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행복작당 행사에서 가장 큰 발견은 한옥 스테이 ‘노스텔지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젊은 세대에는 새롭고, 기성세대에는 추억이 되는 오래된 미래. 단순한 한옥 호텔을 넘어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 관광 브랜드의 출발점에 <행복>이 동행했다.
노스텔지어에서 선보이는 독채 한옥 호텔 블루재. 가회동 31번지에서 만날 수 있는 ㄷ자형 한옥으로, 남산이 바라보이는 전망과 공간의 입체적 레이어가 돋보인다.
한옥, K-콘텐츠의 중심
대부분의 사람은 되돌아가고 싶은 과거의 한순간을 간직하고 있다. 마르셀 프루스트는 “과거는 우리의 의식이 닿지 않는 아주 먼 곳, 우리가 전혀 의심해볼 수도 없는 물질적 대상 안에 숨어 있다”며 기억이 주는 의미가 어떤 사물에 깃들어 있다고 말했다. 심오한 과거로 들어가는 문을 여는 열쇠는 마들렌처럼 흔해빠진 간식일 수도, 골목길 한옥처럼 익숙하면서도 낯선 추억의 장소일 수도 있다.
“2년 전 뉴욕에서 어릴 때 미국으로 이민 간 한국분을 만나 친분을 쌓게 됐어요. 그간 발전한 한국을 궁금해하고 그리워하는 모습을 보고 언젠가 서울에 오면 좋은 호텔에 모시겠다고 했더니 ‘한옥에 묵고 싶다’고 하더군요. 어린 시절의 어렴풋한 기억, 그리움, 향수…. 그때 ‘노스텔지어 nostalgia’라는 브랜드를 생각했죠.”
노스텔지어는 한옥 호텔 브랜드다. 북촌의 대표적 풍경을 보여주는 가회동 31번지에 앞으로 독채 한옥 호텔 여섯 채를 오픈할 예정인데, 이번 행복작당 행사 때 한옥 세 채를 먼저 선보였다.
ㄷ자형 평면의 양쪽 날개에 침실을 마주 보게 배치. 침실 너머로 두른 쪽마루와 창호의 화려한 살 짜임, 옛 그림 모두 기존 한옥 모습을 그대로 보존했다.
노스텔지어를 기획한 박현구 대표는 브랜딩 전문가다. 20여 년간 브랜딩 회사 (주)브랜딩컴을 운영하며 여러 대기 업의 사명과 서비스를 개발했다.
“한국에 돌아와 다양한 한옥 스테이에 묵어봤는데, 기대한 한옥과는 달랐어요. 한 집에 여러 팀이 묵는 형태라 프라이빗한 공간이 한정됐고, 저녁 8시 이후에는 정원에 나가 대화를 하거나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을 금지해 한옥 스테이의 고즈넉함을 만끽하기 어려웠죠. 노스텔지어가 독채 한옥 호텔을 고집하는 이유예요.”
ㄷ자 한옥에서 마당이 바라보이는 중심에 주방과 거실, 다실을 구성했다. 마당이 프라이빗한 구조라 가족 모임이나 소규모 행사를 즐길 수 있다. 인테리어는 스튜디오언라벨에서 맡았다.
안쪽에 자리한 침실. 통창 너머로 탁 트인 전망을 바라보며 반신욕을 즐길 수 있다.
박 대표는 기존 관행에 따른 일률적 서비스가 아닌, 다른 각도의 서비스나 콘텐츠를 보여줄 수 있는 문화 관광 브랜드로서 ‘노스텔지어’를 구상하고 함께할 파트너를 모았다. 이수경 부사장은 디자인 전공자로 관련 업을 하고 있고, 나머지 주주들도 컨설팅·인테리어 등 각자의 본업이 있는 게 특징이다. 모두 숙박이나 관광업 쪽의 경험이 전무한 비전문가라는 점도 주목할 만한 대목이다.
“대표님 부부처럼 저희 부부도 여행을 많이 다녔어요. 여행지마다 로컬 문화를 담은 숙소를 찾곤 했는데, 막상 한국은 특급 호텔 말고는 떠오르는 스테이가 없었어요. 세계적으로 한국의 콘텐츠가 더욱 강성해지고 있는데 문화 관광 분야에서도 대표하는 브랜드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고, 서울 북촌을 기점으로 한국의 맛과 멋을 살린 독채 한옥 호텔을 만들고 싶어 부사장이자 주주로서 프로젝트에 기꺼이 합류했죠.”
