하고 전통과 동시대 미술, 문화와 사회적 문맥을 아우르는 강서경 작가의 대규모 전시 <버들 북 꾀꼬리>가 열린다. 대표적인 기존 연작의 확장된 작품과 대형화 설치 작품, 신작 등으로 구성한다. 서울시립미술관은 11월 19일까지 제12회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이것 역시 지도(THIS TOO, IS A MAP)>를 개최한다. 지난해 비엔날레 역사상 처음으로 진행한 예술감독 공모를 통해 선정한 레이철 레이크스Rachael Rakes의 기획으로 ‘지도 그리기’를 통해 지리적인 영토 밖에서 형성되는 역동성과 네트워크를 드러내고, 이를 통해 초국가적인 결속, 보이지 않는 헌신, 그리고 코드화된 데이터와 구조 같은 예술적이고 정치적인 소통을 향한 글로벌 미학으로 제시할 예정이다.
올해 한국을 찾는 아티스트 중 가장 기대를 모으는 작가는 큰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나라 요시토모다. 페이스갤러리는 9월 5일부터 1백40점의 도자기와 30점의 드로잉을 선보이는 전시 〈Ceramic Works〉를 열 예정이다. 이번 전시는 2005년 이후 한국에서 열리는 나라의 첫 개인전이기도 하다. 나라 특유의 어린아이를 연상시키는 캐릭터와 사색적이면서도 외로워 보이는 얼굴이 도자기 작업에서도 이어지며 작가가 소장하고 있는 캐비닛, 맞춤 목재 테이블 등을 활용해 전시를 구성할 예정이라고. 그런가 하면 국제갤러리에서는 인도 출신의 영국 작가 애니시 커푸어의 압도적 작품을 공개할 예정이다. 2016년에 이어 7년 만에 열리는 이번 개인전 역시 최근 작업 세계의 근간을 구성하는 신작 회화 및 조각과 함께 시각예술의 재료적·개념적 한계에 도전하고자 하는 작가의 비전을 소개한다.
파라다이스시티에서 열리는 특별전을 통해 국내에 최초로 공개하는 뱅크시의 ‘Love is in the Bin’(2018). ©BANKSY 2023
아모레퍼시픽미술관에서 로런스 위너의 대규모 회고전이 열린다.
대가의 전시도 이어진다. 2021년 79세의 나이로 타계한 미국의 선구적 개념 미술 작가 로런스 위너Lawrence Weiner의 대규모 회고전 〈LAWRENCE WEINER: UNDER THE SUN〉이 아모레퍼시픽미술관에서 개최된다. 작가 타계 이후 처음 열리는 대규모 회고전이자 국내 첫 개인전으로, 그의 언어 조각(language sculpture) 30여 점을 비롯한 에디션, 드로잉, 포스터, 모션 드로잉 등 다양한 작품을 통해 60여 년에 걸친 작업 세계를 조망할 수 있다. 특히 이번 전시는 다양한 국가와 문화적 요소에 관심이 많던 작가의 철학에 따라 아모레퍼시픽미술관에서 한국 고미술품을 함께 전시해 동서고금의 색다른 미감을 한자리에서 보여준다.
또, ‘AS FAR AS THE EYE CAN SEE(시선이 닿는 곳까지)’를 비롯한 6점의 작품은 국문이 병합된 형태로 설치해 언어와 문화의 경계를 초월한 확장성을 나타낼 예정이다. 갤러리현대 본관에서는 한국적 개념 미술을 개척한 선구자로 평가받는 성능경 작가와 한국 실험 미술을 재조명해온 갤러리현대가 함께하는 첫 전시가 열린다. 전시 타이틀인 <망친 예술과 행각>은 삶과 예술의 경계에서 생각의 틈새를 제시하고자 하는 성능경의 예술관을 응축한 키워드이기도 하다. 글래드스톤 갤러리는 미국 출신 거장 앨릭스 카츠Alex Katz의 개인전을 준비하고 있다.
리만 머핀 서울에서는 미국 출신으로 화가이자 작가, 큐레이터로 활동하는 데이비드 샐David Salle의 신작을 공개한다. 그의 개인전 에서 작품 속 캐리커처와 행위적 추상을 통해 형식적, 개념적, 심리적 차원을 가로지르는 예술과 삶의 문제를 극적으로 연출하는 화풍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프리즈 마스터즈 섹션에서 갤러리현대가 선보이는 이성자의 ‘Timelessness, July, 76’(1976, acrylic on canvas, wood).
프리즈&키아프 아트위크를 기념한 팝업 전시도 빼놓을 수 없다. 리슨 갤러리는 이음더플레이스에서 9월 2일부터 10일까지 아이 웨이웨이, 세라 커닝햄, 나탈리에 유르베리&한스 베리, 라이언 갠더, 시라제 후시아리, 애니시 커푸어 등 기성 작가와 신진 작가를 함께 소개하는 팝업 전시 〈Time Curve〉를 연다. 파라다이스시티에서는 9월 5일부터 두 달간 예술 전시 공간 ‘파라다이스 아트 스페이스’에서 소더비와 협력해 특별전 <러브 인 파라다이스: 뱅크시 앤 키스 해링(Love in Paradise: Banksy and Keith Haring)>을 개최할 예정이다. 작품 파쇄 퍼포먼스로 전 세계적 주목을 끈 뱅크시의 ‘Love is in the Bin’을 국내에서 처음으로 공개한다고.
패션 하우스 프라다는 문화 공간 코트KOTE에서 김지운, 연상호, 정다희 등 유명 영화감독들의 다양한 장소 특정적 설치를 통해 현대 영화에 대한 야심찬 비전을 제시하는 특별전 〈Prada Mode, Plural and Parallel〉을 펼친다. 디올은 단색화 대가 하종현, 사진작가 이정진, 김희원 그리고 아트 퍼니처 작가 박원민 등 24명의 한국작가가 레이디 디올 백을 재해석해 만든 작품을 선보이는 〈Lady Dior Celebration〉전시를 열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