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품 디자인과 인테리어, 건축과 출판, 전시까지 폭넓은 영역을 아우르며 한국의 미의식을 탐구하는 건축가 최욱을 만났다.
원오원 아키텍스 사무실에서 만난 최욱 소장. 연세대학교 근처 숲이 보이는 자리에 위치한 사무실에서는 철제 계단과 콘크리트 기둥, 유리문, 수많은 자재 샘플까지 곳곳에서 그가 즐겨 사용하는 소재를 만날 수 있다.
원오원 아키텍스의 건축은 이해에서 출발한다. 자연과 터의 지세, 건축주의 상황, 지역 문화 등 주어진 요소를 배려하고 그에 맞는 몸의 감각을 되새기며 설계한 공간은 수제비 반죽을 쥐면 손가락 사이로 툭 삐져나오는 형태처럼, 가벼운 물이 모여 무거운 섬을 받치는, 일견 모순된 듯하다가도 눈이 먼저 순응하는 풍경처럼 자연스럽게 품고 있던 에너지를 드러낸다.
건축가 최욱은 이 땅에서 비롯된 한국의 미감을 건축으로 풀어내는 작업에 몰두해왔다. 조경가 정영선이 검이불루 화이불치의 태도로 옛 선조가 만든 경관을 지금의 풍경으로 환원해왔다면, 그는 한국 건축을 탐구하고 미학을 발굴해 공간을 짓는다. 수평과 수직을 딱 맞춰 단면을 그대로 잘라낸 듯한 디테일, 돌과 철, 유리의 물성을 자유자재로 오가는 마감, 누군가에게는 일생의 탐구 주제가 되기도 했을 이러한 요소가 그에게는 도구에 불과하다. 그리고 그것이 만들어내는 비워진 공간에 집중한다. 원오원의 건축을 보았을 때 동일한 잔상이 느껴진다면 그것은 아마 디테일보다 공간감에서 비롯되는 것일테다.
이 모든 작품은 조그만 학교 같기도, 건축가 최욱의 실험실 같기도 한 원오원의 사무실에서 시작된다. 이곳에서는 건축 외에도 인테리어, 제품 디자인, 사무소의 작품집을 만들고 전시를 기획하는 일이 동시다발적으로 이루어진다. 함께 일하는 직원의 성장을 고민하고, 지속 가능한 방식을 찾으며 생명체처럼 자라나는 원오원 아키텍스는 내년 2월, 25주년을 앞두고 있다.
최욱
홍익대학교 건축학과와 이탈리아 베네치아 건축대학에서 건축설계 및 이론을 공부했고, <도무스 코리아>(2018~2021)를 발행했으며, 원오원 아키텍스의 대표다. 대표작으로 학고재 갤러리, 두가헌, 현대카드 디자인 라이브러리, 현대카드 사옥, 가파도 프로젝트, 한양도성 혜화동 전시장(구 서울시장 공관), 삼일빌딩 레노베이션, 국립중앙박물관 사유의 방, 가회동 두 집, 제네시스 라운지 더 신라 등이 있다. 101architects.com
ⓒ이병근
사유의 방
사유의 방은 국보 반가사유상의 표정을 읽기 위해 관람객이 움직이는 작은 극장이다. 소실점 끝의 면을 디자인하는 서양의 공간 체계에서 벗어나 여러 개의 소실점과 곡면이 만드는 운동감을 이용해 눈이 아닌 몸이 반응하는 체험 공간을 만들었다. 빛을 흡수하는 재료인 흙으로 벽을 짓고, 바닥은 1도 정도 기울였다. 두 불상은 동시에 눈 맞춤이 불가능하게 놓여 있어 탑돌이처럼 빙 돌아야 편하게 볼 수 있다.
가회동 두 집
1930년대에 지은 한옥과 1960년대에 지은 양옥을 아우르는 ‘설화수의 집’ 프로젝트. 도로에 면한 한옥과 그 뒤의 양옥은 6m 높이의 옹벽에 가려져 있었다. 한옥 기둥의 일부를 외부로 만들고, 한옥과 양옥을 가로막고 있던 옹벽을 허물어 그 사이에 생겨난 중정에 빛을 들임으로써 도로에서 한옥과 양옥의 대비 및 조화를 볼 수 있게 되었다. 성격이 다른 두 건물을 도시 가로에 드러내고, 창의적 복원을 통해 지역의 시간성을 살리고 장소성을 만들었다.
ⓒ이병근
삼일빌딩 레노베이션
건축가 김중업이 설계하고 1970년도에 지은 삼일빌딩은 서울을 표상하는 근대 유산이다. 미스 반데어로에의 시그램 빌딩을 연상시키지만, 지난 50여 년 동안 서울의 표정을 새겼고 앞으로도 후세에 남겨야 하는 도시의 유산이다. 새롭게 단장한 삼일빌딩은 1970년의 삼일빌딩이 미처 실현하지 못한 건물의 도시성과 장소성을 되찾는 작업으로 보존해야 할 원형을 남기고 현재의 기능을 수용했다. 또한 건축설계와 시공 과정을 기록해 미래 세대에 보존의 기준을 남긴 작업이기도 하다.
