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스몰 브랜드 전성시대다. 작지만 강한, 매력 넘치는 브랜드가 속속 시장을 점령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최근에는 큰 브랜드조차 대중에게 스몰 브랜드로 어필하려는 경향마저 생겨났다. 그런데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게 하나 있다. 그저 작다고 능사는 아니라는 것. 성장하려면 작아져야 하는 이 아이러니한 시대에 진짜 성공하는 스몰 브랜드 전략은 무엇일까? 더워터멜론 우승우 공동 대표와 총 10회에 걸쳐 알아보기로 한다.
그랑핸드 도산점.
자율주행차처럼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고 시장을 형성하면 이윽고 수많은 브랜드가 등장하기 마련이고, 이에 따라 기존 브랜드들의 영역 경쟁이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고객에게는 희소식이지만 브랜드 입장에서는 생존의 압박이 커진다. 특히 인력과 자본, 시간 등 각종 자원이 부족한 스몰 브랜드는 경쟁이 쉽지 않다. 그럼에도 척박한 환경에서 살아남아 남들과 차별화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브랜드가 선택받기 위한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중에서도 ‘자기다움’에 대한 명확한 정의가 선행되어야 한다. 자기다움은 브랜드의 생각·문화·스토리·공간·비주얼 등을 포괄한다. 브랜드의 고유한 정체성을 설명하는 특별한 키워드이다. 정체성이 확고해야 존재 이유에 대한 답을 명확하게 내릴 수 있는 법. 고객들에게도 브랜드를 선택해야 하는 이유를 자신감 있게 전달할 수 있다. “저희를 골라주세요” 대신 “나는 이러한 이유로 만들어진 브랜드이고, 정체성이 이렇게 확실하다. 궁금하지 않은가?”라고 말하는 브랜드에 끌리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자기다움은 브랜드 정체성의 확립과 차별화의 시작이다.
왼쪽 차량용 방향제로도 쓸 수 있는 그랑핸드 사쉐. 오른쪽 그랑핸드의 향수 제품들.
이쯤에서 궁금할 만한 질문. “그렇다면 자기다움은 어떻게 찾아야 하나?” 자기다움의 개념은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다고 해도 막상 자신만의 자기다움을 발견하려고 하면 막막해지는 경우가 많다. 자기다움을 찾는 방법으로 가장 쉬우면서도 확실한 방법은 계속해서 브랜드와 창업가, 고객에 관한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자기다움을 찾는 세 가지 질문
1 왜 이 브랜드를 시작했고, 그 이유는 무엇인가?
2 이 아이템을 선정한 이유는 무엇이며, 이것으로 고객들에게 어떤 가치를 주고 싶은가?
3 고객이 당신의 브랜드를 선택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모빌리티 기술의 발전으로 장차 운전에서 해방되어 새로운 자유를 얻겠지만, 역설적으로 운전이 주는 재미, 내연기관 자동차가 주는 매력을 잊지 못하는 사람도 늘어날 것이다. 직접 운전하는 재미와 우렁찬 배기음을 듣고 설레는 마음은 전기차와 자율 주행 서비스로 대체할 수 없을 테니 말이다. 요즘 이런 고민을 해서인지 ‘피치스Peaches’라는 브랜드가 자꾸 눈에 들어온다. 이들은 동호회 중심의 서브컬처로 인식되던 자동차 문화를 다양한 형식의 콘텐츠와 결합해 즐길 수 있도록 해 새로운 문화를 일구고 있다. 시작은 스티커. 브랜드명이 그대로 적힌 작은 스티커는 과하지 않으면서도 나만의 개성을 표현하고 싶은 사람들의 숨은 욕구를 자극해 자동차 마니아들 사이에서 반향을 일으켰다. 이후 피치스는 자동차의 본질인 ‘드라이브drive’를 표현한 감각적인 영상 콘텐츠를 잇따라 선보였고, 남다른 관점과 창의성을 인정받아 글로벌 자동차 브랜드의 러브 콜을 연이어 받았다. 2021년 4월에는 성수동에 복합 문화 공간 ‘피치스 도원’을 열었다. 이 외에도 패션 및 자동차 굿즈를 출시하고 넥슨, 현대오일뱅크와 협업해 테마 주유소 파츠 오일뱅크’를 여는 등 참신한 협업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여인택 피치스 대표가 앞서 소개한 질문들에 직접 답하며 브랜드를 만들진 않았겠지만, 세 가지 질문에 대입해 생각해볼 수는 있겠다. 여인택 대표는 한국의 자동차 문화에 진부함을 느꼈고, 이를 바꾸고자 브랜드를 론칭했다. 자동차 문화를 아이템으로 선정한 이유는 단순하다. 그가 자동차를 좋아하고, 이 문화를 바꾸고 싶어 하는 열정이 누구보다 크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동안 자동차 문화를 새로운 방식으로 접근한 브랜드가 없었기에 이 브랜드의 탄생만으로도 고객에게 새로운 가치를 제공한다. 고객이 피치스를 선택해야 하는 이유도 간결하다. 이전까지 참신한 경험을 선사하는 브랜드가 전무했기 때문이다. 피치스만의 자기다움을 해석하자면 ‘새로운 방식으로 자동차 문화를 만드는 브랜드’가 아닐까? 귀여운 캐릭터가 돋보이는 노티드, 전통적인 브랜드인 한국타이어, 코카콜라 등과의 다양한 컬래버레이션이 어색하지 않은 이유는 자기다움이 새로움과 연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피치스와 넥슨, 현대오일뱅크가 협업해 오픈한 테마 주유소, 파츠 오일뱅크.
