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 인플루언서 전문 사이트 ‘버추얼 휴먼스(virtualhumans.org)’에 따르면 2022년, 200명이 넘는 버추얼 인플루언서가 활동 중이다. 이들 중 단순 인플루언서를 넘어 사진, 회화, 미디어 아트 등 예술 작품을 발표하는 버추얼 아티스트가 눈길을 끈다. 고유의 세계관으로 작업의 영역을 넓히고 있는 한국의 가상 아티스트 2명을 만났다.
로아 미디어 아트, 회화 작업을 선보이는 메타 휴먼 아티스트. 미디어 아트의 대가 장승효 작가가 소속된 ‘꼴하우스’에서 탄생했다. 2월 하남 스타필드에서 열린 <호령전>에서 장승효, 이이남 작가와 대형 미디어 파사드 작업을 선보이며 데뷔했다. 글로벌 NFT 행사 ‘NFT.NYC 2022’의 공식 위성 행사 ‘솔 나이트Soul Night’에도 참여하며 메타버스에서 예술 작품을 감상하는 새로운 경험을 제시했다는 평을 얻었다.
ROA
메타 휴먼 아티스트로서 스스로 생각하는 본인만의 특색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컬래버레이션의 제약이 없는 아티스트라는 점이 아닐까? 협업 작가나 대상에 맞춰 여러 색의 자아를 꺼내 작품 활동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단체전 <호령전>에서 30여 명의 작가들과 협업했으며, 여러 미공개 NFT 프로젝트의 비주얼 디렉터로서 페인팅과 디지털 작업을 하고 있다.
작품에 사막, 심해, 오로라 등 몽환적이고 신비로운 인상을 주는 배경이 자주 등장한다.
미래에 대해 정답은 없겠지만 조금이라도 가까운 것이 있다면, 이를 자연에서 찾고자 한다. 작업 과정 중 심층 생태학적 관점에서 우리 사회의 많은 문제를 바라보고 있다. 이데올로기의 변화는 인간의 내재적 가치에 대한 평가와 관련한 것이기에 과학과 기술의 발전 또한 생태적 세계관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자연의 신비로움과 원천성을 담는 요소들이 작품에 많이 등장하게 되었다.
자체 개발한 문자 체계를 작품 곳곳에 활용하고 있는데.
문자로 이루어진 지각의 세계를 무의식이 함께하는 이미지의 세계로 확장시키고자 한다. 사회적 합의에 의해 형성된 시각적 기호로 이뤄진 의사소통 체계 안에 이미지적 예술성을 담아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를 위해 한글, 알파벳과 어딘가 유사하지만 전혀 다른 규칙성과 변칙성을 지닌 나만의 문자를 만들어냈다. 작업의 주제나 작업을 함께하는 컬래버레이션의 주체가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 또는 시의 한 구절 등을 이 문자를 활용해 작품에 다양한 형태로 담아내고 있다. 앞으로 작업을 꾸준히 이어가며 나만의 문자 체계 세계관을 더 확장시키고 싶은 바람이다.
로아, Soul Whales’.
당신 예술의 정수를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 하나를 꼽자면?
브루클린에서 열린 ‘솔 나이트’에 출품한 ‘솔 웨일스Soul Whales’. 영혼을 주제로 한 NFT 프로젝트와의 협업으로 행사를 기념하기 위해 제작, 상영된 작품이다. 미디어 아트 작업으로, 3분가량의 메인 한 편과 4편의 스핀오프가 있다. 도시의 틀에서 벗어나 영혼을 품고 하늘을 유영하는 고래는 나 자신이기도 하며, 내 작품을 감상하는 관람객이기도 하다. 끊임없이 변하는 자유로운 하늘과 고래의 모습을 통해 관람객과 교감할 수 있길 희망하며 만들었고, 그 현장을 뉴욕에서 목격하며 애정이 커졌다.
앞으로의 활동 계획이 궁금하다. 도전하고 싶은 새로운 장르가 있는가?
조각에 도전해보고 싶다. 메타 휴먼인 나의 뒤에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가 함께하고 있어 조소 작업에도 내 세계관을 담아내려는 계획이 있다. 내 문자들이 조소 작업으로 표현되었을 때 매력적일 것이다. 활동 범위를 웹2.0뿐만 아니라 웹3.0으로 넓히고 싶은 바람도 있다. 회화와 조소 작업에 정진하고 도전하겠지만, 디지털 작업을 통해 현실의 제약에서 벗어나 보다 많은 관객에게 빠르고 지속적으로 다가가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빠른 시일 내 여러 디지털 플랫폼, 다양한 NFT 혹은 디지털 전시 프로젝트를 통해 만날 수 있기를 희망한다.
