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티지 가구 쇼룸이자 카페 비투프로젝트를 운영하는 권용식·변재희 부부가 <행복>을 초대했다. 물길처럼 순환하는 동숭동 집과 예술가를 위한 아지트 ‘충무로 살롱’ 이야기.
거실에 가벽 프레임을 세워 두 공간으로 분할한 구조가 인상적이다. 기능은 분리하되 시야를 가로막지 않아 넓은 공간감과 개방감을 느끼게 한다. 공간을 에너지가 순환하는 통로로 바라보는 변재희 실장의 시각을 극명하게 구현해냈다.
서울 동숭동의 작은 골목길, 10여 년째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비투프로젝트’에 도착했다. “서울은 전생 없이 윤회하는 도시”라는 손홍규 작가의 말이 떠올랐다. 그의 말마따나 과거를 지우고 날마다 새로 태어나는 도시 한가운데, 도리어 오래된 사물의 가치를 살피는 권용식·변재희 부부의 집은 과연 어떤 생애를 통과하고 있을까? 이 건물의 1층은 카페, 지하와 2층은 쇼룸 겸 갤러리, 3층은 주거 공간이다. 나선형의 긴 철제 계단을 따라 올라가 집 문을 여니 부부의 또 다른 가족, 프렌치불도그 ‘벨라’가 촬영팀을 맞이했다. 고개를 좌우로 움직이면 주방과 다이닝룸, 서재, 침실, 다시 말해 집 전체가 한눈에 훤히 보이는 구조다. 인테리어 디자이너 변재희 실장이 이 집을 직접 개조하면서 중점을 둔 것은 ‘공간의 순환성’이다.
“저는 공간을 구획할 때 마치 물을 다루듯 해요. 수로에 물을 가두면 저수지처럼 쓸 수 있고, 흘려보내면 통로가 되듯이 공간을 어떻게 열고 닫느냐에 따라 그 쓰임새와 형태가 변화하지요.” 예를 들어 욕실 앞문을 90도, 1백80도, 2백70도 등 여는 각도에 따라 화장실과 세면 공간을 연결할 수 있는가 하면, 화장실을 독립된 공간으로 사용할 수도 있으며, 침실과 아예 차단할 수도 있다. 문 하나로 세 가지 공간 구획이 가능한 것이다. 거실과 침실 사이의 통로도 두 개. 입구가 출구로, 혹은 출구가 입구로 변한다. “실제로 이 모든 길을 오고 가며 활발히 움직여요. 동선에 따라 공간을 느끼는 경험의 폭이 달라지죠.” 주방의 일자형 아일랜드와 마주 보는 서재 공간은 문 없이 가벽 프레임만 남겨 공간의 역할은 분리하되 역시 에너지(동선)가 순환하는 열린 공간으로 설계했다. 전면의 커다란 창으로 옹기종기 모여 있는 주택들이 눈에 들어온다. 공간 안의 유기성은 외부와도 긴 밀하게 이어진다. “창밖으로 낸 발코니는 비록 1m 길이지만, 바라보는 것만으로 심리적 공간을 확보해주지요.”
건물 2층은 빈티지 가구 쇼룸이자 갤러리. 비투프로젝트는 현재 리프로덕션으로 재생산하는 가구를 제외한 미드센추리 시기의 빈티지 가구만 소개한다.
주방에는 일자형 아일랜드를 배치해 시선이 다이닝 공간과 맞닿게 했다.
빈티지와 작품이 함께 만들어내는 깊이
10년 이상 빈티지 가구를 수집해온 부부답게 집은 그 자체로 근사한 빈티지 갤러리다. 독일, 스웨덴, 덴마크, 네덜란드, 프랑스, 벨기에, 이탈리아 등 매해 유럽 전역으로 여행을 떠나 찾아다닌 이들의 컬렉션이 곳곳에 생기를 발산하고 있다. 덴마크 건축가 아르네 보데르Arne Vodder의 검은색 다이닝 테이블, 포울 카도비우스Poul Cadovius의 월 유닛 시스템, 임스의 DSW 체어까지. 파올로 리차토Paolo Rizzatto가 디자인한 벽부등은 3백60도 회전해 주방, 서재, 다이닝 공간을 두루 비춘다. 이 등과 가구들은 모두 1950~1960년대 생산한 것이다.
짙은 보라색으로 페인팅한 벽면이 침실에 한층 깊은 공간감을 부여한다.
변재희 실장이 처음 빈티지 가구를 접한 것은 20여 년 전 독일 뒤셀도르프로 유학을 떠난 시절이다. “당시에는 ‘뮐타크müll tag’라는 쓰레기 버리는 날이 있었어요. 디자인이나 예술대 학생들 사이에서는 이날이 보물 찾는 날로 통했죠. 운이 좋으면 교회나 학교에서 유명 건축가의 가구가 대량 쏟아져 나오기도 했거든요.” 누군가의 쓰레기가 누군가의 보물로 바뀌는 진귀한 경험이었다(요즘은 빈티지 가구가 워낙 인기가 높아 찾아볼 수 없는 문화다).
