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에 대한 아무런 정보 없이도, 마음을 동하게 하는 표지를 만나면 그 책을 일단 집어들게 된다. 표지에 작가의 작품이 담겨 있는 경우엔 더더욱 그렇다. 출판사 담당자들에게 작가의 작품을 표지로 선정한 이유와 그 효과에 대해 직접 물었다.
현대문학 핀시리즈
“‘현대문학 핀시리즈’는 한국문학의 가장 현대적이면서도 첨예한 작가들을 선정해 월간 <현대문학>에 선보이고, 이것을 다시 단행본 발간으로 이어가는 프로젝트다. 핀시리즈는 작가의 작품을 선정해 표지에 싣는 아트 컬래버레이션을 이어오고 있는데, 벌써 16명의 작가들과 함께했다. 아트 작품을 표지로 만들면 문학을 더 특별한 하나의 예술 장르로서 소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핀시리즈가 독특한 매력을 지니게 된 것은 문학과 그림, 이 두 세계의 조화로운 조우 덕분일 것이다. 협업은 도서 라인업과 대략적인 소개를 작가에게 전달한 뒤 그에 맞는 그림을 받아보고, 그 가운데 도서와 가장 잘 어울리는 그림을 표지화로 선정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랑과 나의 사막〉 표지화는 이연미 작가가 맡았다. 사막, 물, 하늘, 선인장 그리고 미확인 생명체까지 모두 소설 속 이야기에 등장하는 요소들이 담겨 있다. 채지민 작가가 그린 <흉터 쿠키>의 표지화 속 왼쪽 하단에서는 새의 그림자를 확인할 수 있다. 이 그림자가 찍어 누른 쿠키 반죽 모양과 비슷해 저자인 이혜미 시인이 마음에 들어했다. “슬픔이 새겨진 자리를 / 잘 구워진 어둠이라 불렀지”라는 책 속 한 구절을 떠올리며 작품을 보면 그림의 의미가 확장되는 듯하다.” _ 현대문학 월간지팀 김지수
〈프리랜서의 자부심〉
“이 책은 우리 삶에서 ‘일’이란 무엇인지, 또 인생의 충만감은 어디에서 오는지, 일을 통한 단단한 성장의 과정을 김세희 작가 특유의 단정하고도 섬세한 언어로 담아낸 경장편소설이다. 프리랜서에게는 정해진 자리가 없다는 생각을 하다가, 사무실 책상과는 다른 느낌의 개인 책상이야말로 프리랜서에게 가장 어울리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부터 이희조 작가의 단정하고도 정적인 그림을 눈여겨보고 있었기에 그의 작품이 자연히 떠올랐다. 가지런한 테이블 위의 풍경을 보고 있으면 그 앞에 앉은 사람을 상상하게 되는데, 이 작품을 보는 순간 〈프리랜서의 자부심〉의 주인공인 ‘하얀’이 겹쳐 보였기 때문이다. 작가의 작품을 표지화로 사용하면 소설의 이야기와 정서를 상징적으로 전달하거나 암시하기에 더없이 좋고, 표지 자체로 책이 예술 작품으로 승화되는 지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서로 다른 두 영역의 아티스트가 협업하며 만들어내는 새로운 시너지를 기대하게 만든다.” _ 창비 문학출판부 한국문학1팀장 박지영
〈춥고 더운 우리 집〉
“공선옥 작가의 〈춥고 더운 우리 집〉은 작가가 살아온 집들에 대한 사유가 점점이 담긴 산문으로, 오늘날에는 다소 생경한 형태의 집과 독특한 표현들로 가득하다. 현대미술 작품은 산문의 결과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해 자연스럽게 고전 작품을 찾게 되었다. 해당 표지화는 표현주의 화가 발터 그라마테Walter Gramatt 의 ‘창가에 있는 소녀’라는 작품이다. 고전 명화를 표지로 사용할 때는 대체로 이미 유명한 명화를 쓰거나 때로는 잘 알려지지 않는 명화를 활용하는데, 전자는 독자에게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다는 장점이 있고, 이 책에 사용된 것과 같은 작품은 독자의 호기심을 이끌어내는 효과가 있다. ‘집’의 다양한 모습뿐만 아니라 그 집들을 대하는 작가의 외롭고도 숭고한 마음과 애절하고 냉담한 사유를 표현하기에 작품 속 소녀의 표정은 더할 나위 없이 잘 어울린다.” _ 한겨레출판 문학팀 편집자 김다인
〈9번의 일〉
“표지화 속 얼굴 없는 남성이 뻗은 다리를 보면, 업무 미팅 전 혹은 후 기력을 보충하기 위한 이완의 시간이 떠오른다. 소설 <9번의 일>의 주인공은 9번이라고 불릴 뿐, 이름이 없다. 최다혜 작가의 그림은 그 ‘이름 없음’의 느낌을 잘 드러낸다. 소설은 주인공이 ‘일’이라는 주제를 통해 겪는 비극을 담고 있다. 이를 감안해 채도가 낮고 질감이 표현된 유화가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일이라는 것을 소재로 다루는 소설이라는 점에서 허먼 멜빌의 고전 <필경사 바틀비>가 연상되면서도 더욱 세련된 이미지로 보였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있었다. 작가의 작품을 활용할 경우 소설의 주제나 소재를 살리는 것과 작중 분위기를 배가하는 것, 2가지 방향을 생각한다. 소설 〈9번의 일〉 표지화는 작품 분위기를 보다 직접적으로 짐작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조금 무료하지만 또 어느 정도 치열한, 희극적 요소보다 비극성이 짙은 분위기 말이다.” _ 한겨레출판 문학팀 편집자 김다인
〈도스토옙스키 탄생 200주년 기념판〉
“신예 화가 김윤섭은 고흐나 자코메티, 베이컨 같은 대가들을 자신의 화면에 등장시켜 대화하는 독특한 작풍을 선보여왔다. 그것은 흔히 ‘작가의 죽음’을 이야기하는 포스트모던 담론 속에서 작가의 의미를 묻는 탐구이자 현대 회화에 대한 비판적 개입이기도 하다. 그런 김윤섭 작가가 ‘지금의 도스토옙스키’를 담기에 가장 적합한 시각을 가진 아티스트라고 판단했다. 작가는 4대 장편을 직접 읽으며 작업을 진행했다. 그림마다 모두 도스토옙스키가 등장하는데, 때로는 주인공 뒤편의 벽에 걸린 그림으로, 때로는 자신이 창조한 소우주를 내려다보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이는 도스토옙스키의 장편소설 네 편을 묘사하는 동시에 김윤섭의 주제인 작가라는 존재에 대한 탐구를 확장하는 작업으로, 지금까지 도스토옙스키에 대한 초상화나 작품 삽화들과는 구별되는 신선한 충격을 안겨준다. 열린책들은 책 자체가 하나의 예술품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책을 만든다. 이번 〈도스토옙스키 탄생 200주년 기념판〉 앞표지에는 김윤섭 작가의 작품 외에 제목과 출판사 로고 등 다른 정보는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 꽤 파격적인 시도였다. 책등부터 뒤표지까지 감싸는 고급스러운 천 장정으로 그림이 가장 돋보이도록 했다. 결과적으로 예술과 디자인의 경계를 허물며 독자에게 한 걸음 다가갔다는 점에서 그 효과가 컸다고 생각한다.” _ 열린책들 디자인 팀장 함지은
COOPERATION 열린책들(031-955-3000), 창비(031-955-3333), 한겨레출판(6383-1602), 현대문학(2017-02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