쨍한 밤바람이 온몸을 각성시키는 11월은 ‘별 보러 가기’에 가장 알맞은 계절이다. 과학자들이 사용하는 최고의 망원경과 관측 시설, 실내에서 즐길 수 있는 천체 쇼를 상영하는 ‘플라네타륨’ 시설까지. 별과 우주라는 신비에 한 발짝 더 가까이 닿을 수 있게 만들어주는 국내의 주요 건축물과 천문관을 소개한다.
ORIONIS PLANETARIUM AND OBSERVATORY
올봄, 인구 3만 명 남짓의 프랑스 북부의 소도시 두아이Douai에 작은 천문관이 문을 열었다. 설계의 주인공은 노르웨이의 건축사무소 스뇌헤타Snøhetta로, 이들은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을 비롯해, 뉴욕 9·11 기념 박물관 파빌리언, 노르웨이 국립 오페라 발레단 등을 설계한 세계적인 건축 회사다. 광활하고 깨끗한 대자연을 경외하는 이들은 자연친화적인 건축을 지향하며, 주변환경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설계로 널리 알려져 있다. 천문관 이름인 ‘오리온Orionis’에서 알 수 있듯, 이들은 연속적으로 순환하며 영속하는 별의 움직임을 이 프로젝트의 영감으로 삼았다.
건물은 관람객들에게 제안하는 동선과도 완벽하게 부합하는 형태로 설계되었다. 관람객들은 외부에서 봤을 때 땅으로부터 비스듬하게 올려진 구조물을 따라 리셉션 공간, 선물 가게, 전시 공간을 거쳐서 돔 형태의 천장이 있는 플라네타륨 공간에 차례로 닿고, 완만한 경사로를 따라 1층의 출입구로 나오게 된다. 타원을 그리며 완만하게 이어지는 외부의 철제 패널과 일정한 간격으로 배치한 유리 파사드는 내부로 자연광을 끌어들이는 기능을 갖춘 동시에, 우주와 별의 순환을 상징하는 요소로서의 아름다움까지 지니고 있다. 6000만 화소의 화면, 130개의 좌석을 갖춘 몰입형 플라네타륨과 더불어 지름 43cm의 CDK형 망원경, 태양 표면까지 관찰할 수 있는 H-알파 망원경을 갖춘 관측소가 자리해 프랑스의 새로운 천문 명소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planetarium-orionis.com, snohetta.com
Photo: Jad Sylla
SPACE EYE
세계적인 건축가들에게 천문대 설계란 그리 구미가 당기는 프로젝트가 아닐지도 모른다. 더구나 그것이 대형 자본이 투입된 뮤지엄 형태가 아니라 별을 관찰하기 가장 좋은 첩첩산 중의 오지에 자리하는 것이라면 말이다. 그러나 세계적 건축가 마리오 보타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간결함과 규칙성, 콘텍스트에 대한 폭넓은 이해로 ‘숭고함’을 자아내는 건축물로 명성이 높은 그가 천문대 건축을 맡는다는 것은 건축계의 오랜 이슈였고, 마침내 그 결과가 공개됐다. 스위스 베른의 간트리슈 자연공원Gantrisch Nature Park에 자리한 작은 천문대 ‘스페이스 아이’가 지난 9월 말 공식 개관한 것.
“이곳의 풍경은 석조 공사 같은 전통적인 건축에 적합하지 않았습니다. 이 극도로 섬세한 자연환경에는 최소한의 개입만이 필요했죠. 저는 땅에서 나오는 광물의 꽃 ‘보석’을 떠올렸고, 이 천문대의 꼭대기에 하늘의 깊이를 탐색할 수 있는 보석과도 같은 ‘눈’을 설치하기로 했습니다.” 이에 따라 천문대는 눈의 모양과 완벽하게 일치하는 모습으로 설계되었다. 빛의 양을 조절하기 위해 홍채가 열리듯, 전망대의 꼭대기에서는 망원경을 품은 구조물이 조리개처럼 열려 우주의 변화를 관찰할 수 있다. 자연의 풍경에 흠집을 내고 싶지 않은 그의 바람대로, 플라네타륨은 지하에 위치시켰다. 이곳에서는 전 세계 주요 대형 망원경의 이미지가 실시간 전송되어 악천후에도 숨막히는 우주의 변화를 관찰할 수 있다. space-eye.ch, botta.ch
Courtesy of Ennead Architects. Photo: Arch-Exis
SHANGHAI ASTRONOMY MUSEUM
