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 스튜디오 ‘아뜰리에 노노예예’를 운영하는 김민주 아트 디렉터의 집을 찾았다. 일명 ‘목수 언니’로 불리는 그가 손수 고친, 작지만 아름다운 온실 정원이 딸린 집이다.
서울 한가운데서 온실 정원의 로망을 실현한 김민주 아트 디렉터. 기존에 있던 골조와 덱, 화단을 살리고 스트링 선반과 아웃도어 가구, 가드닝 소품 등으로 꾸며 낭만적 유리온실을 완성했다.
우리는 왜 집을 가꾸고 손질하며, 고치고 살까? 수많은 레노베이션 사례를 보며 때로는 이런 근본적 질문 앞에 서게 된다. ‘왜’라는 의문이 가슴속에 솟구칠 때면 이성복 시인의 시구가 도움이 된다. “나무가 ‘되기’ 위해 씨앗이 자라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목적 때문에 생을 망쳐서는 안 된다”. 집을 고치는 일도 마찬가지다. 단지 공사라는 목적을 위해 집의 본질을 잃어서는 안 된다. 바로 물리적 집을 넘어선 ‘마음의 집’이라는 본질을.
김민주 아트 디렉터는 무엇보다 정서적으로 안정되고 평화로울 수 있는 집이기를 바랐다. “이전에 살던 집은 번화가 에 위치해 편리한 점도 있었지만, 심한 교통 체증으로 몇 시간씩 낭비하기 일쑤였어요. 그래서 번잡한 시가지를 피하고 싶었지요.” 그의 눈에 들어온 곳은 서울 서대문구, 한적한 골목에 위치한 빌라. 40m2(12평) 면적의 넓은 정원 테라스가 딸린 집은 60m2(18평) 규모로 아담하지만, 한눈에 반해 덜컥 계약해버렸다. 인테리어 비용을 최대한 절감하기 위해 그가 선택한 것은 자신이 직접 인테리어디자인을 해보는 것. 리빙 매거진 포토그래퍼로 일하면서 자연스레 인테리어에 관심을 가졌고, 자신만의 안목을 쌓은 그는 인테리어 디자이너가 아닌 작업 소장을 찾아 나섰고, 본인이 손수 3D도면을 그려가며 디자인하고, 자재를 공수했다. 그의 집은 인테리어 디자이너로서의 데뷔작이기도 한 셈이다!
화이트 톤으로 꾸민 모던한 거실은 원목 소재의 탬부어 보드로 포인트를 더했다.
톤 다운된 벽지와 베딩으로 안정감을 준 침실.
가구는 화이트, 벽은 나무로?
지은 지 4년밖에 되지 않은 신축 건물인데도 의외로 손볼 곳은 많았다. 촌스러운 아트월, 튤립 문양이 그려진 유리문과 조명등 디자인이 가장 문제였다. 김민주 아트 디렉터는 바닥재와 몰딩을 제외한 모든 것을 교체하기로 마음먹었다. “저는 원래 빈티지한 스타일을 좋아하지만, 평형대가 작은 만큼 거실은 화이트로 모던하고 미니멀하게 꾸미고자 했어요.” 원형과 직각, 화이트 이렇게 세 가지를 테마로 삼아 가구를 최대한 절제해 배치했다. 화이트 스트링 선반과 USM 수납장, 구비의 원형 조명등이 바로 그것. 또 불투명한 시트지로 마감한 기존의 유리창이 답답했기에 전 창문을 투명 창으로 교체하고, 거실의 아트월도 떼어냈다. “무난하게 흰 벽에 원목 가구로 꾸며볼까 하다가 생각을 뒤집어봤어요. 거꾸로 벽을 나무로 하는 건 어떨까? 하고요.” MDF 재질의 탬부어tambour 보드는 흔했지만 원목 소재는 구하기가 힘들었다. 결국 인테리어 디자이너인 친구에게 부탁해 업체를 찾아 화이트 오크 소재의 탬부어 보드를 제작했다. 어렵사리 설치한 원목 탬부어 보드는 그가 거실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이다. 창에 큰 소나무가 걸린 화이트 모던 스타일의 거실은 이렇게 완성되었다. “거실에서 블라인드 사이사이로 햇빛이 들어올 때 LP를 들으며 멍 때리는 시간은 늘 저에게 행복감을 줘요.”
컵과 그릇, 조리 도구, 주방용품을 바로 꺼내 쓸 수 있도록 거치대와 걸이를 활용했다.
옛날 목욕탕을 연상시키는 복고적 분위기의 화장실.
좋아하는 책과 음반, 소품을 수납한 스트링 시스템 선반.
내 몸, 내 맘대로 하는 셀프 인테리어!
