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어조림에 무와 감자를 넉넉히 넣으면 기름기를 빨 아들여서 맛이 훨씬 경쾌하다. 여기에 미나리를 넣어 더 향긋해진 고등어조림을 한 입 맛보시기를.
‘글 쓰는 요리사’로 잘 알려진 박찬일 씨는 ‘로칸다 몽로’와 ‘광화문 국밥’의 주방장이자 해박한 지식과 단정한 문장으로 음식과 관련한 이야기를 전하는 음식 칼럼니스트다. 그 치열한 기록이 <노포의 장사법> <백년식당> <오사카는 기꺼이 서서 마신다> 등의 책으로 나왔다. 최근엔 계절 식재료 이야기를 다룬 <오늘의 메뉴는 제철 음식입니다>를 펴냈다.
예전 신사동에는 고등어 무한 리필 식당이 있었다. 자, 무한 리필의 전제 조건이 무어냐? 재료가 싸야 가능하다는 것이다. 다른 생선도 그렇지만, 고등어는 클수록 값이 기하급수로 올라간다. 팔뚝만 한 게 한 마리에 1만 원이면, 한 뼘짜리는 한 짝에 1만 원이다. 그런 고등어가 있었기에 무한 리필하는 거였다. 고등어 하면 나는 몇 가지 이미지가 떠오르는데, ‘고등어 수영장’이라는 좀 이상한 장면이 연상된다. 하나는 그 신사동 고등어집의 부엌이고, 다른 하나는 겨울날 부산 공동 어시장의 야적지다. 신사동 그 식당은 부엌에 작은 고등어를 몇 박스고 부어놓고 손질해가며 구워댔다. 요리사가 장화를 신고 고등어로 이뤄진 수영장을 이동했다. 물속에 들어가면 사람의 발은 무뎌지고 느려진다. 마치 개울을 건널 때 사람의 발이 더디 움직이는 모양을 떠올리면 된다. 그래서 그 부엌은 고등어로 이루어진 수영장이었다. 공동 어시장도 그렇다. 경매를 할 때면 산더미처럼 고등어가 쏟아지는데, 쓸 만한 놈은 짝으로 실려 팔려나가고, 사료용으로나 쓸 작은 고등어가 부려진 공판장을 사람들은 수영장처럼 힘겹게 걸어 다녔다. 이게 다 흔해서 생긴 일이다. 이제는 고등어가 귀해서 밟고 다니다간 따귀를 맞을지도 모른다.
부산 사람들이 서울 와서 놀라는 것 중 하나가 고등어가 비싸고 작다는 사실이라는데, 진짜 부산 가보면 크고 실하고 싸다. 자갈치 소매시장에서 파는 고등어도 빳빳하고(축 처졌으면 물이 안 좋은 거다) 몽둥이만 하다. 그걸 보고 감탄하는 나를 부산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자갈치시장에는 생선구잇집이 많다. 장꾼은 물론이고 원래 시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밥집이다. 지금도 명물 식당이 건재하다. 할매집, 오복식당, 진주식당이 나란히 있다. 할매집은 원조라 하고, 유명하기로는 오복식당인데, 다 괜찮다. 서울 신사동의 그 고등어집은 이제 더 이상 무한 리필을 못 한다. 요리사가 고등어 수영장에서 헤엄칠 일도 없다. 한데 자갈치시장의 이 식당들은 무한 리필을 한다. 그렇다고 아주 작지도 않다.
단돈 몇천 원에 푸짐한 백반상을 차려내고, 고등어를 구워낸다. 이런 데는 서울말을 쓰는 게 유리하다. 옆자리 단골 어른들이 외지인에게는 간혹 막걸리를 안겨주신다. 고등어는 뭘 해도 좋지만(회도 물론 끝내준다. 양식 활고등어가 아니라면 대개는 초를 먹인 회가 대부분이지만), 나는 조림이 늘 당긴다. 생선조림당, 줄여서 생조당 당수다. 등 푸른 생선 조림은 조릴 때 기름이 빠져나가는 게 아니어서 아주 진하다. 약점도 그것 때문에 생겨난다. 기름이 많아 부담스러울 수 있다. 무와 감자를 넉넉히 넣으면 기름기를 빨아들여서 훨씬 경쾌해진다. 부산 말고도 어지간한 남쪽 지역과 울진 라인까지 고등어조림이 맛있는데, 제주도도 빠지지 않는다. 고등어잡이는 선단을 이루는데, 모선母船이 있고, 운반선과 조업선이 한 팀을 구성한다. 모선이 있다는 건 먼 바다로 나가야 고등어잡이가 수월하다는 뜻이다. 제주도는 먼 바다에 있는 섬이니 그 자체로 모선이다. 해안가에서도 월척 고등어를 낚을 수 있는 그런 동네였다. 그런 제주도도 이제는 멀리 나가야 고등어가 잡힌다고 한다. 다 귀해져서 생기는 일이다. 이번 레시피는 무와 감자를 같이 넣는다. 어떤 순수파(?)는 둘 중 하나만 넣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두 재료의 제철도 다르다. 그래도 두 가지를 같이 넣으면 상승작용을 한다. 무는 맛을 내고, 감자는 불려주고 국물의 농도를 진하게 만들어준다. 미나리의 제철은 봄인데, 겨울에 나는 건 아주 여리고 부드러워서 내가 좋아하는 재료다.
미나리를 넣은 고등어조림
재료(2인분) 고등어 1마리(중간 크기로 싱싱한 것), 국멸치 10마리(또는 작은 다시팩 1개), 무 1쪽(5cm 두께로 썬 것), 감자 2개, 미나리 1단, 양조간장 5큰술, 고춧가루 1큰술, 다진 마늘 2큰술, 설탕 1½큰술, 청주 소줏잔으로 2잔, 생강즙·후춧가루 약간씩, 펜넬 가루 팥알만큼
만들기
1 냄비에 물 1컵을 붓고 국멸치나 다시팩을 넣어 약한 불에서 우린다. 다시마를 추가해도 좋다.
2 ①의 육수에 도톰하게 썬 무와 감자를 넣고 뚜껑을 닫아 반만 익힌다.
3 간장에 고춧가루 ½큰술과 다진 마늘, 설탕, 청주, 생강즙, 후춧가루, 펜넬 가루를 넣고 섞어 양념장을 만든다.
4 고등어에 칼집을 내고 ③의 양념장 절반을 발라 1시간 둔다. 냄비에 담고 남은 양념장을 뿌려 뚜껑을 덮어 익히고, 고등어가 익으면 뚜껑을 열어 마저 조린다. 국물이 싱거우면 소금으로 간한다.
5 접시에 미나리를 깔고 ④의 고등어를 올린 후 그 위에 국물을 뿌린다. 미나리가 살짝 익으면 고등어 위에 남은 고춧가루 ½큰술를 뿌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