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국내 미술 전시를 아우르는 키워드로 ‘여성’을 맨 앞에 두는 데 이견은 없다. 그리고 올봄, 유독 한국 여성 미술가의 전시가 메이저 갤러리의 라인업에 올라 있다. 바야흐로 여성 미술가에 대해 이야기하고, 쳐다보고, 표시해두는 시대가 온 것만 같다. 하지만! ‘여성성’이라는 틀에 그들을 가두지 말 것. 그동안 우리가 드리웠던 위계나 이분법의 잣대를 걷고 얽힘, 수평적 연결, 작용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그들의 목소리에 집중할 것. 그리고 어떠한 질문과 작품 세계를 통해 미술의 공적 공간으로 진입했는지 그 속내를 읽는 데 집중할 것.
강서경, ‘모라 55×40 누하 #16’, 2014-2023, gouache, dust, acrylic panel, silk mounted on paper, silver leaf frame, 55×40×6cm, Courtesy of the artist and Kukje Gallery.
강서경, ‘아워스 일 #23-15’, 2022-2023, painted steel, silk, Korean hanji paper, gouache, rope, brass bolts,leather, scraps, 72×62×8cm, Courtesy of the artist and Kukje Gallery.
강서경, ‘정 井 #01’, 2023-2024, Color on silk mounted on Korean hanji paper, thread, wood frame, Approx, 153×153×6cm, Courtesy of the artist and Kukje Gallery.
국제갤러리 서울 K3
강서경 개인전 〈마치MARCH〉
<행복> 2023년 12월호 ‘라이프&스타일’ 칼럼으로 우리를 만난 미술가, 그리고 작년 하반기 리움미술관을 3차원 입체적 풍경화로 만들어버린 우리나라 대표 현대미술가 강서경. 〈마치 MARCH〉는 최근 한국 미술계에서 주목도가 가장 높은 그의 새로운 회화군과 조각군을 만나는 자리다. ‘정井’ 연작(세종이 창안한 유량악보 ‘정간보’의 기호를 기반으로 그가 직접 사각 그리드를 만들고, 그것에 시간과 공간이라는 회화성을 부여한 작업)이 비단에 그린 새로운 회화군의 모습으로 선보인다. ‘모라’ 연작(언어학에서 음절 한 마디보다 짧은 단위를 지칭하는 mora에서 따온 것으로, 그의 작품에서는 시간을 담고 서사를 쌓아 올리는 단위)은 이번 전시에서 ‘모라-누하’ 연작으로 확장된다.
누하동 작업실의 테이블에 캔버스를 올려놓고 물감을 칠해 네 옆면으로 흘러내린 흔적, 그것이 ‘모라-누하’ 연작. 특히 캔버스의 면면을 따라 흘러내려 밑으로 떨어진 물감을 모아 종이에 비단의 층위를 덧댄 새로운 회화군이다. 물감의 흔적을 통해 시간의 층위를 직관적으로 내비치는 작업. 브론즈를 구부리고 표면을 두드려 제작한 신작 ‘산-아워스’, 꽃잎을 닮은 곡선 고리를 두른 ‘산-꽃’ 등 새로운 조각군도 이번 전시에 함께 선보인다. 개인이 굳건히 딛고 선, 또는 뿌리내릴 수 있는 땅의 규격을 그만의 그리드로 표현해가며 회화의 시공간을 확장해온 강서경 작가. 이 봄, 마치 실을 입에 문 꾀꼬리처럼 사람과 사람 사이를, 예술과 사람 사이를 오가는 그의 작품을 다시 한번 기대하는 이유다.
전시 기간 2024년 3월 19일~4월 28일
문의 02-735-8449
김민정, ‘Moon in the sun’, 2004, ink and watercolor on mulberry Hanji paper, 186×135cm, Courtesy ofthe artist and Gallery Hyundai.
도윤희, ‘Night Erases Day’, 2007-2008, oil and pencil with varnish on linen, 141×636cm, Courtesy ofthe artist and Gallery Hyundai.
정주영, ‘김홍도, 가학정(부분)’, 1996, oil on linen, 200×400cm, Courtesy ofthe artist and Gallery Hyundai.
갤러리현대
김민정·도윤희·정주영 〈풍경〉
갤러리가 애써 ‘여성 미술가’라는 얼개로 끌어 모은 전시는 아니지만 삶의 모험가, 예술의 모험가로서 김민정, 도윤희, 정주영 작가의 여정을 읽어내는 자리다. “그림은 작가의 내면 현실의 반영. 비가시적 인식에서 시작해 실체를 인식하는 과정”이라는 도윤희 작가. “자연이라는 대상과 내가 맺는 관계, 나를 완전히 비운 뒤에야 있는 그대로 내게 투영되는 자연의 풍경이 곧 그림”이라는 김민정 작가. “본다는 건 개인의 경험을 넘어 집단의 기억, 회상 등을 통해 원형으로까지 치닫는다. 이미 선택해서 변용한 풍경을 다시 선택하고, 또 변용해 ‘봄-풍경’이라는 개념에 도전하는 게 내 그림”이라는 정주영 작가. 이 1960년대생 작가 세 명의 이야기를 찬찬히 듣다 보면 가시성과 비가시성, 실체와 허상, 원형과 변용, 내면과 풍경 같은 단어가 한데 끌려 나오지 않는가? 그래서 전시 제목도 〈풍경(Incorporeal Landscape)〉이다.
