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경영지원센터의 ‘한국 미술 시장 결산’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미술 시장 규모는 9천2백23억 원이었고, 올해 상반기 규모는 5천3백29억 원이다. 아트 붐의 한가운데, 한국 대표 국제 아트 페어인 키아프 서울(Kiaf SEOUL, 한국국제아트페어)과 글로벌 아트 페어의 양대산맥인 프리즈가 열렸다. 2001년 키아프 출범의 주역인 한국화랑협회 황달성 회장에게 키아프와 프리즈가 남긴 성과와 과제에 대해 들었다.
금산갤러리 대표이자 우리나라 상업 갤러리의 연합체인한국화랑협회를 이끌고 있는황달성 회장.
미술을 애호하는 컬렉터였다가 1992년 금산갤러리 운영을 시작으로 미술 시장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였는데요.
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다가 집안 사업을 하게 됐는데, 그때 화가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렸습니다. 실력에 비해 여건이 열악한 작가들의 현실이 안타까웠고, 컬렉터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좋은 작가를발굴·육성하는 갤러리의 역할도 중요하다고 판단했죠. 갤러리를 연이후 떠밀리듯 이 자리까지 왔지만, 그 밑바탕에는 작품을 즐기고 작가를 아끼는 미술 애호가의 마음이 주추처럼 버티고 있었습니다.
국내 최초의 국제 아트 페어인 키아프 서울을 출범시킨 주역인데요, 국제 아트 페어를 출범시킨 이유는 무엇입니까?
제가 한국화랑협회 국제 이사를 맡고 있을 때인데, 코엑스에서 국제적 이벤트 기획을 제안했고, 국내 주요 미술관과 갤러리에서 아시아미술 전성시대를 예감하는 전시가 많이 열렸습니다. 우리에게 미술품 무관세라는 정책적 이점도, 뛰어난 작가도 있으니 한국 미술을 국제적으로 알릴 아트 페어 시작의 최적기라 생각했죠. 물론 여러 반대에 부딪혔고, 장소와 예산을 구하는 일도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한국에도 대형 아트 페어 하나는 있어야 한다”며 힘을 실어준 분이많았고, 부산시립미술관에서 연간 예산의 절반에 달하는 금액을 지원해 그림을 구입해주는 등 도움을 많이 받았죠(2002년 아시안게임 개최로 제1회 키아프는 코엑스 대신 부산 벡스코에서 열렸다).
그렇게 시작한 키아프는 2021년 방문객 8만 8천여 명을 돌파하며 최고 기록을 경신했고, 올해는 프리즈와 공동 개최를 이뤄냈습니다.
제2회부터 흑자를 내기 시작해 한때 아시아 시장에서 1위를 차지하던 키아프가 2010년대 후반에 들어서며 아트 바젤 홍콩, 아트 센트럴, 상하이 웨스트번드 등에 밀려 6~7위까지 추락했어요. 키아프를만든 사람으로서 안타까웠죠. 그러던 중 홍콩의 정치 혼란이 가중되면서 미술 시장이 얼어붙기 시작했습니다. 아시아 아트 허브의 이동이 필요한 시점이라 기회라고 생각했고요. 우리 미술계의 위기를 돌파하고, 변화를 주도할 방법으로 프리즈와 협업을 선택한 것이죠.
올해를 시작으로 5년 동안 프리즈 서울과 함께 아트 페어를 개최하는데요, 프리즈 서울과 공동 개최는 ‘기회와 부담’일 것입니다. 두 아트 페어를 개최하면서 어떤 가능성과 과제를 확인했나요?
