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미디 공개 방청 프로그램들이 하나둘 역사 속으로 사라지면서 유튜브가 코미디언의 다음 정착지가 되었다. 명실공히 우리나라 최고의 코미디언 크리에이터들과 함께 이 시대 웃음을 만들어내는 코미디 레이블 메타코미디의 정영준 대표를 만났다.
정영준 국내 최초 코미디 레이블인 메타코미디를 설립하고 한국의 내로라하는 아티스트와 함께 대한민국 코미디계의 판도를 흔들고 있다. 원래는 오하이오 주립대학교에서 건축을 전공하고 건축사무소 매스스터디스를 거쳐 엔터테인먼트 분야로 옮겨왔다.
시간을 조금만 거슬러 올라가보자. 2000년대만 하더라도 <개그콘서트>와 <웃음을 찾는 사람들(웃찾사)> 같은 공개 방청 TV 코미디 프로그램이 큰 인기를 끌었다. 이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코미디언의 유행어가 교실과 회사 안팎에서 끊임없는 웃음을 만들던 시기가 있었다. 그런데 2010년 <웃찾사>의 폐지를 시작으로 2020년 코미디 프로그램의 대명사라 할 수 있는 <개그콘서트>까지 막을 내렸다. 많은 코미디언이 새로운 형식의 코미디를 고심하고 프로그램을 기획하며 고군분투하는 시기가 찾아왔다. 분명 이 시대 대중이 원하는 웃음과 형식이 있음을 직감한 이들은 유튜브, 인스타그램 같은 SNS 플랫폼에 모여들었다. 그렇게 흩어져 활동하는 이들을 모아 누군가 하나의 거대한 코미디 레이블을 건설하기에 이르렀는데, 그 주인공이 바로 메타코미디의 정영준 대표다.
“코미디 혹은 개그라는 건 결국 어떤 대상을 희화화하면서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누군가는 같은 개그를 마주했을 때 마냥 웃기도 하지만, 또 누군가는 불편할 수도 있는 거죠. 우리나라의 코미디계는 그간 최대한 많은 이가 ‘불편하지 않을 만큼’의 콘텐츠를 짰던 것 같아요. 어쩌면 이것이 코미디 방송이 위기를 겪은 이유가 아니었을까요. 그렇지만 결코 이것이 실패라는 뜻은 아닙니다. 시대가 변화하면서 사람들이 원하는 콘텐츠, 사용하는 플랫폼도 바뀌기 마련인데, 그 시기가 도래한 것뿐이죠.” 정영준 대표는 담백하게 지난 몇 년간 큰 변화가 있었던 코미디계를 가늠했다. 이전에도 <유머 1번지> 같은 프로그램이 여럿 있었지만, 이들 역시 시대가 변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으니 말이다.
정영준 대표는 원래 건축을 전공했고, 조병수 건축가가 이끄는 건축사무소 매스스터디스에도 몸담은 적이 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볼 수 있는 가우디의 건축물이 건축 공부의 시작이었어요. 건축물도 물론 멋있었지만, 그 사람의 영향력을 동경했던 것 같아요.” 건축은 땅과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란 걸 배웠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발생할 수 있는 웃음과 이를 재료로 삼아 빌드업하는 코미디가 건축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해왔고, 그래서 늘 좋아했습니다.” 긴 시간 건축사무소에서 일하며 자신이 가야 할 길을 재고한 그는 결단을 내렸다. “건축 공부를 후회하지는 않아요. 이를 하나의 프레임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또 다른 방식이 생겼으니까요. 남들과 다른 데서 시작하고 다른 길을 걸었으니, 저의 시각이 엔터테인먼트 분야에서 독특한 방식으로 통할 것이라는 자신이 있었어요.”
이후 CJ ENM과 YG엔터테인먼트, 샌드박스 등을 거친 그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유쾌하고 재미있는 이들과 일하며 현시대 코미디를 치밀하게 분석하기 시작했다. “앞서 언급했듯이 코미디는 삶을 희화화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합니다. 그래서 수용할 수 있는 것과 그러지 못하는 것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는 일이 무척 중요합니다만, 그렇다고 또 너무 안정적인 콘텐츠만을 추구할 수는 없어요. 참 어려운 일이에요.” 그가 거쳐온 길에서 만난 수 많은 크리에이터와도 자연스럽게 연을 맺었다. 그 결과 현재 메타코미디에는 애니메이션 유튜브 크리에이터 ‘장삐쭈’, 명품을 자랑하는 유명인을 풍자하는 ‘엄지렐라’, 2030세대를 겨냥한 콘텐츠로 큰 사랑을 받는 ‘피식대학’, 2000년대 스타일링을 선보이며 한국으로 건너온 일본인 ‘다나카’, 일명 빵빵 터지는 방송국 ‘빵송국’ 등이 각자의 개성을 뽐내며 종횡무진 활약 중이다.
“이들에게 2가지를 해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첫째는 회사를 통해 활동하는 영역을 보조하고, 또 시름 없이 자기 아이디어를 펼쳐 보일 수 있게 하는 거예요. 둘째는 개인적인 부분일 텐데, 이는 우리가 하나의 가치, 그러니까 대한민국에서 ‘코미디 대표’가 되는 것을 함께 이뤄가고자 하는 목적의식의 공유라고 생각해요.” 정 대표는 기획이 치밀하지 않으면, 결국 지속 가능한 코미디는 불가하다고 말한다. “코미디언도 아티스트입니다. 그래서 메타코미디를 ‘회사’라고 부르지 않고 ‘레이블’이라고 하는 거죠. 저희가 관심 있는 건 결국 사람이고, 그 사람들이 만드는 웃음, 그리고 더 나아가 이들이 바꿔나갈 사회적 통념에 대한 인식 전복이 저희의 역할 아닐까요. 재능과 노력 모두를 아우르는 아티스트와 함께 우리나라를 ‘코미디 강국’으로 만들어보고자 합니다.”
웃음에 대한 말랑말랑한 마음과 치밀하게 분석하는 머리를 동시에 가진 정영준 대표는 메타코미디를 이끄는 수장인 동시에 든든한 버팀목과 정확한 나침반, 그리고 동료의 역할 모두를 자처한다. 그가 자신 있게 내건 메타코미디의 궁극적인 목적 ‘코미디 강국’을 향한 여정에 우리나라 내로라하는 코미디언과 아티스트가 동참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