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도주는 양 볼 사이와 입천장 아래에서 혀에 감기며 그 혀가 저를 접촉하고 더듬도록 내버려둔다. 포도주는 위장에 유입되는 정도로 만족하지 않을 것이어서 입안에 얇은 껍질 같은 것, 다시 말해 향취와 원기로 이루어진 섬세한 막 또는 침전물을 깔아놓을 것이다. 마침내 우리는 이를 두고 이렇게 말할 수도 있으리라. ‘이 몸은 얼마간의 포도주를 지닌다.’” 이 숭고해 마지않는 몸과 포도주의 상관관계는 장 뤼크 낭시가 1992년에 〈코르푸스〉에 쓴 내용이다. 우리가 얼마간의 포도주를 지니고 있는지도 중요하지만 이제는 무엇과 어떻게 지니느냐 역시 철학만큼 중요하다. 포도주의 ‘향취’와 ‘원기’를 돋우는 요소들은 함께 먹는 음식뿐 아니라 동시대를 반영하는 예술이거나, 개성 강한 음악이거나, 센스 넘치게 전달하는 이야기도 된다. 이렇듯 술과 함께 즐기는 최적의 궁합이 저마다 다른 만큼 이제 페어링은 자신을 표현하는 일종의 패션 영역처럼 보인다. 우리는 이를 두고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크리에이티비티로 페어링한 포도주 페어링 클럽은 얼마간의 디자인을 지닌다고.
폼페트 셀렉시옹 매장.
공간의 무드와 어울리는 제품을 판매한다.
음악을 테마로 한 공간을 직관적으로 전달하는 로고.
기획ㆍ운영ㆍ공간 디자인 조미경
BI 디자인 굿네이션(대표 이대웅)
운영 시간 화~토요일 14:00~22:00
주소 서울시 성동구 독서당로 285 지하 1층
인스타그램 @pompette_selection @pompette_club
오픈 시기 2020년 9월
폼페트 셀렉시옹
동네의 재발견은 언제나 즐겁다. 과거 성수동이나 을지로가 그랬던 것처럼. 개성 강하고 완성도 높은 공간은 우리의 시선을 동네로 향하도록 만드는 일종의 트리거 역할을 한다. 그런 의미에서 뮤직 & 내추럴 와인 숍 폼페트 셀렉시옹은 금호동이라는 지역을 다시 보게 만드는 데 일조한다. ‘폼페트pompette’는 불어 슬랭으로 ‘알딸딸한, 기분 좋게 취한’이란 뜻, 셀렉시옹sélection은 ‘큐레이션, 셀렉션’을 뜻한다. 바, 보틀 숍, 편집숍 등으로 이뤄진 이곳에서는 조미경 대표의 확고한 취향이 느껴진다. “와인은 프랑스에 있을 때 좋아하게 됐지만, 사실 문화ㆍ음악ㆍ심미적으로 1980~1990년대 미국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공간에 표현하고자 했던 무드 역시 1980년대 미국의 복고적인 느낌이었다.” 실제로 그는 1980년대 K마트 사진이나 스포티하고 한눈에 들어오는 소니 스포츠 라인 등에서 영감을 받아 공간을 완성했다. 그러다 보니 폼페트 셀렉시옹의 인테리어나 소품 곳곳에 아날로그 감성이 짙게 배어 있다. 음악도 마찬가지. 1980~1990년대 유행하던 소울, 디스코, 펑크 음악의 비중이 50% 이상을 차지한다고. 이 모든 것이 종합적으로 작용해 폼페트 셀렉시옹만의 바이브를 만들어낸다. 한편 패션 브랜드 아모멘토를 비롯해 여러 브랜드와 왕성한 협업을 펼치기도 하고, 다양한 이벤트를 기획하기도 한다. 향후에는 오프라인 공간을 기반으로 와인과 음악이 있는 셀렉터스 토크를 여는 것도 고려 중이라고. 또 와인 매장을 넘어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로 확장할 계획도 있다고 하니 앞으로의 행보가 더욱 기대된다.
건물 외벽에 커다랗게 적은 푸드실방 로고.
주방의 집기와 홀의 경계를 없앤 공간 디자인. © Hasisi Park
푸드의 공간과 음식을 모티프로 디자인한 1-2-3-4-5 스튜디오의 실크스크린 포스터.