다이닝룸에서 바라본 서재. 가벽 프레임의 마주 보는 두 면을 서로 다른 채도로 페인팅한 디테일이 엿보인다.
권 대표와 함께 본격적으로 빈티지 가구를 수집하게 된 계기는 1950~1960년대, 즉 ‘미드센추리’라고 일컫는 시기에 생산한 가구에 매료되면서부터다. 핀 율, 아르네 야콥센, 한스 웨그너, 찰스&레이 임스 등 세계적 디자이너가 활동하던 시기가 바로 이때다. 최고급 재료를 사용하고, 전문 가구 제작자의 손으로 한 땀 한 땀 가죽을 꿰매 완성한 가구. 권용식 대표가 3년 만에 극적으로 구입한 오리지널 에그 체어는 의자 위쪽 날개 선이 훨씬 날렵하고 명확하며, 철제 받침은 두툼하고 견고하다. 심지어 의자를 감싼 가죽은 1천2백 번 손바느질한 것이다. “현재도 리프로덕션으로 계속 생산하고 있지만, 당대에 생산한 오리지널 빈티지와는 깊이가 다를 수밖에 없어요. 기술 발전으로 더 이상 인간의 손이 필요하지 않게 되었고, 비용 절감을 실현해 대량생산이 가능해졌으니까요.” 지하 갤러리로 내려가는 길에 걸린 루이스 폴센의 아티초크 조명등 또한 국내 유일한 오리지널 빈티지다. 1958년에 출시한 아티초크는 포울 헤닝센의 걸작으로도 꼽힌다. 브라스 날개 하나하나를 피스로 단단히 고정하고, 굵은 체인 하나가 일흔두 개의 피스를 견고하게 지탱한다. “빈티지 가구를 감성적으로만 접근하는 것은 아쉬워요. 무엇보다 소재와 디테일이 훌륭하기 때문이지요.”
지하 1층 갤러리에서 지상으로 올라가는 계단 풍경. 1960년대 독일의 치과에서 사용하던 책상의 청명한 파란색 서랍이 눈길을 끈다.
그렇게 많던 아침잠이 줄어들 정도로 새벽부터 충무로 현장에 달 려간 변재희 실장. 완성된 공간에서 권 대표와 흐뭇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빈티지 가구가 공간에 깊이를 더한다면, 예술 작품은 그 깊이에 색을 입힌다. 한국현대조형작가협회 소속인 권 대표는 빈티지 가구가 예술 작품과 매치되었을 때 뿜어내는 오라를 강조한다. 지하와 2층을 빈티지 쇼룸이자 전시 갤러리로 사용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흰색 벽면이 아닌 가구와 작품이 일상 공간 속에 어우러진 모습을 보고 작품이 다시 보인다고들 해요.” 국내 작가뿐 아니라 LA나 유럽 등 해외 작가를 초청해 전시를 열기도 한다. 이것이 비투프로젝트를 벗어난 새로운 공간을 생각하게 된 단초를 제공했다. “지난해 뒤셀도르프 대학교의 졸업 작품전을 보러 갔지요. 눈에 띄는 작가들에게 전시를 제안하려고 보니 레지던스처럼 잠시 머무를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겠더라고요. 평소에는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가 모여 작당할 수 있는 아지트가 되고요.” 충무로 살롱 이야기는 이제 시작된다.
주조색인 짙은 청록색과 붉은색 소품, 브라스 소재 조명등이 어우러져 비밀스럽고 몽환적 분위기를 자아내는 충무로 살롱. 창 쪽에 빔 프로젝터를 비추고 와인 한잔 마시며 영화를 감상하기도 한다.
공간 중앙에 배치한 화장실. 통로 양옆으로 세면대와 샤워 부스, 욕실이 자리한다. 문을 닫으면 독립된 화장실로 사용할 수 있고, 열어두면 지나다니는 복도가 된다.
동숭동 집 2층 갤러리의 한 벽면. 빈티지 가구와 조명등, 그리고 작품 한 점이 어우러져 예술적 오라를 발산한다.
충무로 살롱과 시간의 관계
1967년 준공한 세운상가. 김수근 건축가가 설계한 것으로 1층은 자동차 통로와 주차 공간, 3층에는 인공 덱을 설치해 보행 공간을 마련한 최첨단 구조다. “우리나라 최초의 주상 복합 아파트였지요. 당시 서울 한복판에 우뚝 솟은 유일한 건물이나 다름없었을 거예요.” 부부는 서울의 중심부(종로3가와 퇴계로3가 사이)와 한국의 현대사(1945년부터 현재까지)를 관통하는 이 건물에 이유 없이 끌렸다. “세무사가 건축물대장을 보고는 웬 조선시대 문서를 가져왔냐고 했죠. 한 공간을 종교 집회 시설, 사무실, 주거 공간 등 다양하게 사용했더군요.” 천장을 뜯어내니 50년 이상 된 라디에이터 배관이 가득했다. 마치 유적지를 발굴하듯이 하나씩 뜯어낸 결과 위쪽으로 높이 1m 공간이 드러났다. “층고가 3m로 제법 높아 복층 구조를 만들었어요. 2층 침대를 설치하고, 아래 공간에는 소파를 두었지요.”
