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 가구라면 한 번쯤 살아보고 싶은, 디자인이 멋진 집만 골라 소개하는 부동산이 있다. 누구나 원하는 집을 찾을 수 있도록 서울 곳곳을 누비는 전명희 대표를 만났다.
사무실 한쪽 벽에 선반을 설치하고, 아기자기한 소품을 올려두었다.
각 매물마다 진심이 담긴 사진과 글을 써서 올리는 전명희 대표. 그래서 늘 부족한 것은 시간이다.
“대부분의 손님은 집 자체에 대한 관심보다 그동안 얼마가 올랐는지에 대해 관심이 더 많더라고요. 저는 작은 집이더라도 뻔하지 않고, 직접 거주할 사람을 대상으로 부동산을 열고 싶었어요.” _전명희
전명희 대표가 고등학생이던 20여 년 전, 건축가 김진애의 인터뷰를 처음으로 마주했다. 남자 건축가가 대부분인 건축업계에서 당당하게 자기 소신을 밝히는 모습이 무척 멋져 보였다. <여자로 태어났으면 건축을 꿈꾸자> 를 비롯한 그의 저서를 읽으며 자연스레 건축학도의 길을 걸었다. 건축학과를 졸업한 뒤, 우연한 계기로 건축가 출신 사람들이 함께 운영하는 도쿄R부동산을 알게 되었다. “들으면 들을수록 그들이 하는 프로젝트가 매력적으로 다가왔어요. 가벼운 레노베이션을 통해 오래된 건물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고, 동네에 활기를 불어넣거든요. 한국도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죠.” 디렉터 바바 마사타카의 이야기를 직접 듣고 싶어 무작정 일본행 비행기표를 끊었다.
그에게 들은 이야기는 크게 두 가지. 첫 번째는 큰돈을 벌 수 없을 것이라는 것, 두 번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고 싶다면 일단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따고 부동산에서 일해볼 것. 명확한 목표를 세우고 나니 길이 보였다. 그는 1년 만에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따고 곧바로 신도시에 위치한 한 부동산에서 일을 시작했다. “2년간 일했는데, 생각보다 무척 힘들었어요. 대부분의 손님은 집 자체에 대한 관심보다 현재 시세가 얼마인지, 그동안 얼마가 올랐는지에 대해 관심이 더 많더라고요. 저는 작은 집이더라도 뻔하지 않고, 직접 거주할 사람을 대상으로 부동산을 열고 싶었어요.”
2021년 현재 그는 서울시 종로구에 위치한 별집 공인중개사사무소 대표다. 이곳은 우리에게 익숙한 동네 부동산의 모습과는 다르다. 서울과 경기에 있는 매물을 취급하지만, 평범한 구조보다는 다양한 형태와 평면의 집을 소개하는 데 의의를 둔다. 거주자가 하는 일과 생활 패턴에 맞는 집을 추천해주기도 한다. 첫 매물은 건축가가 지은 다세대주택이었다. “건축가가 지은 집이라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이 회장님 집같이 으리으리한 것을 떠올리지만 괜찮은 다세대주택이 많아요. 서가건축부터 아파랏체, 에이라운드 건축사사무소의 매물을 시작으로 점점 늘려갔어요.” 현재는 특색 있는 사무실과 상가 건물까지 범위를 넓혔다.
지역 기반의 부동산은 자리에 앉아 있기만 해도 매물이 쏟아져 들어오지만, 별집공인중개사사무소는 그렇지 않다. 건축가를 알아보고, 연락하고, 만나서 이야기하고, 공간 사진을 찍고, 공간 소개 글을 써서 올리는 일까지 모두 전명희 대표의 몫이다. 매물을 보고 연락이 오면 직접 현장 중개까지 나가는데, 매물이 전역에 퍼져 있다 보니 하루에 네 집 이상 방문하기가 어려울 정도다. “몇 년 사이 특색 있는 건물이 많이 늘었어요. 이런 집은 이른바 ‘집 장사’하는 분께 의뢰하는 것보다 설계비와 시공비가 훨씬 많이 들죠. 그래도 남다른 마인드를 지닌 건축주가 늘어나고 있는 것 같아 내심 기뻐요.”
서울 전역을 돌아다니는 특성상 중심부인 종로구에 사무실을 열었다. 작지만 아늑한 느낌이 드는 실내.
건축설계를 전공했기 때문에 집을 보는 감각과 눈썰미도 남다르다. 종종 직접 도면을 그려 올리기도 한다.
1인 가구 집 구하기 노하우
1 원룸은 공간이 굉장히 한정적이다. 그 공간에서 주로 무엇을 하는지 생각해본 뒤 생활 패턴에 잘 맞는 집을 구해야 한다.
2 집이 위치한 동네도 중요하다. 주변에 즐길 거리가 충분히 있는 곳이어야 한다.
