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경희 소풍벤처스 파트너는 한양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폴앤마크, 에듀조선, 인크루트 등 교육 관련 일을 꾸준히 한 뒤 마켓디자이너스 CCO(최고문화책임자, Chief Culture ure Officer), 투터링 공동 대표를 지냈다. 2020년부터 소풍벤처스에서 새로운 커리어를 시작했다.
소풍벤처스가 하는 일을 소개해달라.
2008년 설립한 소풍벤처스는 신생 스타트업에 투자와 액셀러레이팅을 지원하는 소셜 임팩트 투자사다. 다양한 사회문제의 솔루션을 기획하는 소셜 벤처가 빠른 속도로 성장할 수 있도록 투자한다. 매달 ‘월간 소풍’을 통해 지원 대상 스타트업을 모집한다. 나는 투자 심의를 할 때 의견을 제시하고, 선발된 회사들에 액셀러레이팅을 진행하는 역할을 한다. 초기 단계에서 스타트업의 생존율은 굉장히 낮다. 창업가들이 자주 하는 실수와 리스크를 줄이고 잘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돕는 게 나의 임무다.
월간 소풍은 매달 스타트업을 선발하는 일종의 공모전으로 보면 되나?
비슷하다. 월간 소풍은 창업 팀 중심의 투자 프로그램이다. 예전에는 스타트업을 비정기적으로 발굴하다가 2016년부터는 매 상,하반기에 기수별로 선정했다. 올해 2월부터 월간 소풍을 론칭하고 정기적으로 스타트업을 발굴하고 있다. 매달 50여 개의 지원서가 접수되며 그중에서 1~2팀이 투자 심의까지 최종 선발되는 편이다. 월간 소풍은 소셜 임팩트가 있는 영역이라면 어떤 아이템이든 관계없이 지원 가능하다. 매년 투자액이 점진적으로 증가하고 있는데 올해는 1억 원 규모다.
스타트업 심사를 할 때 어떤 부분을 주로 보는지?
우리가 투자할 수 있는 단계인지 아닌지를 먼저 판단한다. 즉 사업자등록을 하지 않은 스타트업이거나, 아이템이 구체화되지 않은 아이디어 수준이면 투자할 수 없다. 반면 신생, 초기 스타트업이 아닌 경우도 마찬가지로 투자 대상에 들 수 없다. 그다음으로 체크해할 것은 비즈니스 역량과 소셜 임팩트다. 그리고 창업자의 역량도 검토한다.
소풍벤처스가 평가 항목으로 제시하는 ‘젠더 관점의 투자 Gender Lens Investing(GLI)’ 지수가 흥미롭다. 이를 도입 한 계기와 어떻게 적용하는지를 알려달라.
재키 밴더브룩과 조셉 P. 퀸란의 책 〈젠더 관점의 투자Gender Lens Investing〉에서 제시한 GLI 개념은 투자 프로세스에 내재된 젠더 편향성과 기회의 불공정성을 바로잡기 위해 개발한 것이다. 2017년 하반기에 소풍벤처스가 투자를 결정한 스타트업 중 여성 창업가가 한 명도 없는 사태가 발생했다. 자체적으로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 진단하다가 GLI 지수 적용에 대한 필요성이 제기됐다. 그래서 체크리스트를 작성해 투자 평가를 시작했고, 2018년 여성의 날을 맞이해 소풍벤처스 웹사이트를 통해 GLI 리포트를 공개한 뒤 이를 공식화했다. 소풍벤처스는 지원자를 모집할 때 여성 창업자가 몇 명인지 항상 체크한다. 예전에 비해 여성 창업자 지원율이 증가하고 영역도 다양해지고 있다. GLI를 도입하기 전보다 소풍벤처스의 투자를 받는 여성 창업가의 비율이 30%에서 38%까지 증가했고 계속 이 수치를 더 높이기 위해 노력 중이다. 사회 분위기 역시 기회의 공정성을 강조하기 때문에 지금이야말로 여성이 창업하기 좋은 때다.
창업자 중에서는 여성이 늘어나고 있는데 투자자의 성비는 어떤가?
아직까지 많지는 않지만 앞으로는 여성 투자자가 더 늘어나지 않을까 예측한다. 최근 연세대학교에서 IR 데이가 있었는데 14명의 심사위원 중 절반이 여성이었다. 사회 전반적으로 그런 의도적인 노력을 하고 있고, 그런 측면에서 인식이 많이 바뀌는 것을 체감하고 있다.
소셜 벤처들을 보면 취지는 좋지만 수익도 낼 수 있는 비즈니스 모델인지 궁금하다.
