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 만에 국내 개봉한 박찬욱 감독의 영화 〈헤어질 결심〉에는 아름다운 책이 한 권 등장한다. 고대 중국의 지리서이자, 극 중 서래(탕웨이 분)가 한국어를 익히는 책 〈산해경〉이다. 중국의 옛 땅을 한글로 옮겨놓은 이 소품은 중국에서 자랐지만 할아버지가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한 서래 개인의 역사를 상징하기도 한다. (책을 가득 채운 한글은 배우 탕웨이가 직접 썼다고.) 산으로도 보이고 바다로도 보이는 책 커버는 서래 집의 벽지와도 동일하며, 극 중 요동치는 캐릭터들의 마음을 표현하는 장치로도 사용되었다. 류성희 감독이 이끄는 미술팀이 디자인한 〈산해경〉은 산에서 바다로 미끄러지는 듯한 내지의 일러스트마저 매혹적이다. 스크린에 잠깐 등장하면서도 한 인물의 세계를 응축해 영화만큼이나 오래도록 잔상을 남긴 소품 디자인을 보여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