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옥을 짓기로 마음먹고 완공하기까지 2년 반 정도 걸렸다. 공간 구성과 자재 선택은 기본이고, 지붕의 수막새(수키와 끝부분에 달린 동그란 부분)와 지네철(양쪽의 박공을 연결해 고정하는 꺾쇠 모양의 철물)까지 원하는 대로 맞춤 제작했다. 다시 부부만의 평온하고 자적한 삶을 살기 위해, 공예품처럼 하나하나 매만져 지은 한옥이다.
가회동 일대와 경복궁 너머의 인왕산, 북악산까지 시선이 확 트이는 한옥 마당. 윤종하·김은미 부부는 이 전망을 누리기 위해 서향 한옥을 지었다. 오른쪽 문으로 들어가면 대청마루이고, 바로 마주 보이는 방이 부부 침실이다.
부부 침실의 창으로 마당이 보인다. 마주 보이는 공간은 다이닝룸.
부부 둘이 살다가 아이가 태어나면 삶의 방식이 아이 중심으로 바뀌고, 아이가 장성해 독립할 나이가 되면 다시 부부 둘의 삶으로 돌아갈 준비를 해야 한다. 부부가 지향하는 삶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고, 집 규모와 구성을 그에 맞게 재정비할 기회를 갖는 것이다. 결혼해서 줄곧 강남에서 살아온 윤종하(금융업)·김은미(대학교수) 부부는 이런 시기가 다가오자 한옥에 살아보기로 마음먹었다. 김은미 씨는 어린 시절 조부모가 살던 경운동의 큰 한옥에 대해 좋은 기억을 갖고 있고, 외국 생활을 오래 한 윤종하 씨는 한옥을 경험한 적이 없지만 언젠가 꼭 살고 싶다는 바람을 갖고 있었다. 부부는 꿈꾸던 한옥을 찾아 북촌에 당도했다.
다이닝룸에 베이 윈도와 벤치를 만들었다. 한쪽 창은 스테인드글라스로 장식했다. 건축가가 제안한 ‘동서양의 교차’ 콘셉트를 가장 잘 구현한 공간이다. 오른쪽 문으로 나가면 마당과 바로 이어진다.
전망 좋은 서쪽으로 창을 낸 부부 침실. 이 방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우물천장이다. 남편이 좋아하는 잉글랜드 프로 축구 클럽 맨체스터 시티의 하늘색을 넣어 포인트를 주었다.
한옥이 밀집한 북촌에서 부부가 찾은 한옥은 1930년대에 지은 데다 몇 년이나 방치돼 있었다. 도저히 리모델링으로 복구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서 전부 철거하고 다시 지어야 했다. 사실 관리가 안 된 오래된 한옥을 개축하기보다는 신축하는 편이 시간과 비용을 훨씬 아낄 수 있다. 게다가 이 집 같은 경우에는 신축하면서 한옥 아래에 지하 공간을 만들고 주차장까지 마련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서쪽에 면 한 벽을 허물면 가회동 일대와 경복궁 너머의 인왕산까지 시원하게 펼쳐질 터였다. 부부는 이 풍경을 살뜰히 품은 서향집을 짓기로 했다. 설계는 한옥 건축 경험이 풍부하고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던 황두진 건축가에게 의뢰했다. 작은 마당에는 웃자란 풀이 무성하고 오래 보살피지 않아 쇠진한 한옥을 보고 건축가는 아주 오래전 기억을 떠올렸다. 신기하게도 그가 건축학과 학생이었을 때 실습차 실측하러 온 바로 그 한옥이었다. 아직도 남아 있는 30여 년 전의 실측 도면에는 한옥의 구조뿐 아니라 살림살이 하나하나, 마당의 강아지와 개집까지 세밀하게 그려져 있다. 그들이 이 한옥을 만난 건 어떤 오묘한 인연이 작용한 덕분인지 모른다. 부부의 한옥 짓기는 첫 장부터 흥미진진했다.
(좌)부부 침실과 이어지는 욕실과 드레스룸. 침실만큼이나 넓은 드레스 룸은 부부 각자의 옷을 따로 수납하도록 구성했다.
