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의 시작과 끝이 있는 집 안에 들인 흙 한 줌, 풀 한 포기는 삭막한 도시 생활 속 큰 위안을 준다. 파릇파릇한 식물이 내뿜는 생명력이 넘실대는 프리랜스 디자이너 서영훈 씨의 작지만 평온한 보금자리를 방문했다.
1 두 달 전 구입한 립살리스 화이트. 화분 지지대는 철사에 녹색 구슬을 꿰 만들었다.
2 아크릴물감으로 직접 그린 그림. 집의 규모를 고려해 화분은 딱 열한 개만 들이겠다는 다짐을 담아 ‘ELEVEN POTs PEACE’라 써넣었지만, 어느새 집 안에 들인 화분 수가 열여덟 개를 돌파했다.
3 자취를 시작할 때부터 갖고 있던 턴테이블에 대한 로망을 실현시켜준 오디오테크니카의 AT-LP60XBT. 요즘엔 블루투스 스피커를 더 자주 이용하지만 여전히 소중하게 보관 중이다.
4 더콘란샵에서 구입한 홉티미스트 클래식 범블 L. 인테리어에 포인트를 주기 좋아 집들이 선물로 자주 구매한다.
5 첫 반려 식물인 몬스테라 화분.
6 풍물 시장에서 구입한 빈티지 시계 오브제. 문진으로도 사용할 수 있다.
7 체스 입문 시 구입한 체스판. 친구와 저녁 내기를 하거나 자존심 대결을 할 때 종종 플레이한다.
집은 머무는 이의 취향과 삶의 지향점을 집적한 공간이다. 맥주 브랜드의 디자이너로 일하다 약 1년 전 독립해 프리랜스 디자이너로 활동하며 인테리어 인스타그램 계정 ‘소요새(@soyosae_)’를 운영하는 서영훈 씨에게도 마찬가지다. 특히 작업실을 겸하는 그의 집은 단순히 보금자리를 넘어 영감의 요새다. 자신이 보기에 예쁘고 좋은 것을 모두 모았다는 영훈 씨의 집. 이곳을 설명할 수 있는 단어는 ‘색’ ‘향’ ‘디자인’ 등 다양하지만, 가장 대표적인 것은 ‘자연’이다. “고향이 상주라 녹음이 친숙해요. 여행지도 바다보다는 산과 숲을 더 선호하고요. 그에 못지않게 집에 머물기를 좋아하니 이 둘이 공존하는 공간을 만들면 어떨까 싶었죠.” 그렇기에 상경하며 자취를 시작한 그가 혼자만의 공간이 생기고 가장 먼저 한 일은 식물을 들이는 것이었다. 지금도 영훈 씨의 집 한쪽을 차지하는 첫 반려 식물 몬스테라를 시작으로, 하나둘 늘어난 화분의 수는 어느덧 열여덟 개. 현재 살고 있는 오피스텔 규모가 아홉 평이란 점을 고려하면 이미 포화 상태에 달한 셈이다. 그럼에도 싱그러운 녹음을 포기할 수 없었던 영훈 씨는 풍경 패브릭 포스터와 식물이 그려진 액자로 산과 숲을 집에 들였다. 여기에 더한 우드 가구와 그린 컬러의 침구, 다양한 아이템은 집 안을 한층 더 자연적인 분위기로 연출한다.
집에 있을 때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거실의 작업 공간. 벽면은 패브릭 포스터, 브랜드 네임 태그를 건 캔버스, 명함 등 영감을 주는 것으로 장식했다.
거실은 채우는 공간, 침실은 비우는 공간으로 활용하기 위해 침실에는 최소한의 것만 두었다. 그린 컬러의 침구가 자연적인 인테리어와 조화롭게 어우러진다.
통창 앞에 마련한 휴식 공간에서 책을 읽는 서영훈 씨. 채광이 좋아 여유롭게 햇살을 즐기기에 그만이다. 이맘때 채광이 가장 좋은 시간은 오후 2시 30분부터 3시 30분 사이다.
