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양당에는 문화가 흐른다. 연극·영화계의 원로인 김정옥 선생이 처음 광주 이석리에 터를 잡았고, 이어 김병종 화백이 왕십리의 1백여 년 된 한옥을 해체해 이 터에 집을 짓고 ‘함양당含陽堂’이라 이름 붙였다. 이제는 류효향 선생이 아름다운 차 향기 가득한 문화 공간으로 꾸려나가려고 한다.
류효향 선생의 초대로 함양당에 온 숙우회 회원들이 마당에서 손님을 대접하는 행다법인 ‘청음’을 진행하고 있다.
창과 문이 나뉘지 않은 한옥의 특성처럼 안과 밖, 어디에서든 차를 즐긴다. 이번 레노베이션을 하며 새로 만든 툇마루는 아름답고 편안한 휴식처다.
류효향 선생의 차 이야기부터 시작할까. 대기만성大器晩成이란 어쩌면 선생을 가리키는 말인지도 모른다. 류효향 선생이 차인茶人의 길을 걷기 시작한 것은 마흔이 넘어서다. 아이를 키우고 좋은 대학을 보내는 게 일생일대의 꿈인 삶을 살다가 밖으로 나와 우연히 차에 마음을 뺏겼다. 자신이 집에서 시간을 보내는 동안 사람들이 너무 아름다운 걸 행하고 있음을 보고 그 자리에서 차를 배우기로 결심했다. 차를 공부한 지 10년 되었을 때 부산 달맞이고개에 차실 ‘비비비당’을 열었다(비비비당은 현재 선생의 작은며느리가 물려받아 운영한다).
선생은 자신이 다도 생활을 계속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순간을 기억한다. “선생님이 조선 시대 다완茶碗으로 수업을 하시는 거예요. 다완을 손에 딱 쥐는 순간, ‘이게 뭐예요?’ 라고 물었죠. 너무 아름다워서요.” 그때가 류효향 선생이 맞은 인생의 전환점이었고, 문화적인 안목을 갖추는 기초가 되었다. 류효향 선생은 다른 사람에게도 자신과 같은 순간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한 번의 작은 경험이 얼마나 소중한지 잘 알기에. 특히 젊은이에게는 이러한 기회가 더욱더 많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비비비당을 시작했고, 이제 그 토대를 한옥으로 옮겼다. 자연 속 한옥의 아늑함과 함께 차 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차실. 선생은 한국 전통차 문화 체험과 수업 등을 준비 중이며, 이곳의 이름은 여전히 함양당이다.
홀로 명상하며 차를 즐기는 ‘독좌’. 작은 화병이 놓인 가구는 권연아 씨의 컬렉션 중 하나로, 조선 시대 선비가 벼루나 먹 등을 보관하던 연상硯床이다.
대청마루는 난방 설비를 해 방처럼 만들었다. 이 공간에서 숙우회 회원들은 식사를 통해 명상하는 ‘발우공양’을 했다.
차와 한옥은 하나로 이어진다
본격적인 차행법 수업을 시작하기에 앞서 류효향 선생은 차행법 숙우회 회원들을 함양당에 초대했다. 변덕스러운 여름 날씨에 일기예보는 빈번히 엇나갔고, 다행히 맑은 하늘이 멀리서 온 객들을 맞이했다. 차에는 이를 아름답게 마실 수 있는 다법이 존재하고, 이를 행하는 것은 수련과 같다. 하지만 어디서든 차를 마실 수 있기에 장소의 경계는 중요하지 않다. 이와 비슷하게 한옥에는 창과 문이 나뉘어 있지 않다. 바람이 다니면 창이고, 사람이 다니면 문인 것이다. 함양당의 1백 년 된 우물가가, 햇볕을 품은 마당이, 별채와 대청마루가 선생과 숙우회 회원들의 차실이 됐다. 한옥은 차가 가장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는 곳인 셈이다.
건축가 유현준은 “건축의 묘미는 경험하는 자의 신체의 크기, 과거의 경험, 무의식 등에 따라 완전히 다르게 해석될 수 있는 데 있다”고 했다. 물건과 공간 안에 자리한 심미성을 찾아내려면 노력이 필요하다. 차를 통해 오롯이 느끼는 법을 수련해온 숙우회 회원들은 누구보다 한옥을 잘 느끼는 사람들이다. 차를 배운 지 6년 됐다는 강나겸 씨처럼. “차를 즐기면서 차의 멋과 한국의 멋을 알게 됐어요. 그 귀함을 알기 때문에 이곳이 얼마나 귀하고 멋진지 더 잘 보이죠.”