세 여성 미술가가 포착한 무형의 풍경은 갤러리현대에서 새롭게 선보이는 프로젝트 ‘에디션R’의 첫 번째 전시이기도 하다. 작가의 과거 작품을 되돌아보고, 그 작품의 생명을 현재로 부활시키고자 하는 프로젝트가 ‘에디션R’. 세 작가의 과거 주요 작품 20여 점을 20년, 30년 만에 ‘풍경’이란 주제 아래 꺼내 세상 빛을 다시 보게 하는 자리다. 그 풍경은 단지 ‘바람이 만드는 경치’라는 본뜻 이상의 것임이, 현실과 그 너머의 비가시적 풍경일 것임이 자명하다.
전시 기간 2024년 3월 13일~4월 14일
문의 02-2287-3500
김윤신, ‘진동 2018-56’, 2018, acrylic on canvas, 150×180cm, Courtesy of the artist and Kukje Gallery.
김윤신, ‘내 영혼의 노래 2011-14’, 2011, oil on canvas, 120×100cm, Courtesy of the artist and Kukje Gallery.
김윤신, ‘합이합일 분이분일, 2002-790’, 2002, palo Santos wood, 155×41×39cm,Courtesy of the artist and Kukje Gallery.
김윤신, ‘합이합일 분이분일 2019-14’, 2019, acrylic on recycled wood, 126×45×25cm, Courtesy of the artist and Kukje Gallery.
국제갤러리 서울 K1, K2
김윤신 개인전 〈Kim Yun Shin〉
올 초, 제60회 베니스 비엔날레(4월 20일부터 11월 24일까지)의 본전시 초청 명단에 오른 ‘김윤신’의 이름을 보고 갤러리 좀 드나든다는 미술 애호가들도 고개를 갸우뚱했다. 메이저 상업 갤러리인 국제갤러리와 리만머핀이 공동으로 그와 전속 계약을 맺었다는 소식에도 그랬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한동안 한국 미술계에서 잊힌 작가로 통했다. 1935년생이니 올해 89세가 된 1세대 여성 조각가 김윤신. 50세에 새로운 재료를 만나 작품 세계를 확장하려는 열망에 교수직을 버리고 아르헨티나로 이주해 40년 가까이 그곳에 뿌리내렸다. 그리고 지난해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린 개인전을 통해 건재함을 입증하면서 이승택(1932년생),∙이건용(1942년생)과 함께 주류 미술계가 뒤늦게 발견한 ‘핫한 미술가’가 됐다.
이번 전시 〈Kim Yun Shin〉은 1970년대부터 그의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철학 ‘합이합일 분이분일合二合一 分二分一(서로 다른 것이 하나이며 같은 것이 또 둘로 나눠지듯 세상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다)’에 기반한 목조각 연작, 그리고 회화 작업 등 총 50여 점을 선보이는 자리. 작품 제목으로도 줄기차게 써온 ‘합이합일 분이분일’에 그의 작품을 읽는 단서가 모두 들어 있다. 나무와 돌, 나무와 김윤신, 관조의 대상과 주체가 합하여 하나가 되고, 나뉘어 또 다른 하나가 되는 세계, 바로 그걸 석판화, 석조각, 목조각으로 구현하는 것. 좀 풀어 쓰자면 이렇다. 눈앞의 나무를 오랜 시간 바라보며 대화하다 한순간 전기톱을 들고 거침없이 자른다. 그건 또 그렇게 조각의 재료가 되어 작가와 나무를 하나로 묶어준다. 그런 합치의 과정은 나무 단면을 쪼개 새로운 공간을 만드는 분分의 단계이기도 하다.
그 모든 합과 분의 과정을 통해 비로소 하나의 진정한 분分, 즉 작품이 탄생한다는 의미다. 작품에 담긴 철학도 깊지만, 장승이나 돌 쌓기 풍습 등 토템에 영향을 받은 수직적 형태, 알가로보나무·라파초나무·칼덴나무·유창목·케브라초나무 등 다양한 나무의 속살과 원래 모습, 그대로 살려둔 나무의 거친 껍질이 이루는 시각적 대비는 가히 압도적이다. 남미의 대지와 그 생명력을 연상시키는 회화, 그리고 목조각에 채색을 시도한 회화 조각 또한 놓칠 수 없는 작품이다.
전시 기간 2024년 3월 19일~4월 28일
문의 02-735-8449
자료 제공 국제갤러리, 갤러리현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