3 기본 요소지만 원룸은 환기가 잘 안 되는 곳이 꽤 많다. 창은 최소한 두 개 이상이어야 바람이 원활하게 들어오고 나간다.
4 굳이 남향에 집착하지 말자. 남향이 아니라고 해서 실내가 어두컴컴한 것은 아니다.
5 1인 가구 생활 면적이 적기 때문에 공용부가 넓거나 조경이 잘된 곳이 좋다.
전명희 대표의 추천! 살고 싶은 다세대주택
글과 사진 전명희
홍은동 써드플레이스2
서울시 공동체 주택(민간 임대형)*입니다. 에이라운드 건축의 박창현 소장이 직접 설계하고 운영하는 임대주택이에요. 시세보다 저렴한 금액으로 퀄리티 높은 집에서 거주할 수 있고, 무엇보다 평면·공간 구성이 독특해요. 직선과 곡선을 모두 만날 수 있고, 다양한 레벨(단차)을 경험할 수 있답니다. 공용부는 유일주택과 특징이 비슷하나, 이곳은 공동체 생활을 필수로 해야 하는 곳이에요. 건물 4층에 있는 텃밭과 건물 내에 있는 식물을 함께 가꾸고, 1층의 공용 공간에서 개인 작업을 하거나 음식을 같이 만들어 먹기도 합니다.
*독립된 커뮤니티 공간을 갖춘 주거 공간으로, 공동체 규약을 마련해 입주자 간 소통·교류를 통해 생활 문제를 해결하거나, 공동체 활동을 함께 하는 새로운 형태의 주택.
목동 로킴스 브릭
건물 외관부터 내부까지 아늑한 느낌이 강하게 드는 집이에요. 내부는 원목과 조명, 부드럽게 스며드는 햇빛이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어 더욱 안정적인 느낌이 듭니다. 옷과 침구만 가져오면 될 정도로 완벽하게 갖추어 다른 건 신경 쓰지 않아도 되고, 세 가지 타입의 평면 중 취향에 따라 호실만 선택하면 돼요. 보안을 위해 모든 관을 매립했고, 건조기도 세대마다 옵션으로 갖추었죠. 사각지대가 없도록 CCTV를 설치하고, 오후 9시까지 건물에 환하게 불이 켜져 있어요. 임대인이 1층에서 카페를 운영 중이라 하루에 한 잔 무료 커피도 마실 수 있어요.
봉천동 화운원
서울대입구역 인근에는 오피스텔이 많은데요, 이곳은 참 특별합니다. 취향에 맞춰 집을 선택할 수 있도록 평면을 다양화했고, 세대수를 줄여가면서까지 집 안에 외부 공간(발코니, 베란다)을 만들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수익을 위해 1층에 상가를 만드는데, 화운원은 라운지를 만들었어요.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거나 기계식 주차장에서 차가 나올 때까지 앉아서 기다릴 수 있지요.
남가좌동 토끼집
한 청년 단체의 셰어하우스를 염두에 두고 지은 집이었는데, 현재는 일반 임대주택처럼 세를 놓고 있어요. 4층의 두 세대는 복층 구조에 한 번 더 사다리를 타고 다락으로 오를 수 있는 재미있는 집이에요. 요즘 재택근무를 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는데, 공간을 분리해서 사용하기 좋은 집입니다. 사실 매일 사다리를 타고 다락을 오르는 게 쉽지는 않지만 약간의 불편함이 재미를 만들어준다고 생각해요. 이런 공간에서 경험한 것이 나중에 다른 집을 찾거나 집을 지을 때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집은 편리성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 안에서 어떤 추억을 만들게 되는지가 더 중요한 것 같아요.
전농동 유일주택
저의 첫 매물이라 더 애착이 가는 집입니다. 대학가 원룸의 특성상 면적(약 4평)은 작은 편이지만, 공용부까지 공간을 확장해서 사용할 수 있도록 설계했습니다. 일반적인 복도+계단부를 과감하게 오픈함으로써 머물고 싶은 공간으로 만들었고, 복도를 넓게 설계해 의자와 독서등(콘센트도 있어요)을 두고 근사하게 조경까지 해놨어요. 볕이 좋은 날은 차를 마시며 책을 읽을 수 있죠. 앞집과의 거리도 멀어 프라이버시까지 보장되고요.
동숭동 조은사랑채
낙산 아래에 자리 잡아 창밖 풍경이 근사한 집이에요. 개인적으로 녹색이 보이는 전망을 좋아해서인지 한 번쯤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상도 받았고요. 혜화동과 거리도 가깝고 동네도 조용해서 편안하게 쉬는 ‘사색思索’이라는 단어가 잘 어울리는 집입니다. 자연을 최대한 끌어들이기 위한 ㄴ자 형태의 창문을 사용한 것도 멋지고, 건물 입구에 들어서면 만나는 대문(메인 현관)부터 무언가 내 공간으로 진입한다는 든든한 마음이 들게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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