방처럼 만든 대청마루. 한지로 전체를 감싸 하얗고 깨끗한 방과 달리 대청마루는 서까래, 기둥, 보, 창호 문살 모두 나무색을 그대로 드러냈다.
뒷마당에서 바라본 별채. 오후의 볕이 포근히 드리웠다.
함양당 현문을 지나면 나오는 1백 년 된 우물 앞에서 진행한 행다법 ‘헌다’. 참고로 이 우물은 수질 검사 결과 적합 판정을 받았고, 그 물맛은 시원하고 달다.
함양당에 차향이 흐르게 된 데에는 류효향 선생의 며느리 권연아 씨의 공이 컸다. 골동 미술품 컬렉터이자 집의 안주인인 권연아 씨가 함양당을 더 편리하게 레노베이션하며 이곳에 시어머니 류효향 선생의 차 문화가 더해지길 원한 것. 권연아 씨의 진두지휘 아래 함양당은 안팎으로 많이 달라졌다.
단열과 난방에 신경 써 난방이 되지 않던 대청마루는 바닥까지 완전히 개조했고, 공간을 증축해 새로운 부엌과 욕실이 생겼다. 류효향 선생의 다구茶具를 보관할 벽장도 함께. 대청마루의 1백 년 된 마룻장은 그대로 새로운 툇마루에 사용했다. 본채를 한 바퀴 두른 툇마루는 여럿이 옹기종기 앉아 쉬어 가는 쉼터다. 전통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면서도 그에 얽매이지 않는 권연아 씨의 자유로운 감성은 한옥 전체에 녹아 있다. 한국적인 부드러움이나 편안함이 느껴지는 유럽의 디자인과 재료를 적극 활용했다. 예를 들어 흙을 바른 듯 우둘투둘한 질감의 연한 황토색 타일은 황토칠한 한옥의 느낌을 자아낸다.
말린 상추로 지은 상추밥과 햇감자를 넣은 호박잎국, 어수리꽃튀김 등 텃밭에서 키운 식재료로 차려낸 발우공양 음식.
낮은 돌담 너머로 보이는 함양당 전경. 앞에는 팔당호수가, 뒤에는 수령 3백50년 된 은행나무가 함양당을 든든하게 감싸고 있다. 류효향 선생은 이곳을 차 향기 가득한 문화 공간으로 꾸려나갈 예정이다.
간소한 삶의 즐거움
류효향 선생은 보름은 이곳 함양당에서, 보름은 본가인 부산에서 보낸다. 새들이 안락하게 쉬는 마을이라는 조안鳥安리가 바로 옆이어서일까, 이석二石리 돌담 너머 들려오는 새벽 새소리로 아침을 연다. “여기서는 일어나자마자 대청마루 문을 열고 나가 이불을 털어요. 잠자리를 정리하고, 밤새 먼지가 내려앉은 마루를 닦는 게 루틴이 되었죠.” 팔당호수를 마주한 볕 잘 드는 터에 자리한 함양당은 낮에는 햇볕이, 밤에는 달빛이 마당을 채운다. 가진 게 적을 수록 우리는 선명해지고, 비로소 자연 속에서 풍족해진다. “배고프면 밥 먹고, 해 뜨면 눈뜨고, 목마르면 물 마시고. 과거에 읽은 선시禪詩 속 삶이 이제야 와닿는 것 같아요. 일상이 도道라더니, 한옥에 와서야 오롯이 느끼네요.” 차에 집중하며 스스로 고요함을 자각하던 것처럼, 류효향 선생이 함양당에서 보내는 일상도 차와 같다.
행복교실
함양당 한옥에서 차행법 수업
류효향 선생의 차행법 클래스에 초대합니다. 고려·조선 시대 다구를 체험하며 차행법을 배워봅니다.
일시 9월 15일(금) 오후 2시
장소 함양당
인원 8명
참가비 10만 원
신청 방법 <행복> 홈페이지 ‘이벤트’ 코너 또는 전화(02-2262-7349)로 신청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