침실 가벽 안쪽으로 통로형 세면대를 구성. 여러 사람이 사용해도 동선이 불편하지 않다.
ㄷ자 한옥의 양쪽 날개를 연결하는 툇마루의 깊이가 집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게 한다. 현재는 툇마루와 대청을 구분하는 기둥만 남기고 주방과 다이닝룸으로 재구성했다.
기분 좋은 첫인상, 웰컴 투 서울
노스텔지어의 한옥 호텔은 북촌에서도 가회동에 집중하고 있다. 가회동은 예부터 명문가와 관료들이 살던 지역으로 특히 31번지에는 크고 반듯한 한옥이 잘 보존되어 있다. 이번 행복작당에서 선보인 한옥 세 채는 모두 31번지에 있다. 박현구 대표는 단순한 스테이를 넘어 한옥을 온전히 즐길 수 있는 서비스를 장착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규모 있는 한옥이 필요했다고 설명한다.
“블루재는 1백 평 남짓한 ㄷ자형 한옥인데, 가족 행사나 브랜드 론칭 행사, 파티를 하고 싶다는 문의가 많아요. 40평 남짓한 힐로재와 히든재는 독채 다이닝룸과 야외 욕조를 마련해 친구들을 초대해 시간을 보낼 수 있고요. 내국인뿐 아니라 관광이나 비즈니스로 한국을 찾은 외국인이 한옥에 머물며 한국의 세련된 멋과 감성을 즐길 수 있도록 다양한 체험 서비스와 콘텐츠를 준비 중입니다.”
작은 골목 안쪽에 자리한 히든재. 거실 겸 다이닝룸, 주방을 사이에 두고 ㄱ자형 평면 양쪽 끝에 침실을 배치했다. 인테리어는 오픈스튜디오에서 진행.
기존 한옥 스테이와 가장 다른 점은 체크인과 체크아웃을 할 수 있는 별도의 ‘웰컴 센터’를 마련했다는 점이다. 요즘 스테이는 모바일로 비밀번호를 보내주면 혼자 누르고 들어가는 언택트 방식의 체크인이 대부분이라 아쉽게도 ‘웰컴’을 할 수 없다. 웰컴 센터는 노스텔지어의 첫인상이다. 체크인을 하면서 한옥과 이용 가능한 체험 콘텐츠 및 대여 서비스를 설명하고, 캐리어를 각각의 한옥으로 옮겨주는 포터 서비스도 진행한다.
“웰컴 센터의 직원 중 ‘막심’은 한국에 온 지 8년 된 외국인이에요. 한옥을 좋아하는 외국인이 한옥에 대해 설명하고 환영해주는 것이 노스텔지어의 기분 좋은 첫인상을 만들죠. 저희는 각 팀을 ‘마스터’, 즉 책임제로 운영해요. 저와 이수경 부사장은 비전 마스터고요, 웰컴 센터는 웰컴 마스터, 클리닝은 룸 마스터, 조식 등 식음료는 카페 마스터 팀에서 운영하죠. 룸 마스터 팀은 한옥 청소와 위생만 담당 하는 게 아니라 향기, 조도, 음악, 디스플레이까지 스테이를 구성하는 모든 것을 총괄합니다.”
호텔에 묵는 사람을 위한 조식 서비스는 11월 오픈 예정인 ‘원카페’에서 진행한다. 조식 시간 이후에는 일반 손님도 한국의 고유한 재료나 맛을 첨가한 음료나 빵을 즐길 수 있는 브런치 카페로 운영할 예정이다. 청소부터 조식까지 위탁 없이 모두 직접 운영하기에 원활한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할 터. 초기에는 많은 시행착오를 겪겠지만 궁극적으로는 기존 호텔 전문 종사자가 할 수 없는, 고정관념을 깬 서비스를 선보이고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목표다.