(우) 덕수궁에 있는 아치문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 대문을 열면 현관이 나온다. 김은미 씨가 친정 어른께 물려받은 고가구는 내부에 선반을 덧대어 신발장으로 사용하고 있다.
한옥은 ‘동사動詞’의 공간
부부는 한옥 짓기를 결정하고 나서 어떤 집을 지을지 구체적으로 구상하기 시작했다. 한옥에 관한 책을 여러 권 통독하고 건축·인테리어 관련 책과 잡지를 보면서 마음에 드는 이미지를 스크랩해 건축가와 공유하며 세세한 의견을 수도 없이 주고받았다. 부부끼리 의견이 맞지 않은 부분은 서로 조금씩 양보하고 조율했다. “부부가 아이를 키울 때에는 공통 관심사인 아이 이야기를 하면서 주로 시간을 보내는데, 점점 공유할 소재가 떨어지고 각자 바쁘다 보면 자연스레 같이하는 시간도 줄게 되거든요. 그런데 우리는 한옥을 지어야 하니까 고궁과 고택을 같이 다니고, 한옥 관련 책을 번갈아 읽고, 이건 좋다 저건 싫다 하면서 열심히 토론하고, 앞으로 한옥에서 어떻게 살 것인지 고민하면서 이야깃거리가 끊이지 않았어요.”
부부는 일생에 단 한 번뿐일 한옥 짓기의 과정에 여유를 두고 적극 참여하며 진정으로 즐겼다. “상량식을 하는 날에는 남편이 좋아하는 동양화가 문봉선 화백이 상량에 붓글씨로 ‘穩睦閑自適(온목한자적)’을 일필휘지하는 퍼포먼스를 했어요. ‘온목한자적’은 우리 부부가 지향하는 삶의 방식을 한자 다섯 글자를 모아 표현한 거예요. 여기에서 마지막 두 글자 ‘자적’을 당호로 지었고요. 자신의 속도대로 편안하게 즐기면서 살자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부부는 공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자 매주 현장에 나왔다. 건축가와 대목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한옥이 조금씩 완성되어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금강송으로 만든 묵직한 대들보 아래 자리한 대청마루. 흰 벽에 낸 둥근 문과 왼쪽의 창살은 창덕궁 낙선재의 만월창과 그 창살을 구현한 것이다. 오른쪽에 보이는 스테인드글라스를 향해 가면 부엌과 다이닝룸이 나온다. 지하에 주차장을 조성하면서 단차가 생겨 작은 계단을 만들었다.
대청마루에서 부엌으로 이어지는 복도에 줄리언 오피의 ‘Dino Crawling’을 걸었다. 이동하는 장소이기에 시선에 따라 움직이는 작품을 선택한 것.
현대식으로 지은 한옥 지하 공간에 빛과 바람을 들이기 위해 작은 성큰가든을 만들었다. 성큰가든에는 그늘에서도 잘 자라는 산단풍나무를 심었다.
한옥의 포근함, 유연함, 반전
자적당은 대청마루를 중심으로 양쪽에 부엌과 침실이 이어지는 ㄷ자형 한옥이다. 대청은 서쪽으로 훤히 트인 마당을 마주한다. 창호가 많은 한옥에서는 창호 자체가 장식 요소가 되는데, 이 집에서도 한쪽 벽을 채우는 화려한 창살과 그 옆의 둥근 문이 분위기를 주도한다. “창덕궁 낙선재의 만월창과 그 창살을 구현한 거예요. 한옥을 지은 정영수 대목이 창호까지 작업하셨지요. 원래 창호는 소목이 하는 일인데 정영수 대목은 소목부터 시작한 분이라 저희가 원하는 창호를 다 만들어주셨어요. 무엇보다 감동한 부분은 굵은 보의 가장자리를 부드럽게 둥글린 거예요. 육중한 나무를 가정집에 어울리도록 포근하게 만들어주신 거죠. 저희는 신경 쓰지 못한 부분인데, 이런 디테일이 한옥의 멋을 굉장히 살려주거든요.”
(좌) 지붕 합각에 ‘閑(한가할 한)’ 자를 넣고 지네철에는 ‘自(스스로 자)’ 자를 넣었다.
