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해녀는 생계를 위해 바다로 나가 물질을 했다. 산소통 없이 오직 숨 하나에 의지해 바닷속을 헤매면 바다는 늘 신선한 먹을거리를 내주었다. 해녀에게 바다는 커다란 부엌이자 보물 창고다. 제주 음식에는 바다와 만나 강인한 생명력을 교감하는 해녀 문화가 담겨 있다. 이런 해녀의 삶과 음식을 소개하고자 하는 이들이 모였다. ‘해녀 다이닝’ 콘셉트의 레스토랑 ‘해녀의 부엌’에서 해녀와 기획자, 셰프를 만나 요리에 담긴 이야기를 들었다.
“해녀한테 바다가 뭐냐고? 뭐긴, 우리 부엌이지. 한 번이라도 더 바다에 들어가야 자식들 밥상에 반찬 하나 더 올릴 수 있으니까. 눈이 와도 들어가야지 안 그러면 물때를 놓치고 나중 가면 먹을 것도 없어. 여덟 살 적 시작해 서른 넘어서까지 물적삼 하나 걸치고 하루 종일 바다에 나갈 땐 물속에서 한 시간도 못 버텼지. 올해 여든여섯 됐으니 물질 참 오래도 했네. 그 고생한 세월, 책으로 쓰면 다섯 권에도 다 못 써.” _제주 종달리 김춘옥 해녀 삼촌
너른 바다 곳간의 해산물
해녀는 식재료를 구하러 마트가 아닌 자연으로 향한다. 이른 새벽에 우영팟(작은 텃밭)으로, 물때가 되면 바당(바다)으로 나가 신선한 재료를 구한다. 바다에서 삶을 살아온 해녀만이 알 수 있는, 바다 산물 다루는 방법이 있게 마련. 해산물이 많이 나는 자신만이 아는 구역이 있고, 엄마 해녀나 상군 해녀에게 그 밭을 익힌다. 해녀 공동체는 물질 경험과 기량에 따라 상군·중군·하군으로 나누고, 상군 중에서도 탁월한 기량과 풍부한 경험을 갖춘 해녀를 ‘대장군’이라 부른다. 소라나 전복·성게·문어를 잡는 것을 ‘헛무레’라고 하는데, 개별 작업이라 해녀의 기량과 능력에 따라 채취하는 해산물량은 천차만별이다. 또 제주 해녀들은 해산물이 번식하고 자라는 시기에는 금채기로 정해 물질을 쉬고 바다 환경을 보호하는 자연 친화적 생활을 한다. 소라·전복·해삼·성게를 잡는 헛무레는 여름 산란기에는 휴식하고, 가을부터 다시 작업해 이듬해 봄까지 계속한다. 해산물은 계속 채취해야 잘 자란다. 해녀가 없다면 바다도 더 이상 자연산 톳이 자라지 않는 환경으로 바뀔 것이다. 해녀의 부엌에서는 뿔소라를 중심으로 해녀의 해산물과 요리를 소개하는데, 뿔소라는 연중 대부분 맛볼 수 있는 제주 해녀에게 소중한 식재료이자 주요 소득원이기 때문이다. 제주에서는 소라를 구쟁기라 부르는데, 육지의 참소라와 달리 뿔이 삐죽삐죽 솟아 있다. 현무암 구멍에 뿔을 꽂고 제주의 강한 물살에 떠밀려가지 않도록 버티기에 조류가 센 곳일수록 뿔의 길이가 길고 육질 또한 확연히 차이가 난다. 뿔소라는 껍질이 단단해 망치로 깨고, 가운데 부분은 버리고 앞부분과 끝부분만 먹는다. 내장이 하얀 수놈이 더 부드럽고 풍미가 말끔하다.
