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예적·직업적으로 다양한 도전을 이어온 박지원 씨는 집을 도구 삼아 자신의 기록을 아카이빙했다. 필요한 것은 무엇이든 맞춤 제작한다는 만능 박지원의 2촌 라이프.
1, 3 책장 옆 수납함에서 발견한 취미용품. 실크스크린을 할 때 사용하는 스퀴지와 잉크다.
2 입주 초기에는 주말마다 집을 꾸미는 일을 취미로 삼았다. 추운 겨울이던 당시 벽에 페인트를 칠할 때 입은 추억의 패딩.
4 콜먼Coleman의 충전식 LED 랜턴. 위에 고리가 있어 텐트 등에 걸어두기 좋다. 귀여운 사이즈로 휴대성이 좋고 원터치로 사용할 수 있어 편리하다고.
5 간단한 조리에 사용하는 레꼴뜨re´colte의 미니 오븐. 빈티지로 구매했으며 조만간 아웃도어에서 사용할 미니 화로대로 개조할 예정이다.
6 흑단을 깎아 만든 젓가락. 캠핑이나 백패킹을 할 때 사용하기 편하도록 끝에 고리를 달았다.
7 지원 씨는 항상 차를 내리며 그날의 작업을 준비한다. 매일 사용할 잔도 직접 라탄 공예로 꾸몄고, 티포트 세척용 솔과 함께 보관한다.
잊지 말아야 할 중요한 일을 기록하는 이유는 다시 보기 위함이다. 박지원 씨는 기록을 꺼내는 일의 중요성을 깨닫고 스스로를 아카이빙하기로 결심한 사람이다. 지금은 지속 가능한 패션 브랜드 쉘코퍼레이션에서 전략 기획 총괄을 담당하고 있지만, 직전 회사에서는 인공지능을 기획했으며, 전공은 중학교 때부터 순수예술이었다. 취미 역시 끝이 없다. 나만의 표준을 만들겠다는 열망 아래 라탄, 실크스크린 등 온갖 수공예와 가구 고치기, 아웃도어를 아우른다. 그렇게 쌓인 취향은 다시 확인할 수 없는 수준이 되었고, 새로운 방법이 필요함을 직감했다. 그때 지원 씨가 선택한 수단은 ‘공간’이었다.
작업실 용도로 사용하는 1층. 커다란 공구부터 작은 공예 용품이 지원 씨만의 방법으로 정리되어 있다.
이 집을 선택한 가장 큰 이유가 된 풍경. 물리적·정신적으로 모두 맥시멀리스트이지만 미니멀리즘을 추구하기에 생각을 비우게 해주는 자연을 좋아한다.
지원 씨는 2021년 직장 앞의 집을 생활용으로 남겨둔 채 작업실이자 휴식처인 지금의 공간을 마련했다. 새로운 방식의 5도 2촌 라이프가 시작된 순간이었다. 첫 독립은 왕복 세 시간이 넘는 통학 시간과 입시에 지친 고등학교 3학년 때다. “학교 앞에서 우연히 ‘잠자는 방’이라는 전단지를 봤어요. 무작정 연락했는데, 정말 ‘잠’만을 위한 쪽방이더라고요. 당시의 제게 딱 필요한 공간이라는 생각에 학업을 핑계 삼아 부모님을 설득했죠.” 이후로도 대학 시절에는 작업실, 직장인이 된 후에는 사무실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며 집에서는 잠만 자는 생활을 이어왔다. 잊고 살던 기억이 떠오른 건 자취방의 사진 박스 때문이었다. 좋아하는 마음으로 찍고 모았지만, 이제는 어떤 사진이 있는지조차 모르는 박스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이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래서 언제든 과거의 기억을 꺼내 볼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기에 이르렀다.
