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키지 디자인 롯데칠성 디자인센터
레트로가 대세로 자리 잡기 전부터 레쓰비는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브랜드 이미지를 잘 간직해왔다. 캠퍼스, 도서관을 누비며 풋풋한 사랑의 열병을 이겨내는 청춘들의 손에는 어쩐지 항상 레쓰비가 들려 있었다. 실제로 레쓰비는 1990년대 캔 커피 시장이 젊은 소비자층으로 확대되는 데 매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당시 신인 배우 전지현이 버스에서 “저 이번에 내려요”라고 말하는 장면은 숱한 패러디를 양산하며 한국 TV 광고 역사에 한 획을 긋기도 했다.
언제나 한결같은 모습으로 대중의 곁을 지켜왔지만, 이를 변화를 부정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선 곤란하다. 아니, 오히려 그 반대다. 롯데칠성음료는 국민 캔 커피라는 수식어에 안주하지 않고 다양한 실험을 모색했다. 2019년 이색적인 해외 커피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파악해 연유 커피와 솔트 커피로 대표되는 ‘레쓰비 아시아 트립’을 출시하고, 지난해 눈에 띄게 증가한 대용량 커피에 대한 니즈를 반영해 ‘레쓰비 그란데’를 선보인 것도 같은 맥락이다. 연간 판매량 4억 개. 레쓰비가 이처럼 독보적 위치를 점유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소비자 심리와 트렌드를 파악하기 위해 골몰한 롯데칠성음료만의 남다른 고민과 노력이 서려 있다.
그런 레쓰비가 최근 출시 30주년을 기념하는 한정판 패키지를 선보였다. 이번 프로젝트는 기존 무드를 오늘날에 맞게 재해석하는 방식으로 디자인한 점이 눈길을 끈다. 흔히 ‘재해석의 결과물’이라고 하면 단순 자기 복제의 함정에 빠지기 십상이지만 이번 레쓰비의 새 옷은 디자이너의 상상력을 가미한 감성적 복원이라는 점에서 눈여겨볼 만하다. 프로젝트를 진행한 롯데칠성 디자인센터는 특유의 파란색 브랜드 컬러를 유지하고 출시 해인 1991년을 상징하는 엠블럼을 넣어 헤리티지를 강조했다. 롯데칠성 디자인센터의 김민지 디자이너는 이번 30주년 기념 패키지 디자인을 위해 팀원들이 총동원해 역대 패키지를 모조리 스터디했다고 귀띔했다.
트렌디한 레트로 감성을 살리는 동시에 명확한 차별화 전략을 구사하기 위해 빈티지한 학용품에서 얻은 영감을 활용하기도 했다고. 파란 캔에 둘러진 하얀 선을 보고 있자면 왠지 모르게 옛날 공책이 떠오르면서 디자이너 말에 수긍하게 된다. 여기에 시원하게 뻗은 고딕 서체에서는 오래된 종이 신문의 헤드라인을 보는 듯한 친숙한 인상을 받는다. 온라인에서만 구매할 수 있는 스페셜 패키지도 출시했는데 1991년 첫 출시 당시 패키지에 사용한 레터링을 다듬어 그때 그 시절 레쓰비의 모습을 재구성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이번 레트로 패키지 디자인에서는 한 자리에 머물지 않고 꾸준히 변화를 추구하는 동시에 브랜드의 감수성을 소중히 지킬 줄 아는 브랜드의 단단함이 느껴진다. company.lottechilsu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