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재료의 출처가 분명하고 제대로 만든 음식은 언제나 귀하다. 터치 몇 번이면 1시간 안에 문 앞으로 음식이 배송되고 밀키트로 한 끼 식사를 뚝딱 만들어 먹는 음식이 전부인 것 같은 요즘은 더욱 그렇다. 이처럼 F&B 트렌드에서 쉽고 빠른 것이 미덕이 되어버렸지만 한편에서는 느리지만 몸이 좋아하는 발효 음식이 주목받고 있다. 시간의 흐름과 미생물의 역동으로 만들어지는 이런 음식은 병치레 없는 건강한 삶을 향하고 생태주의적 철학이 담겨 있다. 그래서 재료를 고르는 일부터 음식을 만들어내기까지 모든 과정에 까다롭게 관여하는 것은 필수이고, 생물들이 서로 얽히고 물려 있는 관계, 땅과 자연이 만들어낸 작동 원리를 설명하는 이들의 방법 역시 특별하다. 안무가와 함께 움직임 워크숍을 진행하며 발효의 속성을 이해해본다거나, 계절의 기운을 머금은 재료로 발효 조미료를 만들어 절기별로 제안하는 방식이다. 이렇게 경험하는 발효의 세계는 단순한 맛이 아니다. 복잡하고 미묘하며 지구적이다. 미생물은 빠르고 편리한 것만이 유일한 성공이며 혁신이 아니라는 말을 이렇게 한다.
파아프랩에서 열리는 움직임 워크숍. ‘우리 몸은 균을 위한 공간이 아닐까’ 라는 장홍석 대표의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워크숍을 진행한다.
파아프의 컬러 시스템이 돋보이는 웹사이트. 제품 정보, 파아프를 살 수 있는 곳, 레시피 등을 자세히 담았다.
기획ㆍ운영 파아프(장홍석, 허영균), paaptempeh.com
BI 디자인 오경섭(디자인), 임오성(개발), work-note.net
공간ㆍ가구ㆍ조명 디자인 아르, arroffice.kr
운영 시간 평일 8:00~10:00
주소 서울시 성동구 아차산로5길 41 1층
인스타그램 @paap_tempeh @paap_lab
오픈 시기 2021년 3월
파아프
파아프는 인도네시아의 발효 음식 템페를 선보인다. 현지에서 먹었던 템페를 잊지 못한 현대무용가 장홍석이 인도네시아와 일본을 오가며 제조 방법을 직접 배우고 개발한 브랜드다. 파아프PaAp란 ‘Part all All part’를 줄인 말로, 부분에서 전체를 바라보고 전체에서 부분을 바라본다는 넓은 시선과 윤리적 태도로 발효의 시간을 기다린다는 브랜드의 정체성을 담고 있다. 파아프는 발효를 매개로 다양한 가치와 연결되는 것을 모토로 한다. 이 낯선 음식은 그 자체로도 신비하지만 소비자에게 제안하는 방법은 더욱더 특별하다. 성수동에 위치한 발효 실험실 파아프랩에서 벌어지는 움직임 워크숍이 대표적이다. 살아 있고 움직이는 균의 모습을 ‘몸짓’과 연결한 것으로, ‘발효는 움직임이자 움직임은 발효’라는 장홍석의 아이디어는 과연 무용가답다. “균이라는 게 우리 눈에 보이지 않지만 몸 안과 밖에 셀 수 없을 만큼 많이 존재해요. 호흡할 때마다 균을 뱉어내고 빨아들인다고 생각해보면 우리는 균으로 관계를 맺고 공생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파아프랩에서는 지난 3월부터 6월까지 사운드 아티스트, 의상 디자이너, 그래픽 디자이너가 위스키를 선보이는 프로젝트 와위Wawe 바를 운영하기도 했다. 한자 ‘웅덩이 와窪, 햇빛 위暐’를 영문으로 표기한 것으로 깊고 반짝인다는 뜻이 담긴 이름이다. 크리에이터들이 생각하는 아름다운 세계를 가늠하는 시간이랄까. 파아프는 앞으로 발효라는 맥락으로 다양한 제품을 출시하고 프로젝트를 만들어갈 계획이다. 또 에너지, 농사, 생산, 순환에 대한 관심으로 바이오 가스 키트 제작을 논의 중이기도 하다. 자체적으로 만든 에너지로 제품을 생산하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목표이기 때문이다. 이쯤이면 이들에게 템페란 단순한 음식이라기보다는 실천과 행동이며 메시지를 담은 특별한 매체라는
생각이 든다.