올해 키아프 서울에 총 8만 5천여 명의 관람객이 입장한 것으로 추산됩니다. 프리즈 서울의 첫 개최라는 이슈로 키아프 서울이 상대적으로 조명받지 못한 측면도 있지만, 프리즈에 비해 부족한 점을 분석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죠. 하드웨어적 측면(부스 설계나 설비, 조명등)이나 디자인 면에서도 프리즈와 격차가 좀 있었고요. 또한 핵심은 작가라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아트 페어의 본분은 새로운 작가를발굴하고, 기성 작가의 신작을 발표하는 것이죠. 키아프는 프리즈에비해 작가군이나 작품의 다양성 등이 부족하다고 말하는 국내외 언론, 갤러리스트, 컬렉터가 많습니다. 이를 겸허하게 인정하고, 작가들도 혼신의 힘을 다할 준비를 시작해야겠지요. 지금 해외 미술계에서 한국 단색화가 주목받는데, 사실 단색화도 서구 미니멀리즘과 연결된 것이니 한국 미술의 대표 격이라고 볼 수 없단 말이죠.
국립현대미술관과 함께 동산방, 금산갤러리 등 화랑들이 한국화를 살리려는 운동을 시작했어요. 그것 또한 해낼 거라고 저는 믿습니다.
우리는 올해 두 아트 페어를 통해 대중적 관심을 확인했고, 한국 작가의 국제 무대 진출 가능성을 보았습니다. 프리즈를 포함해 대부분의 아트 페어는 기업이나 개인의 비즈니스인 데 비해 키아프는 한국화랑협회가 진행합니다. 이윤 추구보다 ‘한국 미술의 세계화’라는 공공의 목표를 앞에 두고 있죠. 아트 페어 성장에 이는 단점이기도 하지만 한국 미술의 거시적 발전을 위해서는 장점이 될 것입니다.
키아프 서울에 참여한 뉴욕의 카발호 박Carvalho Park 갤러리 부스. 박세윤의 조각, 델핀 헤널리의 회화 등을 전시했다.
키아프 서울 2022는 9월 2~6일까지 코엑스 A홀, B홀에서 열렸다.
과연 아트 페어가 미술 시장에서 하는 역할은 무엇일까요?
음악으로 치면 오페라라고 봐야겠죠. 단순히 작품을 사고파는 장터가 아니라(물론 그것도 중요하지만) 다양한 범위의 문화 산업이 오페라처럼 한 무대에서 조우하며 하나의 예술을 만드는 장입니다. 아트 페어에 방문한 컬렉터는 그림만 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지역의 여러 문화를 즐기며 의식주를 총체적으로 경험하잖아요. 어느 도시든 큰 규모의 아트 페어가 정착하면 여러 개의 위성 페어가 생겨나죠. 그로 인해 숙박, 관광, 식문화 등 다양한 산업이 골고루 혜택을 입고요. 특히 우리나라처럼 콘텐츠를 국가 자생의 원동력으로 삼아야하는 나라로서는 아트 페어가 하나의 모멘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올해 키아프 서울, 프리즈 서울을 계기로 글로벌 시장에 대비하기 위한 준비를 한국화랑협회가 차근차근 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미술품 물납제(상속세를 미술품, 문화재로 대납하는 제도)가 2023년부터 시행되는데 여기에는 시가 감정이라는 기준이 꼭 있어야 해요. 국민대학교 법대와 협업해 ‘아트로Art Law’ 과정을 만들고 시가 감정 전문가를 교육 중입니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과 ‘분석 과학을 활용한 미술품 감정 분야 데이터 축적’ 업무 협약도 맺었습니다. 갤러리스트 아카데미 등의 교육 프로그램도 강화하고 있죠.
‘앞으로 어떤 미술이 세계 미술계를 주도할 것인가’ ‘AI와 공동 작업,NFT 아트의 지속은 가능한가’ 등 다양한 과제에 대해 갤러리스트들과 함께 고민하고 교육하는 프로그램을 준비 중입니다.
미디어 아트, NFT 아트 등 디지털 아트와 신생 화랑을 조명한 키아프 플러스는 9월 1~5일까지 세텍에서 개최했다.
키아프의 솔로 프로젝트 부스는 참가 갤러리의 가장 중요한 작가 한 명의 작품만 집중 조명하는 전시였다.
