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구호라는 이름 석 자는 공예, 디자인, 패션, 공연 분야에서 지명도가 높은 브랜드다. 그의 감각과 디렉션을 신뢰하고 찾는 사람이 많다는 뜻이다. 예민한 감각을 타고난 크리에이터이자 논리적인 결정을 내릴 줄 아는, 균형감을 갖춘 브랜드 컨설턴트이기 때문이다. 올해만 해도 대기업의 패션 브랜드 컨설팅과 공간 기획을 포함해 9개에 이르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그는 한국에서 가장 바쁜 디자이너 중 한 명이다. 하루에 12~18개에 이르는 미팅 스케줄을 소화해낸다는 그는 인터뷰 당일에도 하루 종일 열린 인디에프의 프레젠테이션을 끝낸 뒤 종종걸음으로 맞은편 카페로 건너왔다.
정구호는 최근 화제가 된 리움미술관 재개관 프로젝트를 막 끝내고, 11월 19일부터 21일까지 열리는 2021 공예트렌드페어 총감독으로 순식간에 모드를 전환하는 중이었다. 그의 공예에 대한 조예와 남다른 안목에 대해선 익히 알려져 있으며, 이미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한 바 있다. 평양 반닫이를 모티브로 한 〈백골동〉전이나 국립무용단과 함께한 〈단〉 〈묵향〉 〈향연〉 〈산조〉 〈경합〉 등의 공연을 통해 보여준 전통의 현대적 재해석, 2019 밀라노 디자인 위크 〈수묵의 독백〉전에서 예술감독으로서 보여준 솜씨 등을 떠올려보면 그가 공예트렌드페어 총감독을 맡았다는 사실이 놀랄 일도 아니다.
지금껏 스스로 타이틀을 정해본 적 없다는 그는 자신의 직함이 어떻게 불리든 크게 개의치 않으며, 무엇인가 끊임없이 만들어내고 창조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기꺼이 하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이 인터뷰에서 다양한 영역에서 재주를 부리는 정구호를 어떤 디자이너로 설명할지 고민하다가 이렇게 정해봤다. 공예, 디자인, 패션, 공연 예술을 창작하는 크리에이티브 브랜드.
정구호 파슨스 디자인 스쿨에서 커뮤니케이션 디자인을 공부하고 1997년 한국으로 돌아와 여성복 브랜드 구호를 선보였다. 2003년부터 제일모직에 합류해 여성복 디자인을 총괄하면서 르베이지, 데레쿠니, 헥사 바이 구호 뉴욕 컬렉션 등을 론칭했다. 이후 쌈지 대표, 휠라 코리아와 제이에스티나 부사장, 서울패션위크 총감독, 빈폴과 롯데백화점 리뉴얼 프로젝트 등을 진행했다. 현재 리움미술관, 인디에프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맡고 있다. 패션 외에 연극, 영화, 무용 의상 디자인 분야에서도 다양한 작업을 해온 그는 영화 〈정사〉 〈텔미썸딩〉 〈스캔들 조선남녀 상열지사〉 〈황진이〉 등의 아트 디렉터를 맡았다. 또 국립발레단의 〈포이즈〉를 시작으로 국립무용단과 함께〈단〉 〈묵향〉 〈향연〉 〈산조〉 〈경합〉을 창작하며 연출가로도 활동 중이다.
요즘엔 어떻게 지내시나요? 공예트렌드페어 총감독을 비롯해 몇 가지 프로젝트를 진행 중입니다.
최근까지 9개 프로젝트를 진행했는데, 리움미술관 재개관이 끝나면서 이제 5개가 남았어요. 공예트렌드페어, 호텔, 패션 브랜드 2개와 코즈메틱 관련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중이에요. 내년까지 호암미술관 레노베이션도 해야 하고 인디에프의 브랜드 컬렉션, 그리고 공연도 하나 준비 중입니다.
예전부터 혼자 일하신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여전히 그런가요?
다들 스태프가 엄청 많은 줄 아시는데, 혼자 일해요. 평생 메모를 한 적이 없을 정도로 기억력이 좋은 편인데, 일정이 많아지면서 스케줄 관리를 도와주는 재택근무 직원 한 명만 두었어요. 어차피 일하러 가는 곳마다 사무실이 있어서 따로 사무실이 있을 필요도 없어요. 노트북이 곧 사무실이죠.
