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에 두 번 찾아오는 메종&오브제 파리가 지난 1월에도 어김없이 파리 노르 빌팽트의 문을 두드렸다. 올해는 30주년을 맞아 ‘테크 에덴Tech Eden’을 주제로 기술과 자연이 공존하는 디자인 유토피아를 펼쳐놓았다. 신진 브랜드와 디자이너의 유니크한 작품을 발견하는 재미가 가득하던 전시의 순간을 소개한다.
대담한 패턴과 색상으로 신비로운 자연을 연출한 왓츠 뉴 인 데코 부스. ©Anne-Emmanuelle Thion
올해의 주제 ‘테크 에덴’
날로 복잡해지는 사회에서 디자인은 단순히 눈을 즐겁게 하는 오브제가 아니라, 미래에 일어날 여러 문제를 해결하는 시스템으로 역할한다. 이에 메종&오브제 파리에서 주목한 키워드는 바로 기술과 자연. 전시를 맡은 디자이너들은 두 가지 상반된 가치를 각자의 방식으로 해석해 공간을 구현했다. 그중에서도 메종&오브제 파리가 선정한 올해의 디자이너, 마티외 르아뇌르가 만든 유토피아 ‘아우토노미Outonomy’는 온통 샛노란 파사드로 오가는 이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왓츠 뉴WHAT’S NEW?’ 부스 또한 관람객이 북적이던 스폿. 데코와 리테일로 분야를 나누어 테크 에덴에 어울리는 전시장의 아이템을 선별해 핵심 트렌드를 좀 더 명확하게 보여줬다. 왓츠 뉴 인 데코는 대담한 패턴과 색상으로 신비로운 자연을 연출했고, 슈퍼소프트라는 부제를 단 왓츠 뉴 인 리테일은 유기적 형상과 편안한 색감 및 지속 가능한 제조 방식을 기준으로 아이템을 선정하고, 곡선형 전시대를 따라 부드럽게 이어지는 동선으로 표현했다.
©Felipe Ribon
Interview_올해의 디자이너
마티외 르아뇌르Mathieu Lehanneur
마티외 르아뇌르는 디자이너로 일한 초기부터 자신의 브랜드를 만들어 작업해왔으며 2023년, 스튜디오 팩토리를 연 후에는 직접 개발·생산하고 판매하는 방식을 도입해 디자이너의 영역을 개척하고 있다. 2024 파리 올림픽 성화봉을 디자인하며 스타 디자이너로 더욱 발돋움 중인 그를 만났다.
공기청정기부터 올림픽 성화봉, 건축까지 다양한 분야에 걸쳐 작업한다. 모든 프로젝트에서 핵심이 되는 디자인 철학은 무엇인가?
디자이너의 과제는 완벽한 형태가 아니라 사용자의 원초적 핵심을 관통하면서 기능을 수행하거나, 문제를 해결하는 사물을 구현하는 것이다. 내가 디자인의 영향력을 새삼 실감하는 순간은 병원의 의뢰로 재활 병동 프로젝트를 진행하거나 하버드 대학교와 협력해 식물로 실내 공기를 정화하는 가정용 공기청정기를 개발할 때이다. 디자인은 기존 경계를 뛰어넘고, 개인과 환경을 연결해 조화로운 라이프스타일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항상 작업한다.
2024 파리 올림픽 성화봉 프로젝트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성화봉을 디자인한 과정에 대해 소개해달라.
여러모로 꿈같은 일이다. 디자이너에게는 일생에 단 한 번만 이루어지는 기적과도 같다. 육지와 바다를 가로지르는 수천 킬로미터의 여정을 사람의 손에서 손으로 전달한다는 의미를 담아 순수하면서도 상징적인 정수처럼 만들고 싶었다. 하이픈처럼 심플하면서도 불꽃처럼 유려한 것이랄까. 성화봉 디자인은 평등, 평화, 물이라는 세 가지 개념을 바탕으로 한다. 이들 요소는 이번 올림픽을 가장 잘 표현하는 단어이기도 하다. 성화봉의 완벽한 대칭을 통해 평등을, 곡선과 연속적인 선으로 평화의 의미를 표현했고, 물은 파리에서 착안했다. 센강은 파리의 연결 고리이자 심장이며, 개막식과 여러 올림픽 경기의 무대가 될 예정이다. 그 물결에서 영감을 받아 광택이 나는 금속의 곡선과 반사를 활용해 액체처럼 느껴지도록 디자인했다.
앞으로 준비 중인 프로젝트는 어떤 것이 있나?
올해 봄에는 미국 덴버 미술관에서 몇몇 작품을 전시하고, 뉴욕에서 새로운 피에타테르Pied-a`-terre를 공개할 예정이다. 팩토리가 ‘생각하고 만드는’ 공간이라면 피에타테르는 ‘보여주고 만나는’ 장소다. 고객을 맞이하고 우리가 만든 것을 공유하는 자리다. 상상 속 수집가의 공간처럼 디자인한 이곳은 뉴욕의 아름다운 고층 빌딩 중 하나인 셀레네에 위치해 하늘에 떠 있는 섬처럼 존재한다.
