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에 알파고가 있다면 패션에는 틸다가 있다? 지난 2월 뉴욕에서 2년 만에 다시 열린 패션위크에서 최초의 AI 아티스트이자 디자이너 틸다가 화려한 데뷔 무대를 가졌다.
AI 디자이너 틸다와 협업한 그리디어스의 F/W 컬렉션.
뉴욕 패션위크 런웨이에 함께 선 박윤희 디자이너와 최초의 AI 디자이너 틸다.
백스테이지 풍경
비욘세, 패리스 힐턴, 메이 머스크 등 해외 셀러브러티들에게 사랑받는 디자이너 박윤희가 최근 뉴욕에서 특별한 컬렉션을 선보였다. 바로 최초의 AI 디자이너 틸다Tilda와 협업해 꾸민 이색적인 무대가 그것. 색다른 경험, 색다른 파트너, 색다른 컬렉션에 대해 디자이너 박윤희와 나눈 일문일답.
본인, 그리고 처음으로 데뷔한 AI 디자이너이자 이번 컬렉션의 파트너인 틸다에 대해 소개해달라.
나는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패션 디자이너로 2009년부터 레이블 ‘그리디어스Greedilous’를 이끌고 있다. 자신의 분야에서 전문적인 커리어를 개척해가는 20~40대 여성을 위한 믹스 매치 스타일을 추구한다. 이번 뉴욕 패션위크에서 데뷔한 틸다는 그리디어스와 협업한 AI 아티스트다. ESG(환경, 사회, 지배 구조)의 환경 가치를 힙하고 트렌디한 문화로 소비하는 Z세대를 대변한다. 그녀의 철학을 담은 일종의 예술 작품이 Z세대에게 어필하는 패션의 수단을 통해 공개된 것이라고 설명할 수 있을 듯하다.
AI 아티스트 틸다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준다면? 어떻게 틸다와 협업하게 되었는지도 궁금하다.
틸다는 초거대 AI 엑사원Exaone을 탑재한 AI 아티스트다. LG AI 연구원에서 개발한 엑사원은 국내 최대인 3000억 개의 파라미터를 보유하고 있는 초거대 AI로 ‘Expert AI for veryone’의 줄임말, 즉 ‘인간을 위한 전문가 AI’를 의미한다. 언어뿐 아니라 이미지, 영상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의사소통과 관련된 다양한 정보를 습득하고 다루는 ‘멀티모댈러티multi-modality’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데이터를 습득하고 이해하는 수준을 넘어서 추론을 하고, 시각과 청각 등 다양한 감각 영역을 넘나드는 창조적 생성이 가능하다. 바로 이 AI를 탑재한 틸다가 뉴욕 패션위크에서 자신만의 예술적 감각을 펼쳐 보인 것이다.패션 디자이너라면 늘 새로운 것에 도전해야 한다. AI와의 협업은 패션업계에 25년간 몸담은 내게 너무나 신선한 자극이었다. 메타버스에 존재하는 틸다와의 만남을 그녀만이 가지고 있는 기술과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감정이 서로 교감할 수 있는 기회로 여겼고, 설렘과 기대를 안고 협업을 진행했다.
AI와 사람처럼 대화할 수 없었을 텐데 어떠한 방식으로 상호작용했나?
내가 원하는 키워드를 틸다에 입력하면, 틸다에 탑재된엑사원이 구동하면서 관련된 이미지를 생성하고, 그것을 다시패턴화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틸다가 만들어낸 그림의 일부를 확장해 소재에 프린트하기도 했고, 틸다의 그림에 그리디어스의 상상력을 더해 콜라주 형식으로 표현한 다음 하나의 작품 처럼 의상에 적용하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무척 흥분되는 경험이었다.
우주를 연상시키는 패션쇼 무대가 인상적이었다. 컬렉션의 전반적인 콘셉트는?