“집을 구할 때 채광이 풍부한지, 층고가 높은지, 침실이 분리됐는지를 가장 중요하게 보았어요. 그 모든 걸 충족한 곳이 바로 지금의 집이고요.” 지금의 보금자리로 옮긴 지는 약 1년 6개월, 원룸이던 이전 집과 달리 공간이 나뉜 지금의 집에서는 ‘침실은 비워내고, 거실은 채우는 공간’이라 말할 만큼 대부분의 활동을 거실에서 한다. 그래서 영훈 씨는 자신의 생활 패턴에 따라 거실을 다시 세 개 공간으로 나누었다.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은 책상과 컴퓨터가 있는 작업 공간이에요. 프리랜서이지만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규칙적으로 일하죠. 주방의 아일랜드 테이블 앞으로는 원형 우드 테이블과 의자를 두어 식사를 하거나 맥북으로 간단한 웹 서핑을 하기도 해요. 커다란 통창 앞에는 1인용 체어와 여러 물건을 진열할 수 있는 선반을 두어 휴식처로 만들었죠.”
이 중에서도 작업 공간은 그의 취향이 가장 밀도 높게 응축된 곳이다. “많은 사람이 작업 공간에는 정말 필요한 것만 남기고 비우지만 저는 오히려 좋아하는 것을 몽땅 이곳에 두었어요. 영감의 원천이 되기도 하거든요.” 통창이 난 작업 책상 왼쪽에 둔 낮은 테이블 위에는 화분과 인센스 홀더가, 작업 책상 위엔 아이맥과 턴테이블 및 오브제 등이 빼곡하다. 책상 오른쪽에 배치한 트롤리에는 플레이모빌, 체스 및 다양한 오브제가 자리한다. 여기서 주목할 만한 것은 책상의 왼쪽, 일명 식물 존의 배치법이다. “층고가 높은 집의 특성을 잘 이용해보고 싶었어요. 테이블 위로 스툴, 서랍장, 책 등을 이용해 단 차이를 두어 화분과 물건을 배치해 풍성하면서도 답답해 보이지 않게 연출했죠.” 그리고 한 가지 더, 작업 공간에서 돋보이는 특징은 벽면이 빈틈없이 꽉 차 있다는 것이다.
(왼쪽부터) 도쿄 빔즈 스토어에서 발견해 구매한 베어브릭 방향제. 현재는 장식용으로 사용 중이다. 언박싱하기 전까지 어떤 제품이 나올지 모르는 기대감이 좋아 플레이모빌도 수집한다. 해당 제품은 미스터리 시리즈 19. 의류 브랜드 네임 태그 및 엽서, 스티커 등 추억이 담긴 지류로 캔버스 뒷면을 장식해 액자처럼 활용한다.
풍경 패브릭 포스터를 비롯해 의류 브랜드 네임 태그, 엽서, 스티커 등을 끼워넣은 캔버스, 직접 레이아웃을 짜 제품 설명서를 배치한 액자 등이 걸려 있다. “용도와 상관없이 제 눈에 예뻐 보이는 것은 모두 벽에 붙였어요. 자세히 보면 명함까지 있어요.” 홀로 살기 시작한 지 총 3년 6개월 남짓 된 자취 새내기인 그에게 혼자 살기 좋은 공간의 기준에 대해 물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더니 아무래도 사는 이가 마음이 편할 수 있는 공간 아니겠냐는 답이 돌아왔다. “집을 마음 편한 곳으로 만들고 싶다면 식물을 들여 보길 추천해요. 철에 따라 분을 나누고, 식물을 씻기며 흙냄새를 맡으면 정말 기분 좋아요. 어렵지 않게 집에 생기를 불어넣을 수 있는 방법이죠.” 자연을 사랑하는 식집사다운 팁도 덤으로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