“BI는 파아프의 ‘아름다운 거창함’을 시각화하고자 했다. 하나이자 전체인 모습을 만들기 위해 4개의 요소인 P, a, A, p에 각각 사각형을 부여하고, 컬러 모델 C100, Y100을 적용한 뒤 컬러가 겹치면서 만들어지는 효과를 통해 발효의 과정과 미시 세계의 끝없는 가능성과 다양성을 표현했다. 웹사이트의 경우 식품보다는 브랜드와 만드는 사람들을 보여주는 것이 의도였다. 또 낯선 음식인 만큼 한 페이지의 그리드 구조로 살펴보기 쉽게 디자인했다.” _ 오경섭ㆍ임오성 디자이너
날씨 좋은 날은 창을 활짝 열고 운영하는 큔.
현미경으로 본 균 모양을 모티브로 디자인한 큔 로고.
기획ㆍ운영 큔 @grocery_cafe_qyun
BI 디자인 저스트 프로젝트(대표 이영연) @justproject_korea
가구 디자인 오아름(문화로노리짱 프로젝트 공동 대표) @norizzang_brick
공간 디자인 큔, 맙소사(대표 김병국) @marcsosa, 유경 @slowslowken, 홍윤주 @ammu_studio
운영 시간 수~일요일 11:00~15:30
주소 서울시 종로구 자하문로26길 17-2 1층
인스타그램 @grocery_cafe_qyun
큔
‘균’에 점 하나를 더한 이름 큔. 전 세계 발효의 지혜를 공부해 발효 식료품을 만들고 판매하는 곳이다. 낮에는 핫 샌드위치와 비건 발효 버터 커리, 콤부차와 발효 아이스크림 등 발효를 활용한 식음료를 선보이는 낮큔을, 밤에는 술이 더 맛있어지는 발효 안주를 내는 밤큔을 운영한다. 철마다 농부에게 받은 좋은 식재료를 어떻게 하면 오래 즐길 수 있을까 하는 생각과 더욱 맛있는 채식 요리법을 위해 발효를 연구하겠다는 생각이 큔을 연 계기가 됐다. (지금은 없어진) 카페 수카라와 채소 시장 마르쉐@를 운영하는 수향 대표를 주축으로 수카라 매니저였던 성은이 함께 운영하고 있다. 어느 집에서 담근 장이 맛있고, 누구네 김치가 독특하고 맛나다는 그런 이야기는 이제 점점 더 듣기 어려운 일이 되어버린 오늘날, 이들은 ‘발효란 옛 지혜를 배우고 지금의 삶에 현재화하는 과정이자 오랜 시간 이어져온 지혜와 능력을 손으로 되찾는 작업’이라고 설명한다. 음식 문화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는 미식과 배움을 경험할 수 있는 큔은 우리에게 새로운 맛, 새로운 풍미, 새로운 재미를 제안한다.
모든 모서리가 곡선으로 이루어진 뒷동산의 내부.
기획ㆍ운영ㆍBI 디자인 송대영
공간 디자인 박길종, 송대영, 김재환
가구 및 시공 박길종
식기 유승협, 송대영
운영시간 평일: 17:00~23:00/ 주말: 16:00~24:00
주소 서울시 성북구 삼선교로2길 3 1층
인스타그램 @duidongsan_our
오픈시기 2020년 12월
뒷동산
이곳은 송대영 작가의 양조장이자 저녁에는 음악과 음식이 있는 작은 술집이다. 울음과 웃음으로 직접 빚은 쌀술과 첨가물을 넣지 않은 지역 전통주도 맛볼 수 있다. 안주로는 한국 술을 빚으며 알게 된 고문헌 속 음식을 내준다. 닭김치, 양념가제육, 돈피편육 같은 옛 음식이라 특히 새롭다. 그의 오랜 취미가 인터넷으로 전통주를 주문해 맛보기였는데, 마신 술의 종류가 100여 종이 되었을 때 직접 만들어볼까 하는 생각에 술을 빚다 이 상황에 이르게 되었다고. 공간 디자인은 길종상가의 일원답게 약간 엉뚱하면서도 위트가 넘친다. 뒷동산의 능선처럼 곡선 위주이고 노출 콘크리트 같은 ‘세련된’ 소재가 아닌 안락하고 정겨운 나무로 완성했다. 술기운 때문에 모서리에 부딪힐 염려는 없는 것이 장점이라면 장점. 맘 놓고 술을 마실 수 있도록 편안함에 신경 썼다는 의도와 딱 맞아떨어진다. 식기부터 휴지함까지 공간에 맞게 손수 제작했다고 하니 조금 지독하게 느껴지기도 하다. 그는 때때로 술을 빚다가 양조장 한편에 갖춰놓은 사운드 시스템으로 직접 디제잉을 선보이는데, 7월에는 음악가들과 라이브 공연을 계획하고 있다고 하니 스케줄을 주시하기를 추천한다. “쌀, 물, 누룩과 같이 맛이 없는 재료로 다양한 맛을 만든다는 점이 창조적으로 느껴졌다”는 그의 설명에서는 역시나 예술가적인 면모가 콸콸 흘러넘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