여러 프로젝트를 동시에 진행하니까 늘 바쁘시죠. 정말 모든 일을 혼자 하시는 건가요?
이제는 후배를 키워야 하지 않겠느냐는 분들도 있는데, 전 이미 가는 곳마다 실장들을 키우고 있어요. 어시스트를 둬보니까 설명하고 수정하는 과정이 제게는 두 배로 더 힘들었어요. 혼자 생각하고 혼자 하는 게 더 낫더라고요. 지금까지 PT 자료를 누구에게 부탁해본 적이 없어요. 도면이나 캐드 등 전문 작업이 필요한 부분만 따로 맡깁니다. 혼자 하는 게 오히려 신속해요. 내 책임이니 남 탓할 것도 없고. 남들과 일하는 걸 싫어하는 게 아니라, 사무실에 나가면 수백 명과 함께 일하지만 초기의 아이디어 디벨롭은 혼자 할 수밖에 없어요. 머릿속에서 해결되지 않으면 회의 안 해요. 그래서 저는 회의할 때 디렉션이 명확해요. 일단 답을 찾고 회의에 들어가지만, 나보다 더 좋은 답을 갖고 있는 사람이 있을 수 있으니까 들어는 봅니다.(웃음) 하지만 그날 어떤 결정을 할지는 이미 생각하고 가죠. 그렇게 움직이는 게 더 효율적이에요.
컨설팅을 의뢰하고 디렉터로 모신다는 건, 사실 정구호의 의견을 듣고 싶기 때문이겠죠.
하루에 12개에서 많으면 18개의 미팅을 하는데, 그 모든 게 결정을 하는 일이에요. 결정을 빨리빨리 해야 진도가 나가요. 결정을 잘하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스터디가 되어 있어야 하죠. 답을 주는 미팅이어야 하고, 솔루션이 부족하면 네이밍이나 디자인도 함께 합니다. 제가 하는 일은 컨설팅이니까요.
결정과 정리가 빠르시군요. 그래도 종류가 다른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하다 보면 머릿속이 여간 복잡하지 않을까 싶어요.
어릴 때부터 일을 많이 하는 게 버릇이 되어서 그런지 이 회사에서 다른 회사로 넘어가는 순간 자동으로 차단이 돼요. 모든 일정이 끝나고 나면 집에 가서 정리를 하죠. 또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하는 게 도움이 되기도 해요. 서로 다른 일이 아이디어와 리서치에 도움을 줍니다. 한 가지 일에 대해서만 골똘히 솔루션을 찾으려는 것이 오히려 스트레스라서요. 비워내고 또 다른 일을 하면서 영감을 얻고, 이런 걸 반복하며 일의 진도가 나가기도 해요.
도대체 언제 퇴근하고 쉬세요?
잠을 좋아하지만 잘 안 자는 편이에요. 어차피 죽으면 오래 잘 거니까요.(웃음) 밤 12시까지 계속 일하다가 그다음이 자유 시간이에요. 잠자기 전까지 2~3시간 영화 보고 서핑하고 TV를 보는 등 온전히 하고 싶은 일을 합니다. 그리고 아침 7시에는 반드시 일어나요. 사무실에 나갈 때도 30분 늦게 출근하고 30분 먼저 퇴근하는 편이에요. 일하는 사람들이 제 눈치를 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서요. 저는 마감만 맞추면 어디에서 뭘 하든 아무 문제 없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오래전부터 공예에 대한 관심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공예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어렸을 때부터 만드는 것을 좋아했어요. 저 어릴 때는 TV에서 바느질과 매듭짓는 법을 알려주는 교양 프로그램이 많았는데 그걸 보면서 따라 하곤 했어요. 미국 유학 시절에 오히려 더 우리 공예에 관심을 갖고 좋아하게 되었고, 귀국하자마자 열심히 공예를 찾아다니면서 봤죠.
올해로 16회를 맞는 공예트렌드페어 총감독을 맡았습니다. 2019 밀라노 디자인 위크에서 열린 2019 한국 공예의 법고창신 〈수묵의 독백〉전 예술감독을 비롯해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과는 이미 일을 함께 한 경험이 있습니다.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에서 좋은 제안을 주셨지만, 공예트렌드페어는 책임감이 큰 일이라 고민을 좀 했습니다. 마침 제가 리움미술관의 뮤지엄 숍을 공예 작가 중심으로 재정비하던 중이어서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하면 시너지를 낼 수 있겠다는 판단이 들어 욕심을 냈습니다.
