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빅데이터 #자동설계 #랜드북 #경계없는작업실
스페이스워크에서 개발한 빅데이터·인공지능 기술 기반의 토지 개발 사업 타당성 분석 플랫폼 랜드북.
후암동 복합 주거
디자인 경계없는작업실
주소 서울시 용산구 두텁바위로
연면적 494.36㎡
규모 지하 1층, 지상 5층
준공 시기 2017년
건축가는 디자인 말고도 해야 할 일이 많다. 법규를 살피고 규모를 검토하며 견적을 분석하고 현장도 감리해야 한다. 꿈과 현실, 투자와 수익 사이를 파고드는 일이라는 거다. 건축의 가치는 그렇게 복잡하게 창출된다. 이런 건축의 가치를 가장 혁신적인 방식으로 만들어내는 이들이 있다. 바로 경계없는작업실과 인공지능 건축 시스템을 만드는 스페이스워크다. 경계없는작업실은 2013년 문주호, 조성현, 임지환이 공동으로 만든 건축 사무소다. 그리고 2016년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마주한 문제들을 기술로 해결하고자 평소 컴퓨터 공학에 관심이 많았던 조성현이 스페이스워크를 만들었다. 스페이스워크는 국내 최초로 인공지능 건축설계 기술을 개발해 상용화한 프롭테크 스타트업이다. 이곳에서는 전산학, 물리학, 경제학을 전공한 엔지니어들이 부동산 개발과 건축 영역을 기술로 엮는다. 대표적인 프로젝트는 랜드북(landbook.net)으로, 심층 강화 학습을 통해 최적의 수익 시나리오를 도출해주는 인공지능 토지 분석 프로그램이다. 땅 면적, 용적률, 건폐율, 건축 법규 등을 모두 고려한 뒤 개발 비용과 임대 및 분양 수익까지 추정해 알려준다.
주어진 조건에서 최적의 이익을 보려면 몇 층 규모의 건물을 설계하면 좋을지 배치도, 평면도, 단면도, 3차원 모델링 투시도를 보여주는 것이다. 인간은 그중에서 적합하다고 생각하는 모델을 선택하면 된다. 그러면 이제 건축가는 사람들의 경험과 취향, 용도, 기분 등을 고려한 감각적인 논리를 더하는 일에 승부를 걸 수 있다. “프로젝트를 위해 수백여 곳의 토지를 검토하고 분석하면서, 복잡한 규모 검토 과정이 소규모 개발이 정말 필요한 사람에게는 걸림돌이 되겠다고 판단했어요.” 조성현 대표가 랜드북을 만든 계기다. 서울 지도를 펼쳐보면 대로변이나 상업 중심 지역의 토지 가격이 안쪽에 자리한 작은 땅에 비해 현저히 높다. 또 부동산 정보는 불균형하고, 규모 검토에 들여야 하는 시간과 비용이 적지 않게 든다. 법규를 잘 알고 사업성을 평가하는 전문가의 손길이 소규모 필지나 자투리 땅에는 잘 닿지 않는 이유다.
경계없는작업실이 디자인한 후암동 복합 주거. ©신경섭
따라서 전문가의 도움을 받기 어려운 사람은 규모 검토에서부터 높은 장벽에 맞닥뜨리게 된다. 그뿐 아니라 이러한 상황은 소수의 부동산 개발업자만의 영역으로 남게 되면서 장기적으로는 또 다른 문제를 초래한다. 이를테면 분양 이후에는 관심 없는 ‘업자’들의 개발 방식이다. 한편 2018년 토지 거래액 통계를 보면 200억 원 이상 토지 거래 수는 174건인 반면 50억 원 이하 거래 수는 19만여 건이다. 높은 가격의 토지보다 낮은 가격의 토지가 압도적으로 많이 거래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는 소규모 주택 개발 시장의 가능성을 말해준다. 지난 10년에 비해 지금의 택지 개발은 10분의 1로, 재개발은 20분의 1로 감소했다는 기록 또한 대규모 아파트 공급 사업은 줄고 꼬마 빌딩이나 협소 주택 개발은 부쩍 늘었다는 얘기다. 앞으로도 소규모 필지에 대한 분석과 검토는 필요 영역이라는 것. 랜드북이라면 복잡한 검토 과정의 어려움을 줄이고 토지 시장의 투명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결론이다. 이렇게 누구나 토지 규모를 면밀하게 분석하고 가치를 판단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해주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 그래서 스페이스워크는 소규모 주택 정비 사업의 가능성과 사업성을 검토할 수 있도록 ‘랜드북 가로주택’ 버전도 제작했다. 가로주택정비사업은 서울시가 소규모 정비 사업 활성화를 위해 2012년 도입한 제도다.
노후한 건축물이 밀집한 주택을 정비해 주거 환경을 개선하는 사업이다. LH, SH 등 공공 기관과 지자체는 랜드북 가로주택을 사업 추진의 지표로 쓰고 있다. 땅의 가치는 주변 환경은 물론 다양한 조건에 영향을 받으며 변화한다. 또 건축 디자인 개발 방식에 따라 공간의 가치는 또다시 결정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경계없는작업실이 디자인한 후암동 다가구주택은 주목할 만하다. 이곳은 언덕에 위치한 삼각형 모양의 필지로 소위 사업성이 낮은 땅이었다. 이러한 조건에서 공간의 가치를 극대화하기 위한 경계없는작업실의 디자인 솔루션은 탁월했다. 우선 주변 건축물의 층별 단위 면적당 임대료를 계산했더니 2층의 임대료가 가장 적다는 분석이 나왔다. 이들은 2층 한가운데 공간을 뚫어 개방감을 확보하고 상업 공간으로 설계했다. 결론적으로는 임대 수익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건축계에서 터부시했던 부동산 개발 영역을 오히려 투명한 방식으로 돌파한 것이다.
결국 2018년 젊은건축가상을 수상하며 큰 주목을 받았다. 부동산 개발 논리에 대응하는 상황과 조건을 논리적으로 분석하고, 완성도 높은 해결 방안과 결과물을 보여주었다는 평가였다. 또 건물을 짓기 위한 기본적인 정보를 다수가 공유할 수 있게 한 점도 수상의 중요한 이유였다. 참고로 이들은 당시에 “건물을 잘 디자인하면 돈을 더 벌 수 있다”고 직설했다. 이들의 발언은 그동안 건축계에서 논하던 거대하고 진지한 담론에 비해 아주 신선했다. 현재는 경계없는작업실은 스페이스워크의 자회사다. 스페이스워크는 지난해 KB인베스트먼트, 스톤브릿지벤처스, 스틱벤처스 등으로부터 총 80억 원 규모의 시리즈A 투자를 유치했고 지금까지 100억 원이 넘는 누적 투자 금액을 기록했다. 요즘은 랜드북을 토지 매매 플랫폼으로 확장하는 것을 준비 중이다. 운용 가능한 예산과 원하는 조건을 입력하면 해당하는 토지를 중개해주는 서비스다. 또 민간 건설 주택 매입 약정 방식 사업에 참여해 공공 임대주택을 개발하는 사업에도 뛰어들었다. 적정 가격에 괜찮은 주택을 만들어 공급할 수 있는 솔루션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작년에만 80억 원 규모의 땅을 매입한 스페이스워크, 기술적인 분석으로 고른 좋은 땅에 가치를 더하는 디자인으로 완성하는 이들의 골목골목은 상상만으로도 그럴싸하다. spacewalk.te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