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 척박했던 대한민국에 모더니즘 건축의 신호탄을 쏘아 올린 건축가 김중업이 올해로 탄생 100주년을 맞았다. 그가 남긴 방대한 건축적 사료를 살피고 정리하는 김중업건축박물관의 이명희 학예사, 지근거리에서 그에게 건축을 배웠던 건축가 곽재환에게 그가 남긴 건축적 유산에 대해 들어보았다.
이명희 고고학을 전공(석사)하고 국립춘천박물관과 국립문화재연구소 등에서 경력을 쌓았다. 2013년 11월부터 안양문화예술재단 박물관(안양박물관, 김중업건축박물관)에서 학예사로 근무하고 있다.
한남동 이강홍 주택.
‘종합예술’로서의 건축을 추구하다
“김중업건축박물관은 이번 기획 전시를 통해 1960년대 중반부터 1980년대까지 김중업의 후반기 건축 세계를 보여주고자 한다. 이 시기는 김중업이 서양 모더니즘 건축의 직접적인영향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건축 세계를 펼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 시기다. 그는 1971년, 정부의 개발정책에 대한 비판으로 인해 해외로 추방되는 불운을 맞았다. 이렇듯 어려운 시기에 그가 해외에서도 국내외의 여러 작품을 설계하려고 노력했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당선되진 않았지만, 외환은행 본점, 민족대성전 등을 설계했고, 성공회회관은 당선이 되어 시공에 들어가긴 했지만, 한국에 안 계셨기 때문에 현장 문제에 적극적 대응을 할 수 없었다. 서교동의 홍명조주택 같은 경우도 해외 체류 당시의 작업이다. 당시 사무소 직원들과 편지를 통해 설계안과 이 집에 대한 생각을 주고받았던 기록이 남아 있다. 주택 건축은 건축가 김중업을 이야기할 때 간과되곤 하는데, 자료를 모으고 연구하는 입장에서 보자면 좀 더 보존될 가치가 있다고 여겨진다. 주택 작업은 김중업이 군사정권과의 불편한 관계 속에서 그의 건축 언어를 펼쳐낼 수 있는 최고의 매개체였다.
제주대학교 본관.
김중업 선생의 명작으로는 지금은 사라진 ‘제주대학교 본관’ 건물을 꼽고 싶다. 이 작품은 1966년도 작품으로, 건축가와건축주의 합이 가장 잘 맞았던 최고의 작품으로 기억하며, 당시 해외에서 더 많이 알려졌던 작품이다. 바다와 접한 땅에 푸른 잔디와 하늘을 배경으로 개성이 강한 흰색 건물을 세웠는데, 이 모습을 보면 많은 사람이 잠수함이나 비행기, 기차, 유람선 등을 닮았다는 반응을 한다. 이처럼 이 건축물은 조형적인 요소가 특히 돋보인다. 복합적인 기능을 담고 있지만 서로의 기능을 독립적으로 잘 유지할 수 있도록 디자인했고, 계단이나 경사로가 나선형으로 펼쳐져 있어 매우 아름답다. 당시 제주대학교의 문종철 학장이 설계 의도가 훼손되지 않고 건물이 지어질 수 있도록 전폭적인 지원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건축가와 건축주가 일심동체가 될 때 좋은 작품이 탄생한다는 예를 보여주는 작업으로서도 의미가 있다.”
주한 프랑스대사관.
‘인간 존엄’에 대한 찬가로서의 건축
“김중업은 ‘인간의 존엄성’을 건축으로 구현해내고자 한 건축가다. 작업이 시적 울림을 갖길 원했고, 건축으로 인간에게 감동을 주고자 했다. 특히 선생의 작품은 조형성이 상당히 탁월한데, 그것이 조형 그 자체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 만하다. 특히 초기 작품인 ‘주한 프랑스대사관’에 그런 특징이 잘 나타난다. 땅의 지형이나 구릉 등의 자연을 잘 이용했고, 건축물을 바라보는 높고 낮은 시선을 모두 의식하면서 디자인했다. 그로 인해 건축물 전체에서 하나의 리드미컬한 음악과도 같은 시적인 울림이 생겨난다. 이를테면, 프랑스대사관 집무동 건물의 경우 하부는 박스 형태로 디자인해 기능적인 면에 충실한 반면, 상부의 날렵한 곡면 지붕은 좀 더 미적인 요소에 집중한 모습이다. 이 작업에서 특히 자주 이야기되는 것이 우리 전통 건축의 처마를 닮은 상부 지붕의 곡선이다. 이 곡선은 한 방향의 곡면, 입면성의 곡선만 있는 게 아니라 좌우, 대각선의 2차, 3차 곡선이 존재한다. 우리 전통 건축의 처마가 그러한 것처럼 말이다. 당시의 열악한 공사 상황에 비추어보면, 이런 미적 균형과 흐름을 파악하고 제대로 시공하는 일이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이 작품은 선생이 체득한 현대건축의 기법으로 한민족의 미적 감수성과 미의식을 조화롭게 구현했다는 점에서 가히 ‘명품’이라 부를 만하다.
민족대성전 모형.
재한 유엔기념공원 정문.
김중업의 건축에서 가장 대표적 가치를 꼽는다면, 유려한 곡선으로 이뤄낸 ‘낭만성’과 이 땅이 갖고 있는 건축적 미의식을 현대건축의 기법으로 구현해낸 ‘서정성’이라 말하고 싶다. 이 2가지가 잘 조화를 이룬 작품으로는 부산에 있는 ‘재한 유엔기념공원 정문’을 꼽고 싶다. 기둥의 배흘림이라든가 지붕과 기둥의 결합부, 처마와 용마루의 선들은 이전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없는 아주 특별한 조형성을 지닌다. 주지하듯 선생은 ‘선’을 자유롭게 사용했는데, 그래서 시공 과정에서 비용 문제나 구현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다. 만약 지금처럼 컴퓨터를 이용해서 건축에 디테일을 치밀하게 더할 수 있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랬다면 DDP를 설계한 자하 하디드처럼, 자신의 정신을 더 자유롭게 펼치지 않았을까!”
COOPERATION 김중업건축박물관(사진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