충무로 살롱 역시 에너지의 흐름을 조절하고 변형하는 것을 보여주는 공간이다. 가장 독특한 점은 화장실을 중앙에 배치한 구조다. 자연스럽게 양옆으로 생긴 통로는 사람이 지나다니는 복도가 되기도 하고, 문을 여는 각도에 따라 화장실과 세면대를 포함한 큰 욕실 등으로 전환된다. “n개의 문이 만들어내는 공간 조합은 n개의 3제곱 가짓수로 증식하는 셈이죠. 끊임없이 변화하고 유동적인 공간이에요. 큰 벽이 가로막지 않아 공간감을 깊게 느낄 수 있고요.” 재료는 최대한 자연의 것을 사용하기 위해 바닥에는 테라코타 타일을 깔고, 가구는 철재와 목재 위주로 들였다.
소파와 찻상으로 꾸민 아늑한 라운지 공간. 소파 앞에는 최선옥 목수가 제작한 동양적 찻상과 새하얀 보료를 두었다. 검은색 철제 선반장은 2층 침대로 오르는 계단 역할을 한다.
넓은 창으로 보이는 도심의 탁 트인 조망은 가히 예술이었다. 넋 놓고 창밖을 바라볼 수 있도록 선반과 책상을 설치했다. 의자처럼 앉을 수도, 평상처럼 누울 수도 있으며, 수납까지 되는 만능 책상이다.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창을 내다보면 정말 기가 막혀요.” 2층 침대로 올라가는 계단을 찾으니 선반장이라고만 생각한 5mm 두께의 얇고 단단한 철판 구조물을 가리켰다. “보통 얇으면 계단이라고 생각하지 않더라고요.” 계단 밑 아늑한 공간의 소파나 바닥에 앉을 수도, 책상이나 계단에 걸터앉을 수도, 2층 침대에 눕거나 혹은 다이닝 테이블에 앉을 수도 있다. 실평수 10평 공간이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다채로운 동선과 활동이 가능하다.
조명은 충무로 살롱의 하이라이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모델이 런웨이를 걸을 때 가장 아름답듯이 공간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때 비로소 생명력을 얻고 살아나는 것 같아요.” 권 대표와 변 실장은 이곳이 문화 예술인이 교류하는 플랫폼이 되기를 바란다. 10여 년 동안 유럽 각지에서 바잉한 경험은 관계를 맺은 사람이 잘 성장하도록 돕는다는 마인드를 지니게 했다. “북유럽 사람들은 이웃이 잘되는 것이 나에게도 도움이 된다는 개념이 확실히 새겨져 있어요. 거시적 관점에서는 남을 돕는 것이 결국 나를 돕는 일과 통한다는 것이죠.” 부부가 유럽의 신진 작가를 초대해 전시를 열고, 그들이 함께 모이고 머무를 공간을 마련하겠다고 생각한 것도 이와 같은 이치다.
충무로 살롱 입구에서 창 쪽을 바라본 모습. 벽으로 가로막히지 않아 원근감이 잘 드러난다. 공간이 넓어 보이는 비결이다. 이곳은 최대한 인공 재료를 배제하고 철제, 나무, 테라코타 등 자연 재료를 사용했다.
유럽 각국을 여행하며 빈티지 가구를 수집하는 일은 단순히 물건에만 한정된 것이 아닌, 사람·공간·문화·예술 그 모든 것을 아우르는 삶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시간이었다. “삶 역시 여행하는 과정이라 생각해요. 농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요. 여행은 짧은 기간에 그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 강렬한 반응을 일으킵니다. 여기에선 쉽사리 해보지 못한 일도 여행을 떠나면 왠지 모를 용기가 생겨요. 낯선 이에게도 대뜸 말을 걸죠.” 여행이 맺어준 수많은 인연은 부부에게 가장 중요한 자산이다.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은 스웨덴의 모리츠 가족입니다. 조엘의 친할아버지 집에서 며칠 묵으며 스웨덴의 리얼 빈티지 가구와 문화를 생생하게 경험할 수 있었죠. 그 인연으로 모리츠 부부의 아들 조엘이 지금 서울에서 저희와 함께 일하고 있어요.” 변 실장은 행복이란 누군가에게 주는 것에서 시작하고, 관계를 아름답게 변화시킨다고 믿는다. “모든 것이 결국 사람과의 관계를 위해서예요. 이곳에서 각 분야 전문가와 협업해 공간 설계, 시공, 스타일링, 예술 작품까지 모든 것을 아울러 실현해가는 시스템을 만들고 싶어요.” 결국 이야기를 완성하는 주체는 시간인 법. 앞으로 충무로 살롱에서 쌓여갈 시간은 무궁무진한 이야기를 만들어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