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브젝트×프로젝트(2021)에서 선보인 폴리 램프.
김지선 대학교에서 인테리어 디자인을 전공한 후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활동하던 중 영국 런던 킹스턴 대학교에서 제품 디자인과 가구 디자인으로 석사 과정을 마치고 현재는 1인 스튜디오 ‘라운드’를 운영하고 있다. 렉서스 크리에이티브 마스터스 2021 위너로 선정되어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으며 서울리빙디자인페어(2021), 오브젝트×프로젝트(2021) 등 다양한 전시에서 독특한 소재를 활용한 공예품으로 주목받고 있다.
용산경찰서와 용산역 사이 어느 좁은 주택가 골목. 이곳에 자리한 작은 작업실에서 김지선 작가는 버려진 비닐로 새로운 물성을 지닌 공예품을 만든다. “솔직히 ‘작품’이라는 말은 아직 제게 낯설어요. ‘제품’이라는 말이 더 익숙하죠.” 본래 인테리어 디자이너였던 그이지만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디자인을 찾고자 영국 유학길에 올랐다. 공간 설계 도면을 보는 일보다 손으로 직접 무언가를 만드는 디자인에 도전하고 싶었던 것. 이런 욕구는 영국 런던 킹스턴 대학교에서 제품 디자인을 공부하면서 더욱 강해졌다. 수작업의 즐거움은 디자인과 공예의 경계를 넘나드는 작품 활동으로 이어졌다. 특히 그의 관심을 끈 것은 소재였다. 인테리어 디자이너 시절부터 신소재에 매력을 느껴온 그는 다양한 재료를 발굴하고 실험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의자 형태로 직조한 그물망 안에 우레탄폼을 부어 만드는 ‘폼 체어Foam Chair’가 탄생했다. 익숙한 형태의 사물에 독특한 소재를 접목해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는 시도가 본격적으로 드러난 작품이다.
이케아에서 제공받은 비닐로 제작한 길트 프리.
의자 형상으로 고정한 그물망에 우레탄 폼을 부어 만든 폼 체어.
2021 렉서스 크리에이티브 마스터즈에 출품한 폴리 베이스 시리즈.
귀국 후 김지선 작가가 새롭게 주목한 재료는 버려진 비닐봉지였다. 영국 유학 중 지속 가능한 공예품의 아름다움을 알게 된 그는 다양한 소재로 실험을 거듭하던 중 비닐에 열을 가하면 표면에 마치 혈관 같은 형태가 나타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지극히 인공적인 소재에서 자연에서 느낄 법한 감성을 찾아낸 것이다. 다양한 색을 조합하는 과정에서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는 점도 비닐봉지만의 장점이다. ‘폴리 베이스Poly Vase’, ‘폴리 램프Poly Lamp’ 등 독창적인 물성을 지닌 재료로 만든 작품은 지금까지 본 적 없는 질감과 양감으로 새로운 공예 작가의 등장을 알렸다. 이 작품들은 지난해 개최된 렉서스 크리에이티브 마스터스 2021에서 200여 명의 지원자 가운데 김지선 작가가 최종 4인에 선정되는 데 큰 공헌을 했다. 당시 ‘비저너리Visionary’라는 어워드 주제는 유일무이한 소재를 통해 지속 가능성을 표현해 온 김지선 작가의 작품에 제대로 부합했다.
다양한 색의 비닐 봉지를 사용한 댄싱 베이스.
라운드 베이스.
김지선 작가만의 작품 기법을 활용해 진행한 IWC 빅 파일럿 바의 벽면 마감재 작업. ©최용준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경력을 시작해 현재 공예 작가로 활동하는 김지선 작가. 그에게 둘 사이의 경계는 그다지 의미가 없다. “저는 스스로를 ‘디자이너이자 메이커’라고 규정합니다. 상황에 따라 제 정체성을 카멜레온처럼 바꾸며 디자이너와 공예 작가 사이를 오가고 있어요.” 렉서스 크리에이티브 마스터스 이후에도 김지선 작가는 브랜드와의 협업을 통해 활발히 작업을 이어나가고 있다. 지난 6월에는 IWC에서 세계 최초로 오픈한 공식 매장 ‘IWC 빅 파일럿 바’의 프로젝트에 참여해 자신의 작품 제작 기법을 활용한 벽면 마감재를 제작한 데 이어 올해 7월에는 이케아 측으로부터 더 이상 판매하지 않는 비닐 제품과 재료를 제공받아 ‘길트 프리 프로젝트Guilt Free Project’라는 이름의 트레이를 선보이기도 했다. 이처럼 비닐을 독창적으로 재해석해 이름을 알린 그에게 앞으로 도전하고 싶은 새로운 소재는 무엇일까? 혁신적이고 미래 지향적인 무언가를 기대하던 기자에게 작가는 의외의 대답을 내놓았다. “최근에 대리석으로 작업하면서 새롭게 보이기 시작했어요. 색과 패턴, 가공 방법이 다양해서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이 무궁무진하더군요.” 김지선 작가에게 새로운 소재란 단순히 첨단 기술의 소산만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흔히 쓰던 소재 역시 자신만의 관점으로 재해석해 이전에 본 적 없는 형태와 질감으로 새롭게 태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studio-round.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