그렇게 서울의 ‘5도’ 집은 잠과 생활을 위해 남기고, 바다가 보이는 시흥 배곧에 ‘2촌’ 집을 마련했다. 15평 남짓한 복층 원룸에는 높은 층고 가득 통창이 있고, 창 너머로 시원한 능선이 펼쳐졌다. “근처에 서핑장이 있거든요. 제가 서핑도 좋아해서 이 동네를 둘러보다 뷰에 반해 이 집을 선택했어요. 풍경을 보고 있으면 어마어마한 캠핑을 하는 기분이 들 것 같았거든요. 입주한 뒤 주말마다 하루는 데코 타일을 붙이고 하루는 계단을 만들며 조금씩 이곳을 만들어갔어요. 조소를 전공해서 용접도 목공도 자신 있었거든요. 곳곳에 제가 직접 만든 가구도 있답니다.” 기록이 주목적인 만큼 이 집에서는 지원 씨의 모든 역사를 확인할 수 있다.
시판 옷장을 가로로 눕힌 수납장에는 백패킹용품을 보관 중인데, 사용한 침낭이나 텐트 등을 펼쳐서 완전히 건조시키기 위한 선택이다.
입구 바로 앞의 목재 수납장 역시 직접 만든 것. 한때 모으던 유리 소품, 평소 좋아하는 윌리엄 모리스와 조르주 바비에의 패턴 북을 전시했다.
작업실로 사용하는 1층에는 각종 취미용품을 모았다. 큰 공구는 계단 아래 숨기고 매번 진행하는 일에 따라 필요한 제품을 꺼내 배치를 바꾼다. 지금은 최근 구입한 의자의 등받이를 새로 디자인하는 중이라 스텐리의 테이블 소와 디월트의 원형 톱을 꺼내두었다. 중앙의 목재 전시대 역시 직접 만든 것으로, 위에는 직접 만든 소품을 올려놓았다. 뭐든 나에게 맞게 만드는 것을 좋아하는 그에게 아웃도어를 비롯한 각종 장비도 예외는 아니었다. 피칭에 쓸 망치도 자신의 힘과 손 크기에 맞췄고, 솔에는 금속 코를 달고 손잡이를 스푼처럼 파내 캠핑 화로대를 한 번에 관리할 도구로 만들었다.
양 벽은 책으로 가득하다. 마치 그의 일대기를 보여주듯 유년기를 보낸 미국에서 읽은 디즈니 동화책, 학사 시절 복수 전공한 패션 전공서는 물론, 아버지가 공부하신 경영학 책, 어머니의 졸업 앨범까지 꽂혀 있다. 휴식하거나 기획할 때 사용하는 복층은 창가에 침대와 안락의자를 배치하고 중앙에는 새로운 일을 기획할 때 앉을 소파를, 맨 끝에는 옷장과 최근 빠진 취미인 아웃도어용품을 보관했다. 휴식을 위한 공간인 만큼 황학동에서 보물찾기하듯 선별한 빈티지 가구와 소품, 아버지께 물려받은 뱅앤올룹슨의 베오사운드 9000, 미국에서 가져온 LP판 등 옛것의 아늑함이 가득하다.
(왼쪽부터) 지원 씨가 짊어질 수 있는 최대 무게는 25kg. 그 한계 안에서 1박 2일 생존에 필요한 물건만을 신중하게 추려 이 백팩에 담는다. 찻잎의 정확한 무게를 계량하고자 티스푼을 만들고 있다. 태어난 직후 온 가족이 미국으로 떠나 다섯 살 때까지 살았다. 당시 읽던 디즈니 동화책으로, 이 집에서 아카이빙한 지원 씨의 기억 중 가장 오래된 것이다.
지원 씨는 정해진 공간에 나를 맞추기보다는 나에게 맞는 공간을 개척하는 사람이다. “표준, 규격이라는 말을 흔히 쓰는데, 모두를 위한 표준이란 건 없어요. 그래서 모든 걸 맞춤 제작한 이곳이 일종의 거대한 베이스캠프가 되길 바랐죠. 백패킹을 할 때도 안정감은 텐트를 피칭한 다음부터 찾아오잖아요?” 비록 머무는 시간은 짧지만 지원 씨에게 진정한 보금자리는 서울에 있는 5도의 집이 아닌 스스로를 아카이빙한 2촌의 집이 아닐까. 그의 역사와 함께 쌓이고 성장할 공간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