ⓒ이재석
한남동 713-1
건축주는 오랫동안 이 필지에서 거주하며 인테리어 사무실을 운영했다. 주변 주택들이 카페나 갤러리로 변할 무렵, 좁은 이면 도로에 면한 이곳에 근린 생활공간을 지어주기를 의뢰했다. 세월과 삶의 흔적이 남아 있는 대지에 짓는 건축은 지역의 일상을 살펴야 하고, 과하지 않은 소박함의 미덕이 필요하다. 각 공간의 창은 삶이 담기고 돌출된 피난 계단은 골목길처럼 작동한다. 전면의 유리 타일은 좁은 골목에서 고양이처럼 작은 빛에도 반응하며 생명력을 드러낸다.
제네시스 라운지
한국 전통 건축의 외부성에 대한 해석이 담긴 작업. 마당에서 대청마루, 방으로 이어지는 한옥의 구성처럼 실내 공간과 외부가 자연스레 이어지는 공간을 계획했다. 단단한 석재 바닥과 이를 반사하는 가벼운 금속 천장 사이로 한국의 전통 색이 벽면과 가구를 이룬다. 비록 실내이지만 그림자를 최소화해 벽면에 시선이 고정되지 않고 부유하는 외부 느낌을 자아냈다. 이 공간의 감각은 벽에 시선이 고정되는 것에서 벗어날 때 생겨난다.
작은 집
하라 겐야가 기획한 <코리아 하우스 비전> 전시를 위한 집. 그의 일본 집과 대비되는 한국의 집이다. 터에 대한 탁월한 해석과 다양한 단면의 기단을 지닌 한국 집은 마당과 담장의 도움으로 완성된다. 집은 바닥에서 쌓아 올라가 터를 만들고, 공간은 주변을 이해해 만든 비움이다. 특이하게도 한국 집의 얼굴은 수직면이 아닌 수평면이다.
“원오원의 디테일은 허체의 비어 있는 공간감을 만들기 위한 도구에 가깝습니다.”
독일에서 무대미술을 배우고 싶어 한국에서 건축을 전공했고, 영화를 찍고 싶었으나 이탈리아에 영화 학교가 없어 베네치아 건축대학에 가셨다고요. 그렇게 대안으로 택한 건축이 지금의 원오원 아키텍스(이하 원오원)까지 이어졌습니다. 당시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했어요. 고등학교 때도 수업 시간이 짧았어요. 스스로 일찍 마쳐서.(웃음) 혼자 전시를 보러 가거나 책방, 국립극장에 자주 갔지요. 돌이켜보면 내가 뭘 좋아하는지, 뭘 해야 할지를 찾는 과정이었어요. 저는 굉장히 내성적인 사람인데, 주변에 사람이 있는 건 좋아해요. 특히 내가 주인공이 아니면서 그 일부로 속해 있는 환경일 때. 지금 원오원처럼.(웃음) 영화나 무대미술을 하면 그런 환경이 될 거라는 막연한 상상을 했지요. 존경하던 백남준 선생님이 독일과 관계가 있어 뮌헨 조형예술대학 무대미술과에 가고 싶었는데, 한국에서 먼저 대학교에 가야 한다고 해서 홍익대학교에 갔고, 그렇게 흘러 흘러 건축을 하게 된 거예요.
그렇게 건축을 해온 시간 중 원오원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시기는 언제였나요?
2000년에 첫 사무실을 한옥에서 시작한 것이 중요한 전환점이 됐어요. 유럽에서 공부할 때는 건축이 논리로 설명되는 개념적 결과물이었어요. 그런데 한옥은 공간 구성도, 재료도 서양 건축에서 공부한 것과 너무 달랐어요. 직선도 하나도 없고요. 기존에 쌓여온 관념이 많이 흔들렸어요. 그때부터 재료를 탐구하고 공간을 재해석하기도 하면서 한옥에 담긴 미학을 구현하는 방법을 고민하게 됐어요. 한국 건축의 형태적인 것을 보여주고 싶지는 않아요. 대신 그 속에 품은 고유한 가치를 드러낼 수 있을까에 대한 생각을 했죠.
그 가치는 무엇에서 비롯되는 것인가요?
건축은 땅을 떠나서 존재할 수 없어요. 땅이 가장 강력한 도화지예요. 똑같은 콩을 심어도 땅에 따라 다르게 자랍니다. 그런데 건축은 전 세계에서 같은 꽃이 피고 있어요. 이 땅에 맞는 것을 고민한다는 게 본질입니다. 우리의 건축에는 땅에 대한 배려가 있었어요. 그것을 찾고 드러내고 싶은 거예요.
