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전 세계에는 먹거리가 넘쳐난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상황이 이렇기에 좀 더 좁은 타깃, 좀 더 깊은 안목으로 큐레이션한 식료품 가게가 떠오를 수밖에 없다. 이들의 목록에는 비단 음식만 포함되어 있지 않다. 기분 좋은 식사를 위해 필요한 요소, 즉 식사의 주변부를 아우르는 것이 포인트다. 치즈에 어울리는 술을 제안하거나, 미식 생활을 더욱 풍요롭게 해주는 식도구를 함께 판매한다. 또 브랜드들이 연합해 취향껏 식재료를 구매할 수 있도록 기획하는 참신함도 오늘날 그로서리가 지닌 하나의 태도다. 어쩌면 이곳은 발견을 좋아하는 세대를 위한 소비의 놀이터에 더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예쁜 패키지 디자인은 갖고 싶은 욕망의 대상이며 공간에 진열된 식료품은 모두 경험의 대상이니, 제품을 하나하나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애피타이저를 먹은 듯한 기분이 든다. 한편 최근 떠오르는 델리형 그로서리는 모든 삶의 방식을 변화시킨 코로나19라는 거대한 소용돌이에서 그나마 온전한 구역이었다. 이렇게 지금 그로서리란 ‘오늘의 취향’이자 F&B 공간의 가치를 극대화하는 장소다.
서울숲에 위치한 유어네이키드치즈.
높은 천장까지 벽면을 가득 채운 제품 자체가 공간 디자인의 일부로 기능한다.
유어네이키드치즈 로고.
기획ㆍBIㆍ공간 디자인 유어네이키드치즈(대표 이효원), yournakedcheese.com
운영 시간 화~일요일 11:30~23:30
주소 서울시 성동구 왕십리로10길 6 1층
인스타그램 @yournakedcheese
오픈 시기 2019년 7월
유어네이키드치즈
전 세계 치즈를 비롯한 해외 식료품을 큐레이팅하는 브랜드다. 취향에 따른 치즈와 이에 걸맞은 와인을 추천하고, 와인과 함께하기 좋은 요리로 다이닝을 선보인다. 남다른 비주얼 감각으로 오감을 만족시키는 이효원 대표는 치즈에 대한 열정 반, 회사로부터 해방되고 싶은 마음 반으로 2018년 유어네이키드치즈 온라인 몰을 론칭했다. 이듬해에는 성수동 새촌에 오프라인 공간을 열며 풍미로 가득한 플레이트를 제안했다. 지난해 자리를 옮겨 오픈한 서울숲 매장은 높은 천장고와 통로처럼 긴 구조가 특징이다. 높게 뻗은 벽을 따라 빽빽하게 배치한 식료품은 그 자체로 근사한 장식이자 공간에 매력을 더하는 디자인 요소다. 오밀조밀 놓여 있는 다양하고 낯선 식료품을 구경하는 일은 그저 즐겁고, 알록달록한 접시를 사용한 플레이팅 역시 산뜻하다. 이곳에 직접 방문할 수 없다면 유어네이키드가 운영하는 인스타그램 피드를 살펴보는 것도 좋다. ‘세련된 키치함, 유치하지 않은 귀여움과 컬러풀함’이라는 비주얼 테마는 온ㆍ오프라인을 막론하고 일관되게 적용되어 있다. 우여곡절 끝에 이효원 대표가 회사를 그만둔 지 이제 반년. 7월 초에는 가로수길에 새로운 쇼룸을 열고, 하반기에는 부산에도 공간을 마련할 예정이라고 한다. 앞으로 선보일 공간은 더욱 흥미로운 콘셉트로 기획 중이라는 소식에 기대를 모은다.
알파벳을 거꾸로 뒤집어 재치 있게 완성한 로고.
지난 5월에 열린 팝업식당에서는 통조림을 테마로 한 음식을 선보였다.
경의선 숲길 가에서 열린 먼데이 모닝 마켓.
기획ㆍ운영 먼데이 모닝 마켓
BI 디자인 김어진
공간ㆍ가구ㆍ조명 디자인 뉴모던서비스(유뱅, 제이미) @new_modern_service
주소 서울시 용산구 원효로2가 1-21 리틀포레스트 1층
인스타그램 @Monday.morning.market
오픈 시기 2021년 5월
먼데이 모닝 마켓
이곳은 재미있는 재료로 가득 찬 공간이다. 홈그라운드와 장진우 식당에서 셰프로 일했던 김혜미, 젠틀몬스터의 공간 디자이너로 일했던 유뱅, 탬버린즈와 39etc의 디자이너 김어진, 컬랙트의 빈티지 가구 딜러 제이미가 함께 만들었다. 이들은 먼데이 모닝 마켓이라는 이름으로 F&B 컨설팅을 병행하면서 새로운 식재료를 소개하는 팝업 이벤트로 우리 식탁에 흥미진진함을 더한다. 지난 6월에는 이곳에서 첫 번째 팝업 마켓 ‘캔 바Can Bar’를 열어 남다른 개성과 감각을 발휘하기도 했다. 통조림과 내추럴 와인을 선보인 이 팝업 마켓에서는 트러플 정어리, 올리브 오일에 담긴 고등어, 갈릭 칠리 대구 등 통조림에 들어 있는 식재료로 요리한 음식으로 눈과 입을 즐겁게 했다. 통조림이 이렇게나 맛있는 음식이었는지 재발견한 기회. 통조림은 보통 저렴한 식재료라거나 건강에 해롭다는 인식이 있는데, 높은 품질의 고급 식재료로서의 통조림의 세계를 새로 알게 했다. 선명한 노란색 로고는 보기만 해도 쨍한 느낌을 주며 이곳 분위기를 한결 밝힌다. 앞으로도 다양한 테마와 방법으로 새로운 식재료를 선보일 예정으로, 공원을 지척에 두고 개성 넘치는 요리를 경험하는 시간은 산뜻하고 설렌다.