주제가 ‘형형색색形形色色’입니다. 어떤 기준으로 작가를 선정하고 준비 중인지 들려주신다면?
다양한 배경과 경력을 가진 공예 작가들이 만들어내는 다양한 재료, 형태, 기법, 색감을 가진 작품의 향연을 보여줄 예정입니다. 70여 명 작가들의 오브제를 보여주는 쇼케이스죠. 최근 들어 공예와 디자인, 순수 미술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활용도가 강조됐던 공예 역시 오브제로서의 가치가 높아지는 추세예요. 미술관과 갤러리 역시 공예와 순수 미술을 분리하지 않고 예술품으로서 공예의 가치를 인정하고 있습니다. 이런 경향에 걸맞게 공예를 아트 오브제로 바라보는 기획으로 공예, 디자인, 순수 미술의 경계를 넘나드는 분들을 모셨습니다. 공예트렌드페어가 글로벌 행사로 성장하려면 우리 것을 지켜나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해외의 트렌드도 받아들이면서 배워야 한다고 봅니다. 한 광장에서 함께 전시하면서 서로에게 영향을 줄 수 있어야죠.
리움미술관. 정구호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맡아 로고부터 작품 설치, 공간, 뮤지엄 숍까지 레노베이션했다. 특히 공예 작가들의 쇼케이스로 뮤지엄 숍을 개편해 화제를 모았다.
어떤 작품들이 나올지 궁금하네요. 전시 디자인도 직접 진행하시죠?
전통 공예부터 새로운 실험적인 시도, 조각으로 인정받는 작품까지 나옵니다. 대학을 갓 졸업한 20대 젊은 작가부터 인간문화재까지 다양한 분들의 작업을 60×20m에 이르는 광장에 설치할 거예요. 또 좌대가 놓인 광장 바닥을 안 볼 수가 없을 겁니다. 중앙역처럼 전시장 어디에서도 거쳐 가지 않을 수 없도록 했어요. 공간이 넓다 보니 조명을 설치하기 어려워서 좌대 자체가 라이트 박스가 되어 발광하도록 했습니다. 마지막에는 작품의 배치가 관건이에요. 모든 작품을 받고 마지막 일주일간 밤을 새우면서 고민해야겠죠.
밀라노 디자인 위크의 〈수묵의 독백〉 전시에서도 느꼈는데, 신 자체가 하나의 오브제이자 작품으로 느껴집니다. 전시장이 연출하는 이미지가 완벽하고 아름답습니다. 공간 장악력도 대단하고요.
개별 작품 하나하나의 커뮤니케이션도 있지만, 공간이 주는 커뮤니케이션이 따로 있잖아요. 작품 하나하나가 다 중요하지만, 주제로서의 덩어리감도 중요합니다. 전시 자체가 하나의 쇼케이스로서 트렌드를 제안할 수 있어야 하고요. 이를 위해 통일감을 준 거죠.
올해 공예트렌드페어 포스터와 키 비주얼을 신신과 함께 작업했습니다.
비주얼적 측면의 통일감과 형형색색이라는 아이덴티티를 잘 만들어줄 팀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또 주제관을 위한 포켓북도 함께 만들었어요. 참여 작가들의 정보와 콘택트 포인트 등을 정리한 책자인데, 광장 바닥 컬러와 맞췄어요. 기대하세요.(웃음)
장석장들과 함께 작품을 제작한 〈백골동〉전도 벌써 3회째 열렸습니다.
최고의 기술과 솜씨를 가진 장석장들이 작품을 대중적으로 선보일 기회가 많지 않잖아요. 반면 플라스틱의 일종인 ‘플렉시 글라스’라는 소재는 끊임없이 만들어지고 버려지지만 가치가 별로 없어요. 하지만 플라스틱과 장석이 만나면, 플라스틱은 장석만큼의 가치를 갖고 장석은 플라스틱과 함께 새로운 용도를 얻게 되잖아요. 이렇게 상호 보완적인 가치를 만드는 게 전시의 기본 콘셉트였어요. 또 가구가 아니라 오브제로서 반닫이를 제안하고 싶었어요. 가구는 쓰다 버릴 수도 있지만 오브제는 보관하는 거잖아요. 앞으로도 계속해서 플라스틱 같은 맨메이드 소재가 나올 텐데, 인공적인 재료라고 가치가 없다고 하는 것은 말이 안 되죠. 시대에 따라 소재의 가치도 변화하는 것 아닐까요?