그러한 태도에서 원오원 작업의 정체성이 비롯되는 것일테죠. 작품에서 일관되게 드러나는 공통점이 있나요?
서양 건축은 대개 눈이 닿는 부분에서 시작합니다. 그런데 한국 건축은 눈이 닿는 부분이 디자인이 안 되어 있어요. 대신 공간이 자연과 만나 뿜어내는 에너지가 있죠. 난 그걸 비어 있는 감각이라 해요. 눈이 닿지 않는 분위기, 허체가 발현되는 거죠. 그걸 구현하고 싶어요. 우리 작품을 두고 원오원스럽다고 이야기하는데, 우리는 어떤 스타일을 만들지는 않거든요. 그게 공간에서 느껴지는 분위기가 아닐까 싶어요. 현대카드 디자인 라이브러리의 사서분이 저에게 여긴 매일 올 때마다 새롭고 기분이 좋다는 말을 해줬는데, 그게 가장 좋은 칭찬이에요. 건축이 형태가 강하면 스타일이 보이는데, 매일 새로운 건 자연에 반응해 늘 변한다는 거니까. 어쩌면 내가 만들고 싶은 건 공간 디자인이 아니라 시간 디자인일지도 모르겠어요.
건축은 물리적인 것이라 비어 있는 감각 또한 경계를 만드는 것에서 비롯되는 것일 텐데, 경중의 차이가 있을까요?
관점의 차이입니다. 물리적인 것을 만드는 것에 포커스가 있지 않은 거예요. 예를 들어 일본은 정교하게 갈아내고 닦아내는 솜씨가 보이는데, 한국의 옛 공간은 인간이 무언가를 만들려고 노력했다는 느낌이 별로 들지 않아요. 멈춤을 스스로 관장하는 힘이 있는 거죠. 그게 공간감으로 드러나거든. 이게 제가 하고 싶은 거예요. 원오원의 디테일이 섬세하다고 하는데, 그게 목표가 아니에요. 디테일을 드러내고 싶은 것이 아니라 공간감을 만들기 위한 결구 방식을 고민하는 것입니다.
그 결구 방식은 어떻게 만들어지나요?
바느질과 똑같아요. 바느질은 방식에 따라 느낌이 달라지는데, 그게 옷의 분위기를 지배하기도 하잖아요. 디테일도 단순히 두 재료를 잇는다는 의미만 있지 않아요. 건축이 눈으로 보는 것 같지만 본질은 몸이 닿는 거예요. 눈은 벽을 보지만 손은 손잡이나 난간, 발은 바닥에 닿아요. 사무소에서 신입 사원이 디자인을 하면 대개 눈이 보는 벽만 작업하는데, 손과 발이 닿는 부분을 디자인하라고 해요. 그때 디테일이 생깁니다. 예를 들어 발이 타일이나 돌의 줄눈 부분을 밟으면 느껴지잖아요. 발바닥의 폭은 8~9cm이니까, 그럼 발이 줄눈을 느끼게 할 것인지 아닌지에 따라서 재료의 크기와 배치가 결정되는 거예요. 몸의 감각이 좌우하는 거죠.
원오원의 작업은 전시실부터 주택, 사옥, 공공 건축까지 다양한 규모와 영역을 넘나듭니다. 요즘 특별히 흥미를 느끼는 분야는 어떤 것인가요?
이제는 공공으로 넘어갈 때가 된 것 같아요. 크게는 레노베이션처럼 보존과 역사를 다루는 프로젝트, 그리고 이 시대 한국의 라이프스타일에 맞는 공간, 마지막으로 일하는 장소. 우리 땅에서 일하는 장소는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규명해보고 싶어요. 이렇게 세 가지 범주 내에서 하려 해요.
말씀하신 것처럼 앞으로는 새로 짓는 것보다 고쳐 짓는 건축이 훨씬 많을 것 같습니다. 건축가 김중업이 설계한 삼일빌딩을 고친 프로젝트처럼요. 새로 지을 때와는 임하는 태도도 다를 듯합니다.
태도는 같아요. 다만 더 많은 책임이 있어요. 레노베이션은 단순히 물리적인 건축을 잘 고친다는 문제가 아니라, 이걸 어떻게 남겨서 그다음 세대에 전해줄 것인가에 대해 도의적 판단이 필요해요. 우리나라는 남은 것도 많지 않아서 더욱 책임감을 가져야 합니다.
내년에 사무소 설립 25주년을 맞이합니다. 그다음 10년, 20년은 어땠으면 하나요?
원오원은 꾸준히 내실을 다지면서 성장해왔어요. 그동안 베이스를 마련했으니, 앞으로는 다음 세대를 키우는 작업을 하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