향수만큼 자기다움과 직결되는 제품도 드물 것이다. 취향과 선호도가 비교적 명확히 갈리니까. 후각은 감정의 75%를 좌우한다고 하지 않나. 다양한 향 브랜드 가운데 그랑핸드는 자기다움을 활용한 브랜드 운영의 정석을 보여준다. 자기다움은 브랜드의 차별화 전략인 동시에 의사 결정의 기준도 된다. 작게는 소셜 미디어 운영 방법부터 쇼룸 디자인, 브랜드 확장 시 고려할 요소까지. 한마디로 브랜드가 가야 할 길의 이정표라고 할 수 있다. 그랑핸드의 자기다움을 유추해보자면 ‘정직한 향의 일상화’다. 이 브랜드는 향을 직접 맡지 않고 판매하는 것은 향의 일상화라는 방향성에 위배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브랜드 론칭 후 7년 동안 수많은 온라인 몰 입점 제안을 모두 거절하고 오직 오프라인 매장 판매만 고집했다. 브랜드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기 위해 각종 바이럴 마케팅, 홍보와 협찬도 일절 진행하지 않는다. 이 모든 것은 ‘그랑핸드다움’에서 시작한다. 누군가는 ‘기술이 너무나도 빠르게 발전하는 이 시대에 지나치게 정직하고 느린 방법이 아니냐’며 반문할 수 있다. 하지만 자기다움으로 쌓인 견고한 성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그리고 견고함이 더해질수록 ‘입성’을 원하는 고객도 늘어나기 마련이다. 그 결과 그랑핸드는 코로나19가 한창이던 와중에도 매장을 확장하며 타 브랜드와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도 올곧게 자신의 길을 걸을 수 있었다.
시대가 빠르게 변할수록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게 되는 작은 브랜드는 편법의 유혹에 빠지기 쉽다. 하지만 자기다움을 찾고 그 속에서 진지하게 변화를 모색하고 진화하는 브랜드만이 작지만 큰 브랜드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브랜드를 시작했다면 가고자 하는 목적지는 정해진 셈이다. 어떤 수단을 선택할지, 어떤 도로를 타고 갈지, 어떤 속도로 갈지는 오직 자기다움에 달렸다.
우승우
더워터멜론 공동 대표. 브랜드 컨설팅, 캠페인, 커뮤니티, 플랫폼 등 브랜드의 비즈니스 가치를 높이는 일을 하고 있다. 다양한 일상의 모습을 브랜드 관점으로 바라보는 것을 좋아한다. 일반 기업은 물론 스타트업, NGO, 공공 기관, 학교, 축제, 개인에 대한 브랜딩에 관심이 많으며, 주류 속의 비주류를 꿈꾼다. 〈창업가의 브랜딩〉 〈디지털 시대와 노는 법〉 〈린 브랜드〉 〈오늘의 브랜드 내일의 브랜딩〉 〈작지만 큰 브랜드〉 등을 쓰고 번역했다.
thewatermelon.com
01. 비즈니스 전략이 브랜드 전략이다. [기사 보러 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