‘금성에서 피어나는 꽃Flowers on Venus’이 주제다. 지구온난화가 극대화된 모습을 상징하는 금성을 배경으로 설정했다. 표면 온도가 450℃가 넘고 이산화탄소가 가득한 금성을 뉴욕 런웨이로 옮겨왔다. 금성의 붉은 대기는 조명으로 붉게 표현하고, 이산화탄소는 스모그로 연출했다. 틸다의 작품을 미디어월을 통해 노출하면서 이것이 곧 패션이 되는 모습을 형상화했다. 나는 틸다에게 자연을 닮고 사람의 감성을 담은 일종의 우주복을 선물하고 싶었다. 그래서 전체적인 컬렉션에 볼륨과 움직임을 가미하며 부드럽고 화사한 느낌의 테크 웨어, 라운지 웨어 등을 디자인했고, MZ세대가 지향하는 모던 캐주얼에 가깝게 스타일링해 경쾌하게 전개했다. 또한 일부는 ‘책임감 있는 패션’의 일환으로 재활용 폴리 원단에 패턴을 프린팅해 컬렉션에 고유의 색깔을 담았다.
틸다의 그림에 그리디어스의 상상력을 결합한 개성 있는 프린트가 돋보인다.
틸다에게 자연을 닮고 사람의 감성을 담은 일종의 우주복을 선물하고 싶은 마음을 담아 디자인했다.
(왼쪽) 틸다에게 자연을 닮고 사람의 감성을 담은 일종의 우주복을 선물하고 싶은 마음을 담아 디자인했다.
(오른쪽) 박윤희 디자이너가 가장 마음에 드는 피스로 꼽은 런웨이 오프닝 룩. 틸다가 생성한 이미지를 패턴화해 의상에 적용했다.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드는 룩은? 작업 시간이 가장 오래 걸린 아이템이나 전혀 예상치 않게 탄생한 아이템 등 컬렉션에 얽힌 뒷이야기를 들려달라.
틸다의 콘셉트를 가장 잘 보여주는 옷차림이 오프닝에 등장한 룩이라 생각해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든다. 이번 프로젝트는 3주 만에 모든 컬렉션을 마무리하고 뉴욕으로 출국하는 일정이라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특히 다른 의상에 비해 3배 정도 복잡한 공정을 거쳐야 하는 다운 점퍼 작업이 만만치 않았는데, 다운 소재의 우주복 느낌으로 틸다의 예술 작품을 표현하고 싶어 과감하게 강행했다. 쇼에서 30여 명의 모델에게 틸다의 가발을 씌우는 작업 역시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좀 더 임팩트 있는 컬렉션을 완성할 수 있었던 것 같아 만족스럽다.
향후 틸다와 또 다른 협업 계획이 있나? AI 디자이너인 틸다 역시 계속 업그레이드되며 컬렉션을 선보일지 궁금하다.
이번 시즌 틸다와 협업해 컬렉션을 진행하면서 MZ세대를 공략하는 새로운 메타버스 브랜드를 론칭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패션계의 메타버스라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고 이를 통해 얻는 수익은 다시 기부하는 형태로 현실 세계로 돌아오게 해 패션 부문에서 인간과 AI가 상생하는 세상을 만들어보고 싶다.
많은 사람이 다양한 부문의 작업을 AI가 대체하는 것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지니고 있는 것 같다. 패션 디자이너로서 패션 업계에서의 향후 AI의 향방에 대해 어떻게 예측하는가?
패션업계도 시간과 예산을 들여 다양한 영역의 데이터를 확보하고 분석한다. 각 브랜드의 아이덴티티에 맞는 바이어 매칭, 트렌드 자료 수집과 분석 등 오랜 시간이 소요되는 작업을 AI가 빠르게 대신하고, 디자이너는 분석된 자료를 활용해 더욱 심도 깊은 작업에 집중한다면 ‘대체’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공존과 협업의 관계로 남을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