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열흘간 인스타그램 피드에서 보랏빛 행진이 벌어졌다. 코로나19 사태로 연기된 서울퀴어문화축제를 대신해 열린 온라인 퀴퍼(퀴어 퍼레이드) ‘우리는 없던 길도 만들지’다. 소수자의 목소리를 전하는 미디어 스타트업 닷페이스가 주도하고 스투키 스튜디오의 정유미 디자이너가 협업했다. 인스타그램에서 ‛#우리는없던길을만들지’를 검색하면 12일 동안 8만 5767명이 참여한 이미지를 볼 수 있다. 섬네일 속 캐릭터는 노란색 피부와 알록달록한 헤어스타일, 개성 넘치는 아이템을 걸치고 호방한 모습으로 전진한다. 화끈한 서울퀴어문화축제의 풍경을 연상시키는 이미지다.
인터뷰
김헵시바 닷페이스 디자이너
온라인 퀴퍼, 어떻게 기획하게 됐나?
출발은 서울퀴어문화축제에 참여하고 싶은 욕망 때문이었다. 코로나19로 미뤄진 것에 대해 대표이자 동료인 썸머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이제 6월인데 퀴퍼를 못 가는 게 말이 되냐. 온라인 퀴퍼라도 했으면 좋겠다”라고 했더니 썸머가 “나이키 에어맥스 줄 서기처럼? 우리가 하면 되지!”라고 말했다. 썸머는 바로 닷페이스 슬랙 채널에 제안을 올렸고 준비가 시작됐다. 상상을 실현으로 옮겨주는 동료의 힘이란 참 대단하다고 느꼈다.
이번 프로젝트에서 주안점으로 생각한 것은 무엇인가?
사용자들에게 배제되지 않는 경험을 제공하는 것과 시각적 재미다. 신기하게도 ‘사용자들에게 배제되지 않는 경험을 제공하는 것’을 고민하다 보니 시각적 재미까지 살릴 수 있었다. 이를테면 여성과 남성을 구분하지 않기 위해 분수 머리, 옆머리가 없는 똥머리, 불꽃 머리 같은 재미있는 헤어스타일을 만들었고, ‘아예 사람 피부색이 아닌 색을 피부에 입히자는 의견에 이모지 등에서 인종 중립적으로 쓰이는 노란색을 선택했다. 인권에 관해 이야기할 때 자주 쓰이는 ‘상상력’이라는 단어와 디자인의 ‘상상력’이 어쩌면 같은 것을 향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치적으로 너무 올바른 결과물이 나와서 재미가 없으면 어떡하지?’라는 우려를 없애준 경험이었다.
이벤트 오픈 후 열띤 반응이 있었다. 닷페이스 내에서는 어땠나?
오픈 첫날, 팀원들이 ‘일 안 하고 이 피드만 보고 싶다’고 이야기한 것이 기억난다. 직접 그린 캐릭터를 올려주거나 실제 퀴어 퍼레이드에서 자주 트는 음악, 뻥튀기, 생수 사진이 올라오는 등 재미있는 참여가 많았다. ‘우리는 없던 길도 만들지’라는 슬로건과 딱 어울리게 참가자들이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는 걸 보는 것이 즐거웠다. 더 나아가 새로운 가능성도 봤다. 닷페이스는 영상을 통해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가고 있는 변화를 조명한다. 이제 이것을 넘어 주도적으로 변화를 만들어가는 미디어로 역할을 확장하려고 한다. 닷페이스가 훨씬 다양한 변화를 만들 수 있다는 걸 확인한 뜻깊은 프로젝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