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와 디자인은 여러모로 닮은 구석이 많다. 재료를 다듬고 적절히 조리해 먹음직스러운 음식을 만드는 일은 주어진 조건 아래서 창의적인 방법으로 최적의 해결책을 도출하는 디자인 과정과 다를 바 없다. 그래서인지 크리에이티브 영역의 많은 이들이 음식 그리고 요리를 또 하나의 디자인 도구로 삼고 있다. 특출난 감각과 뛰어난 표현력으로 평범한 식재료를 ‘이걸 먹어도 될까’ 싶은 작품으로 탄생시키는가 하면 홈 쿠킹과 홈 베이킹의 결과물을 ‘거기 어디예요?’라고 묻고 싶은 브랜딩으로 담아내기도 한다. 예술적 상상력을 동원해 지질학에 대한 관심을 기상천외한 베이커리 메뉴로 풀어낸 작가도 있다. 음식을 넘어 작품의 경지에 이른 이들의 결과물은 아름답고, 맛있으며, 철학적이기까지 하다. 얼마나 더 빨리, 많이 파느냐에서 살짝 혹은 많이 비켜 간 크리에이터들의 F&B 스핀 오프를 소개한다.
〈Fruit Tang!〉전에서 선보인 과일과 설탕을 이용한 푸드 인스털레이션.
〈Salon de Gugumo〉 포스터.
2020년 PaTI 맞이 잔치에서 선보인 케이터링.
기획·운영 변산노을, 최수지
BI 디자인 변산노을, 박민수
인스타그램 @gugumoworks
오픈 시기 2018년 10월
구구모
구구모는 푸드 아트를 기반으로 새로운 음식 경험을 선사하는 디자인 스튜디오다. 푸드 인스털레이션, 스타일링, 설치와 오브제 작업을 넘나들며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변화하는 식재료 모양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한 이들은 재료의 ‘그렇고 그런 모양’이라는 뜻을 담아 ‘구구모’라고 이름 지었다. 그래픽, 편집, 패션 디자인 등 디자인과 제작 분야에 기반을 둔 팀원들은 자연스레 음식을 표현 매체로 바라보는 관점을 갖게 되었다. 〈Fruit Tang!〉전 에서는 과일과 설탕이 만나 만들어내는 조형미를 실험하는가 하면 〈Salon de Gugumo〉전에서는 살롱을 테마로 한 장식적인 디저트를 판매하기도 했다. 다양한 물성에 관심이 많은 구구모가 현재 가장 주력하는 분야는 푸드 인스털레이션이다. 익숙하고 신선한 재료를 활용해 궁금증을 유발하는 작품을 만드는 것이 이들의 특기. 7월에는 재료와 음식을 주제로 한 첫 번째 패션 제품도 선보일 예정이라고 하니 기대해볼 만하다. 구구모는 먹는 행위를 넘어 음식을 둘러싼 모든 감각을 디자인하고 실험하는 전방위 스튜디오로 성장 중이다.
스몰바치스튜디오 로고.
해양 쓰레기와 녹인 사탕으로 만든 ‘비치코밍캔디’. 사진 제공 실험실C
‘비치코밍캔디’를 먹을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으로 분류한 표. 왼쪽에 놓일수록 먹을 수 있다는 의견이다. 사진 제공 실험실C
기획·운영 강은경
인스타그램 @small_batch_studio, @small-batch-studio.com
오픈 시기 2016년 4월
스몰바치스튜디오
음식을 먹지 않는 사람은 없으니 음식은 그 어떤 것보다도 보편적인 커뮤니케이션 도구가 될 수 있다. 스몰바치스튜디오는 이러한 음식의 보편성에 문제 해결 방식으로서의 디자인을 접목해 문화·예술, 교육, 공공 서비스 등 다양한 분야에서 작업을 전개 중이다. 런던에서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던 강은경 대표는 휴식 겸 떠났던 시골 농장에서 음식의 신세계에 눈을 떴다. 네덜란드 마레이 보헬장Marije Vogelzang 스튜디오에서 인턴십을 거친 그는 한국으로 돌아와 식경험 디자인이라는 이름으로 음식과 요리를 통해 여러 가지 사회적 문제를 다루는 작업을 개척해왔다. 최근 부산 영도에서 열린 식물 생태 아트 리서치 전시 프로그램 〈부유의 시간〉에 참여한 스몰바치스튜디오는 ‘비치코밍캔디’라는 작업을 선보였다. 쓰레기와 해초가 뒤섞여 있는 모습에 착안해 먹을 수 있는 것과 먹을 수 없는 것의 경계가 모호해진 시대를 해양 쓰레기 위에 녹인 사탕을 통해 지적한 것. 이처럼 음식 자체보다 먹는 존재, 즉 사람과 사회에 대한 문제를 다루고 해결하는 스몰바치스튜디오의 작업은 우리가 먹고 살아가는 일과 식경험 디자인의 새로운 가능성을 환기시킨다.