주목할 키워드 13
런던아트의 스트롬볼리 컬렉션
알록달록 패턴 대잔치
독특한 패턴을 입은 패브릭과 월 데코 컬렉션은 리빙 디자인의 꽃과도 같다. 폐원사로 러그와 월 데커레이션을 만드는 벨기에 브랜드 코코노(cocono.com)에서 아메리카 고대 문명을 콘셉트로 만든 잉카와 아즈텍 러그는 다채로운 소재의 질감이 느껴지고, 말미잘·산호초의 풍경을 묘사한 시월드는 우리를 깊은 바닷속 세계로 초대한다. 이탈리아 월페이퍼 브랜드 런던아트(londonart.it)가 패션 브랜드 마르니Marni와 협업한 컬렉션은 화려한 색감과 터치가 춤추듯 어우러지며 벽면을 강렬한 에너지로 물들인다.
명불허전 프랑스 헤리티지
프랑스 수공예 크리스털 브랜드 바카라Baccarat는 2백60주년을 기념하며 브랜드 최초로 몰입형 미디어 아트 알케미Alchemy를 선보였다. 아틀리에에서 이뤄지는 장인의 연금술 영상과 함께 바카라의 여덟 가지 상징적 컬렉션을 감상하고, 바에서 글라스에 담긴 리큐어까지 마시면 브랜드를 오감으로 즐긴 기분이 든다. 영상은 2월부터 메종 바카라 서울에서도 만날 수 있다.
문의 메종 바카라 서울(02-3448-3778)
비비드&컬러풀 모먼트
프랑스와 중국에 뿌리를 둔 가구 브랜드 메종 다다(maisondada.com)의 부스는 온통 컬러로 가득했다. 올해 컬렉션에서는 예측할 수 없는 인간의 모습을 담은 유기적 형태의 사피엔스Sapiens 암체어와 소파, 1960년대 순수 양식을 목재로 구현한 의자 모쿠톤Mokuton, 입술 모양이 떠오르는 한 점의 오브제 같은 암체어 담 드 쾨르Dame de Coeur를 비롯해 여덟 가지 제품을 공개했다.
맥시멈의 클라벡스 테이블과 로토만 체어
지속 가능한 가구를 향해
전 세계 최대 화두인 지속 가능성에 대한 고민은 디자인업계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주제다. 프랑스 가구 브랜드 맥시멈(maximum.paris)은 건축 가설재와 유리 파티션, 목재 등 제조업체에서 발생하는 폐기물로 가구를 만든다. 로토만Rotoman 체어는 플라스틱의 품질 테스트를 위해 제작되었다가 곧장 폐기되는 아이템을 스툴 형태로 디자인해 다시 쓸 수 있게 했다. 대만의 디자인 스튜디오 메타META 디자인(meta.com.tw)은 폐자재 본연의 모습을 최대한 살린 디자인으로 더욱 지속 가능한 방식을 제안한다.
자유롭게 바꿔 쓰는 모듈 가구
모듈형 스토리지 가구는 때로는 파티션으로, 때로는 수납장으로 역할하며 디자인과 기능을 두루 만족시키는 똑똑한 아이템이다. 이탈리아 가구 브랜드 모그(mogg.it)의 주드 월 유닛Judd Wall Unit은 오목 볼록한 슬라이더가 번갈아 등장하며 솔리드와 보이드를 구획하는 디자인 요소로 활약한다. 벨기에 건축가 스튜디오 모토(studiomoto.be)가 선보인 스택Stack 시리즈는 알루미늄 부재를 클릭 시스템으로 끼워 만드는 제품으로, 사용자가 쉽게 바꿔 쓸 수 있다.
솔리드 우드와 수공예의 만남
정교한 목공으로 솔리드 우드의 아름다움을 한껏 드러낸 가구도 다양하게 등장했다. 단일 재료로 제작해 이음매 없는 하나의 피스처럼 느껴지는 것이 특징. 40여 년의 목공 경험을 바탕으로 설립한 베네치아 가구 브랜드 메둘럼(medulum.it)의 아르카테Arcate 컬렉션은 로마네스크 건축의 아치를 오마주한 수납장으로, 서랍장 단마다 곡면을 담았다. 프랑스 디자이너 알렉상드르 라브뤼예르(alexandrelabruyere.com)의 페시올Petiole 체어는 조각품처럼 깎아낸 뒷면이 특히 아름답다. 오스트리아 가구 브랜드 보아크(woakdesign.com)의 월 데코 컬렉션 웨지드Wedged는 목재를 직조하듯 엮어 공예적 면모를 한껏 드러낸다.