백골동(白骨銅) 조선 반닫이와 장. 지난해 12월 9일부터 올해 1월 9일까지 조은숙 아트앤라이프스타일 갤러리에서 열린 세 번째 개인전. 플라스틱의 일종인 플렉시 글라스에 백동으로 만든 경첩, 들쇠, 감잡이, 귀장식 등 전통 장석을 더해 특별한 오브제로 완성했다.
2021 공예트렌드페어 포스터. 한국의 공예품과 공예트렌드페어 작가들의 작품에서 형태를 차용하고 부분 혹은 추상적 이미지로 변환했다.
디자인 신신
주최 문화체육관광부
주관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총괄 운영 디자인하우스
얼마 전 리움미술관이 재개관해 화제를 모았습니다. 작품, 공간, 로고까지 다 바꿨는데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서 어떤 역할을 하셨나요?
뮤지엄의 전체 콘셉트를 새로 잡았습니다. 예전에는 리움 하면 명품 전시라는 이미지가 있으면서 대중에게 문턱이 높았어요. 일반 대중에게 친숙한 이미지는 아니라서 개방적인 느낌을 주고자 했습니다. 움직이고 변화하고 있다는 이미지도 보여주고 싶어서 로고도 영국의 울프 올린스Wolff Olins에게 의뢰해 교체했습니다. 런던 올림픽 엠블럼으로 유명하지만 MI도 많이 작업한 곳이죠. 한국의 오디너리피플이 애플리케이션 작업을 맡았고요. 이에 반해 뮤지엄 공간은 장 누벨, 마리오 보타, 렘 콜하스라는 건축가 3명의 이미지와 개성이 확고해서 건드릴 수 있는 여지가 없었습니다. 미학적 완성도가 높은 곳이라 원상 복구하는 데 방점을 두었죠. 뮤지엄 숍이나 카페 등의 간이 시설을 싹 정리해서 건축가의 원래 의도를 잘 살리도록 했고요. 공간 정리에 심혈을 기울였다고 보시면 될 거예요.
고미술품 전시관 중앙에 놓인 도쿠진 요시오카의 유리 벤치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상설 유물 전시관이라 해도 매번 새로운 기획으로 변화해야 한다고 봤어요. 유물을 유물로만 전시하는 게 아니라 콘셉트가 같은 컨템퍼러리를 함께 전시하자는 콘셉트였습니다. 또 국보급이 아니어도 좀 더 편안하게 다가갈 수 있는 유물을 활용해서 재미있는 디스플레이를 시도해봤어요. 청자 그릇을 그대로 보여주기보다는 공중에 띄워서 연출했죠. 그랬더니 순식간에 포토존이 되었어요. 저는 이런 식으로 유물의 가치보다는 예술 정신을 공유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봐요.
공예가의 작품을 전시한 뮤지엄 숍이 화제입니다.
27명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하는 쇼케이스로 구성했습니다. 다양한 전시와 이벤트도 기획하는 등 숍의 기능을 많이 키웠어요. 지금까지 뮤지엄 숍 하면 로고가 들어간 기념품이나 고미술품의 레플리카 등이 떠올랐잖아요? 물론 리움미술관의 개별 전시를 위한 상품 개발도 필요하지만 이를 최소화하고 리움미술관의 지향점을 고려해 숍 역시 작가주의 작품을 셀렉션하는 게 맞다고 봤어요. 뮤지엄 숍 그 자체로 별도의 전시이자 리움미술관의 새로운 브랜드로 공예를 프로모션하는 역할까지 하고 있습니다. 매출이 하루에 600만 원을 넘기는 등 매일 기록을 세우고 있어요. 별도의 온라인 사이트를 운영할 예정입니다.