미술관과 오페라하우스, 대학 캠퍼스와 공원 등 새로운 공공 시설이 숨가쁘게 지어지고 있는 중국에서도 상하이 천문관은 그 규모와 완성도 면에서 건축계에서 꾸준히 회자되고 있는 프로젝트다. 2021년, 상하이 푸둥의 신도시 지역에 문을 연 이곳의 외관을 보면, 누구라도 찬탄을 금할 수 없을 정도다. 한 눈에 보아도 엄청난 위용과 더불어 이것이야말로 21세기의 중국에서나 가능할 만한 미래적인 프로젝트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기 때문. 4만2000m2에 짓는 세계 최대 규모의 천문 박물관 프로젝트를 수주한 주인공은 바로 미국의 이니드 건축 사무소Ennead Architects다. 이들은 내부로 직접 들어가지 않더라도 이미 그 외관에서 우주를 형성하는 기본 원칙을 실감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자 했다. 이런 원칙에 따라 우주의 기하학과 천체 운동의 역동적인 에너지를 반영해 직선이나 직각이 없는 야심찬 디자인을 구상했고, 플라네타륨이 자리한 구 형태의 돔, 그리고 회오리치는 듯한 건축물 정면의 나선형 본체 등으로 이를 완벽하게 구현해냈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건물 안에 반쯤 잠겨 있는 플라네타륨 극장이다. 떠 있는 구 형태의 건축물 라인을 따라, 외부에서 유입되는 빛이 시시각각 만드는 그림자는 그 자체로 ‘우주’와 ‘시간’의 흐름을 은유하는 듯하다. 중국 천문학의 역사를 알 수 있는 상설 전시실, 화성 탐사선, 인터랙티브 우주선 체험을 비롯해 다양한 영구 전시와 상설 전시가 열리며, 40m 지름의 플라네타륨 극장에서는 8K 해상도의 초대형 스크린을 통해 환상적인 우주 탐험을 즐길 수 있다. sstm-sam.org.cn, ennead.com
HAINAN SCIENCE AND TECHNOLOGY MUSEUM
최근 중국 주요 문화 랜드마크의 설계를 독식하다시피 하는 MAD 아키텍츠의 작품 중 하이난성 하이커우시에 짓는 ‘하이난 과학기술박물관’을 빼놓을 수 없다. MAD 아키텍츠의 가장 큰 특징이라 할 수 있는 미래지향적인 외관과 유기적인 선형미는 이번 하이난 과학기술박물관에서도 역시 예외없이 드러난다. 전체적인 건축물의 형태는 하늘을 향해 소용돌이치는 구름 모양을 닮았으며, 섬유 강화 플라스틱으로 만든 건물의 은색 표면은 인근의 무성한 열대우림과 호수의 물결을 그대로 담아낸다. 전체적인 동선은 ‘뉴욕 구겐하임 뮤지엄’처럼 나선형으로 원을 그리며 차례로 아래층에 닿는다.
4층에 위치할 ‘해양 생명 갤러리’, 3층의 ‘수학 과학 갤러리’와 더불어, 그 백미는 최상층인 5층에 위치한 ‘기술과 우주 갤러리’다. 중국 최대 규모 인 2개의 스크린과 플라잉 시어터가 자리하며, 길게 이어지는 건물의 남서쪽에는 우주 천체 쇼를 관람할 수 있는 천체 투영관과 하늘을 향해 열리는 전망대가 마련되어 있다. 고온 다습하고 비가 잦은 하이난성의 기후를 반영해 건물 지상층에 넓은 캐노피를 설치하고 선큰 광장을 조성하는 등 활발한 ‘커뮤니티’로의 기능을 놓치지 않은 점 역시 주목할 만하다. i-mad.com
밀양아리랑 우주천문대
‘외계 행성과 외계 생명’을 테마로 2020년 밀양시에 문을 연 밀양아리랑 우주천문대는 ‘천문학 애호가’들을 불러 모으는 숨은 명소로 사랑받고 있다. 특히 이곳 ‘밀양의 오래된 무덤에서 외계인의 흔적이 발견됐다’라는 스토리텔링을 시작으로 관람자들을 비밀스럽고 광활한 ‘우주’의 세계로 이끈다. 외계 행성이라 추측되는 ‘케플러 62의 공전’ 모형, 차세대 초거대 망원경 GMT(Giant Magellan Telescope)의 축소 모형 등은 우주에 관한 여러 배경 지식을 제공하며, 토성의 위성인 타이탄을 재현한 듯한 세트장에서는 ‘VR 게임으로 그 비밀스러운 세계를 간접체험할 수 있다.
국내 최고의 시설을 갖춘 천체 투영관 ‘상상’은 ‘메가스타 IIA’ 천체 투영기를 사용해 실제와 같은 밤하늘을 구현하며, 70cm 구경의 음성인식 망원경 ‘별이’를 비롯해 루프톱에 설치된 총 5개의 망원경으로 태양과 행성을 직접 관찰할 수 있다. 11월 4일, 5일에는 천문대 본관 및 광장에서 ‘2023년 외계인 대축제’가 열릴 예정이다. 이곳의 대표 축제로, 외계인의 납치와 탈출이 테마인 메인 행사가 펼쳐지고 외계 생명체와 연계된 스토리라인을 바탕으로 과학 실험과 체험 활동도 이뤄진다. miryang.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