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미술 역사상 가장 대담하고 위트 넘쳤던 아티스트 백남준의 대작들이 다시 깨어나고 있다. 세기의 아티스트를 재조명하고 더 많은 이에게 그의 작업을 알리려는 미술계 안팎의 노력이 결실을 맺은 것. 국내에서 새롭게 만날 수 있게 된 백남준의 작품과 의미를 그의 작업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아는 이들에게 들어봤다.
타자기와 백남준, Photo: Gianni Melotti, © 백남준아트센터
올해는 세기의 미디어 아티스트, 백남준의 탄생 90주년. 그의 파격적이고 진보적인 예술 세계는 세상을 떠난 지 1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많은 이에게 영감을 불어넣고 있다. 1970년대에 당시 첨단 기술의 대명사였던 TV를 활용해 상상을 초월하는 작업을 펼쳤고, 이후 레이저와 인공위성까지 끌어들이며 ‘예술엔 한계가 없다’는 것을 증명한 인물. 1960~1970년대에 아방가르드 음악가이자 행위예술가로 활약한 백남준은 존 케이지, 요제프 보이스 등과 함께 국제적 전위예술 운동 ‘플럭서스Fluxux’를 이끌며 당대 문화를 대변하는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했다.
마르셀 뒤샹 이후 전위예술가가 쏟아지던 시기, 자신만의 매체로 TV를 택한 그는 이후 전무후무한 비디오아트 작품들을 발표하며 새로운 길을 걷게 된다. 이후 명상하는 부처가 TV를 통해 자신을 들여다보는 ‘TV 부처’, TV 모니터를 정원 곳곳에 꽃처럼 심은 ‘TV 정원’ 등 수많은 기념비적인 작품을 남겼다. 1984년에는 전 세계를 인공위성으로 연결해 현대음악의 전설 존 케이지, 프랑스 출신 배우 이브 몽탕 등의 공연과 작업 현장을 지구 곳곳에 실시간으로 보여준 역대 최초의 라이브 쇼 ‘굿모닝 미스터 오웰’을 공개하며 세계적 스타로 자리매김했다.
세상에 남겨진 백남준의 작품들은 그의 드넓은 예술 세계를 접할 가장 효과적이고 유일한 통로일 터. 하지만 작품에 사용된 TV가 단종되고 내부의 전자 부품이 노후돼 제대로 작동하지 않거나 복원이 어려운 케이스가 상당수였다. 다행히 몇 해 전부터 백남준의 주요 작품들을 국내에 소개하려는 미술계의 움직임이 눈에 띄게 활발해졌다. 그 결실로 탄생 90주년을 맞이한 올해는 쉽게 접하기 어렵던 대작들이 새로운 생명력을 얻고 모니터를 반짝이며 재가동하기 시작했다.
1987년부터 백남준이 타계한 2006년까지 그와 늘 함께하며 기술적 요소들을 구현했고 지금까지도 남겨진 작품들에 대한 보수와 관리, 자문을 맡고 있는 아트마스타 이정성 대표는 ‘다다익선’ 보존·복원 관련 인터뷰에서 “미디어 아트를 얼마나 오래, 건강하게 보존하느냐 하는 것이 미술계의 숙제였는데, 이번에 복원 작업을 하며 테스트 모델이 됐다”라며, “작품 속 브라운관 TV가 서서히 사라지고 LCD로 대체될 텐데, 원형 훼손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있지만 전기와 열이 덜 나니 에어컨을 덜 틀게 되고 DC 12V 전기를 쓸 수 있어 안전도 보장되는 등 이점도 많다. 다양한 기관과 미술관에서 이번 복원 정보를 많이 공유해서 모든 미디어 작품에 시범 사례로 활용하면 좋겠다”라고 밝혔다.
전위적인 행위예술가이면서 감각적인 비디오 아티스트, 대범한 행동가이자 치밀한 기획자이기도 했던 백남준. 다시 깨어난 작품들과 함께, 여전히 유효한 그의 예술 세계를 들여다본다.
