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4월 28일은 476번째 충무공 이순신 탄신일. 우리 역사를 대표하는 위인이지만 막상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그를 연구하고 재현해 일상에 끌어들인 주역들이 있다. 이순신 장군을 모티프로 각자의 분야에서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 있는 3인의 크리에이터를 만났다.
ㅇ 멀티 아티스트 김세랑 “사람들에게 이순신 장군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를 물으면 대다수가 2가지를 이야기합니다. 광화문의 이순신 동상과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 속 김명민 배우죠. 그만큼 이순신은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잘 알고 있지만 실상 누구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위인입니다.” 미니어처, 영화 미술, 회화 등 여러 분야에서 활약해온 멀티 아티스트 김세랑. 지난 30년간 피겨를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리는 데 선구자적 역할을 해왔다. 2000년대 초반부터는 이순신 장군의 피겨 작품으로 주목받았는데, 특히 2013년 작품은 까맣게 그을린 피부와 깊게 팬 주름 등을 사실적으로 표현해 학계와 세상에 충격을 안겼다. “작품을 발표한 뒤 이순신 장군을 어떻게 이렇게 늙고 거칠게 표현할 수 있느냐며 항의와 비난도 많이 받았어요. 하지만 오랜 시간 제가 연구한 이순신 장군은 표준영정 속 모습처럼 온화하고 평화로운 인물이 아닙니다. 유일한 실제 기록인 <난중일기>를 보면 ‘인간 이순신’의 면면을 고스란히 알 수 있어요. 굉장히 예민하고 깐깐한, 걱정과 근심을 달고 살지만 나라의 위기 앞에서 지친 몸을 이끌고 전쟁터로 나가는 늙은 장수의 모습이 드러나죠. 전쟁과 훈련이 일상인 데다 고질병을 앓고 있었고 조정과의 갈등으로 고초를 겪기도 한 인물의 얼굴이 어땠을까요? 피골이 상접하고 백발로 쇠한 모습이 어쩌면 당연하지요.” 김세랑 작가가 실물 6분의 1 사이즈로 복원한 이순신 장군의 모습. 오랜 시간 ‘인간의 양면성’을 작업의 주제로 삼아온 김세랑 작가에게 <난중일기> 속 이순신 장군은 매력 그 자체였다. 역사 속에서 ‘미화’된 위인이 아닌, 한 인간으로서의 이순신을 조명하는 데 힘을 쏟게 된 이유다. 실제 모습을 복원하기 위해 그는 전국의 관련 박물관과 기관을 샅샅이 뒤지고 이순신의 5대 후손인 이봉상 장군의 초상 등을 참고해 퍼즐 조각 맞추듯 외형을 복원했다. “여러 자료를 토대로 추측해보면 이순신 장군은 선천적인 영웅 유형의 인물은 아니었어요. 전쟁 걱정으로 매일 밤잠을 설치고 조정으로 인해 울화가 치밀기도 했던 평범한 한 인간이었죠. 기록에 따르면 장수로서 무예나 궁술 실력이 특별히 뛰어난 편도 아니었고요. 그럼에도 모든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고 여러 전쟁을 승리로 이끈 겁니다. 위대한 사람이 훌륭한 일을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평범한 인물이 스스로를 뛰어넘는 결과를 이끌어냈을 때 그것이야말로 ‘신화’가 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이것이 많은 이에게 실제 이순신 장군의 모습을 알리고 싶은 가장 큰 이유입니다.” 아티스트로서 작업을 시작한 지 올해로 30주년을 맞이한 김세랑 작가는 조만간 실물 4분의 1 사이즈의 새로운 이순신 피겨를 공개할 준비에 한창이다. “지금까지 얼굴은 최대한 실물을 복원하려 했지만 복식과 장비는 널리 알려진 조선 후기 장수의 것을 차용했어요. 보는 이들의 이질감을 줄이려는 의도이기도 했고, 실제 이순신 장군이 활약한 당대의 자료가 부족한 면도 있었지요. 하지만 이번에는 16세기 고위급 무장의 복식과 장비까지 제대로 고증한 완벽한 모습을 최초로 재현해 선보일 예정입니다. 기대하셔도 좋아요. (웃음)” 한호림 디자이너가 그래픽을 통해 재현한 ‘진짜 싸울 수 있는 거북선’. 거북선은 2층 구조였다? 거북선은 철갑선이었다? 용두 아가리로 포를 쏘았다? 로스터리 카페 충무공 강현준 대표 용봉문을 새긴 항공 점퍼 어바웃엠브로 송원주 대표
이순신 장군의 실제 얼굴을 복원하다
디자이너 한호림의 책 <진짜 싸울 수 있는 거북선>
1592년 임진왜란 직전에 완성해 나라를 구하는 데 크게 기여한 거북선. 대한제국 말에 원형이 소실된 후 단편적인 정보에 상상이 더 해진 모형 거북선이 전국의 전시장을 장악하게 되었고, 거북선 구조에 얽힌 진실은 가려지고 말았다. 이런 문제점에 주목한 디자이너 한호림은 2019년 디자인하우스와 함께 <진짜 싸울 수 있는 거북선>을 출간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영어>, <오리선생 한호림의 서양문화 통찰기 Insight> 등의 베스트셀러를 쓴 한호림은 그래픽 디자이너이자 저술가. 해군에서 바다와 배를 직접 경험한 그는 거북선이 실제 어떤 구조였고 어떻게 움직였는지 의문을 풀기 위해 50여 년간 국내외에서 자료를 수집했다. 책에는 거북선의 설계도를 비롯해 구조, 노의 개수, 돛과 닻의 쓸모, 용두의 형태 등이 세밀한 그래픽으로 담겨 있다. 책을 통해 거북선에 관한 대표적인 오해와 진실을 살펴본다.