“해녀의 부엌은 ‘뿔소라를 세계인의 식탁으로’라는 사명을 가지고 제주 해녀분들 및 예술인과 함께 제주 해산물의 가치를 높이는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어요. 해녀 음식에는 수많은 해녀의 애환과 강인한 생명력이 담겨 있음을 알리기 위해 연극, 해녀 토크쇼, 미디어 아트, 전시 등 다양한 콘텐츠를 기획해 선보이고 있지요. 해녀라는 삶에 자긍심을 느끼지 못하며 살아온 분들이 해녀 배우로 무대에 서고, 관객분들과 만나면서 ‘나, 잘 살아왔구나’ 말씀하실 때 뿌듯합니다.”_ 해녀의 부엌 김하원 대표
해녀의 ‘숨’이 담긴 한 상 차림
제주 돌미역으로 끓여 진한 바다 맛이 나는 미역국, 바다의 불로초라 일컫는 톳과 흑임자로 만들어 고소한 흑임자죽, 된장 베이스의 제주 전복물회, 새콤하게 무친 톳무침과 군소무침. 바다의 검은 소 혹은 민달팽이라 부르는 소는 생으로 먹지 못하고 쪄서 먹는 해산물로, 닭 가슴살과 버무려 먹어도 좋다. 우무귤양갱은 산뜻한 맛이 일품이다. 해녀가 갓 잡아 신선한 뿔소라는 회로 먹으면 오독오독한 식감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살을 발라 꼬치에 꿰어 만든 뿔소라꼬치는 해녀들이 경조사 때 귀한 손님에게 대접하는 별미다.
“어려서 물질 나간 엄마를 보러 우도 바다에 가면, 엄마는 땔감이 귀하니 바닷가에서 마른 감태를 태워 뿔소라를 구워줬어요. 타닥타닥 감태 타는 소리, 뿔소라에서 감태 냄새 나던 그 맛이 지금도 잊히지 않아요. 물질 나온 해녀 삼촌들이 불턱에 둘러앉아 온기를 나누던 모습, 물질하고 온 엄마한테서 나던 냄새도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고요.” _ 제주 종달리 고인숙 막내 해녀
불턱에서 온기를 나눈 추억의 음식
뿔소라 요리는 바다에서 주워 온 현무암으로 만든 작은 화로에 올려 불턱에 모여 앉아 뿔소라를 구워 먹던 고인숙 해녀의 이야기를 담았다. 볶은 뿔소라에 감저(고구마)범벅과 메밀을 버무려 올려 고소함을 더했다. 해산물 쌈은 해녀들이 물질하다 배가 고플 때 미역에 성게알을 얹어 먹은 요리다. 특별한 날이면 해녀들은 또 다른 해산물 쌈을 즐겨 먹었는데, 뿔소라 외에도 바다에서 채취한 해산물 중 가장 귀하고 값비싼 돌문어, 황돔, 돌미역, 성게, 모자반 등을 삶은 배추에 올려 싸 먹곤 했다.
“해녀 다이닝의 새로운 메뉴를 개발하면서 가장 중점을 둔 것은 해녀의 역사와 문화를 담으면서 제주의 기본 맛을 놓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특이한 식재료를 찾지 않고, 해녀의 삶이자 일상인 식재료를 발견하고자 본질로 돌아갔지요. 멜젓을 버터에 볶아 농도를 맞추는 등 전공인 프렌치 조리법을 활용해 내림 음식을 새롭게 구현하고, 현대적 감각으로 연출하고자 합니다.” _해녀의 부엌 북촌점 이민우 총괄셰프
전통을 변주한 해녀 코스 요리
해녀들이 쌀과 보리를 활용해 만든 유산균이 풍부한 건강 음료인 쉰다리는 첫맛은 새콤하고 뒷맛은 보리의 풍부함이 느껴지는 풍미를 지녔다. 해녀가 채취한 자연산 톳을 넣은 상웨떡은 유채꽃을 올린 부드러운 고사리나물을 곁들인다. 제주에서는 밥을 하나의 낭푼(양푼)에 넉넉히 담고, 각자 먹을 만큼 덜어가서 먹는 ‘낭푼밥상’이라는 문화가 있는데, 해녀 셰프가 친환경 농장에서 키운 흑돼지 돔베고기를 썰어 꽃멜 소스, 둠비(마른 두부) 등과 함께 푸짐하게 제공한다. 해녀의 부엌 북촌점 요리는 제주 화산 회토로 빚은 김경찬 도예 디자이너의 그릇에 담아낸다.
해녀의 부엌은 본점과 북촌점 두 곳을 운영한다. 구좌읍 종달리에 자리한 본점은 종달어촌계와 청년 예술인이 협업해 권영희, 김춘옥 해녀를 비롯해 실제 해녀의 삶을 주제로 한 연극 공연과 해녀의 뷔페 요리를 소개하는 ‘해녀 극장식 레스토랑’이다. 북촌점은 조천읍 북촌리에 자리해 북촌어촌계와 협업하며 ‘미디어 아트 레스토랑’ 콘셉트로 열두 명의 예술가가 만든 공간에서 열네 명만을 위한 특별한 코스형 식사를 제공한다.
문의 및 예약 070-5224-1828, haenyeokitche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