한옥 호텔을 매개로 한국의 다양한 문화 관광 콘텐츠를 선보이고 싶다는 노스텔지어의 박현구 대표, 이수경 부사장.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
노스텔지어의 한옥은 공간마다 콘셉트와 느낌이 모두 다른 것이 특징이다. 쉬운 영어에 ‘재齋’를 붙인 이름에 각 공간의 콘셉트와 특징이 직관적으로 담겨 있다.
먼저 블루재는 가회동 31번지에서 몇 안되는 1백 평 규모의 한옥으로, 청와대를 지을 때 사용한 청기와를 담장에 올려 블루재라 이름 지었다. 청기와 외에도 ㄷ자 구조, 우물천장, 기단 등 전통 한옥의 고유한 멋을 살리기 위해 최대한 유지·보존하는 방향으로 레노베이션의 초점을 맞췄다. 히든재는 안채 안쪽에 방공호로 사용하던 동굴이 남아 있는 한옥으로, 별채에 저쿠지를 구성했다. 집이 품고 있는 고유하면서도 신비로운 스토리는 살리되, 디자인은 젊은 고객의 감각에 맞춰 최대한 모던하게 풀었다. 북촌 7경 언덕 위에 자리한 힐로재는 지은 지 10년 된 한옥으로, 전통 그대로 유지·보존하기보다는 과감하고 감각적인 공간으로 연출했다.
일제강점기 방공호 역할을 하던 작은 동굴을 라이브러리로 활용한다.
“각 한옥마다 다른 디자이너에게 레노베이션을 맡겼어요. 가장 전통적인 블루재는 외려 힙한 상업 공간을 디자인하는 ‘스튜디오언라벨’에서 진행해 한옥의 입체적 공간감을 살리는 작업에 집중했고, 히든재는 ‘오픈스튜디오’의 모던한 감각을 입혔죠. 힐로재는 마감과 디테일은 물론 공예, 미술작품까지 좀 더 강력한 스토리텔링을 부여할 수 있는 디자인으로 ‘길연’에서 맡아주셨어요. 현재 건축 심의 마지막 단계인 아크재는 ‘구가도시건축’에서 시공을 맡았고요.”
블루재로 들어서는 골목 입구 모서리에 자리한 아크재는 이름처럼 둥근 옹벽 위에 지은 한옥이다. 옹벽의 높이를 활용해 한옥 아래 한국 작가들의 라이프스타일 숍과 사무실을 구성했다. 한옥을 짓기 전에는 마을 우물과 빨래터가 있던 지정학적 의미를 살려 많은 사람이 모일 수 있는 다양한 공연과 행사를 펼칠 계획이다.
사랑채에 마련한 노천 온수풀이 한옥 스테이의 묘미를 더해준다.
가회동 대로에 자리한 노스텔지어 웰컴 센터. 웰컴 마스터가 손님을 맞으며 각 한옥의 특징과 이용 가능한 콘텐츠, 서비스 등을 설명한다.
“주거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한옥은 만만하고 편한 집은 아니지만 ‘호텔’로 접근하면 단점이 모두 장점으로 바뀌어요. 주차할 필요 없고 냉난방 전기료 걱정 없이, 기단을 오르락내리락하는 며칠의 불편함은 낭만으로 즐길 수 있으니까요. 게다가 한옥은 그대로 있는 것만으로도 향수를 불러일으키죠. 트렌디하게 매년 리뉴얼할 수도, 또 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해요. 새로운 경험은 서비스와 콘텐츠로 충족하면 되고요. 오픈카 타고 올림픽대로를 달리는 서울 나이트 라이브 야경 투어, 한강 고수부지 치맥 체험도 프로그램으로 만들고 싶어요.”
너무 많은 마음이 앞서면 정작 하고 싶은 말을 고르고 고르다 아무 말도 꺼내지 못한다. 장고 끝에 악수 나듯 고민이 깊어지면 아무것도 시작할 수 없다. 1년 전 노스텔지어라는 이름을 지은 순간부터 한옥을 하나둘 완성하고, 정식 오픈을 앞둔 지금까지 고민은 짧게, 시행착오는 언제든 겪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유연하게 하나씩 고쳐나가고 있다는 박현구 대표와 이수경 부사장. 단순한 한옥 호텔이 아닌 유기적 소셜라이징 플랫폼으로,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 관광 브랜드로 노스텔지어의 성장이 기대된다.
문의 02-3673-36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