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작가의 공통점은 이름 앞에 붙이는 타이틀을 어느 하나로 국한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도예가, 조각가, 설치 작가, 목공예 작가, 디자이너 등 특정 분야로 한정 짓기엔 이들의 작업 범위는 경계가 없다. 어떻게 불리든 괘념치 않는단다. 자신들이 살아온 극적 삶을 각각 흙과 나무에 응축해 표현할 뿐.
‘오브젝트 랩스’, 즉 물건 연구소라는 이름으로 6년째 물건의 쓰임을 연구해온 임정주 디자이너. 2년 전부터인가, 사람들은 그를 ‘작가’라 부르기 시작했다. 제품 디자인 전공자로서 만들어온 일상용품에서 기존 관념을 깨고, 물건의 쓰임을 관객에게 맡기는 오브제를 선보이면서부터다. 주로 나무로 작업하며 공간을 꾸미기도 하고, 물건을 만들다가 공예 작품을 만들기도 한다. 예술로 향하는 삶에서 한 단계 도약한 지점에 서 있는 임정주 작가. 그는 존경하는 선배로 이헌정 작가를 꼽았다. 이헌정 작가야말로 그릇부터 가구, 조각, 건축, 설치 미술 등 영역을 넘나드는 예술가가 아닌가. 고유의 드넓은 작품 세계만큼 어떠한 틀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롭고 깨어 있는 영혼의 소유자인 그는 일면식 없는 후배와의 이 만남에 일초도 주저하지 않았다. 그는 모든 낯선 만남과 경험이 예술적 자산이 된다고 여기기 때문이리라.
모든 걸 컨트롤하려 들지 않는다. 내가 만든 작품조차 쓰임은 관객에게 달렸다
임정주(이하 임) 이게 맞을까? 가는 길이 불확실하다 느낄 때 선생님 작품을 만나고, 선생님의 지나온 삶을 알게 되면서 좀 확신을 얻었어요. 선생님이 흙으로 만든 결과물은 목적성을 지니기보다는 작가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수단이라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저도 그러한 작업을 하고 싶어요.
이헌정(이하 이) 물건이든 조각품이든 가구가 됐든 만들 때 내가 마무리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아요. 견고하게 결말을 짓는 걸 지양하지요. 예를 들어 어떤 건축가는 가구까지 스스로 마무리해야 한다고 하던데, 나는 그렇지 않아요. 사용자가 참여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죠. 그게 맞다고 생각해서가 아니라 나한테는 그게 어울린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흙을 다루다 보면 내가 컨트롤하지 못하는 부분이 많아요. 워낙 하자와 변화가 많은데, 어떤 도예가는 그것을 극복해 이겨나가기도 하지만, 나는 갈라지고 휘고 그런 걸 그대로 받아들이려고 해요.
임 나무도 그래요. 생나무는 물기가 많고 건조되는 과정에서 변형이 많이 일어나지요. 워낙 변화가 큰 재료이다 보니 일본은 2대 위의 조상이 남겨준 나무를 쓸 정도예요. 그런데 정말 건조가 잘 된 나무도 써봤지만 결국 그 역시 비틀어지더라고요. 아무리 좋은 나무를 쓴다 한들 사용자가 사용하는 환경에 따라 결국 변하는구나,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구나, 차라리 변형되게 놔두되 어떻게 하면 하자처럼 보이지 않을까, 그 안에서 미적 감각을 표현할 수 있을까 고민해요.
이 그렇게 재료를 수용하는 자세로 작업하다 보니 작품도 그렇게 여겨요. 미완성 같은 걸 던져놓고 나머지는 관객의 몫이라 생각하죠. 설명도 많이 안 하려고 해요. 설명을 하는 순간 내가 만든 의도가 구체화되면 재미가 없잖아요. 시를 읽을 때 상상하는 게 재미있지, 시인의 의도를 알아버리면 감동이 아닌 이해가 되어버리는 것처럼요.
임 제품 디자인을 공부할 때 가격, 미, 기능이 필수 조건이라고 배웠죠. 그런데 온양미술관에서 전시 기획을 하면서, 동묘시장에서 구입해 촛대로 쓰던 게 실상은 고드래(화문석 돗자리를 짤 때 실을 감는 돌)라는 걸 알게 되면서 기존에 제가 알던 이론을 의심하기 시작했어요. 제품 디자이너로서 나는 기능을 제외하고 전달해줘도 완성될 수 있다는 걸 깨달았지요. 내가 생각한 가치나 형태만 던져주었을 때 사용자는 목적에 따라 기능을 찾기 때문에 그 기능의 가능성은 매우 열려 있구나…. 그때부터 오브제성 작업, 개인전을 시작했어요.
이헌정 작가는 홍익대학교와 동 대학원에서 도예를 전공한 후, 샌프란시스코에서 조각, 다시 한국에서 건축을 공부했다. 지난해 포르투갈 리스본으로 떠나더니 상미겔 섬에서 ‘이스트맨’ 10년 프로젝트를 구상하고 돌아왔다. 그렇게 세상에 상상력을 부여하고 있다.
흙을 집적한 설치 작품 <이스트맨>.
도자 조형 작품 .
선택지에 정답은 없다. 자신의 선택을 책임지는 자가 성공하는 것일 뿐
임 도예, 조각, 그리고 건축까지 공부하셨지요?
