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지면 사야 합니다.” 과거 시장에서 종종 보이던 이 문구는 당시의 판매자와 소비자의 관계를 정확히 보여줬다. ‘감상’ 역시 당시 미술관에서만 이뤄지는 행위로 여겨져 소비와는 상당히 무관해 보였다. 그러나 구매의 목적이 물건이 아닌 경험에 초점이 맞춰지기 시작하자 브랜드들은 소비자와 다른 관계를 모색하기 시작했다. 판촉의 강박에서 벗어난 플래그십 스토어 혹은 팝업 스토어는 이제 소비가 아닌 감상의 경험을 제공한다. 마치 현대미술관과도 같은 모습에 다다른 것이다.
구매로부터 벗어나기, 무브먼트랩
무브먼트랩은 가구를 중심으로 다양한 리빙 브랜드를 소개하는 편집숍이다. 시즌별로 전시를 열고, 이 전시에서 자신들이 큐레이션한 제품을 소개한다. 한 사람이 일생 동안 소파와 침대를 사는 횟수는 몇 번이나 될까? 분명 칫솔이나 티셔츠를 구매하는 빈도보다는 낮을 것이다. 무브먼트랩은 당장 구매 계획이 없는 사람도 방문할 수 있는 전시 공간으로 오프라인 스토어를 기획했다. 시즌 전시의 테마와 작품 소개 또한 도슨트 형태로 이루어진다. 무브먼트랩의 BX 디자인팀 금동혁 실장은 “브랜드 공간을 구매가 일어나는 곳으로 한정 지을 경우 방문자 또한 소비에만 집중하게 된다. 해당 제품의 가격은 적당한지, 나에게 베푸는 친절이 판매를 위한 것은 아닌지 구분하며 방어적 태도를 취하게 되는 것이다. 반면 전시 공간으로 제안할 경우 제품을 작품으로 인지하고, 감상에 집중할 수 있게 된다. 감상은 관람객 입장에서는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생산적인 경험이며, 브랜드 입장에서는 기획 의도와 메시지를 보다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게 된다”라고 설명했다.
상상이 실현되는 곳, 누데이크 성수
늘 사람들로 붐비는 성수동 한복판에 지난해 7월 22일 오픈한 평화로운 디저트 숍 누데이크 성수. 누데이크의 오프라인 스토어로는 네 번째 공간이지만 단독 플래그십 스토어가 들어선 것은 처음이다. 누데이크 팀은 ‘고요하고 우아한 뮤지엄에서 달콤한 케이크 한 조각을 즐기는 한 사람’을 상상하며 공간을 기획했다. 손톱만 한 크루아상, 햄버거 모양의 케이크, 제주도의 오름을 연상시키는 시그너처 케이크 등은 현대미술관에서 만난다고 해도 손색없을만큼 독창적이다. 케이크 박스를 연상시키는 외관은 다소 비밀스러운 인상으로 내부로 들어갔을 때 더욱 큰 감탄을 자아내게 만드는 장치다. 마치 조각가의 아틀리에에 방문한 듯 공간에 가득 찬 ‘빵 오브제’는 디저트 숍을 미술관으로 전환시킨다. 지름 3.8m의 테이블 또한 압도감을 자아내며 실험적인 누데이크 디저트의 전시대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작품의 아우라를 담아내는 전시장은 일상에서 가장 비현실적인 상상이 재현되는 곳이 아니던가. ‘Make New Fantasy’라는 누데이크의 슬로건 아래 탄생한 이색적인 현대미술관으로 보아도 무방할 듯하다.
제품을 작품으로, 갤럭시 스튜디오 성수에서 만난 ‘이클립스’
인스타그램 탄생 이전부터 경험을 증거로 남기고자 하는 인간의 본능은 존재했다. 수전 손택도 〈사진에 관하여〉(1977)에서 ‘사진이 여행의 목적’이 되어버린 것을 언급하지 않았던가. 물론 저자의 시선은 이 현상을 곱게 보지 않았으나 50여 년이 지난 지금, 사람들에게 사진은 여전히 경험을 증명하는 방법이고, 더 나아가 이를 콘텐츠로 활발하게 공유한다. 그리고 이 경험을 모두 휴대폰 카메라로 촬영한다. 지난 2월 성수동에서 한 달간 운영한 갤럭시 스튜디오에는 휴대폰 카메라가 하나의 작품으로 등장했다. 갤럭시 S23의 초광각, 망원렌즈를 모티프로 한 정성윤 작가의 ‘이클립스(Eclipse)’는 휴대폰 뒷면에서 일어나는 기술의 원리를 자연현상에 비유했다. 손바닥보다 작은, 일종의 생활용품을 커다란 스케일로 확대한 것만큼이나 눈여겨볼 것은 이 작품을 대하는 관람객의 행위다. 방문한 관람객들이 갤럭시 시리즈로 ‘이클립스’를 촬영하는 장면은 제품에서 작품으로, 작품은 다시 제품으로 포착되는 순환의 퍼포먼스나 다름없었다. 결국 브랜드 경험은 기업의 일방적 제시가 아니라 소비자의 참여로 완성된다는 점에서, 고도화된 마케팅 전략은 ‘관객 참여형 전시’와 구분할 수 없음을 방증한다.
클라이언트 삼성전자
프로젝트 기획 제일기획
콘텐츠 기획 및 제작 아워레이보
참여 작가 정성윤
브랜드의 역사가 곧 생활의 역사, 〈유행화장〉
시대별로 유행하는 화장은 당시의 일상을 그대로 반영한다. 뷰티와 밀접한 관계에 있는 그 시절 패션, 당시의 광고에서 사랑받은 모델이나 자주 사용한 서체, 레이아웃 등에 대한 정보도 자연스럽게 얻게 된다. 이러한 점에 비춰보았을 때 뷰티 라이프스타일 기업 아모레퍼시픽이 78년의 시간 동안 축적해온 자료는 곧 생활사의 증거다. 전시 〈유행화장〉은 아모레퍼시픽이 아카이빙한 기업의 자료를 바탕으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가상 공간을 재현한 것이다. 총 6개 존으로 구성된 전시 공간은 1980년대의 메이크업을 따라 할 수 있는 ‘화장대’, 그 시절 유행했던 스타일링을 재현해볼 수 있는 ‘옷장’, 아모레퍼시픽에서 출시한 제품과 간행물을 한데 모아놓은 ‘서재’, 옛 광고물과 영상을 감상할 수 있는 ‘영사실’, 그리고 ‘응접실’로 이루어졌다. ‘굿즈샵’에서는 전시명과 동명인 뷰티 큐레이션 북 〈유행화장〉을 비롯해 다양한 굿즈를 준비해놓았다. 전시를 기획한 아모레퍼시픽 크리에이티브센터 관계자는 트렌드가 집약된 한남동에 과거를 심어 이곳을 방문한 관람객들이 ‘비일상적 반가움’을 느끼길 바랐다고 말했다. 잘 보존된 브랜드의 아카이브는 보다 친숙한 박물관 수장고와도 같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기획 아모레퍼시픽 크리에이티브센터 크리에이티브전략팀
공간 디자인 아모레퍼시픽 크리에이티브센터 넥스트 스페이스팀