다다익선’, 백남준, Photo: 우종덕, © 국립현대미술관
1003대의 컬러 TV로 쌓은 탑 ‘다다익선’
“탑처럼 쌓은 5~25인치 CRT 모니터 1003대에서 8개의 영상이 교차하며 돌아가는 높이 18.5m의 비디오 설치 작품 ‘다다익선’은 규모와 예술성에서 의심할 여지 없는 백남준의 대표작이다. 1988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개관과 함께 가동되기 시작해 30여 년의 세월이 흐르다 보니 CRT 모니터 등에 문제가 생기다가 화재 위험까지 맞게 됐다. 2019년까지만 해도 ‘다다익선’은 ‘작품’이 아닌 단순 ‘시설물’로 등재돼 있었기에 소장 작품으로 내용을 변경하고 원형 보존 계획을 세운 후 약 3년간 보존 처리 과정을 거쳤다. 단종된 CRT 모니터 수급을 위해 국내외 중고 시장을 뒤져 손상된 737대를 수리했고, 나머지는 6인치와 10인치 LCD로 교체했다. ‘다다익선’은 세계 비디오아트의 최고, 최대 작품이다. 백남준의 예술 세계를 집약한 작가 그 자체이자, 우리 민족의 무한한 상상력과 잠재력을 확인할 수 있는 상징적 결과물이다.”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 동국대학교 미술학과와 동대학원 미술사 석사·박사과정을 거친 후 <중앙일보> 기자, 호암갤러리 큐레이터, 문화재청 문화재위원, 고암미술문화재단 이사 등으로 일했다. 광주비엔날레 특별전 책임 큐레이터, 경주세계문화엑스포 예술 총감독, 창원조각비엔날레 총감독 등을 역임했고, 30여 년간 미술비평가로 활동했다. 2019년 2월부터 국립현대미술관을 이끌며 ‘다다익선’ 복원에 힘을 기울였다.
‘시스틴 채플’, 백남준, 1993년, 비디오 설치, 4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 비디오 프로세서 2대, 프로젝터 34~42대, 비계 구조물, 가변 크기, © 울산시립미술관
최초의 몰입형 아트 작품 ‘시스틴 채플’
“ ‘시스틴 채플Sistine Chapel’은 1993년 베네치아 비엔날레에 백남준이 독일관 대표 작가로 참여했을 때 처음 선보인 작품으로,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얻었다. 많은 이가 잘 알고 있듯, 바티칸에 있는 시스티나 성당에는 16세기에 미켈란젤로가 그린 천장화가 있다. 인간이 신의 피조물로서의 지위에서 벗어나, 주체적으로 홀로서기를 하는 것이 16세기 르네상스가 잉태한 혁신성이었다. 백남준은 비디오 프로젝터 34~42대를 다각도로 설치해 무빙 이미지, 영상, 애니메이션을 벽면에 투사하고 현란한 사운드를 함께 재생하는 방식으로 르네상스의 혁신성을 20세기에 걸맞게 재현했다. 벽에 투사되는 이미지에는 빠르게 변화하는 현대적 이미지와 더불어 머스 커닝햄, 사카모토 류이치, 샬럿 무어먼, 데이비드 보위, 존 케이지 등 당대에 백남준과 협업했던 예술가들이 콜라주 형식으로 등장한다. 현대미술 최초의 실감형 시어터 작업으로, 최근 ‘몰입형 아트’라 알려진 미디어 아트 작품의 원형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멀티채널을 사용해 공간 전체를 작업화했다는 기술적 측면뿐 아니라 4차원적 인지 감각, 공감각 등 다감각을 경험할 수 있게 했다는 점에서 ‘확장된 미디어(XR)’ 작업의 시초라는 의의를 갖는다. 작품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백남준이 보여주는 시대적 선도성이다. 그의 작업은 고정되어 있지 않고, 시간이 지날 때마다 새롭게 다가온다. ‘시스틴 채플’은 새로운 시대 정신과 어우러지며 관객에게 또 다른 깨달음을 선사하는 대표작이다.”