서울이 국제적 아트 마켓으로 자리 잡을 수 있는 요건이 갖춰졌고, 아시아 미술 시장에서 매우 중요한 도시로 주목받고 있음을 확인하는 자리였다.
키아프디렉터가 짚은 ‘키아프 서울 2022’ 키워드
1 아시아 아트 허브의 가능성 확인
K-콘텐츠를 전 세계가 주목하면서 한국 문화에 대한 이해와 인기가 세계적으로 높아졌다. 여기에 키아프와 프리즈의 공동 개최를 통해 한국의 아트 허브 가능성도 확인했다. 사실 한국은 이미 아트 마켓으로서 유리한 점을 많이 지니고 있다. 세계 GDP 10위권 내에 들 정도로 경제 강국이고, 안전한 치안과 사회 인프라, 편리한 교통, 세계 최고 수준의 국제공항을 갖춘 나라다. 미술품 거래에 대한 세제 혜택이 있고, 항공과 해운이 발달한 것도 큰 이점이다. 팬데믹 시기에 국민의 선진적 의식 수준이 확인되었고, 디자인적 감각과 예술에 대한 인식도 높아졌다. 이 같은 요건이 확인되면서 서울이 아시아 미술 시장에서 주목받고 있다. 올해 키아프는 규모와 수익 면에서 많이 성장했다. 방문객 수도 이전 수준을 훨씬 넘어섰고 거래도 매우 활발했다. 마켓은 생명체 같아서 사람이 모이고 거래가 활발한 곳에서 번성한다. 미주, 유럽에 비해 현대적 마켓의 역사가 짧고 코로나 19와 글로벌 경기 침체로 위축된 아시아 아트 마켓에서 서울이 주목받으면서 앞으로 서울을 비롯한 국내 여러 도시에서 다양한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앞으로 수년간 한국 미술 시장은 새로운 가능성과 함께 많은 도전을 받을 것이다. 그간의 노하우와 올해의 경험을 바탕으로 현실적·장기적 전략을 세워야 할 필요가 있다.
2 참여 갤러리의 기준점은 ‘가장 갤러리다운 일을 하는 곳’
키아프는 우리 미술 시장에 매우 의미 있는 역할을 하고 있다. 키아프가 지향하는 가치와 목표, 운영 방식은 국내 갤러리는 물론 다른 아트 페어에도 영향을 미친다. 이제 키아프에 참가하는 해외 갤러리, 공동 개최하는 프리즈 서울의 글로벌 최강 갤러리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을 정도로 자타공인 한국 대표 갤러리들이 모여야 한다.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를 대대적으로 소개하고 세계적으로 활동하는 해외 작가도 끌어안아야 한다. 키아프 운영위는 올해 참가 갤러리를 심사하면서 갤러리로서 기본에 가장 충실한 인터내셔널 갤러리를 선정하는 데 집중했다. 지속 가능한 작업을 할 수 있도록 작가를 지원하고, 신진 작가를 끊임없이 찾아내서 전시로 보여주고, 고급 예술 문화 산업의 주체로서 그 기능과 역할에 충실한 갤러리를 찾아내는 중요한 과정이기 때문이다. 또한 프리즈와 공동 개최를 준비하면서 전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프리즈의 지향점과 비전을 이해하고 학습했다. 그들 역시 한국의 정서와 분위기를 배웠을 것이다. 변화의 시기에 건강하고 기본에 충실한 갤러리가 더 많은 기회와 가능성을 얻고 한국 미술 시장을 견인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3 단 한 명의 작가만! 솔로 프로젝트 부스
이번 키아프에서는 한 부스에 작가 한 명의 작품만 출품하는 ‘솔로 프로젝트 부스’를 운영했다. 두아르테 세케이라(포르투갈), 갤러리 캔들호퍼(오스트리아), SH갤러리(일본), 갤러리 백아트·이배·지오피(한국) 등 10개국의 16개 갤러리가 이 솔로 부스에 참가했다. 올해 처음 키아프 오프라인에 참가한 칼 코스티알 갤러리는 호주 작가 데이비드 브래들리의 페인팅을, 최근 서울에 분점을 낸 두아르테 세케이라 갤러리는 포르투갈 작가 리카르도 파사포르테의 신작으로 부스를 꾸몄다. LA 메이크룸 갤러리는 한국 작가 유귀미의 작품을 소개했다. 솔로 부스라고 해서 젊은 작가만 소개한 것은 아니고, 갤러리를 대표하는 가장 중요한 작가를 선보인 점이 특기할 만하다. ‘단 한 명의 가장 중요한 작가’를 소개하는 기획이기 때문에 그 갤러리의 핵심 작가를 확인할 수 있는 자리였다. 이번에 솔로로 참가한 갤러리들은 향후 더 많은 작가와 작품을 선보일 계획을 세우고 있다. 올해는 솔로 부스로 분위기를 파악한 것으로 보인다.