모던한 거실을 지나 주방과 취미 방, 그리고 온실 정원으로 갈수록 점차 빈티지한 그의 취향이 두드러진다. 첫 번째로 눈에 띄는 거실 화장실은 타일 색과 패턴부터 레트로한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셀프 레노베이션에서 가장 고된 공사가 다름 아닌 욕실 공사였다. 좁게 구획된 거실 화장실은 공간 활용이 애매했다. 김민주 실장은 조적 욕조를 샤워 부스 형태로 만들고, 세면대 크기를 극단적으로 줄여 목욕이나 샤워하는 공간과 세면 공간을 확실하게 구분했다. 샤워 부스 밖은 건식으로 사용할 수 있어 훨씬 깔끔하다. “아주 어릴 때 살던 아파트의 화장실 타일이 옥색이었어요. 레트로한 분위기를 내고 싶어 무작정 민트색 타일에 테라초 바닥을 깔고 싶었지요.” 그가 실현한 로망은 한 가지 더 있다. 바로 타월 워머다. 보통 수건걸이처럼 생겼지만 수건을 걸어두면 보송하고 따뜻하게 건조해준다. “유럽 여행을 갔을 때 가끔 화장실에 타월 워머가 설치된 집에서 머물 때마다 나중에 집을 지으면 꼭 설치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한국 사이트에서는 비슷한 제품을 찾지 못해 결국 알리익스프레스에서 구매했습니다.”
욕실 공사가 예상한 만큼 힘들었다면, 시공하기 쉬울 것 같았지만 의외로 복병인 곳은 주방이었다. 좁은 ㄱ자형 주방이었기에 맞춤 제작을 해야 한 것. 위쪽을 답답하게 막고 있던 상부장을 떼어내고, 조리대는 높이 110cm로 높게 제작했다. “제가 장신이다 보니 기존 주방 가구 높이는 너무 낮아 허리가 아팠거든요.” 맞춤 주방업체에서 마음에 드는 상판을 찾지 못해 이케아에서 상판과 도기 싱크볼만 따로 구매해 조립했다. 자주 쓰는 그릇이나 컵, 칼, 조리 도구 등은 선반과 거치대를 달아 바로 꺼내 쓸 수 있도록 했다. 빈티지 PH5 조명등을 천장에 설치한 것으로 주방은 완성! 드레스룸과 취미 방은 여닫이 방문을 철거하고, 슬라이딩 도어를 설치해 더욱 넓어 보이게 했다. 벽처럼 보이는 슬라이딩 도어를 스르륵 밀면 비밀의 드레스룸이 나오는 것. 취미 방 겸 운동 방으로 사용하는 공간은 온실과 화단이 가장 잘 보이는 곳이다. 자전거 타기가 취미인 그는 자전거와 관련 용품을 보관하고, 화단이 내다보이는 명당 자리에는 캣타워를 두었다. “새들이 화단에 자주 놀러 오기 때문에 고양이가 이곳에 앉아 창밖 바라보기를 좋아해요. 풍경 좋은 명당을 고양이에게 양보했지요. 우리 집 상전이니까요.”
거실에서 바라본 주방. 왼쪽으로 드레스룸과 취미 방이 나란히 위치하고, 정면의 다용도실을 지나면 온실 정원이 나온다. 공간의 개방감을 위해 문을 달지 않은 녹색 아치형 입구는 다른 차원의 공간으로 이동하는 기분을 느끼게 한다.
온실 정원 바깥에는 자생하는 나무와 김민주 실장이 키우는 식물로 울창한 화단이 자리한다.
식물 집사의 꿈은 이루어진다
세탁실의 폴딩 도어를 열면 완전히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이 집에 살기로 결심하게 된 가장 큰 이유인 온실이다. “예전 집주인이 테라스에 파고라(지붕 위에 덩굴식물이 자라도록 만든 나무 골조)와 덱, 화단을 아기자기하게 꾸며놓은 상태였어요. 이곳을 보고 번뜩 ‘이 파고라를 이용해 온실을 만들면 되겠다’라는 아이디어가 떠올랐지요.” 시골에서나 가능할 것 같던 온실의 로망을 이렇게 서울에서 이룰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집 꾸미는 것만큼 온실 정원을 꾸미는 데 많은 공력을 들였다. 기존 파고라와 덱은 살리되 목조 주택의 골조에 주로 사용하는 방부목으로 나무 온실을 꾸미고, 오랫동안 모아온 가드닝 도구와 소품을 하나씩 풀어놓았다. 평소 테라스 공간이 생기면 꼭 사고 싶던 헤이의 팰리세이드 의자, 스트링 포켓 선반도 빼놓지 않았다.
가장 중요한 온실의 주인공인 식물은 어떻게 골랐을까? “우선 우리 집 환경에 맞지 않는 식물은 애초에 데려오지 않아요. 밖에서 잘 자라는 식물, 실내에서 키울 수 있는 식물이 따로 있으니까요. 여기 온실의 습도나 온도는 영국과 비슷해서 영국 사람이 많이 키우는 고사리 종류를 키워요.” 화단에는 고수, 딜, 케일 등 허브 종류부터 토마토, 블루베리, 심지어 딸기까지 자란다. 40m2 규모의 테라스와 화단의 식물을 관리하는 게 만만치 않을 법한데, 그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 흐른다. “식물을 키우면서 가장 달라진 점은 외부 환경을 신경 쓰게 된 것이에요. 오늘 날씨와 습도가 어떤지 항상 체크하지요.” 비 오는 날이면 양동이를 들고 나가 물을 받는다. “천둥 칠 때 내리는 빗물이 영양분을 많이 함유했다고 하더라고요.” 반짝이는 그의 눈빛이 영락 없는 식물 집사의 모습이다. 집에서 한 발짝 내디디면 정성스레 꾸민 온실 정원에서 식물을 돌보고, 산에서 내려온 직박구리에게 먹이와 목욕물을 내어주는 일상. 아침을 맞이하는 기쁨을 알게 해준 소중한 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