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바탕 화면에 띄운 사진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가로로 긴 창문을 찍은 사진이었는데, 창틀이 완벽하게 수평과 수직이 맞았다. 집 안에도 흐트러짐이 없어 보여 괜히 심적 거리감을 느끼고 있었는데, 사는 이의 이야기에서는 사려 깊은 마음을 발견하고 말았다. 이 집의 파랑은 따뜻하다.
1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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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어를 전공했지만, 취미로 시작한 사진에 빠졌고, 사진을 돋보이게 할 방법을 찾다 디자인까지 시작했다는 송은준 씨. 방 한쪽을 개인 작업에 집중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었다.
침대 머리맡에는 유리와 스틸 소재의 테이블 두 개를 레이어드해서 아끼는 물건을 두고 작은 쇼룸처럼 꾸몄다. 그 뒤쪽에 놓인 액자 속 작품은 송은준 씨가 직접 찍은 사진을 활용해 디자인 작업을 한 것.
송은준 씨는 스테이 큐레이션 예약 플랫폼 스테이폴리오에서 UX/UI 디자이너로 일한다. 말하자면 핸드폰, 태블릿 PC, 노트북 등 다양한 직사각형 화면을 통해 보는 웹 사이트 공간을 잘 정돈하고 꾸미는 일을 한다. 디지털 세상에 배치하는 그리드가 실제 사는 공간에도 적용된 걸까, 그의 집에는 책이 일정한 간격으로 겹쳐 있고, 부엌의 조리 도구는 물론 휴지 케이스와 작은 소품까지 똑바르게 놓여 있어 구석구석 살피며 ‘숨은 각 찾기’를 해보게 된다. 일하면서 요즘 인기 많은 유명 숙소를 가장 빠르게, 많이 접할 테니 집 꾸밀 때 도움이 되는 레퍼런스 속에 풍덩 빠져 있는 환경일 터. “좁은 자취방에 살다 보니 아무래도 현실과 이상 간의 차이가 있죠.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히 깨닫고 있어요. 뚜렷한 콘셉트가 있어야 공간에 힘이 생긴다는 것. 아무리 예쁘고 멋진 게 많아도 스타일이 중구난방으로 섞여 있으면 매력이 절감될 뿐만 아니라 공간이 지향하는 바도 깊어지지 못하더라고요.”
벽 한쪽이 모두 수납공간인 것은 이 집의 큰 장점. 당장 필요하지 않은 물건은 모두 넣어두고 공간을 깔끔하게 유지한다.
작은 이동식 북 트레이에도 층마다 콘셉트가 있다. 가장 아래층은 에세이와 글이 위주인 잡지로 채웠고, 그 위로는 건축과 사진 관련 서적이 놓여 있다.
그는 좋아하는 화이트&블루를 집의 키 컬러로 정하고, 집중도를 높이기 위해 조도를 너무 밝게 하지 않는다. 그에게 집은 스스로에게 집중하는 공간이다. 집에서 단순히 쉬기보다는 내면으로 깊이 내려가 자신을 성찰하고, 개인 작업에 집중하는 시간을 보내고 싶었기 때문에 사회생활을 하며 정신없이 지내다가도 집에 오면 감정을 가라앉히고 차분해진다. 그렇게 방향성을 명확히 정하고 그에 맞게 공간을 채워나가서인지 5개월 차 자취 새내기의 집인데도 이미 완성형이다.
“제 취향의 기준에 부합하는 것으로만 집 안을 채운 건 개인 작업물의 수준을 높이기 위해서기도 해요. 여기서 작업을 하면 공간의 무드가 저절로 반영된 결과가 탄생할 것이고, 그 작업물은 또 제 취향을 더욱 깊어지게 할 테니 계속 선순환하는 거죠. 실제로 제 글이나 사진도 이 공간처럼 파랗고 차갑고 차분한 느낌이라는 피드백을 많이 받아요.” 요즘은 뉴스레터 메일링 서비스를 시작했다. 한 달에 한 편의 글을 쓰고, 이와 어울리는 직접 찍은 사진을 넣기도 하며 구독자들에게 보낸다. 앞으로는 집에서 보내는 시간도 기록으로 남겨볼 생각이다.
개인 작업을 할 때 사용하는 촬영 장비. 하나 둘 직접 알아보며 구성을 늘려가고 있다 .
최근에 요리에 흥미가 생겨 점심 도시락을 싸거나 친구들에게도 음식을 해주곤 한다는데도 부엌이 무척 깔끔하다. 그는 매주 일요일을 한 주를 마무리하며 대청소하는 날로 보낸다.
“본가에서도 방은 스스로에게 집중하는 공간이었어요. 가족들과 함께 살아도 문을 닫으면 안과 바깥이 분리되니 가만히 앉아서 생각을 소화하고, 혼자서 휴식했어요. 자취를 시작한 지금은 방의 모습과 의미가 어떻게 변해갈지 살펴보고 싶어요.” 송은준 씨가 한 가지를 털어놓았다. 사실 자기는 나무 소재 물건도 좋아하는데, 이 집의 전체적인 톤을 깰까 봐 서랍장 안에 넣어둔다고. (과연 디자이너의 집이다!) 회사 점심시간에 뛰어가 마지막 남은 한 점을 어렵게 샀다는 자개 장식이 박힌 나무 접시를 꺼내 보여주는데, 파란색으로 가득한 집이 전혀 차갑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를 찾았다. 송은준 씨가 삶에 대해 이어가는 진정성 있는 고민, 좋아하는 것에 대한 열정이 담뿍 담겨 있기 때문이다.
집은 내 영감의 원천
송은준 씨에게 집은 개인 작업을 위한 집중의 공간이기도 하다. 집에서 탄생하는 작업물이 원하는 느낌으로 완성되도록 ‘취향 소스’를 가득 채워둔다.
세밀한 자개 장식이 아름다운 남미혜 작가의 나전월광문반!
수토메 아포테케리의 ‘호스피탈리티’ 리추얼 스프레이
천연 향기 브랜드 수토메 아포테케리와 스테이 큐레이션 플랫폼 스테이폴리오가 협업해 만든 룸 스프레이. 로즈메리와 베르가모트 등 식물 원료의 밝은 무드가 실내 분위기를 환기해주고, 공간에서 느낄 수 있는 감각의 폭을 넓혀준다.
박선아 <어른이 슬프게 걸을 때도 있는 거지>, 라야 <산책론>
사진, 디자인, 글로 개인 작업을 이어가는 기록자 송은준 씨가 좋아하는 책 두 권. 여러 날의 산책 이야기를 담은 박선아 작가의 에세이집은 일상에 위로가 되어주고, 도시의 건물을 사진으로 남기는 라야 작가의 사진집은 건축 사진을 좋아하는 그에게 기분 좋은 자극을 불러일으킨다.
전아현 작가의 ‘심산’ 비누
레진을 재료로 한국 산맥의 정취를 표현하는 전아현 작가의 대표작 ‘심산深山’이 고스란히 담긴 비누 굿즈. 회색빛 운무가 낀 정육면체 속 세상이 조도를 낮추어 마음을 가라앉히는 송은준 씨의 방 분위기와 닮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