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사진 한 컷, 짧은 영상 한 편이 맛의 본질보다 우선할 때도 있다. 누군가는 이런 현상을 부정적으로 바라볼지 모르지만, 달리 생각해보면 우리가 흔히 말하는 맛집의 ‘맛’이 단편적인 ‘미각’만을 담고 있는 시대는 지났음을 보여주는 증거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맛집’에 대한 분별력 상실은 아이러니하고 흥미롭게도 이 단어를 둘러싼 개념이 세분화되는 결과를 낳는다.
인스타그램에는 수많은 먹스타그램이 존재한다. 자신의 일상과 함께한 음식 사진을 가볍게 올리는 사람도 있고, 구독자들에게 소개해주기 위해 전문적으로 음식점을 찾아다니며 리뷰해주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강렬한 이미지의 음식 사진을 보며 가끔은 아쉬울 때도 있었다. 사진만으로 이 음식의 진가를 보여주기에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런 생각에 내 식대로 맛집 인스타그램 계정을 운영해보기로 했다. F&B 회사를 다닐 때 맛집 계정을 운영해보기도 했고, 잘할 수 있는 일이 음식 콘텐츠였기에 잘 운영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어느 정도 있었다. 이렇게 만든 계정 이름이 푸글. ‘푸드’와 ‘글’의 합성어다. 인스타그램에서 팔로우하던 감성 글귀 작가 ‘흔글’의 영향을 받아 음식에 관한 글을 써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사진만으로 충족시킬 수 없는 다른 영역의 감각을 자극시키고 싶었다. 예를 들어, 낙곱새에 밥 두 덩이를 올리고 계란 프라이를 얹은 비주얼에 ‘낙곱새가 노란 달덩이를 품었다’고 표현한다거나, 닭 다리를 고명으로 올린 라멘에 ‘넓적 닭 다리가 탕에 반쯤 몸을 담그고 온천욕을 즐기고 있다’고 표현하는 것, 초록색 우동 면을 ‘슈렉이 기부한 머리카락’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좋은 콘텐츠에는 언제나 다양한 전략과 노하우가 녹아 있다. 나는 보기만 해도 침이 흐르는 글을 쓰고 싶었다. 음식에 관한 기록에도 재치가 필요하다는 생각에서다.
콘텐츠 기획의 시작은 역시나 리서치다. 인스타그램을 운영하면서 ‘맛집’에 대한 질문을 꽤 많이 받는다. “보통 맛집은 어떻게 찾나요?”, “맛집 좀 알려주세요” 같은 질문이다. 주변 지인들과 구독자들에게 추천받는 경우 외에는 #을지로맛집 #강남 맛집 등을 검색했을 때 등장하는 최근 게시물을 살펴보는 것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검색 결과 중에서 비주얼이 괜찮다 싶은 곳을 뽑은 다음 네이버나 블로그로 2차 검증을 한다. 음식점을 방문하는 시간이 한정적인 만큼 실패 확률을 최소화하기 위한 전략이다. 여기에 나만의 노하우가 발동한다. 나는 해시태그 결과물 중에서도 콘텐츠 개수가 500개 이하인 곳을 유의 깊게 본다. 해시태그가 적다는 것은 아직 사람들이 많이 가보지 않은 곳일 가능성이 높고 소위 ‘숨은 찐맛집’일 가능성도 높기 때문이다. 경험상 해시태그 500개 이하의 맛집을 방문하여 포스팅 했을 때 사람들 반응이 훨씬 더 좋았다. 반면 잘 알려진 프랜차이즈 식당이나 유행에 편승해 우후죽순 생겨난 음식점은 피하는 편이다.
강력한 비주얼도 콘텐츠 구성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게시물을 포스팅하는 사람도, 그것을 보는 사람도 일종의 트리거가 있을 때 더 마음이 가는 법이다. 그리고 콘텐츠를 만드는 입장에서도 그 설정을 잘 살려줄 구성이 더해질 때 좀 더 수월하게 사람들의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다. 일례로 최근에 우연히 방문한 한 고깃집을 들 수 있다. 미나리를 곁들인 삼겹살을 파는 이 음식점은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은, 주로 단골 고객을 대상으로 장사하는 곳이었다. 나는 그냥 가볍게 지인들과 식사를 하러 방문했는데, 이들의 퍼포먼스를 보고 ‘이건 찍어야겠다’는 생각이 본능적으로 들었다. 보통 삼겹살집의 미나리라고 하면 고기 옆에 가지런히 썰린 채 나오는 게 일반적이다.
