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왕자>를 쓴 생텍쥐페리의 증손자인 알랭 드 생텍쥐페리. 열쇠 복원 보존 전문 장인이다.
세상에! 열쇠 복원가인 생텍쥐페리의 종손 이야기가 실려 있던데.
알랭 드 생텍쥐페리는 열쇠 복원 보존 전문 장인이자 목재 가공 전문가이면서 헬기 제작자다. <어린 왕자> <야간비행>을 쓴 앙투안 생텍쥐페리가 알랭 드 생텍쥐페리의 증조할아버지다. 비행과 기계, 모험을 사랑하는 것은 생텍쥐페리 가문의 특질이 아닐까 싶다. ‘온갖 생텍쥐페리’들이 남긴 수많은 유물이 쌓인 프레이스성에서 그는 거대한 창고, 열쇠 아틀리에, 헬기 아틀리에를 오가며 산다. 아직도 하루에 세 번 미사를 드리고(덕분에 성에 딸린 예배당에서는 시간마다 종을 울린다), 조용히, 작은 버라이어티를 모으며 묵묵히 지낸다. 프레이스성에서 하룻밤 묵으며 그 성의 창문이 1백5개라는 이야기를 귀동냥하고 “보아뱀이 들어 있어요”라고 쓰인 앙투안 생텍쥐페리의 헬리콥터를 본 일은 축복 같은 시간이었다.
파이프오르간 제작자, 타피시에, 과학 기구 장인, 귀갑 장인 등 다양한 장인의 아틀리에를 취재했던데, 섭외가 무척 어려웠겠다.
장인의 세계는 그들만의 직업적 연결 고리로 이어져 있다. 클라브생(하프시코드, 쳄발로 등으로 부르는 발현악기)을 만드는 본 나젤을 처음 인터뷰했는데, 재상 콜베르의 유지를 받들어 프랑스 장인을 후원하는 단체의 대표를 역임한 이로, 프랑스 장인계의 큰 할아버지 같은 분이다. 본 나젤이 전화를 한 통 해주면 아틀리에 문이 스르르 열리는 기적을 경험했다. 과학 기구 장인인 티로를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도록 에르메스 가족 박물관에 방문하는 기회를 만들어줬고, 외부인을 꺼리는 오베르탱의 파이프오르간 제작 아틀리에를 방문할 때도 여러 번 전화를 걸어주었다. 오베르탱의 아틀리에는 파리에서 기차로 다섯 시간 넘게 걸리는 쥐라의 숲속 수도원에 자리하는데, 일부 건물은 12세기에 지었을 정도로 오래됐다. 책에 아틀리에 주소를 넣지 않은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아틀리에는 그들의 삶이자 작업 장인 것이다.
‘직물의 지휘자’라 불러 합당한 타피시에 장인 레미 브라제.
파이프오르간 제작자 오베르탱이 아틀리에로 쓰는 수도원의 구조도.
프랑스 크리스티 경매학교와 감정사 양성 전문학교에서 공부하고, 파리 1대학과 파리 4대학에서 박물관학과 미술사학 석사 학위를 받은 ‘미술사학자 겸 장식미술 감정사 이지은’의 역사가 만든 책이다. 오브제 뒤에 숨은 장인의 소중함을 아는 사람이 낼 수 있는 책이다.
프랑스 유학생 사이에는 3년 지나면 살 만해지고, 5년 지나면 권태기가 오며, 7년째가 되면 프랑스를 떠나고 싶어지고, 10년 되면 프랑스에 살게 된다는 이야기가 있다. 나도 7년째 되던 해 ‘한국에 돌아간다면 무엇이 제일 아쉬울까? 프랑스에서 가져가고 싶은 것이 무엇일까? 가장 소중한 기억은 또 무엇인가?’ 생각해보니 답은 장인의 아틀리에였다. 유학 생활 동안 마음을 어루만지고 수많은 지식을 알려주던 곳, 그곳에서 만난 장인과 직공. 그들의 아틀리에는 내게는 보물 상자나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이 책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열두 명의 장인 중 가슴 떨리는 한 문장을 남긴 장인을 꼽으라면?
“지성으로 만들어낸 장대로 앞에 놓인 장애물을 뛰어넘는 것, 그것이 시계공의 업이다.” 시계 무브먼트를 만드는 장인, 프뤼트네는 지성을 찬미하는 사람이었다. 그 누구도 완벽한 시계를 만들 수는 없다. 르네상스 시대의 시계가 20km에서 1m를 더 초과해 달리는 육상 선수였다면, 현대의 시계는 20km에서 5mm를 더 달리는 육상 선수라고 할 수 있다. 1m에서 5mm가 되기까지, 995mm를 줄인 것은 인간의 지성이 이루어낸 쾌거다. 프뤼트네는 자신보다 앞선 시계공들이 남긴 지식으로 이루어진 장대, 수천수만의 지성이 만들어 낸 장대로 1mm를 줄여 보다 완벽한 시계를 만드는 것, 그걸 시계공의 업이라고 했다. 장인은 과거와 오늘은 잇는 메신저다. 그 장인들이 가진 과거 역시 지성으로 이루어진 장대다. 그리고 장인들이 만들어 가는 오늘은 그 장대를 이용해 끊임없이 높이뛰기에 도전하는 매 순간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