(우) 부부 금슬을 기원하는 원앙 한 쌍을 대들보 아래에 조각해 넣었다.
대청에서 부엌 쪽으로 몸을 돌리면 성당에서 볼 법한 스테 인드글라스가 깜짝 등장한다. 그 창을 마주 보며 부엌으로 들어가면 또 다른 반전. 튼실한 보와 도리가 드러난 높은 천장 아래에 베이 윈도bay window가 보이고 그 아래에는 벤치도 있다. “외국 생활을 오래 한 우리 부부의 라이프스타일을 잘 아는 황두진 건축가가 ‘동서양의 교차’라는 콘셉트를 제안했어요. 부엌의 스테인드글라스는 예전에 살 던 시카고 출신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집에 있는 것을 차용했습니다. 현대식으로 지은 지하의 서재에도 스테인드글라스가 있는데 남편이 아랍 건축책에 나온 도안 을 참고해 직접 그린 거예요.”
건축가와 대목이 완성한 한옥에 조화로움과 실용성을 더한 사람은 인테리어 디자이너. 이로디자인의 육연희 대표는 부부가 메인 테마로 정한 ‘모던 맥시멀리스트 한옥’에 맞게 전체적인 컬러와 타일, 벽지 등의 마감재를 정하고 붙박이 가구와 수납장을 디자인했다.
(좌) 지하 한쪽에 부부가 수집한 그림을 수납·보관하는 효율적 시스템을 만들었다. 좁은 공간에 많은 그림을 보관할 수 있고, 그림을 쉽게 확인·교체할 수 있다.
(우) 현대식으로 지은 지하는 외국 생활을 하는 아이들이 한국에 오면 지내는 공간으로 구성했다. 벽에 건 그림은 서세옥 작.
한옥과 지하를 이어주면서 지하에 빛과 바람을 들이는 성큰가든.
한옥 구석구석에는 부부의 취향과 관심사를 반영한 요소가 숨어 있는데, 설명을 듣지 않으면 대개 알아채지 못할 것이다. 그중 가장 참신한 것은 남편이 좋아하는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의 프로 축구 클럽, 맨체스터 시티의 하늘색을 부부 침실의 우물천장에 넣고 엠블럼에 있는 장미 문양을 지붕의 수막새에 적용한 것이다. 대들보에는 부부간의 금슬을 기원하는 원앙 한 쌍을 받쳐놓았고, 처마 아래에는 말과 호랑이(아내는 말띠, 남편은 호랑이띠)를 조각해놓았다. 남편 말에 따르면 전통 가옥을 보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새로 지어 사는 곳은 우리나라밖에 없다고 하는데, 한옥이 그만큼 유연한 공간이기에 가능한 일인 것 같다.
지하에 만든 부부의 서재. 오죽을 심은 작은 마당이 보이는 창 앞에 긴 책상을 놓고 의자 두 개를 나란히 두었다. 한쪽 벽에는 알코브처럼 아늑한 공간을 만들고, 화려한 벽지로 화사함을 더했다. 둥근 창의 스테인드 글라스는 남편이 직접 디자인했다. 다른 쪽 벽에는 큰 책장을 깔끔하게 빌트인했다. 천장을 독특하게 유럽의 돔처럼 둥글게 만들었다.
한옥 고유의 정취를 즐기면서 지금의 생활에 불편하지 않게 현대식 설비를 갖출 수 있고, 여러 양식을 혼합할 수도 있으며, 공예품처럼 취향대로 맞춤 제작할 수 있는 것이다. “전에 살던 집보다 크기는 작은데 관리하기는 더 힘들어요. 그래도 수십 년간 잊고 살던 바람 소리, 빗소리를 즐기고 조금만 걸어 나가면 박물관, 미술관, 맛있는 빵집을 갈 수 있으니 삶은 더 여유로워졌어요. 동네를 걸어 다니는 삶이 참 좋아요.” 부부가 언젠가 현역에서 은퇴하는 날이 오면 지금보다 훨씬 더 자적한 한옥살이를 누릴 수 있을 것이다. 부부만의 오롯한 삶이 깊어질수록 대들보의 뽀얀 속살도 점점 짙어질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