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국제영화제의 디자인 이벤트 〈100 Films 100 Posters〉가 올해 8회를 맞이했다. 100명의 디자이너가 디자인하는 100편의 영화 포스터는 서로 다른 매체의 창작자 간 교류를 생성할 뿐 아니라 콘텐츠 변주의 또 다른 가능성을 보여준다. 디자이너가 영화의 시놉시스를 보고 흥미로운 영화 3편을 고르면 큐레이터가 그중 한 가지를 배정하는 방식으로 진행한다. 이번 전시의 큐레이터를 맡은 디자이너 양민영은 “포스터 디자인은 디자이너가 영화를 파악하는 방식과 태도가 드러나는 재가공 작업이다. 디자이너의 기존 작업과 영화의 맥락 사이의 연결성과 균형을 고려했다”라고 말했다. 100편의 포스터 중 일부를 골라 디자이너의 영화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100films100posters.com
〈세 탐정(Via Negativaa)〉
“영화를 연출한 알란 마르틴 세갈은 현대미술계에서도 활동하는 영상 작가다. 그래서인지 몇몇 장면이 영화의 맥락으로부터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듯 보였는데, 그것을 포스터에 활용하기로 했다. 영화의 내용을 이끌어가는 3명의 중심인물과 각 인물과 대구를 이루는 컬러와 상징물이 있다. 내러티브의 요소를 내가 짠 구조 안에 다시 배치시키면서 디자이너로서의 역할과 의지를 드러내고자 했다. 디자인에 앞서 감독에게 여러 질문이 담긴 메일을 보냈는데 작업이 끝나고 나서야 답변을 받게 되었다. 감독의 의도를 텍스트로 읽은 후 완성된 포스터를 다시 보는 것도 흥미로웠다.”
디자인 윤현학 tedhyoon
〈기쁜 우리 젊은 날(Our Joyful Young Days)〉
“1980년대의 서울이 보고 싶어서 고른 영화다. 영화는 레터링이 매력적인 타이틀로 시작하는데 포스터의 아이디어도 여기서부터 출발했다. 30여 년 전의 레터링은 자음과 모음에서 획을 길게 뽑아내 곡선미를 극대화했다. 한글과 함께 배치할 때 영문 역시 스와시swash를 길게 내어 곡선을 강조하며 최근 몇 년 사이 다시 유행하는 활자 조판 방식, y가 o를 감싸는 것처럼 활자가 다른 활자를 감싸는 방식을 활용했다. 반짝이는 심벌까지 합성해 완성한 레터링을 패턴처럼 배치하고 보니 약간 촌스러운 옛날 벽지 느낌도 나고, 작은 모바일에서도 잘 보이도록 디자인하는 인스타그램 시대에 걸맞지 않는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이미 레터링에 많은 이야기를 담았기에 영화의 스틸컷은 블러 처리하여 배경 요소로 활용했다. 기법보다는 레터링과 패턴, 배경의 조합을 눈여겨봐주길 바란다.”
디자인 이재진 www_jae_ee
〈천안문의 망명자들(The Exiles)〉
“천안문 사건으로 추방되었던 반체제 인사 3인을 다시 찾아보는 다큐멘터리다. 인터뷰 형식으로, 감독 크리스틴 초이Christine Choy가 1989년 당시를 기록한 필름과 복원본이 번갈아가며 등장한다. 검은 필름 프레임이 중간중간 나타나는 것을 포스터에 차용했다. 관람 후 역사가 개인의 삶으로 전달될 때 느껴지는 전율에 한동안 압도되었다. 포스터에 여러 요소를 담았지만 영화를 보며 느낀 정의감, 두려움, 약간의 부끄러움 등 뒤섞이는 감정의 울렁임을 전체적으로 그려봤다. 저항과 기록이라는 영화의 맥락을 염두에 두고 서체는 스텐실 작업을 한 후 스캔하여 삽입했다.”
디자인 신동철 robineggpie
〈그대라는 기억(The Memory of You)〉
“이 다큐멘터리는 환자와 간병인에서 환자와 환자로 변하는 과정을 일정한 거리를 두고 관찰한 작품이다. 감독이 이야기에 접근하는 방법이 내가 디자이너로서 관계를 다양한 시선에서 바라보기 위해 살짝 거리를 두고자 하는 접근 방법이 닮아 있었다. 의사가 MRI 사진 속 뇌의 검은 빈 공간을 치매에 비유하는 장면이 특히 인상 깊었다. 여러 장의 뇌 MRI 이미지와 타이포그래피를 모호하게 뒤섞기로 했다. 서서히 희미해지고 사라지는 기억을 시각화한 것이다.”
디자인 이정은 jungeun__lee
〈식물수집가(Herbaria)〉
“영화는 식물을 수집하고 보존하여 정보값으로 변환하는 과정과 영화 필름의 제작 공정을 교차해 보여주었다. 감독이 영화박물관의 창립자이고 다윈식물연구소의 창립자와 가족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이야기다. ‘삼차원의 물질을 압착해 이차원의 이미지 기록으로 남긴다’는 지점은 나에게도 흥미로웠는데 3D 모델링에서 이미지로 렌더링되는 순간과 닮았기 때문이다. 포스터의 주인공 ‘어떤 식물’은 모델을 조형하는 과정에서 식물을 판단하는 인간의 시선을 최대한 배제했다.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식물수집가’가 해야 하는 일과는 완전히 반대되는 작업이다. 식물이라는 힌트가 될 수 있는 줄기의 원기둥을 삭제하고, 불규칙적으로 구부러진 면적을 규칙적으로 반복시켰다. 알고리즘으로 구성한 이미지 기반의 데이터를 매핑해 표면의 굴곡을 마무리하고,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모든 글리치는 그대로 두었다. 어떤 식물이 보이나?”
디자인 김을지로 uljir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