수익 구조에 대한 고민은 필수다. 그래서 소풍벤처스에서는 소셜 임팩트와 수익 구조에 대해 동일한 비중으로 평가한다. 소셜 임팩트가 있는데 비즈니스 모델이 없거나, 반대로 수익 구조가 있는데 소셜 임팩트가 없으면 선발에서 제외된다. 후자의 경우 스타트업에서 설정한 미션이 수익을 내기 위해 현실과 타협하면서 희석되면 소셜 벤처의 정체성도 사라진다. 밸런스를 잘 맞추면서 초기의 명분을 잃지 않는 창업가를 발굴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다면 소풍벤처스의 포트폴리오 중에서 소셜 벤처의 적절 한 사례를 알려달라.
‘동구밭’이라는 소셜 벤처를 소개하고 싶다. 발달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친환경 라이프스타일 제품을 만드는 사회적 기업이다. 여기서 만든 비누는 워커힐과 힐튼 호텔에 납품도 했다. 두 번째는 헬스 케어 데이터 기록·관리 플랫폼인 ‘메디팔’이라는 스타트업이다. 간호사 자격증을 가진 인력을 질환자와 매칭해 원격으로 관리해주는 서비스라고 할 수 있다. 병원 검진을 갈 때 간호사를 대동할 수도 있는데, 메디팔에 기록된 환자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환자 상태를 의사에게 설명하고, 의사가 말하는 전문 용어를 환자가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설명해주는 플랫폼이다. 최근 코로나19로 원격 의료 시스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앞으로 성장 가능성이 있는 플랫폼이라고 생각한다. 공동 창업자 중 한 명이 오랜 간호사 경력이 있다는 점도 신뢰를 더했다. 현재 모바일 앱을 개발 중이고 카카오톡을 통해 샘플 테스트를 거쳤다.
현재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야가 있다면?
농업과 환경 분야 스타트업을 주시하는 중이다. 소풍벤처스가 투자한 ‘농사 펀드’는 소비자가 농부에게 투자하고 믿을 수 있는 먹 거리를 돌려받는 크라우드 펀딩 서비스다. 농부가 걱정 없이 농사지을 수 있도록 미리 후원하고 수확 시기를 기다리면 제철 먹거리를 배송받을 수 있다. 웰빙과 라이프스타일, 그리고 착한 소비 활동을 중요시하는 요즘 시대에 딱 맞는 서비스라고 생각한다. 환경 분야에서 두드러지는 스타트업은 ‘오이스터에이블’이 다. 시민 참여형 스마트 IOT 분리수거 솔루션 ‘오늘의분리수거’를 서비스하는 스타트업이다. 지자체, 기업과 연계해서 아파트 단지 안에 분리수거함을 설치하고 재활용품을 분리수거할 때마다 보상하는 플랫폼을 운영하고 있다. 환경문제는 글로벌 메가 이슈이기 때문에 관련 스타트업이 더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소풍벤처스의 투자를 받는 게 스타트업에 어떤 메리트가 있는지 궁금하다.
일반 벤처 캐피털도 임팩트 투자 펀드를 만들 수 있다. 그런데 소풍벤처스는 전략적으로 임팩트 투자만 하니까 그 분야에 대해 더욱 전문성이 있다. 소풍벤처스는 이미 70여 개의 스타트업 동문을 보유하고 있고, 종종 이들과 함께 모임을 가지는데 다들 소셜 임팩트에 관심이 많은 창업가인 만큼 서로 네트워킹하면서 비즈니스에 도움을 주고받는다.
디자인 관련 스타트업을 기획하는 예비 창업가가 알아두어야 할 팁이 있다면?
창업가는 혼자만 스타가 될 수 없다. JYP엔터테인먼트의 박진영 대표를 생각하면 된다. 박진영 대표 그 자체는 아티스트이지만 회사를 차리면서 시스템으로 가수를 육성할 수 있는 프레임을 만들었다. 그러한 창업가 정신이 있느냐 없느냐가 디자인 스타트업창업에서도 굉장히 중요하다. 디자인을 포함해 오감을 다루는 영역에서 스타트업을 창업할 때 고려해야 할 사항이 한 가지 있다. 바로 재능과 사업 능력을 분리하는 일이다. 감각을 활용해 창업하는 영역, 예를 들어 음악이나 댄스, 요리 분야를 보면 창업가 혼자 재능이 있다고 사업이 잘되지는 않는다. 재능이 있는 것과 사업을 하는 것은 완전 다른 영역인 까닭이다. 인테리어 디자이너가 창업한 ‘홈리에종’이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스타일을 디테일하게 구분하고 플랫폼에 등록된 디자이너와 고객 간 커뮤니케이션이 원활하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굉장히 구체적으로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도록 시각화하는 작업이 디자인 관련 창업에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감각을 믿기보다는 데이터를 기반으로 창업해야 하는 것이다. 고객이 말해주는 데이터를 읽어낼 수 있는 능력이 창업의 핵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