홈그라운드 스튜디오 & 델리 숍 외관.
홈그라운드 로고.
기획·운영 안아라
BI 디자인 홍은주, 김형재, hongxkim.com
일러스트레이션 홍은주, 안아라
공간·가구·조명 디자인 맙소사(김병국 외), 석운동(김지원), 길종상가(박길종)
운영 시간 12:00~20:30(화~토요일)
주소 서울시 성동구 한림말길 22-20, 지하1층
인스타그램 @ara_home_ground
오픈 시기 2015년 1월
홈그라운드
디자이너의 관점을 음식에 접목시킨 사례에 빠질 수 없는 곳이 있다. 바로 안아라 대표가 운영하는 푸드 디자인 스튜디오 홈그라운드다. 홈그라운드는 단순히 예쁘고 먹기 좋은 음식이 아니라 행사의 주제와 작가의 작품 세계를 재해석하는 음식으로 문화·예술계와 음식이 교차하는 다양한 행사에서 주목받았다. 케이터링, 푸드 워크숍, 팝업 레스토랑 등 여러 가지 식문화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생산해온 홈그라운드는 최근 델리 전문점 ‘홈밀어겐’을 론칭했다. 코로나19 사태로 홈그라운드의 대표 활동인 미술관 프로그램과 콘셉트 케이터링을 펼칠 행사가 줄줄이 취소되는 바람에 정상적인 스튜디오 운영이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홈밀어겐은 현대 한식이라는 범주 아래 집에서 먹을 수 있는 간편식과 요리에 개성을 더하는 소스, 시럽, 절임류를 판매한다. 계절을 반영한 메뉴와 식재료에 얽힌 흥미로운 이야기에 집중해 외식업이 위축된 상황에서도 신선한 활동을 계속해나가는 모습이다.
심드렁한 얼굴을 표현한 음식.
둥근 동산을 떠올리게 하는 심두의 바 테이블.
기획·운영, BI·공간 디자인 류수현
제작 무진동사 @mujindongsa
운영 시간 15:00~21:00 (수~일요일, 변동 가능)
주소 서울시 서대문구 홍연길 82 2층
인스타그램 @simdelung_cookiebar
오픈 시기 2020년 11월
심두
2016년 ‘심드렁’한 얼굴 모양의 버터 쿠키로 〈과자전〉에 참여했다가 예상치 못한 흥행을 거둔 작가 심드렁은 지난해 11월 이 쿠키를 기본으로 한 바 ‘심두’를 열었다. ‘스며들 심沁’, ‘머무를 두逗’로 지은 바 이름은 ‘물처럼 스며들어 편히 쉬다 가라’는 뜻을 담고 있다. 지하철 맞은편에 앉은 사람들의 심드렁한 얼굴 표정을 보고 ‘아무 자극 없이 편안한 상태’의 얼굴이라고 느낀 작가는 베이킹 재료를 이용해 이런 얼굴을 만들어낸다. 억지웃음도, 과장된 감정도 없는 그야말로 현대인의 가장 자연스러운 얼굴. 심두에서는 최근 얼굴뿐만 아니라 떡볶이 쿠키, 브런치 쿠키처럼 극도로 사실적인 음식 모양의 쿠키도 선보이고 있다. 작가는 굽는 과정에서 조금씩 팽창해 ‘부은 모습’이 되기 마련이지만 오븐에서 막 나온 쿠키들이 ‘그래도 난 나야’ 하고 자기주장하는 모습에 매력을 느낀다고 말했다. 푸른빛 바 테이블과 알록달록한 소품들이 구워진 쿠키를 연상시키는 바 공간의 색감은 일본 만화 원작의 영화 〈역왕 리키오〉에서 영감받았다고. 심드렁한 표정으로 심드렁한 음식을 즐기기 딱 좋은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