야마기와의 마유하나 조명
진격의 일본 디자인
이번 전시는 어느 때보다 많은 일본 브랜드가 등장한 자리이기도 했다. 모자 제조 기술을 응용해 리빙 오브제를 개발한 브랜드 몹제(mobje.jp)는 오브제와 화병 및 조명을 소개했고, 이와타(iwata.fun)는 장난감에서 영감받아 원목을 조각해 만든 시리즈를 선보였다. 일본의 조명 브랜드 야마기와(yamagiwa.co.jp)는 이번 메종&오브제 파리에서 성공적인 데뷔 무대를 치렀다. 시그너처인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조명 탈리에신Taliesin, 이토 도요의 마유하나Mayuhana를 비롯해 일본 전통 종이인 와시를 수공예 기법으로 제작한 수이Sui와 쇼쿠Syoku 시리즈, 석양에서 영감을 받은 트와일라잇Twilight 시리즈 등 2024 컬렉션을 공개했다.
브루털리즘을 입은 가구
브루털리즘은 1950~1970년대 유럽에서 모더니즘 건축의 한 갈래로 탄생한 양식이다. 최소한의 재료와 표현으로 조형성을 강조하고, 노출 콘크리트로 마감해 거친 질감이 그대로 느껴지는 것이 특징. 이 단순한 미학이 이번 전시에서 빈번하게 등장했다. 덴마크 가구 브랜드 101 코펜하겐의 브루투스Brutus 체어는 섬유 콘크리트를 틀에 부어 하나의 피스를 구현했고, 포르투갈 가구 브랜드 도크dooq의 버티고Vertigo 체어는 브루털리즘 운동에서 영향을 받은 듯한 형태에 트래버틴 무늬 패브릭을 입혀 편안함까지 갖췄다.
문의 101 코펜하겐(101cph.com), 마이알레(@myallee)
도마니의 무다 컬렉션
흙의 원초적 질감을 담은 정원
거친 토벽 파사드가 눈길을 끈 벨기에 포터리 브랜드 도마니Domani의 부스. 무대의 주인공은 디자이너 빈센트 반 두이센이 협업한 올해의 컬렉션 무다Muda다. 형태는 단순하게 만들되 고대 일본 도자기의 라쿠 기법을 적용해 표면 마감에 집중했다. 연기처럼 미묘하게 스며든 색감, 유약을 바르지 않아 원초적 질감이 살아 있는 점토가 정원에 존재감을 더한다.
문의 마이알레(@myallee)
핀란드에서 만난 한국
알록달록한 패치워크, 우리에게 어딘가 익숙한 모습이다. 한국의 보자기를 닮은 이 아이템은 헬싱키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디자이너 듀오 유슬린 마우눌라(juslinmaunula.com)가 선보인 패션과 홈웨어 컬렉션 점블Jumble이다. 직물 폐기물로 만드는데, 폐기물의 양이 일정치 않다 보니 패치워크처럼 조합하게 된 것. 가장자리의 솔기 디자인도 포인트다. 지난해에는 이 컬렉션으로 헬싱키 디자인 위크에서 아르텍과 협업을 선보이기도 했다.
라이브 인 시티
메종&오브제 파리 기간 동안 도심 곳곳에서도 다채로운 이벤트가 열렸다. 로로피아나 인테리어Loropiana Interior는 침실과 테이블, 욕실까지 확장해 더욱 개인화된 패턴과 색상을 갖춘 홈 비스포크 서비스를 공개했다. 타이핑Tai Ping은 브루클린의 장식 예술 아틀리에 칼리더스 길드와 협업한 컬렉션을 소개했다. 최고급 양모와 실크를 사용하고 아틀리에의 전통 기법으로 제작해 선 하나까지 정교하게 살아 있다. 몰테니앤씨는 폴리프로필렌 로프를 수공예로 직조한 페탈로Petalo 암체어, 모듈형 소파 시스템 스웨이Sway 등 실내외 어디에서도 자연스러운 아웃도어 컬렉션을 소개했다.
문의 로로피아나(02-6200-7796), 유앤어스(02-547-8009), 한샘넥서스(1670-1950)
지루한 가구는 이제 그만!
유쾌하고 위트 있는 가구를 선보여온 프랑스 브랜드 하르토(hartodesign.fr). 올해 컬렉션 또한 모나지 않은 디자인으로 경쾌함이 가득했다. 꽃잎을 펼친 모양의 조명 뉴 카르멘New Carmen은 바람개비처럼 밝은 에너지를 내뿜고, 스툴 클라우디Claudie는 오동통한 조각 같은 모습으로 따뜻한 무드를 더한다.
토스쿠의 테이블
콘크리트 미학
이번 전시에서 의외로 자주 마주친 소재는 바로 콘크리트다. 포르투갈의 수공예 콘크리트 스튜디오 토스쿠(toscostudio.com)는 콘크리트에 다양한 색감의 피그먼트를 조합해 마블을 닮은 독특한 패턴을 만든다. 유기적 형태와 색감 및 패턴이 조화를 이룬 화병, 선반과 의자, 테이블은 하나하나 유일한 아트피스와도 같다. 건축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아티스트 제임스 헤이우드(jameshaywood.me)가 콘크리트 슬래그로 만든 조명 에뢰르Erreur 404와 CTRL+ALT+DECONSTRUCT 시리즈는 자유로운 형태미와 소재 본연의 질감을 드러낸다.
취재 협조 메종&오브제 한국 공식 사무국(02-522-64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