‘거북’, 백남준, 1993년, 비디오 설치, 단채널 비디오 3점, 컬러, 무음; 모니터 166대, 재생 장치 3대, 철제 구조물, 150×600×1000cm, © 울산시립미술관
울산의 정체성을 간직한 ‘거북’
“ ‘아시아 최고의 컬렉션 미술관’을 지향하는 울산시립미술관의 소장품 1호인 ‘거북’은 울산의 정체성이 담긴 작품이다. 선사시대 문화 활동의 흔적을 보여주는 유적인 ‘반구대 암각화’가 울산에 있는데, 그 주변 지형이 거북의 형상을 닮았기 때문이다. 총 166대의 TV가 모여 전체적으로 거북의 형상을 이루는 대형 미디어 조각 작품으로, 각 브라운관은 현란한 속도로 줄거리가 없는 영상을 송출한다. TV라는 기계로 이뤄져 있지만 기계에서 뿜어내는 변화무쌍함은 아이러니하게도 우리의 자연현상과 닮아 있다. 생로병사는 인간뿐 아니라 생명체라면 어떤 존재에게나 예외 없이 적용되는 진리다. 변화로 가득한 생명의 순리를 백남준 작가는 장수, 불사, 다산을 상징하는 영적인 동물인 거북의 모습에 담아냈다. 건축적이고 조각적인 백남준 미디어 설치 작품의 백미이며, ‘거북’이라는 친숙한 모티프를 가로 10m, 세로 6m에 이르는 대형 조각으로 시각화해 친근함과 생경함, 기이함과 환상성 등 서로 상이한 감정을 동시에 불러일으킨다는 평을 받는 수작이다.”
서진석 시카고 예술대학교 대학원에서 섬유 조각을 전공한 후 대안공간 루프 대표를 거쳐 2015년부터 4년여간 백남준아트센터 관장을 역임했다. 국내 국공립 미술관 최초로 미디어 아트 전용관을 보유하고 ‘디지털 시대 미래형 미술관’을 표방하며 올해 초 개관한 울산시립미술관의 초대 관장을 맡아 ‘거북’, ‘시스틴 채플’, ‘케이지의 숲, 숲의 계시’ 등 백남준의 대표작을 적극적으로 소장하면서 국내에 소개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걸리버’, 백남준, 앤티크 TV 케이스 11개, 앤티크 라디오 케이스 1개, 13인치 CRT 컬러TV 10개, 19인치 CRT 컬러 TV 1개, 3채널 영상, 5인치 LCD 모니터 로봇 18개, 58×432×371cm, Photo: 정정호, © 백남준아트센터
인간과 기술에 대한 고찰 ‘걸리버’
“백남준 탄생 90주년을 기념해 백남준아트센터가 새롭게 소장한 ‘걸리버’는 2001년 제작된 3채널 비디오 설치 작업이다. 조너선 스위프트가 1726년에 쓴 소설 <걸리버 여행기>를 모티프로 하는 작품으로, 총길이 4m가 넘는 거대한 거인 걸리버가 바닥에 누워 있는 형태다. 총 11개의 오래된 텔레비전 케이스와 라디오 케이스 등이 몸체를 이루며, 11개의 CRT 모니터에서 각기 다른 2가지 영상이 재생된다. 걸리버 주변에 함께 설치한 총 18대의 소형 로봇은 각종 기계 부품, 나사, 전선, 파이프 등으로 이뤄졌으며 머리에는 5인치 LCD 모니터를 달았다. 사이보그가 첨단 미디어 환경 위로 성큼 걸어가는 장면, 컴퓨터그래픽으로 구현한 자율주행이나 전자 도로를 질주하는 모습, ‘로봇 K456’이 뉴욕 거리를 걸으며 펼치는 퍼포먼스 등 현대와 미래의 다채로운 모습을 담은 비디오를 통해 백남준은 다양한 사회의 이야기와 상상력을 작품에 담았다. 생기 발랄한 소형 로봇과 상대적으로 무기력하게 누워 있는 거대한 걸리버의 대비를 연출한 것은 물론, 릴리퍼티언(<걸리버 여행기> 속 소인) 로봇들이 사다리를 타고 오르내리며 걸리버의 온몸을 전선으로 포박하는 연극적 상황을 위트 넘치는 아이디어로 구현했다. 인간과 기계의 관계를 늘 고민했고, 평생 예술적 도전을 통해 어떻게 인간적으로 기술을 사용할 수 있을지에 대한 커다란 밑그림을 그리고자 한 백남준의 면모를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다.”
