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초반 두각을 나타낸 헤비메탈 밴드는 블랙 사바스, 레드 제플린, 아이언 메이든, AC/DC 등 음산한 1970년대 메탈 밴드들과는 다른 길을 갔다. 당시 영국에서 미국 동서부로 유입된 펑크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이들은 전 세대의 히피 문화와 저항의 분위기를 등에 업고 사춘기에 접어든 10대들에게 더없이 좋은 핑계가 되어주었다. 부모와 교사부터 정치인, 종교인까지 기성세대에 반기를 들 수 있는 노래였기 때문. 기타와 드럼은 더 크고 더 시끄럽게 연주했고, 가사는 거칠고 불쾌하게 썼으며, 길고 헝클어진 머리와 찢어진 바지 등 밴드 멤버들의 스타일링에서도 당시 기득권에 대한 저항을 가감 없이 드러냈다. 앨범 표지 또한 온갖 괴물과 사탄을 묘사해 기존의 미학에 반대되는 디자인을 내세웠다.
물론 앞서 언급한 1970년대 밴드들도 악마를 숭배한다는 느낌을 은근히 풍겼지만 헤비메탈 밴드들은 한발 더 나아가 사탄을 영웅시했다. 당연히 기독교 단체들의 대대적인 불매운동이 이어졌고, 일부 뮤지션은 마약·알코올 중독, 청소년 자살을 조장한다는 혐의로 청문회에 세워지면서 헤비메탈은 위협적인 음악의 수괴가 되었다. 그러나 이는 오히려 장르 마니아를 더 많이 생성하는 반작용을 불러일으켰고 덩달아 밴드 수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폭주하는 기타 리프, 사탄과 광기를 나타내는 이미지는 뚜렷하고 확실해서 헤비메탈이 정점을 찍을 즈음인 1988년 전후에는 밴드 멤버들조차도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로 서로 비슷한 스타일을 추구했다.
밴드의 무대 분장(분장-민낯) 정도를 수평축으로, 음악의 강도를 수직축으로 나타낸 왼쪽 표(그림 1)만 보아도 ‘헤비메탈 밴드 스타일’이란 중간없이 극단적으로 귀퉁이에 몰린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모든 대중음악을 이와 같이 그래프화할 수야 있겠지만 이런 식의 분포도는 메탈이 가진 특성을 명확히 드러낸다. 그런데 대표 밴드를 모아 정리하니 새로운 면이 보였다. 각 밴드의 음악 및 연출 특징과 로고 사이의 상관관계가 드러난 것이다.
(그림2) 상단 좌측의 밴드들은 음악보다 스타일에 치중하지만 그래도 개성 있는 로고들에서 다양성을 발견할 수 있다. 그 우측의 비교적 ‘말랑’한 본조비, 유럽, 익스트림은 로고로 ‘메탈 밴드’임을 알리지 못했다면 자칫 팝송으로 오해받을 수 있는 집단이다. 그에 비해 하단에 분포한 밴드들은 공격적인 음악 성향만큼이나 각지고 뾰족한 로고를 자랑한다. 메탈 중에서도 하위 장르인 스피드 메탈과 데스 메탈 밴드들이 주로 여기에 머무르고, 그중에서도 가장 매니악한 메탈인 블랙 메탈, 둠 메탈 등의 밴드들은 그 중에서도 좌측에 몰려있다. 이 하단 좌측의 밴드들은 공연 때마다 분장으로 관중을 까무러치게 해야 했고, 연주 또한 ‘죽도록’ 열심히 해야 했다. 빠르고 센 연주로 흐른 땀이 아마도 하얀 분칠 위로 피처럼 보였으리라. 이 하단부 밴드 로고 디자인의 공통점은 우거진 나뭇가지와 줄기로, 어두운 숲속에서 맞닥뜨리는, 마치 저승의 공포와도 같은 분위기를 지녔다. 음악의 연대기를 죽 살펴보아도 단연 독창적인 스타일을 추구했던 메탈은 죽음을 신봉하고, 파괴, 멸망, 몰락을 기도했던 ‘사탄주의자들을 낳았다. 그러나 세월이 지남에 따라 점차 데뷔 시절에 비해 음악이 약해지기도 하고(메탈리카), 덧칠 메이크업으로 괴기스럽던 분장 또한 ‘아재 민낯’을 드러내며(앨리스 쿠퍼, 키스) 팬들에게조차 괄시를 당하기도 했다.
‘집단 자살’을 외치던 그들이 비교적 건강하고 평온한 노년을 보내며 ‘본질’없는 음악 활동을 이어나가는 모습은 메탈의 전성기에 그토록 혐오하던 기득권의 모습을 영락없이 닮았다. 이런 것을 보면 오히려 팬데믹이나 기후변화 등 종말론이 실현될 것 같은 현실의 문제에 비해 헤비메탈은 오히려 향수에 젖게 만들며 심신을 안정시키는 쪽에 가깝다. 특히 밴드들의 로고는 뉴트로 10대 헤드뱅어들의 티셔츠에서도 볼 수 있고 레트로를 트렌드로 받아들여 LP와 카세트테이프를 듣는 20~30대, 지금도 눈감고 메탈리카나 앤스랙스, 슬레이어의 로고를 그릴 수 있는 40~50대에게 여전히 즐거움을 주고 있다. Rock on!
MoR(Master of Reality)
블랙 사바스에서 만나 화이트 라이온에서 갈라진 록·메탈광들이다. 그래픽 디자이너 황규철과 디자인 저술가 박경식이 결성한 프로젝트 동아리. 두 사람은 서울, 인천, 경기, 오사카, 교토, 도쿄, 토론토, LA, 베를린까지 바이널을 디깅하면서 나눈 음악과 디자인에 대한 이야기를 독자들과 공유하고자 한다.
* 유튜브에서 MoR(엠오알)을 검색하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