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릭 길이 그린 삽화. 골든 코커럴 프레스Golden Cockerel Press에서 출간한 제임스 왕 역 복음서(1931). 서체도 에릭 길이 디자인했다. 런던 세인트 브라이드 도서관 보관.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요한복음 8:7(개역개정)
런던 웨스트민스터 대성당에 있는 ‘십자가의 길(Stations of the Cross)’(1913~1918)은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을 그린 14개의 상으로 신자들이 그리스도 앞을 차례로 지나면서 그의 고통과 희생을 묵상하는 모습의 조각이다. 또 런던 BBC 사옥 정문을 장식한 ‘프로스페로와 아리엘(Prospero & Ariel)’(1932)은 윌리엄 셰익스피어 소설 〈태풍(Tempest)〉의 등장인물을 묘사한 석상이다. 그런데 최근 두 작품을 철거하라는 시민단체의 항의가 있었다. 웨스트민스터 대성당과 BBC 관계자들도 같은 입장을 완강하게 밝혔다. 두 작품 모두 디자인계에서 서체 디자이너, 타이포그래퍼로 더 잘 알려진 에릭 길Eric Gill(1882~1940)의 작품으로 런던의 중요한 문화유산으로 꼽힌다.
이렇게 서체 디자이너로서 에릭 길의 서사는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그는 본래 조각가로 활동했으며 교회 내부의 부조, 기차역 사인물, 우표, 비석에 새긴 글자 등 영국의 작은 마을 곳에서조차 그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을 정도로 영국 미술공예사에 큰 발자취를 남겼다. 북 디자인, 타이포그래피, 집필 활동은 오히려 중년에 들어서 전념했다. 에릭 길은 1882년 성직자 집안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1903년부터 런던 지하철 전용 서체인 ‘언더그라운드Underground’를 디자인한 애드워드 존스턴Edward Johnston 밑에서 수학하면서 레터링을 그리고 비문을 새겼으며 이후 목조, 석조까지 작업 범위의 반경을 확장했다.
그러나 1913년 신앙심이 남달랐던 그가 천주교로 개종했다. 그리고 기계화와 산업화에 대항하는 태도로 세상과 단절을 선언했다. 그렇게 그는 몇몇 가족과 함께 수공예적 자급자족 생활에 몰입했다. 웨일스로 이주한 1924년부터는 조각뿐 아니라 서체 디자인과 인쇄업에도 종사했다. 바로 이때 너무나도 유명한 영국의 대표 서체인 길산스를 그렸으며, 덜 알려졌지만 역시나 미려한 퍼페추어와 솔러스를 디자인했다. 1928년 또 한 번 거처를 옮긴 후 에릭 길은 집필에 전념하며 북 디자인과 목판 작업으로 여생을 보냈다. 그리고 1940년에 폐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1966년에 쓴 에릭 길의 인생사는 성인 그 자체였다. 영국 디자인과 미술사에 남을 훌륭한 인물로 그려진 전기였다. 그러나 디자인과 미술계 인물을 다루는 영국 작가 피오나 매카시Fiona McCarthy(1940~2020)가 1989년에 펴낸 에릭 길의 기록은 이전과 상반되게 충격 그 자체였다. 예술적 창작과 종교적 고찰이라는 이름 아래 벌인 그의 성도착과 관련한 만행이 담겨 있기 때문. 에릭 길은 수년간 그의 누이를 비롯해 자신의 딸들과도 근친상간을 저질렀고 심지어 키우던 개에도 성적 실험을 했던 사실을 자필로 남겼으며 피오나 매카시는 이 일기를 바탕으로 그의 일생을 다시 기록했다. 하지만 이 전기가 출간되던 당시 매카시는 디자인, 미술계에서 괄시를 받았고 심지어 에릭 길의 과거를 덮으려는 움직임이 우세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이러한 사실이 점점 더 분명하게 밝혀지자 에릭 길에 대한 재조명이 시작되었고, 성범죄자가 만든 ‘십자가의 길’과 ‘프로스페로와 아리엘’을 당장 철거하라는 시민들의 목소리가 거세졌다.
이내 길산스를 사용하는 펭귄북스와 BBC에 대한 불매 운동도 일어났다. 하지만 여전히 에릭 길의 작업은 건재하다. 어린이 신도를 성추행했음에도 ‘십자가의 길’은 여전히 웨스트민스터 대성당을 장식하고, BBC 역시 길산스를 전용 서체로 사용하며, ‘프로스페로와 아리엘’ 역시 여전히 방문자를 환영하고 있다. 에릭 길의 손은 이렇게 세상에 남길 만한 작품을 만들었고, 그 손을 모아 하늘에 기도했고, 그의 누이에게, 그리고 어린 딸들에게 만행을 저질렀다. 그리고 스스로 저지른 일을 자필로 썼다. 여기에서 ‘작가와 작업을 분리시킬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남는다. 영감이라 함은 작가의 삶 전체에서 우려낸 결과물이다. 그의 이념, 사상, 성장 배경 등 경험 전체에서 비롯된 ‘무엇’이 위대한 작품을 만든다고 할 수 있다. 곧 작가와 작업은 분리할 수 없다는 주장이 된다.
반대로 한 개인으로부터 어떤 작품이 탄생하지만, 그것이 위대한 작품이 되는 데에는 우리의 참여, 즉 관람객의 동의 없이 불가능하다는 의견도 있다. 작가는 매개체이지 절대적인 창작자가 아니라는 주장이다. 참고로 바로크의 대표적인 화가였던 카르바조Caravaggio는 온갖 만행과 살인을 저질러 유배당했고, 너무나 유명한 독일 작곡가 바그너는 공공연한 반유대주의자였으며, 미국 공포 소설의 아버지로 평가받는 러브크래프트는 내로라하는 인종차별주의자였다. 그뿐인가. 영국 총독 윈스턴 처칠은 괴팍한 난폭군에다 히틀러에 버금가는 백인 우월주의자이자 반유대주의자였고, 유명한 패션 브랜드 휴고 보스의 창시자는 나치 당원으로 나치 유니폼을 디자인했다.
또 샤넬 창시자 코코 샤넬조차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에서 활동한 나치 스파이였다는 사실이 최근에야 밝혀졌다. 에릭 길이 남긴 유산은 이 논쟁에 또 다른 측면을 제시하고 있다. 〈타이포그래피에 관한 에세이〉, 펭귄북스의 표지 디자인, BBC 로고 등 작가의 업적을 완전히 배제하기는 어렵지만, 분명 ‘십자가의 길’과 ‘프로스페로와 아리엘’ 그리고 자신의 딸들을 그린 그림은 이전의 시선으로 바라볼 수 없을 것이다. 에릭 길을 둘러싼 상반된 관점과 논쟁은 앞으로도 당분간 이어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