이 도예 전공으로 학부와 대학원을 졸업하고, 샌프란시스코로 유학을 갔어요. 전공보다는 도시가 목적이었지요. 가장 자유로운 곳으로 가고 싶었거든요. 그곳에서 조각을 전공하며 스승을 만났는데, 그분이야말로 온몸이 문신으로 가득한 히피였어요. 주입식 교육에서 벗어나 내가 스스로 답을 얻는 방법을 깨우쳐주신 분이지요. 이래라저래라 당신의 입에서 나오는 말을 내가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스스로 얻는 게 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그 스승을 만나 2년 반 동안 자면서 작품에 대한 꿈을 꿀 정도로 치열하게 보냈어요. 그 시간이 지금까지 나를 먹고살게 해주었죠.
임 저는 고등학교 때부터 금속 관련한 제품에 관심이 많았어요. 하지만 대학 입시에서는 시각디자인과를 지원한 곳만 합격했죠. 그래서 유학 갈 때는 원래 하고 싶던 제품 디자인을 전공으로 선택했어요. 주로 컴퓨터 작업을 많이 하다 보니 직접 제작하는 모크업 작업 시간이 좋더라고요. 특히 목선반으로 만드는 과정이 너무 재미있어서 제대로 배울 수 있는 곳을 찾아 박정화 선생님께 배웠어요. 그리고 여기까지 왔지요. 늘 선택의 연속이었던 것 같아요.
이 후배들에게 뭐가 고민이냐 물으면, “대학원을 갈까요 유학을 갈까요” 해요. 삶에서 고민은 늘 두 개 이상의 이슈를 안고 있죠. 두 개 다 옳을 수도 그를 수도 있어요. 항상 옳고 그름은 선택에 있지 않지요. 선택한 후의 상황을 어떻게 발전시키느냐가 중요해요. 스티브 잡스는 선택을 잘해서 그런 사람이 된 게 아니라 선택을 신뢰하고 책임진 사람입니다. 예술가에게는 범죄가 아닌 이상 어떤 선택도 옳아요. 예술가는 자신의 삶을 집적해가는 사람이니까요.
임 지난해에는 포르투갈도 다녀오셨죠?
이 문득 샌프란시스코에서 치열하게 지내던 시간이 그리웠어요. 내 인생에 또 한 번 그런 시간을 만들고 싶었죠. 그래서 5년 동안 돈을 벌지 말고 쓰자 하고 일부러 외딴 지역을 목적지로 삼았어요. 포르투갈의 작은 섬,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에서 초심으로 공부하다가 물 흐르듯 ‘이스트맨’ 프로젝트까지 하게 됐지요. 그 프로젝트는 누가 기회를 준 게 아니라 앞으로의 10년을 위해 내가 만든 계획이에요.
임정주 작가는 단국대학교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한 후 영국 런던 센트럴 세인트 마틴 스쿨에서 제품 디자인을 공부했다. 6년 전부터 ‘물건 연구소’를 운영하며, 쓰임이 있는 물건과 함께 기능을 부여하지 않은 오브제를 선보이며 담론을 만들어가고 있다.
<소소프로젝트> 중 소반.
용도를 규정하지 않는 <논엘로퀀트> 시리즈.
예술가란 작품을 통해 집적해온 삶을 이야기하는 사람
임 처음에는 결과물을 잘 만들어야 한다는 것에 집중했어요. 하지만 잘 안 되더라고요. 그럴 때 “너무 상심해하지 마. 히스토리를 축적해온 작가는 대중의 관심을 받았을 때 하나의 작품으로 유명해진 작가와는 큰 차이가 있어. 당장 결과를 내려 하지 말고 과정을 만드는 거라 생각해” 라는 아내의 말이 힘이 됐어요. 그래서 작품에 저만의 콘텍스트를 담으려 노력하는 데 집중해요. 작가로서 요즘 무슨 생각을 하는지 사고의 흐름을 보여주는 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이 디자인 상품과 예술 작품의 차이죠. 상품은 결과물의 아름다움에 가치가 포커스되어 있어요. 반면 예술 작품은 예술가 삶의 흔적이 보이죠. 저는 루이즈 부르주아의 도구와 닮아 있는, 치열한 흔적을 지닌 손을 존경하는데, 그 손을 만나기 위해 그분의 작품을 보러 가요. 거장의 작품과 대학을 갓 졸업한 학생의 작품을 비교했을 때 시각적으로는 몇 배 정도의 차이가 나지 않지만, 수천 배의 가치 차이가 나는 이유는 예술가 삶의 투영 여부에 있는 것과 같아요. 정주 씨의 궁극적 꿈은 뭔가요?
임 저에게는 집이 중요한 것 같아요. 딱 들어왔을 때 편안하고 아무 걱정 없이 사는 게 꿈이에요. 물건 연구소도 이쑤시개부터 건물까지 내 집에 있는 모든 물건은 내가 직접 기획·제작하고, 직접 만들지 못할 때는 제 아이디어로 누군가 구현한 것으로 가득 채워보자는 생각으로 펼쳐나가고 있어요. 그래서 인생은 나, 아내, 강아지, 우리 셋이 사는 공간을 만들어가는 과정 같아요. 선생님은요?
이 더 자유로워지는 것이죠. 작업실을 넓히거나 설비를 더 갖추는 건 어쩌면 족쇄일 수도 있어요. 관리할 것을 없애고 가벼워지려고 노력해요. 그래야 언제든 여행을 떠날 수 있을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