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안에 들어선 순간부터 “이곳에 파티시에가 살아요”라는 외침이 맴도는 것 같았다. 동화에나 나올 법한 샛노란 주방에서 무의식적으로 케이크의 달콤함을 느낀 건지 모른다. 많은 종류 중에서도 콕 집어 생크림 케이크 같은 삶을 살고 싶다던 이지연 씨. 그가 바라는 생크림 케이크 같은 인생은 과연 어떤 것일까?
르코르뷔지에가 디자인한 LC2 암체어는 이지연 씨의 애착 소파. 음악을 듣거나 영화를 보는 등 이 자리에서 하루 반나절의 시간을 보낸다. 소파에 앉으면 창밖으로 비스듬하게 나무가 보이는데,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걸 좋아한다.
이지연 씨의 손끝에서 탄생한 빈티지 케이크
‘아, 이 실행력 닮고 싶다!’ 한남동의 유명 빈티지 케이크 숍 써드아이엠(@3rdiam_cake)을 운영하는 이지연 씨와 대화를 나눈 후 가장 먼저 든 생각이다. 놀랍도록 정교한 그의 작업 때문일까? 그를 만나기 전 기자는 이지연 씨가 제과 외길을 걸어온 ‘케이크순이’일 거라 단순히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제과와는 전혀 관련 없는 중국학과를 전공하고 상하이에서 대학원까지 진학한, 게다가 중국은행에서 일한 이력까지 있었다. 평소 제과에 관심이 많아 초콜릿 전문가 과정을 수료한 이지연 씨는 퇴사 후 덜컥 파주 헤이리 예술마을에 초콜릿 가게를 오픈했고, 일본 제과학교 유학을 거쳐 빈티지 데커레이션 케이크를 제작·교육하는 파티시에가 되었다. 장식이 화려한 케이크처럼 이지연 씨의 삶도 재미나게 흘러간다!
“저는 케이크라는 매개체를 통해 ‘나’를 표현하는 일을 할 때 행복감을 느껴요. 그래서 여행할 때도 케이크 만들 재료와 도구를 꼭 챙기는 편입니다. 일상과는 다른 이국적인 곳에 있으면 새로운 아이디어가 샘솟잖아요. 그 나라만의 컬러·건축물 등을 보며 받은 개인적 영감으로 여행지에서 작업하고,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여행에서 바로 돌아와 그 기분을 곱씹으며 케이크를 만들어요. 제가 만든 디자인을 보면 그때 상황이 생생하게 떠올라서 흐뭇합니다.”
자주 쓰는 프라이팬을 손이 잘 닿는 위치에 두고, 그 위로는 계절에 맞는 그림을 그때그때 교체해 걸고 있다.
케이크가 그려진 엽서를 주방 타일 벽에 붙여 귀여운 포인트를 더했다.
요리할 맛이 나는 화사한 주방을 꾸민 후 실제로 직접 요리해 먹는 날이 많아졌다.
초여름을 닮은 로맨틱 하우스
이지연 씨의 케이크는 모형이라고 착각할 만큼 탄탄하며 각이 살아 있다. 그리고 꼭 그 케이크 위에 부드러운 컬러를 입히고 고풍스러운 라인을 파이핑하는 등 사랑스러운 요소를 추가한다. 그가 만든 케이크에서 알 수 있듯 이지연 씨는 ‘의외의 포인트’가 있는 것을 선호하는데, 이런 취향은 지난해 새롭게 마련한 그의 보금자리에도 고스란히 반영되었다.
“상반된 질감이나 분위기를 한 곳에 적용하는 걸 좋아해요. 믹스 매치라고 할까요? 그래서 이 집에도 그런 요소를 곳곳에 살려서 꾸며봤어요. 중후한 느낌을 주는 LC2 암체어 옆에 위트 있는 형태의 구스타프 베스트만Gustaf Westman 스툴을 놓거나, 차가운 철제 선반 위에 발랄한 파스텔 톤의 소품을 놓는 것처럼 말이에요. 심지어 제가 가장 좋아하는 여행지는 상하이인데, 그 이유도 믹스 매치와 연결돼요. 상하이는 동양의 파리라고 일컬을 만큼 앤티크한 건물이 많은데, 내부는 또 중국 고유의 감성으로 꾸며져 있어 색다르고 보는 재미가 있거든요.”
이지연 씨는 사소한 것 하나도 오랜 기간 고민해 구매하는 탓에 이 집엔 생각보다 물건이 많지 않다. 편하게 휴식하는 집에서까지 물건에 짓눌리는 느낌을 받고 싶지 않아서, 되도록 물건은 사지 않으려는 편이라고.
비초에 철제 선반 옆에 밝은 옐로 컬러의 화분을 두어 나름의 믹스 매치 인테리어를 표현했다.
부드러운 파스텔컬러의 인테리어를 보면 파티시에라는 이지연 씨의 직업이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다. 케이크를 만들고 꾸미는 그의 일이 집까지 이어진 느낌이 든다고나 할까. 이지연 씨는 이 집의 콘셉트를 ‘로맨틱한 초여름’이라고 표현한다. 상큼한 옐로 컬러의 주방과 침실…. 그러고 보니 이 집에서 레몬이 콕 박힌 생크림 케이크 맛이 나는 것 같기도 하다.
