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컬처에 대한 국제적 관심이 상승하는 요즘, 전 세계 뮤지엄에서 한국적 미학을 펼쳐 보이는 전시를 열고 있다. 익숙한 듯 낯선 시선으로 우리 고유의 아름다움을 감상하고 싶다면 눈여겨볼 전시 4.
권오상, ‘무제의 지드래곤, 이름이 비워진 자리’ ⓒ 권오상
패션브랜드 다시곰의 색동 컬렉션. ⓒ 다시곰 사진: 정지훈
LONDON
<한류! 더 코리안 웨이브>
영국의 대표적 박물관 빅토리아 & 앨버트 뮤지엄(V&A)에서 한국 대중문화사의 축을 종횡하는 전시를 선보인다. <한류! 더 코리안 웨이브>는 전쟁 이후 한국의 문화적 기반이 무너진 시기부터 ‘한류’라는 현상이 일어나기 시작한 1990년대 후반, 나아가 현재 주목 받는 K-팝과 K-뷰티까지 폭넓게 아우른다. 전시는 200여 개의 물건 및 작품을 주제에 따라 크게 4개의 섹션으로 나눠 배치했다. 1부에서는 1970년 논으로 뒤덮여 있던 압구정동 부지와 1988년 올림픽 포스터, 백남준의 1986년 조각 작품, 삼성전자의 초기 제품들을 펼쳐놓으며 아날로그적 물성과 한국의 현대사를 입체적으로 조망한다. 2부에서는 1990년대부터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 <킹덤>까지 비약적으로 발전한 한국 드라마와 영화의 스토리보드, 소품, 의상 등을 보여준다. 영화 <기생충>의 화장실 세트를 재현한 것도 볼거리. 3부는 K-팝 음악과 팬덤을, 4부에서는 뷰티와 패션 영역에서 한국적 미감의 기원을 톺아보고, 현재 산업의 최전선에서 활약하는 브랜드와 디자이너들의 창작물을 전시한다. 한복에서 영감받아 스타일리스트 서영희가 V&A를 위해 특별 제작한 의상을 포함해 20여 가지의 현대적 한복과 일상복을 만나볼 수 있다. 2023년 6월 25일까지.
(좌) 김환기, ‘산월’ (우) 이쾌대, ‘두루마기를 입은 자화상’
LOS ANGELES
<사이의 공간: 한국 미술의 근대>
오늘날 한국 현대미술이 존재하기까지 한국 근대미술의 근간을 다져온 작가들을 조명하는 전시. 미국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미술관(LACMA)에서 열리는 기획전 <사이의 공간: 한국 미술의 근대>는 해외에서 최초로 한국의 근대미술을 조명하는 전시인 점에서 더욱 의미 깊다. 단색화뿐만 아니라, 19세기 말부터 일제강점기를 거쳐 6·25 한국전쟁 전후까지 발전해온 한국 근대미술의 다채로운 면면을 소개한다. 국립현대미술관이 공동 주최하는 이번 전시는 화가 배운성의 ‘가족도’, 김환기의 ‘론도’를 포함해 근대문화유산으로 인정받은 등록문화재 4점과 이건희 컬렉션에 속한 작품 등 88명 작가의 작품 130여 점을 감상할 수 있는 대규모 기획전이다. 조선인 최초로 도쿄미술학교를 졸업한 고희동, 사실주의 화풍으로 조선의 인물화를 남긴 이쾌대 등 격변의 시기, 다양한 문물을 받아들이며 예술적 시도를 넓혀간 작가들의 작품을 들여다볼 기회. 2023년 2월 19일까지.
김태희, ‘나전 송학문 액자’
정수화, ‘나전 건칠 물결문 달항아리’
PARIS
<나전, 시대를 초월한 빛-한국의 나전을 만나다>
흔히 한국 전통의 미를 떠올릴 때 담백하고 소박한, 여백의 미와 대척점에 있는 것이 나전 공예다. 영롱한 자개로 다채로운 문양으로 만들고 옻칠을 더하는 나전 공예. 조개껍데기를 세공한 뒤 여러 컬러를 조화롭게 배열해 장식하는 섬세한 공법이 돋보인다. 고려 시대에 성행한 나전칠기는 조선에 들어 왕실 의례 용품으로 활용되었고, 근대화 시기에는 수출품으로 만들어져 1925년 파리세계공예장식박람회에 전시되기도 했다. 100여 년의 시간이 흐른 2022년, 다채로운 나전 예술품들이 다시 파리에 당도했다. 지난 9월 파리 메종 오브제 기간에 맞춰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한국문화재재단이 주관한 전시 <나전, 시대를 초월한 빛-한국의 나전을 만나다>가 파리 유네스코 본부에서 개최된 것. 과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국가무형문화재 7명의 작품과 제작 도구 49점, 현대 작가 5명의 작품 등 총 63점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었다. 조선 시대 마지막 나전칠기 장인 전성규, 실톱으로 자개에 모양을 내는 ‘줄음질’ 분야의 개척자 김봉룡, 옻칠 회화라는 새로운 장르를 구축한 김성수 등 장인들의 작품으로 전시장을 채웠고 이후 주프랑스 한국문화원으로 장소를 옮겨 전시를 이어갈 예정이다. 2022년 9월 29일부터 11월 19일까지.
이화영, '책 속의 책'
정재은, ‘첩첩산중’
WIEN
<책거리: 우리 책꽂이, 우리 자신>
학문을 중시한 유교 국가 조선에서 ‘책’은 일상의 오브제였다. 책거리는 조선 후기, 서양의 정물화처럼 산수나 꽃과 함께 책을 그린 그림을 일컫는다. 문방사우 같은 물건과 책을 표현하는 ‘책가도’보다 포괄적인 개념이다. 청나라에서 파생된 책거리를 국내에 들여온 인물은 학구열이 높았던 왕 정조로, 주기적으로 궁중 화가인 화원들에게 책을 주제로 그림을 그리도록 명을 내렸고, 이 시기에 완성된 작품들은 현대 작가들에게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국과 오스트리아 수교 130주년을 맞아 빈 세계박물관Weltmuseum Wien에서 국내 현대미술 작가 31명의 책거리 작품을 선보이는 전시 <책거리: 우리 책꽂이, 우리 자신>이 열리는 중이다. 20여 년간 전통 민화와 책거리의 모사를 탐구해온 정성옥과 김영식, 민화의 현대적 재해석을 모색하는 이화영, 디지털 아티스트 이돈아의 작품 등을 만나볼 수 있다. 전시 제목처럼, 책거리는 주위에 두고 싶은 사물을 통해 결국 자신이 누구인지 보여주는 하나의 증표다. 동시대 작가들의 작업에서 과거와 달라진 사물을 배치한 점을 통해 색다른 재미를 발견할 수 있다. 일부 작가들이 아이패드 같은 디지털 툴을 활용해 전통 민화의 기법을 표현한 점 역시 흥미롭다. 2022년 11월 1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