기획ㆍ운영 선정석(푸드실방)
BI 디자인 정다영, 손아용(1-2-3-4-5스튜디오)
공간ㆍ가구ㆍ조명 디자인 조규엽, 선정현(플랏엠)
운영 시간 12:00~21:00 (화~일요일, 브레이크 타임 15:00~17:00)
주소 서울시 마포구 포은로 61 2층
인스타그램 @food_sylvain
오픈 시기 2021년 5월 1일
푸드실방
망원동 골목에 눈길을 사로잡는 포스터가 간판처럼 걸렸다. 프랑스 요리와 레스토랑 문화를 소개하는 가게, 푸드실방을 안내하는 표시다. 1970년대 예술가 고든 마타 클락Gordon Matta Clark이 운영한 레스토랑 ‘푸드Food’와 선정석 셰프의 프랑스 이름 ‘실방Sylvain’을 합쳐 푸드 실방이라 이름지었다. 이곳에서는 부르고뉴, 알자스, 노르망디 등 프랑스 지역 음식을 버터와 소금만으로 맛을 내는 요리를 선보인다. 예쁘고 화려한 요리보다는 격식 없이 편하고 맛있게 즐길 수 있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선정석 셰프의 철학이다. 후식의 경우 판매할수록 손해가 더할 정도로 정성을 들여 선보인다는 설명은 감격을 줄 정도다. 음식만큼이나마 공간 디자인도 인상적이다. 보라색 바닥도 특별하지만 그보다도 키친 유닛과 작업 테이블, 그리고 식사 테이블을 뚜렷한 구분 없이 배치해, 마치 커다란 주방에 초대받아 식사하는 기분이 들게 한다. 거나하게 식사를 마치고 내려와 선명하게 빛나는 은빛 포스터를 다시 마주하면 푸드실방에서의 행복한 미식에 대한 기억이 한층 더 선명해진다.
“푸드(레스토랑 이름)의 푸드(음식)를 활용하여 포스터를 제작했다. 이곳의 메뉴를 보고 재료를 상상해 그린 그림이다. 컬러는 매장의 보라색 바닥을 염두에 두고 골랐다. 배경색은 논픽션홈이 디자인한 가구를 연상시키도록 은색을 사용했다. 메탈 실버 아크릴로 인쇄하여 실제 포스터도 은빛이 돈다. 색이 선명하게 잘 드러나도록 실크스크린 방식을 택한 점, 10도가 넘는 색상을 사용한 점, 은색반투명 흰색, 등 실크스크린에 까다로운 색상을 활용했다는 점에 꽤 의미가 있다.” _1-2-3-4-5 studio
경쾌하고 위트 있는 인상의 패키지 디자인.
위키드와이프 로고. 포도주를 많이 마셔 배가 나온 사자를 모티프로 디자인했다.
위키드와이프의 감각이 돋보이는 비주얼 커뮤니케이션.
기획 위키드와이프(대표 이영지), wkd-seoul.com
BI 디자인 박론디 @rondinotrondy
공간ㆍ가구ㆍ조명 디자인 스페이스플랜(대표 박정욱) @spaceplan_official
운영 시간 화~토요일 11:00~22:00
주소 서울시 강남구 논현로159길 46-6
인스타그램 @wickedwife.official
오픈 시기 2019년 9월(오프라인), 2020년 9월(온라인)
위키드와이프
2018년 시작한 위키드와이프는 와인 바 겸 스토어, 정기 구독 서비스 등을 전개하는 온·오프라인 와인 큐레이션 플랫폼이다. 오프라인에서는 바와 스토어를 전개하고 온라인에서는 와인 에디터가 큐레이션한 월별 페어링 박스를 받아볼 수 있는 구독 서비스를 제공한다. ‘플랫폼’, ‘에디터’라는 단어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이 브랜드는 단순히 와인 매장에 그치기를 거부하고 어렵고 복잡하게 느껴지는 와인을 쉽고, 가볍고, 일상적으로 마실 수 있도록 돕는 와인 가이드 역할을 자처한다. 그 자체로 브랜드이자 미디어가 되는 셈. 이는 에디터로 와인 전문 매거진 〈와이니츠〉와 〈럭셔리〉 등에서 다년간 와인, 음식, 공간에 대한 글을 쓴 이영지 대표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BI의 변화는 꽤 극적이다. 2019년 가로수길에 처음 오프라인 공간을 열었을 때는 무채색의 정숙한 이미지가 강했지만 리뉴얼 후로는 꿈꾸는 뱀, 포도주를 많이 마셔 배가 나온 사자 등 좀 더 밝고 위트 있는 심벌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독특한 디자인의 와인 상자나 쇼핑백, 다양한 굿즈로 다른 와인 매장과 차별화되는 지점을 마련했다. 덕분에 이곳을 찾는 손님의 연령대도 확대됐다고 한다. 하반기에는 디자인 영역 강화에 박차를 가할 계획. 위키드와이프의 와인 셀렉트 서비스를 좀 더 직관적으로 보여주기 위함이다. 이영지 대표는 조만간 브랜드의 강점인 ‘페어링 콘텐츠’를 보여주는 공간도 선보일 예정이라고 귀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