“주방 쪽에 창문이 없어서 다른 공간보다 비교적 어두워요. 그래서 맨 처음 마음먹은 게 싱크대를 밝게 꾸미자는 거였어요. 처음엔 이 집에 대한 뚜렷한 콘셉트가 없었는데, 주방에 먼저 레몬 컬러를 상큼하게 넣기로 결정하고 다른 곳도 이 무드에 어울리는 물건을 하나씩 채우면서 싱그럽고 로맨틱한 초여름 느낌을 연출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인테리어할 때가 초여름이기도 했고요.(웃음)”
매그너스 올레센의 하프문 테이블. 이곳에서 식사도 하고 책을 읽는 등 여유로운 시간을 즐긴다.
하늘색과 하얀색 격자 타일에 노란색 컬러 메지를 직접 시공해 생기 있는 베란다를 완성했다.
턴테이블로 LP를 재생하는 순간 집의 온도가 올라간 듯 포근해진다.
여느 스튜디오처럼 보일 정도로 이 집은 온전히 전문가의 손을 거친 듯하지만, 사실 절반은 이지연 씨가 셀프로 리모델링해 완성한 공간이다. 성공적인 리모델링을 위한 6개월간의 철저한 사전 공부는 물론, 부엌 미드웨이와 베란다 타일 메지를 메우는 것, 기존 벽지를 뜯어내는 것 등 모두 스스로 작업했다. 이지연 씨가 벽지를 제거하게 된 배경은 이렇다. 30년 된 복도식 아파트의 끝 집이라, 외벽과 맞닿은 실내 벽의 결로가 심각했기 때문.
“벽지가 다 젖을 만큼 결로가 심한 집이었어요.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단열을 꼼꼼히 신경 써야 한다기에 단열 공사로 유명한 디자인 호연을 바로 섭외했죠. 너무 인기 많은 업체라 실제 공사까지 6개월을 기다리긴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정말 만족스러워요. 단열이 잘돼서 작년엔 난방을 하지 않고도 굉장히 따뜻하게 겨울을 보냈답니다.”
인터뷰 말미에 이지연 씨는 “이런저런 종류를 다 배워도 어차피 끝은 생크림 케이크”라는 제과학교 선생님의 이야기를 덧붙이며, 자신도 생크림 케이크처럼 기본에 충실한 삶을 살고 싶다고 전했다. 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건 깔끔하게 마감한 벽지, 속이 텅 비어 있지만 그럼에도 전혀 부족함이 없는 수납함…. 아, 그 얘기를 듣고 집을 둘러보니 이 집에서 정말로 생크림 케이크 맛이 나는 것 같다. 삶을 풍요롭게 가꾸어주는 건 화려한 무언가가 아닌 단순함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이지연 씨의 집은 이미 단순하지만 가치 있는 삶을 원하는 그의 바람을 꼭 닮아 있었다.
색다른 케이크 디자인을 위한 파티시에의 영감 창고
매번 새로운 디자인의 빈티지 케이크를 만들어야 하기에, 이지연 씨는 늘 주위로부터 색다른 자극을 찾는다. 사진, 꽃, 가구, 음악 등 아름다움을 좇는 파티시에의 영감 창고엔 어떤 아이템이 있을까?
밴드 프렙Prep의 〈Futures〉LP
가장 좋아하는 노래인 ‘Cheapest Flight’가 담겨 있어 무척 애정을 가지는 앨범. LP를 재생산할 때마다 LP 알판 색을 다르게 제작하는데, 이지연 씨는 민트색 버전을 소장하고 있다. 플레이어 위에서 청량한 민트색 판이 돌아가는 것만 보아도 기분이 좋다고. 가장 저렴한 비행기표를 사서 아무 곳으로 떠난다는 내용인데, 팬데믹 때 이 음악을 들으며 훌쩍 여행 가고 싶은 마음을 간신히 달랬다.
아니사 케르미쉬Anissa Kermiche 세라믹 화병
꽃을 풍성하게 꽂을 수 있는 큰 화병을 찾던 중 보석처럼 발견한 아이템. 여성의 실루엣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해 곡선미가 돋보인다. 꽃을 꽂는 부분이 말 그대로 ‘얼굴’ 부분이다 보니 표정이 달라지는 것처럼 어떤 꽃을 꽂느냐에 따라 공간의 분위기가 확 달라진다. 물론 꽃을 꽂지 않아도 그 자체로 훌륭한 오브제가 된다.
귀스타브 쿠르베Gustave Courbet 오리지널 포스터
1955년, 프랑스 화가 귀스타브 쿠르베의 전시에 내걸린 오리지널 포스터. 포스터 한쪽에는 그 당시 그림이 판매된 가격(5프랑)과 스탬프가 찍혀 있다. 이지연 씨는 물건을 쉽게 집에 들이는 편이 아닌데, 여성이 그려진 그림을 유독 좋아해서 빈티지 포스터 숍에 비슷한 그림이 올라오면 주저 없이 구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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