웨이드 물로 이뤄진 독특한 외형의 디제이이자 프로듀서. 디지털 IP 엔터테인먼트 기업 IPX와 크리에이티브 컨설턴트 이규범이 탄생시킨 버추얼 아티스트다. 남극을 탐험하던 한 부부가 우연히 빙하 속에서 웨이드를 발견했다는 탄생 배경을 지녔다. 지난 3월 사진전 에 참여하며 처음 모습을 드러냈고, 이후에도 피스마이너스원, 나이키, 세인트마이클 등 다양한 브랜드와 협업하며 활발히 활동 중 이다.
WADE
첫 공식 행보가 지난 3월 라이카 사진전 <O! LEICA 2022>였다. ‘Freedom from Loneliness(외로움으로부터의 자유)’ 라는 주제로 작품을 선보였는데.
예전부터 주변을 관찰하며 아버지가 물려주신 라이카 M7로 순간의 기록을 남기는 것을 즐기곤 했다. 지난 3월 사진전 참여는 그런 의미에서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O! LEICA 2022>의 주제는 ‘일상이 되어버린 팬데믹과 도시 모습’이었다. 이에 맞춰 팬데믹 속에서 변화된 삶과 그 공허함 속에서 피어나는 자유로움을 표현하고자 했고, 총 34종의 작품을 공개했다. 그중 우연히 촬영한 사막 위의 주유소 사진이 기억에 남는다. 미국 네바다주를 정처 없이 여행하다 우연히 낡은 주유소를 보고 차를 멈춰 세웠다. 황량한 사막에 덩그러니 남겨진 적막한 주유소를 보며, 수많은 차가 오갔을 활기찬 과거를 상상해봤다. 재미있으면서도 어쩐지 슬픈 듯해, 그 순간의 감정을 카메라에 담았다.
<오! 라이카 2022>에 출품한 웨이드의 작품.
라이카에 이어 다양한 브랜드와 협업하고 있다.
지난 8월에는 평소 관심이 많던 패션 브랜드인 ‘세인트마이클©SAINT Mxxxxxx’의 2022 A/W 컬렉션 캠페인에 참여했다. 음원을 직접 프로듀싱했고, 캠페인 영상의 메인 모델로도 참여했다. 2022 A/W 컬렉션을 입고, 네온사인으로 빛나는 옛 도쿄 거리에서 스케이트보드를 타며, 그동안 연마했던 플립 기술 등 다양한 트릭을 선보일 수 있는 영상이라 재밌게 촬영할 수 있었다. 해당 영상은 뉴욕 타임스스퀘어와 일본 도쿄 시부야 등에서 공개되었는데, 반응이 좋았다고 들었다.
염력, 순간 이동 등 초능력을 갖췄다고 하던데, 당신의 초능력 중 작업에 가장 이로운 초능력을 소개한다면?
사실 대단하지는 않다. 10초 정도 액체 형태로 몸을 변형한다거나, 염력으로 물건들을 아주 조금 움직이고 1.5m 정도 되는 거리를 순간 이동하는 정도다. 그중 염력을 꽤 유용하게 사용한다. 스니커즈 리뷰 영상처럼, 혼자서 촬영하는 경우에 종종 사용하곤 한다. 얼마 전에는 ‘보틀플립’ 챌린지에 참여했는데, 몇 번 실패를 반복하다가 결국 염력의 도움으로 성공했다.
사진, 음악, 패션 등 다양한 영역을 넘나들며 바쁘게 활동 중이다. 이 모든 활동이 가능하도록 당신에게 가장 큰 영감을 주는 것이 있다면?
일상 속 다양한 취미나 습관이 도움 되는 것 같다. 평소 주변을 관찰하거나 턴테이블 LP 플레이어 또는 아이팟 클래식 등으로 음악을 감상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이런 취미를 즐기다 보면 자연스레 영감이 떠오르는 것 같다. 요즘은 1980~1990년대 클래식 힙합을 바이닐로 감상하는 것을 즐기는데, 그 시대의 음악을 리믹스해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음악이 탄생하기도 한다.
앞으로 도전해보고 싶은 다른 분야가 있나?
그간의 활동을 보면 알겠지만, 주류 문화와 서브컬처라는 분야에 얽매이지 않고, 장르의 경계와 영역을 뛰어넘어 나오는 ‘다양성’을 지향한다. 그 연장선 위 각자의 분야에서 다양성의 가치를 추구하는 이들에게 영감이 되는 아티스트로 성장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