4 키아프 플러스!
올해 키아프는 미디어 아트와 NFT를 수용하는 플랫폼을 실험하기 위해 ‘키아프 플러스’를 신설했다. 11개 국가와 지역에서 참가한 73개 갤러리 중 상당수는 5년 미만의 신생 갤러리였다(금산갤러리, 갤러리조선, 갤러리현대 등 대형 갤러리도 부스를 마련했다). 키아프 플러스에서는 회화와 조각은 물론 NFT와 AR 같은 뉴미디어를 매개로 한 작품까지 기존 아트 페어에서는 볼 수 없던 여러 장르의 아트가 동시에 선보였다. 세계적 NFT 컬렉션 ‘지루한 원숭이들의 요트 클럽(BAYC)’과 BAYC NFT의 저작권 활용을 통해 파생된 ‘BAGC Korea(Bored Ape Golf Club Korea) NFT’ 컬렉션이 특별전으로 처음 공개되기도 했다. 코엑스에서 개최한 키아프 서울, 프리즈 서울로 인해 상대적으로 관람객이 분산된 점은 있으나 키아프 플러스를 경험한 방문객들의 반응은 대부분 긍정적이었다. 변화하는 기술과 예술 장르의 흐름은 새로운 장르로서 어느새 자리 잡게 될 것이다. 우리는 새로운 장르에 대한 가능성을 확인할 필요가 있었고 관심이 많은 갤러리들과 함께 다양한 시도를 했다. 키아프 플러스에서 선보인 미디어 아트, NFT와 같은 새로운 장르는 점차 전문적이고 수준 높은 장면을 보여줄 것이 분명하다.
5 영 컬렉터의 부상
영 컬렉터가 늘어나는 것은 우리 미술 시장에 큰 힘이 될 것이다. 이러한 분위기는 2019년 키아프 때부터 서서히 드러나다가 팬데믹 시기인 2020~2021년에 걸쳐 본격적으로 표출되었다. 한국의 신규 컬렉터층이 급속히 성장한 점을 프리즈도 확인했을 것이고, 프리즈가 서울을 선택하는 데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키아프는 2021년 아트 페어 후 방문객 대상 설문 조사를 진행했고, 그 결과를 분석해 리포트를 발표했다. 이를 통해 기민하게 동시대 미술계의 흐름을 탐색하고, 컬렉션에 관해서 적극적 실천력을 보이는 영 컬렉터층의 존재를 확인했다. 한국 미술 시장 컬렉터층의 변화 추이를 확인할 수 있는 그 리포트는 갤러리가 작가와 작품을 선정하는 근거로도 활용된다. 또한 올해에는 기관과 대학에서도 한국 미술 시장 컬렉터를 분석한 후 다양한 리포트를 발표하고 있다. 이는 마켓 자체가 성장하는 발판이 될 것이다.
글 김동현(한국화랑협회 전시사업팀장·키아프 디렉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