“요식업계에 종사했던 김혜미 셰프에게는 월요일이 주말의 시작이라 월요일 아침을 가장 좋아했다. 먼데이 모닝 마켓은 보통은 기피하는 월요일 아침을 기쁘게 맞이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지은 이름이다. 친숙한 단어를 조합해 만들었기에 가독성이 떨어지는 것을 차치하고 알파벳을 거꾸로 뒤집어 로고를 완성했다. 다양한 콘셉트의 마켓이 열릴 예정이라 어떤 콘셉트에도 잘 어울려야 한다는 점을 최우선으로 삼았다.” _ 김어진 디자이너
수티의 패키지 디자인.
더현대 서울에 위치한 수티 매장.
기획 KMC(대표 김재균ㆍ조준모ㆍ신재우)
BI 디자인 강민경
공간ㆍ가구ㆍ조명 디자인 더 스퀘어(대표 정성규) @thesquare_design
운영 시간 월~일요일 10:30~20:30
주소 서울시 영등포구 여의대로 108 더현대 서울 지하 1층
인스타그램 @tteurak_jk
오픈 시기 2021년 2월
수티
수티는 청담동의 뜨락, 삼각지의 몽탄, 신당동의 금돼지 식당을 운영하는 고깃집 3대장이 공동 설립한 KMC의 그로서란트 브랜드다. 코리아 미트 클럽이라는 뜻의 KCM은 세 브랜드의 장점을 활용해 코리안 비비큐를 한 단계 더 발전시키고자 차린 육류 전문 F&B 회사다. KCM이 추구하는 방향성은 해외 진출. 수티는 그 밑거름이 될 첫 번째 프로젝트다. 더현대 서울에 위치한 수티는 ‘고기에 대한 모든 것’이라는 뜻으로, 각 고깃집의 방식과 노하우로 에이징한 고기를 한곳에서 구매할 수 있고, 이 재료를 활용한 간단한 요리를 먹을 수도 있다. 일반 정육 매장과 다르게 캐주얼하고 스타일리시한 디자인도 눈에 띈다. 그중 알루미늄 접시에 고기를 담아 진공포장한 패키지 디자인은 과대 포장을 하지 않고도 개성 있는 패키지 디자인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여기에 완성도 높은 BI까지 더하면 마치 높은 등급을 받은 식품처럼 그럴싸한 모습이 완성된다. 향후 고기뿐 아니라 육류와 어울리는 반찬, 밀키트, HMR 제품 등 더욱더 다채롭게 제품을 구성하는 것이 수티의 목표. 고기로 뜻을 모은 이들의 아이디어는 서로를 발전시키는 동시에 각각의 브랜드를 돋보이게 하는 주도면밀한 움직임이다.
‘소금’과 ‘집’을 결합한 직관적인 로고.
소금집의 가공육 제품.
기획ㆍBIㆍ공간 디자인 소금집 (대표 장대원ㆍ조지 더럼), salthousekorea.com
시공 백비트 랩(대표 윤주현)
인스타그램 @salthousekorea
오픈 시기 2016년 2월
소금집 델리
2016년 론칭한 소금집은 30여 종의 가공육을 판매하는 브랜드다. 가공육을 기반으로 한 샌드위치와 오븐 요리, 샤퀴테리 등을 선보이는 소금집 델리도 운영한다. 남유럽과 영미권 기반의 이 식재료는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수입에만 의존했기 때문에 레스토랑에서나 접할 수 있는 메뉴였다. 그러나 소금집의 활약으로 한층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지금의 식문화가 만들어졌고, 온오프라인을 막론하고 사업이 날로 성장하고 있다. 소금집은 요리사이자 연주자인 조지가 홈메이드 베이컨을 만들고, 그와 함께 밴드로 활동했던 장대원이 돕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사업화되었다. 브랜드 론칭 초기에는 가공육에 얽힌 재미있는 스토리텔링을 앞세워 맛과 체험의 흥미를 전하며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을 중심으로 마케팅을 했다. 이후 SNS를 통해 소문이 나면서 시간과 소금이 만들어내는 깊고 진한 맛이 함께 널리 전파되었다. 온라인에서의 긍정적인 반응은 오프라인 매장의 순조로운 오픈으로 이어졌다. 이 과정에는 디자이너 출신인 장대원 대표가 ‘필요에 의한 최소, 디자인하지 않는 디자인’이라는 아이디어로 디자인 아이덴티티를 정의한 것이 핵심이었다. 이는 디자인에만 국한한 것이 아니라 구성원 모두가 공감하는 사업적 지향점으로 삼았는데, 이것이 군더더기는 배제하고 본질에 충실한 브랜드라는 평가를 이끌어냈다. 또 소금집이 제조업에서 외식 시장까지 탄탄하게 성장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지난 6월에는 연남동에 파테와 키슈, 테린 등 페이스트리를 베이스로 한 메뉴와 바스크 치즈 케이크, 초콜릿 살라미 같은 메뉴를 아우르는 새로운 오프라인 매장 ‘소금집 파이샵’을 오픈한다. 이렇게 완성도 높은 맛과 경영 철학을 바탕으로 소금집은 탄탄하게 성장하며 국내 식문화의 전선을 일궈나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