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계에는 더 많은 디자이너가 필요하다. 디자이너가 운영하는 출판사는 아름다운 아트북을 만드는 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독자의 읽기 경험에도 무한한 확장을 불러오고 있다. 지금 소개하는 출판사가 바로 그렇다.
1 〈서울의 공원〉 2 〈WOOHOO〉 3 〈서울의 목욕탕〉 4 〈한국, 여성, 그래픽 디자이너 11〉 5 〈느릿느릿 배다리씨와 헌책수리법〉 6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내가 살아있다는 것이 그렇게 고마울 수 없었던 57일간의 산티아고〉 7 〈여섯〉
주위를 환대하는 6699프레스
큰따옴표를 이름으로 삼은 그래픽 디자인 스튜디오이자 출판사. 디자이너 이재영이 운영하는 6699프레스가 올해로 10주년을 맞이했다. 디자이너로서 사회에 필요한 목소리를 내고자 시작한 이 출판사는 지금까지 14권의 ISBN을 발행했다. 첫 책 〈우리는 서울에 산다〉에서부터 6699프레스가 지향하는 바는 뚜렷했다. 언뜻 서울에 사는 사람들이 쓴 서울 이야기처럼 보이는 이 책은 탈북 청소년들과 함께 만든 책이다. 딱딱해 보이는 고딕체의 제목을 책에 참여한 친구의 손글씨로 덮었다. 손글씨는 누가 어디서 왔는지, 쓴 사람이 누구인지 말해주지 않는다. 그냥 서울에 살고 있다고 썼을 뿐이다. 주변부로 여겨지는 이들을 대상화하지 않으려는 노력, 바로 곁에 있는 이웃으로 대하려는 디자이너의 세심한 의도는 이후에도 다방면으로 이어졌다. 아직 퀴어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나 콘텐츠가 턱없이 부족하던 시절에는 이성애자 친구와 동성애자 친구를 짝꿍처럼 묶어 두 사람이 한 이야기를 그린 〈여섯〉을 펴내고, 여성 디자이너가 목소리를 내는 현장에 함께하며 〈WOOHOO〉를 펴냈다. 〈WOOHOO〉와 함께 〈한국, 여성, 그래픽 디자이너 11〉 또한 당시 쏟아지던 여성들의 목소리와 의견을 놓치지 않고 기록으로 남겨둔 중요한 사료다. 물론 책 만드는 일이 늘 보람과 즐거움만 가져다준 것은 아니다. 6699프레스에서 다섯 번째 책의 작가는 〈여섯〉이 나온 것을 보고 다른 출판사로 콘텐츠를 옮기며 디자이너와 독자 모두에게 생채기를 내기도 했다. 사진가 박현성과 〈서울의 목욕탕〉을 만들 때는 실제 목욕탕에서 물세례를 맞았다. 한창 동네 목욕탕이 사라지던 때, 그럼에도 동정을 바라지 않는 목욕탕 사장님의 마음을 열기 힘들었던 것이다.
8 〈너의 뒤에서〉 9 〈하숙집 형들과 나루토〉 10 〈뉴노멀〉 11 〈우리는 서울에 산다: 친구에게〉 12 〈낭독집: 1-10〉 13 〈우리는 서울에 산다〉 14 〈보고 싶은 친구에게〉
그러나 사라져가는 도시의 한 면을 담고자 비타민 음료를 사 들고 일일이 목욕탕을 찾아다니며 양해를 구하고, 때로는 목욕만 하고 나오겠다며 들어가 몰래 촬영해가면서 완성했다. 책이 나온 후 도둑 촬영한 목욕탕을 다시 찾아가 책을 전달했을 때 진심으로 고마워하는 사장님을 만나고 나서야 디자이너 이재영은 안심했을 것이다. 이제 책에 기록된 목욕탕 중 방문할 수 있는 곳은 딱 한 곳뿐이다. 대신 목욕탕 외관에서 시작해 방문한 사람들의 모습, 뿌연 탕 안, 샤워기와 타일 등의 순으로 배치된 책 속 이미지로 진짜 목욕탕을 방문한 기분을 대신해본다. 도시에서 사라져가는 것, 사람들이 중요하게 다루지 않고 놓치는 것을 큰따옴표 안에 집어넣어 다시금 볼 수 있도록 만드는 것. 출판사 6699프레스가 어느 때보다도 소중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