공예는 손의 노동과 장인 정신의 가치를 강조하는데, 저는 이것이 오히려 공예의 진화와 영역 확장을 제한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손의 노동이든 기계의 노동이든 상관없다고 봐요. 예전에는 도자기를 만들 때 물레를 사용했어요. 다만 이제는 물레보다 더 발전한 기계가 나와서 더욱 디테일한 표현이 가능해졌습니다. 오랫동안 공예는 장인 정신으로 직접 만드는 웰메이드의 가치를 중요하게 여겼지만 지금은 아이디어가 더욱 중요해졌어요. 앤디 워홀의 팩토리나 데이미언 허스트처럼 아티스트가 아이디어를 내고 그걸 만드는 사람이 따로 있는 경우도 있잖아요. 처음부터 끝까지 직접 만드는 장인 정신도 중요하지만 작가의 철학도 중요한 시대예요. 장인 정신이 중요하지 않다는 게 아니라, 그게 다는 아니라는 뜻입니다. 여전히 누군가는 한땀 한땀의 가치를 귀하게 여기고, 또 어떤 사람은 아이디어와 협업자를 통해 이를 실현하는 걸 중요하게 여길 수 있어요. 하지만 기계가 만들었다고 해서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니에요. 예전에는 공장이 없으니 개인이 직접 필요한 것을 만들 수밖에 없었고, 그러다 보니 솜씨 좋은 사람이 물건을 잘 만들 수밖에 없잖아요. 요즘은 아이디어와 기술을 분리할 수 있기 때문에 콘셉추얼한 아이디어의 작업을 직접 하지 않아도 실현할 수 있어요. 저는 이런 융복합도 공예라고 생각합니다. 시대에 맞게 공예의 정의도 바뀌어야죠.
2019 밀라노 디자인 위크에서 열린 2019 한국 공예의 법고창신 〈수묵의 독백〉전. 예술감독을 맡은 정구호는 투명한 사방탁자를 책가도처럼 연이어 배치하고 사방탁자의 각 칸에 작품을 디스플레이해 그 자체로 빼어난 작품을 만들었다. 여러 작품을 보여주었지만 산만하지 않고 일체감이 느껴지는 강력한 연출로 전시명에 걸맞은 한 편의 동양화라는 평가를 받았다.
공예의 정의와 영역을 따지기보다는 기술과 문화에 발맞춘 동시대 작가들의 결과물과 제안이 가리키는 방향을 살피는 것이 진화된 의미의 공예가 아닐까 싶네요.
지금 높은 가치를 인정받는 백자와 청자도 고려 시대, 조선 시대에는 도공들이 다량 생산한 공산품이었어요. 헤리티지가 있는 물건은 그 나라의 정신을 담고 있어 중요합니다. 하지만 문화를 넘나들며 만들어지는 새로운 오브제 역시 현대적 의미의 유물이 될 수 있다고 봐요. 메타버스 시대에는 나라의 경계도 제약도 없어집니다. 지역적인 경계보다는 어떤 철학을 갖고 만들었는지를 더욱 따지게 되겠죠. 커다란 의미의 공예는 문화와 경계를 뛰어넘는 것 아닐까 싶어요. 우리의 죽공예 장인이 아프리카의 위빙 기법을 배워서 작업한다면, 그 역시 글로벌 정신으로 만든 공예 아닐까요?
최근 공예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고 있으며 대중적인 인기 역시 높아지고 있습니다.
공예의 인기는 생활수준에 비례합니다. 의식주 순으로 생활수준이 높아지면서 집 안에서 쓰는 물건 하나하나의 가치를 따지기 시작한 거죠. 공장에서 대량생산으로 찍어낸 물건보다는 단 하나를 갖더라도 애착 가는 물건에 집착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죠.
컬렉터로 유명하신데 어떤 물건을 많이 모았나요?
도자기를 무척 좋아해서 그릇 같은 경우는 단 한 피스도 공장에서 만든 것을 산 적이 없어요. 냉장고에 들어가는 타파웨어 정도 빼고는. 공예 전시나 숍에서 하나하나 사 모았죠. 그래서 집안일을 도와주시는 분이 힘들어해요. 가볍고 편리한 그릇이 아니라 크고 무거운 그릇만 써서. 저는 깨져도 안 버려요. 대학 때부터 모았는데, 집에 공산품이 거의 없어요. 내가 사용하는 모든 물건이 일회용이 아니라 오래도록 사용할 수 있는 의미 있는 프로덕트라면 쉽게 버리지 않을 것이고 대대로 물려주기도 할 거예요. 그래서 재활용이 가능한 소재를 사용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오래 쓸 수 있는 좋은 물건을 잘 고르는 게 더 중요하죠. 이런 것이 지속 가능하고 친환경적인 태도 아닐까요?