‘비디오 샹들리에 No.1’, 백남준, 1989년, 텔레스타 흑백 CRT TV 모니터 38대, 전구, 영상선, 분배기, 1-채널 비디오, 컬러, 무성, LD, 가변설치, 백남준아트센터 소장, Photo: 박형렬, © 백남준 에스테이트 & 백남준아트센터
백남준 최초의 샹들리에 ‘비디오 샹들리에 No.1’
“소형 비디오 모니터 여러 대를 샹들리에 형태로 구성해 천장에 설치한 시리즈 중 최초의 작품. 케이블과 모니터가 복잡하게 얽혀 있으면서도 전체적인 형태는 화려하고 아름다운 샹들리에의 모습을 띠는데, 화면의 움직이는 영상, 케이블 중간중간 연결된 전구의 불빛이 공간을 압도하며 관람객에게 ‘시청’이라는 행위의 새로운 경험을 제공한다. 이후 제작한 비디오 샹들리에와 달리 이 작품의 모니터는 모두 흑백이라는 점에서 매우 진귀하다. 특히 중요한 것은 백남준이 컴퓨터그래픽으로 제작한 영상을 재생하기 위해 구소련에서 생산한 텔레스타 흑백 CRT 모니터를 채택했다는 점이다. 이 모델은 흑백이지만 당시로는 획기적인 무선 휴대용 텔레비전이었다. 작가는 공간에 구속되지 않는 텔레비전으로 가상의 공간을 자유롭게 누비는 그래픽 이미지를 선보여, 더 이상 공간에 구애받지 않는 미래를 상상했는지도 모른다. 시공간을 넘나드는 백남준의 기술적 상상력을 엿볼 수 있다.”
김성은 연세대학교 문헌정보학과를 졸업하고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 사회문화인류학과에서 ‘미술관과 동시대 미술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2011년부터 2014년까지 백남준아트센터 학예연구원으로 일하며 미디어 아트에 관한 국제 전시와 학술 프로그램을 기획했고, 이후 삼성미술관 리움 책임연구원을 거쳐 2019년 9월부터 백남준아트센터 관장으로 일하고 있다.
‘프랙탈 거북선’, 백남준, Photo: 팔사진관, © 대전시립미술관
거북선의 미래적 변신 ‘프랙탈 거북선’
“ ‘프랙탈 거북선’은 우리 역사의 중요한 심벌 중 하나인 거북선을 하이테크롤로지, 생태, 전통으로 새롭게 해석한 작품으로, 1993년 대전 엑스포에서 처음 선보였다. 309대의 TV 모니터와 200여 개의 앤티크 가구 등 500여 개의 TV 조각을 통해 거북선을 예술로 재창조한 걸작이다. 규모 면에서도 국립현대미술관의 ‘다다익선’, 뉴욕 체이스 뱅크에 설치한 작품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규모가 큰 초대형 뉴 미디어 작품이어서 의미가 더욱 남다르다. 엑스포 이후 방치된 채 존폐 위기에 놓였던 작품을 대전시립미술관이 인계해 2002년부터 로비에 전시했는데, 안타깝게도 공간이 협소해 원형이 일부 변형될 수밖에 없었다. 올해 ‘열린수장고’를 완공하며 전용 공간을 마련할 수 있었고 이에 따라 원형 복원 작업을 거쳐 영구 보존하게 되었다.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는 미래 가치를 동시대적 언어로 전달하는 백남준의 기발함과 선구자적 면모를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선승혜 서울대학교 미학과 학사·석사과정을 거쳐 도쿄 대학교 미술사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이화여자대학교 조형예술학부 겸임교수, 미국 클리블랜드 미술관 큐레이터, 서울시립미술관 학예연구부장 등으로 일했다. 미술사에 대한 폭넓은 지식과 해외 기관에서의 풍부한 경험을 겸비해 고전과 근현대미술에 두루 정통한 것이 특징. 2019년 1월 대전시립미술관장으로 취임해 과학과 미술의 융·복합 거점으로서의 미술관을 가꿔나가는 데 힘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