그러나 이 집은 달랐다. 불판 위에서 노릇노릇 익어가는 삼겹살을 큼지막한 통미나리로 이리저리 쓰다듬으며 미나리 향을 삼겹살 기름에 코팅하는 모습이었다. 마치 경건한 제례 의식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강력한 트리거’. 실제로 그 게시물은 무려 220만 조회 수를 찍고 네이버 ‘연남동맛집’으로 1위를 했다. 다른 예로 330만 조회 수를 찍었던 일명 ‘하늘을 나는 찐빵’을 들 수 있다. 속초중앙시장의 명물로 알려진 술빵을 찍은 영상이다. 찐빵이라는 음식을 떠올릴 때 사람들이 흔히 연상하는 폭신한 식감에 주목한 것이다. 이를 표현하기 위해 빵을 쪄내는 틀안에 던지는 행위를 포착했는데 폭신하고 탱글한 찐빵의 텍스처가 극대화됐다. 요즘에는 인스타그램에 릴스 기능이 추가되면서, 정적인 사진에서 짧은 영상으로 대세가 옮겨가는 추세다. 짧은 영상에 열광하는 대중을 보며, 음식의 생동감 있는 연출력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과거의 맛집은 주로 신선한 재료와 맛, 그리고 서비스를 앞세워 자연스럽게 알려지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다르다. 요즘 맛집은 맛뿐만 아니라, 사진 한 장 혹은 짧은 영상으로 보여지는 비주얼과 마케팅에 의해 만들어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심지어 때로는 사진 한 컷, 짧은 영상 한 편이 맛의 본질보다 우선할 때도 있다. 음식 사진 한 컷이라도 제대로 기획할 줄 아는 식당이 입소문을 타는 것이다. 누군가는 이런 현상을 부정적으로 바라볼지 모르지만, 달리 생각해보면 우리가 흔히 말하는 맛집의 ‘맛’이 단편적인 ‘미각’만을 담고 있는 시대는 지났음을 보여주는 증거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맛집’에 대한 분별력 상실은 아이러니하고 흥미롭게도 이 단어를 둘러싼 개념이 세분화되는 결과를 낳는다. 즉 ‘찐’맛집이나 유명한 인플루언서의 이름을 딴 ‘◦◦ 맛집’ 같은 말이 생겨나면서 그 기준이 더욱 세밀해지고 견고해지는 것이다.
지금까지 9개월간 푸글이라는 이름으로 300여 개의 맛집을 소개하고 6만 2000명에 달하는 팔로워를 모았다. 한편 나는 생활인으로 살면서 이렇게 많은 소화제를 먹어본 적이 없다. 더부룩한 상태로 맞이하는 음식은 그리 예뻐 보이지 않을 때도 있고 좋아서 시작한 일인데 고통의 순간으로 다가올 때도 있다. (만성 소화불량은 덤. 그래서 요즘 나는 운동을 다시 시작하고, 아침마다 양배추즙도 챙겨 먹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내가 써내려가는 음식의 기록이 누군가에게 즐거운 순간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여전하다. 소개한 음식을 굳이 먹으러 가지 않아도 업로드한 사진과 글이 그들의 하루에 작은 이야깃거리가 되었으면 한다. 맛있는 음식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해지니까. 앞으로도 푸글은 음식에 관한 다양한 콘텐츠를 만들어나갈 예정이다.
정다현은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산에서 커피를 팔다가 작은 수제 버거집을 열었다. 이랜드 외식사업부 온라인 식품 마케터로 일했고, 현재는 맛집 인플루언서 foogeul(푸글)로 활동하고 있다. 김밥에 대한 애정으로 전국 150개 김밥집을 투어하는 전국김밥일주 프로젝트도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