“1980년대 조선학 분야의 권위 있는 교수가 거북선 1층은 선저로 창고 등으로 사용했고, 2층에서는 격군이 서서 노를 젓는 동시에 화포병이 대포를 쏘았다고 발표한 후 대다수의 모형 거북선은 2층 구조로 제작되었다. 하지만 노와 대포가 한자리에 엉켜 있는 구조로 승리를 이끄는 게 과연 가능했을까? ‘진짜 싸울 수 있는 거북선’은 당연히 3층 구조로 설계되어 있다. 1층에는 창고 등 격실이, 2층에는 노를 젓는 공간이, 3층에서는 대포실이 위치한다.”
“이는 일본에서 전해진 말로, 그들의 시선에는 지붕에 날카로운 철침이 박힌 거북선이 조총에도 끄떡없다 보니 철갑선이라고 오해할 만했다. 하지만 세상에 최초의 철갑선이 등장한 것은 1차 산업혁명 이후인 1850년대, 영국에서다.”
“거북선의 상징으로 통하는 뱃머리의 용두는 지금까지 크게 2가지로 알려져 있는데, ‘ㅡ’ 자와 ‘ㄱ’ 자 형태다. 두 형태 모두 하단에 닻줄을 감아 올리는 부피가 큰 권양기가 놓여 있어 대포를 설치해 쏘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으로 보인다.”
커피와 충무공의 색다른 만남
‘송리단길’로 유명한 석촌호수 옆 골목을 걷다 보면 독특한 깃발이 가득한 건물을 마주하게 된다. 거칠고 힘 있게 쓴 붓글씨 ‘충무공’이 눈에 띄는 이곳은 지난해 4월 오픈한 ‘로스터리 카페 충무공’. 입구로 들어서면 푸른 바다를 연상시키는 파란 벽과 거북선 모양의 커피바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 ‘충무공’을 오픈하기 전 송리단길에서 2년 정도 ‘밋치하우스’라는 카페를 운영했어요. 당시 매우 안타까웠던 점이 카페, 음식점뿐 아니라 대다수 매장에 일본식 콘텐츠가 넘쳐나는 것이었죠. 역사나 외교적 문제에 관심이 많기도 하지만 꼭 그 때문 이 아니라도 한 가지 콘텐츠가 천편일률적으로 소비되는 문화는 건강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시사할 만한 브랜드를 고민하던 강현준 대표는 우리 역사 속 강건하고 용맹한 인물의 표본인 충무공 이순신 장군을 떠올렸다. “‘한국적인 것’은 한복, 한옥, 전통차 외에도 다양한 요소들이 존재하고, 그것들을 색다른 방식으로 풀어내 현대와 잘 접목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새로운 시류를 이끄는 독보적이고 차별화된 브랜딩을 위해 그는 디자인 스튜디오 콜과 함께 공간과 콘텐츠를 다듬었다. 거북선을 모티프로 한 인테리어와 브랜드 심벌, ‘충무공’, ‘한산도대첩’ 등의 시그너처 메뉴까지 이순신 장군의 삶을 모티프로 일관된 결을 완성했다. “기존의 것을 그대로 따르기보단 우리 문화가 조금이라도 나은 방향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하고 싶어요. 머지않아 충무공 2호점도 선보일 계획입니다.”
자수를 기반으로 역사를 접목한 캐주얼웨어를 소개해온 패션 브랜드 ‘어바웃엠브로About Embro’. 1세대 자수 명장인 아버지의 영향 과 우리 역사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2018년 브랜드를 론칭한 송원주 대표는 지난해 충무공 이순신 탄신 475주년을 기념해 ‘이순신 용봉문 항공 점퍼’를 출시했다. “어린 시절부터 이순신 장군을 좋아했어요. 영국의 넬슨 제독 못지않게 훌륭한 장군이지만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지지 못한 것이 늘 아쉬웠죠.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도 이순신 장군과 한국의 미를 알릴 아이템을 구상하다 용봉문 자수를 새긴 항공 점퍼를 기획했습니다.” ‘용봉문’은 용과 봉황의 무늬를 뜻하는 말. 송원주 대표는 이순신 장군의 5대손인 이봉상 장군의 투구를 기반으로 ‘현대적 용봉문’을 완성했다. “임진왜란 당시 조선 장수의 투구에 비하면 문양이 화려하지만 한국의 미를 해외에 알리기에는 더 적합할 것으로 판단했어요. 실제 후손의 계보를 잇는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고요. 국가기관과 전통 갑주 명인 등 여러 전문가, 충남 아산에 계신 이순신 장군의 후손 분들께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투구에 새겨진 조각은 25만 침의 자수로 복원됐다. 전면에는 용, 후면에는 봉황을 배치했고 소매에는 충무공을 상징하는 한자 ‘帥(수)’를 새겼다. 점퍼 안감에는 이순신 장군의 친필휘호인 ‘필사즉생 필생즉사必死則生 必生則死’도 담았다. “해외에 이순신 장군을 널리 알리는 게 목표예요. 앞으로도 대중적이고 친근한 아이템을 통해 역사 속 위인들을 소개하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