요즘에 관심을 갖는 디자이너가 있다면 말씀해주시겠어요?
한두 분을 얘기하면 안 될 거 같은데요.(웃음) 일례로 박원민 작가는 글로벌에서 활동하면서 끊임없이 변화하는 작품을 선보이는데, 올해 공예트렌드페어에 그의 최신작이 나옵니다. 이번에는 플라스틱이 아니라 메탈과 스톤을 사용했어요. 박원민 작가도 〈월페이퍼〉에 실린 기사를 보고 알아서 처음엔 한국인인 줄 몰랐죠. 인스타그램 팔로를 하다가 파리에 갈 일이 있어서 연락해서 만났어요. 좋은 작가와 디자이너를 찾아내고 만나는 일이 너무 즐거워요. 저는 좋은 분을 알게 되면 막 소개하는 스타일이에요. 좋은 작업을 하는 작가는 언제든지 추천해주세요.
패션, 디자인, 예술, 공예, 공연 등 다양한 장르에서 활동하고 계십니다.
여러 장르의 일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제게는 다 똑같아요. 모든 프로세스와 콘셉트, 추구하는 바도 다 같아요. 결과물의 형태만 다를 뿐이죠.
왠지 그런 대답을 하실 것 같았어요.(웃음) 그런데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심지어 혼자 하려면 머릿속에서 정리가 잘되어야 할 것 같아요. 논리적인 분이세요?
MBTI 테스트 같은 걸 해보면 의외로 논리적인 성향으로 나와요. 많은 사람과 일을 하다 보니 협상을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에 대한 구분을 지어요. 어떤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과정은 일정, 사람, 예산 등과 관련한 문제의 연속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모든 일을 예측하고 대안을 고민해서 결정하고 정리하는 능력이 중요해요. 여러 분야의 사람들과 협업하다 보면 다양한 의견과 방향이 섞이기 때문에 핵심을 제외하고 정리해나가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향연饗宴. 원래 ‘연회’라는 이름으로 기획한 것에서 짐작할 수 있듯 한국 춤을 총망라하는 연회 장면으로 구성한 작품이다. 한국 춤의 근간을 이루는 궁중무용, 종교무용, 민속무용이 봄, 여름, 가을, 겨울이라는 사계절 속에서 새롭게 태어난다. 정구호는 연출, 무대, 의상 디자인을 맡아 현대적인 방식으로 전통을 보여주었다.
정구호라는 이름 자체가 크리에이티브한 브랜드이긴 합니다만, 그래도 스스로를 뭐 하는 사람이라고 설명하고 싶으세요?
중학교 동창으로 저랑 친한 친구가 지금도 늘 하는 말이 “너 도대체 뭐가 되려고 그러니”예요.(웃음) 그런데 저는 뭐가 되려고 하거나 기준을 정해본 적이 없어요. 공예전 감독, 프로덕션 디자이너, 디렉터 등 제가 가진 다양한 직함도 같이 일하는 분들이 붙여준 것이지 제가 스스로 붙인 게 아니에요. 제 입으로 직함을 말해본 적이 없고, 정구호가 어떻게 불리거나 무엇을 하는지도 중요하지 않아요. 다만 끊임없이 무언가를 창조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그게 어떤 장르든 내가 조금이라도 영향을 주고 기여할 수 있는 일이라면 하고 싶어요. 제게는 무엇인가를 만들어내고 창조하는 것이 가장 중요해요.
이리 말씀하시는데도 계속해서, 심지어 새로운 분야의 일이 들어오는 이유가 대체 뭘까요?
저와 함께 일하고 싶어 하시는 분들은 제 결과물을 통해 가능성을 보시는 것 같습니다. 제가 먼저 공예 감독이나 무용 연출을 해보겠다고 제안해본 적도 없고요, 제가 먼저 제안하지 않는다는 게 원칙이에요. 먼저 제안하려면 나라는 사람을 설명하는 데 들이는 에너지가 많이 필요해요. 하지만 저를 찾아오는 분들은 제가 어떤 사람인지를 이해하고 어떤 일을 잘할 수 있을 것인지 예상하고 있기 때문에 커뮤니케이션이 빠르고 결과물도 좋죠. 하지만 관심 있는 일이 있을 때는 이렇게 인터뷰할 때, 슬쩍 이런 일을 하고 싶다고 얘기하기도 해요. 그래서 제안을 받기도 하고요.(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